-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
- 역사지리학자의 서울 걷기 여행 특강
- 이현군 저
- 청어람미디어
- 2009.09.15
- 상세정보
비 오는 토요일 아침. 남산도서관에 올라 책 하나를 빌렸다. 매번 스쳐 지나가던 풍경들을 걷고 싶은 날. 오늘은 옛 지도를 들고 걷는다. 남산식물원이 있었고 얼마 전까지 분수대가 있었던 곳에 일본 신사가 있었다. 남산은 북악산과 함께 도성을 상징하는 산으로 태조로부터 목멱대왕이란 벼슬도 받았다. 이런 상서로운 산에 일제는 본래 있던 국사당을 철거하고 자신들의 신사를 세운 것이다. 지금 내려가고 있는 교육연구정보원 옆 계단도 일본 신사로 올라가던 계단이었다.
비바람에 은행잎 노란빛이 우수수 쏟아진다. 복원된 남대문 앞을 걸어 상공회의소를 오른편에 두고 걷는다. 상공회의소 부근은 중국 사신들이 묵던 태평관이 있었던 곳이다. 이 근처는 소공동인데 태종의 딸 경정 공주의 집이 있었던 것에 유래한다. 이 고층빌딩들 사이에 갑작스레 돌담장이 나타나는 데 옛 성곽이 있던 자리를 부분적으로나마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실제 성곽에 사용되었던 돌들도 포함되어 있다. 지금 이 거리와 고가가 만나는 곳에는 서소문이 있었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지명으로는 남아 시청 방향으로 걷는 내내 그 이름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배재 빌딩으로 시작되는 정동길을 걷는다. 성곽을 서쪽에 덕수궁을 동쪽에 두고 배재학당과 예배당을 만난다.
비 오는 날에도 덕수궁 대한문 앞은 사람들로 세종로는 차로 북적인다. 지금처럼 조선 시대에도 정부청사들이 있어 이 거리는 육조거리였다. 비는 그쳤지만 내린 비로 청계천 물이 부풀어 있다. 첫 번째로 만나는 다리는 모전교이다. 이 근처에 과일을 팔던 모전이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모전교이다. 종로 일대는 궁궐이나 관아에 물품을 대던 육의전이 있던 곳으로 지금처럼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었다. 광통교 다리 밑을 지난다. 이곳에서는 흥미로운 조각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태조 이성계 계비의 능에 있던 것이다. 계비의 능은 본래 정동에 있었다. 능이 있었기에 명칭이 정동이 된 것이다. 왕자의 난 당시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과 계비 간에 대립이 있었고 이방원이 왕이 된 후 능은 성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장 후 남은 석재들은 이 다리와 살곶이다리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삼일교까지 걸어 탑골공원 쪽으로 방향을 튼다. 공원 정문 앞에는 경시서와 육의전 표지석이 있다. 경시서는 시장을 감독하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 들어선 인사동의 '사'는 그 옛날, 이 부근에 큰 절이 있었던 것에 기원한다. 탑골 공원 안에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이 그 흔적이다. 조선 초기까지 그 자리에 있었지만, 유교가 조선 사회에 뿌리내리면서 도성 안의 절은 모두 성 밖으로 내쫓기게 된다. 안국역에 이르러 횡단보도를 건너고 풍문여고 옆 골목으로 들어선다. 풍문여고는 안동별궁이었다. 안국동에 있는 별궁이라는 말로 지금의 풍문여고 담장이 그대로 안동별궁의 담이었다. 그리고 만나는 덕성여고 앞에는 인현왕후 친정 표지석이 정독도서관 입구에는 성삼문의 집터와 화기 도감 표지석이 있다. 그렇게 자주 다니던 길인데 정말 알고 나서야 보인다는 게 맞는 말인 듯하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온 정독도서관. 올해도 단풍이 잘 들었다. 낙엽이 지는 이 길 위로 오늘도 시간이 쌓인다.
답사를 통해 역사의 흔적을 찾는 저자, 이현군
작가소개
서울대 지리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지리학과에서 지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 현재 일반인, 중고교 사회과 교사, 대학생,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서울 답사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장소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역사를 바라보는 데 관심을 가지고 책과 논문을 쓰고 있다. 서울대 국토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이며,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이사이다.
농촌에서 자랐고, 수학여행이 아니고는 고향을 떠난 적이 없었다. 대학진학을 계기로 서울에 왔다. 대학 입학 후, 학교를 졸업하려면 1학기에 한 번은 답사에 참여해야만 한다는 말에 답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다니다 보니, 나름 재미가 붙어 대학원 진학 후에는 자발적으로 답사를 다녔다. 대학원을 졸업한 지금은 만나는 사람마다 답사를 권한다.
지은 책으로 역사지리학자와 함께 떠나는 특강 시리즈인 1권 <옛 지도를 들고 서울을 걷다>와 2권 <서울, 성 밖을 나서다>, <한강의 섬>(공저) 등이 있다.
옛 지도를 보면서 도시를 걷고, 걸으면서 느끼고, 느끼면서 상상하는 것이 바로 답사입니다.
책속 밑줄 긋기
옛 서울은 지금과 다른 도시입니다. 그럼 현재의 서울에서 옛 모습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상상하며 걷기'를 하는 것이죠.(23쪽)
산을 등지고 물을 마주하는 곳, 북한산을 등지고 한강을 바라보는 남향의 땅, 그래서 한양이 되는 것이죠.(26쪽)
그리고 일제 강점기 내내 시가지 정비 확대 사업을 하면서 성곽이 계속해서 파괴됩니다.(127쪽)
그래서 생각한 건데, 여기처럼 담벼락에 성곽이었음을 알려주는 표시를 해주어도 좋고, 성곽이 지나는 경로를 따라 보도블록에 성곽을 상징하는 어떤 표시를 새겨 넣어 알려주면 어떨까요? 서소문과 서대문처럼 성문이 사라진 자리에는 성문 모양의 그림을 길에 그려놓고 말입니다.(151쪽)
도시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앞으로 서울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예측하는 데 도움을 얻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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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