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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 떡을 물위에 던져라 / 전 11:1-8절
전 11:1-8“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2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3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4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5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6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7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8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그러나 캄캄한 날들이 많으리니 그 날들을 생각할지로다 다가올 일은 다 헛되도다”
본문에는 네가 알지 못함이라는 말씀에 세 번 나옵니다. 1) 첫 번째는 우리에게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했고, 2) 두 번째는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했으며, 3) 세 번째는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에게 재앙이 언제 임할는지 알지 못하고, 모든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하고, 우리가 하는 일들 중에서 어느 것이 잘 될는지 알지 못합니다. 인간은 유한하고 어리석고 무지하여 미래를 알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유한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지혜로우신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8절에 나오는 말씀으로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라고 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항상 즐거워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나 캄캄한 날들이 많으리니 그 날들을 생각할지로다 그렇지만 다가오는 캄캄한 일은 다 헛된 일임을 명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캄캄한 날들도 많지만 그것은 원수 마귀들이 우리의 삶을 방해하려는 거짓 전술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다 헛된 일이 되고 맙니다. 거짓의 아비 마귀가 하는 모든 일은 결국에는 헛되어 무너지고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캄캄한 일이 있다는 것을 생각은 하되 거기에 마음이 빼앗기지 말고 그것 때문에 슬퍼하거나 위축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한 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유한한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지한다면 다음과 같은 일을 해야 하고 반드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1절에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범람하는 나일 강을 이용해서 농사를 짓던 애굽 땅에서 기인된 속담입니다. 우기가 되어 나일 강이 범람하다가 물이 빠질 시기가 되면, 지혜로운 농부는 씨앗을 가득 실은 배를 타고 가서 범람한 삼각주에다가 이 씨앗을 뿌립니다. 뿌린다는 표현보다는 본문의 말씀처럼 던진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씨앗을 물 위에 던지면, 이것이 흐르는 강물을 따라 자연스럽게 물 전체로 넓게 퍼지고, 이 물이 다 빠지고 나면 넓게 퍼진 씨앗들이 퇴적층이 쌓인 옥토에 뿌리를 내려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되는 겁니다.
쉽고도 지혜로운 농사법입니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믿음이 필요한 농사법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풍성한 결실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없이는 결코 소중한 떡(식물,씨앗)을 물 위에 던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자만이 식물을 물 위에 던질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복음 전파의 과정을 씨 뿌리는 비유(마 13장)로 설명하셨습니다. 농부가 풍성한 결실을 기대하고 밭에다 씨를 뿌리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이 말씀이 언젠가는 뿌리를 내리고 자라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는 겁니다. 즉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는 겁니다. 떡을 물 위에 던진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고 무모한 짓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코로나 시대에 날마다 복음을 전하고 선물을 나누어 주는 것도 그렇게 보입니다. 그러나 내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주님께로 돌아올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열매와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뿌리기만 하면 됩니다. 열매를 거두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전도에 성공자가 되려고 열매를 기대하지 않고 무조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열매를 맺게 하시고 거두게 하십니다. 복음 전도자는 무모하게 보이는 일에 믿음으로 도전하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는 나눠 주고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절 말씀을 보시면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나누어 주고 베푸는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 중에 한 가지가 바로 재앙이 언제 임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평소에 베푸는 삶을 살라는 겁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서도 주인으로부터 더 이상 청지기 사무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통보(재앙)를 받은 불의한 청지기가 그 남은 시간과 권한을 가지고 빚진 자들의 빚을 탕감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이 주인으로부터 청지기의 직분을 빼앗겼을 때 빚을 탕감 받은 사람들이 자신을 돌보아 줄 것이라 믿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마지막까지 못된 짓을 한 청지기로 보이지만 주인은 오히려 앞일을 대비할 줄 아는 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해주었습니다(눅16:1-9). 불의한 청지기처럼 우리에게도 미래를 대비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기회가 있는 데로 선한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데로 선한 일을 한 것만이 결국에는 나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3. 세 번째는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 중에 한 가지는 장래 일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재앙이 언제 임할지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장래 일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날마다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라는 단어와 저녁에도 라는 단어를 가지고 학자들마다 해석이 다릅니다. 어떤 학자들은 아침에를 젊은 시절을 의미하고 저녁에는 늙은 시절을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아침에 씨를 뿌리고 라는 말은 어떤 일이 처음에 잘 될 때를 의미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잘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녁이란 무슨 일이 잘 되지 않을 때를 의미합니다. 무슨 일이 생각만큼 잘 되지 않을 때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기도도 잘 될 때가 있고 안될 때가 있으며 전도도 잘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장사나 사업도 잘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목회도 잘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잘 될 때는 신이나서 마치 자신이 모든 일을 다 잘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저녁에도 라는 말씀처럼 잘 되던 일이 갑자기 안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처럼 안됩니다. 하는 일마다 안 될 때는 죽을 맛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성경은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 아침에 씨를 뿌리는 것처럼 잘 되는 일이 계속해서 잘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반대로 내가 생각할 때 저녁에도 와 같이 잘 안되는 일이 계속해서 안되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아침에 일이 잘 될지 저녁에 일이 잘 될지 아니면 둘 다 잘 될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선하시고 은혜 베푸시기를 좋아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의 인생을 맡기고 최선을 다해서 충성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모든 일이 잘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일이 안되어도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마침내 승리하고 성공하고 형통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4. 네 번째는 환경을 탓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눈에 보이는 환경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4절에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씨를 뿌려야 할 시기가 되었음에도 풍세 즉, 바람이 분다는 이유로 씨뿌리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추수할 시기가 되었음에도 비구름을 핑계대고 일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일하지 않으려는 미련하고 게으른 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런 결실도 얻지 못하며 재앙의 날에 심판을 피할 수도 없다는 겁니다. 잠20:4/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핑계를 되면서 가을에 밭 갈지 않으면 거둘 때에는 궁핍함을 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잠22:13/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일하기를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바라보고 믿음이 없는 불신자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하며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풍성하게 거두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대구비전교회 수요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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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원래 이 말은...중동지방에서 흔히 듣는 속담입니다.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이 말은 고대 항구도시의 곡식무역에서 유래된 비유적인 표현으로...거의 모험에 가까운 사업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곡식 무역상들이 배에 곡식을 잔득 싣고 넓은 바다를 항해를 할 때...태풍이나 암초로 인하여 배가 침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그렇게 되면 배에 가득 실은 곡식들은 다 물속에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곡식무역상들이 많은 이익을 얻는 사업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구제에 대하여 교훈하는 말로...무역상들이 곡식을 물에다 잃어버리듯이...보상을 기대하지 말고 베풀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베풀 때...되돌려 받고...보상을 받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선행을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흘러가는 강물에다 떡을 던져 버리면...그것은 결코 회수할 수 없고...잃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구제도 그런 기대를 가지지 않고 해야 된다는 교훈입니다. 그렇게 순수한 주는 마음으로 하면...하나님께서 반드시 거기에 대한 보상을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손해 보는 순수한 마음으로 구제하지만...하나님은 그것을 헤아려 많은 것으로 보상해 주신다는 것이 성경의 약속입니다
현대에 와서 바로 이 구절을 인용하여 기업을 인수 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그가 유튜브 여자 CEO인 ‘수잔 보이치키’ 입니다. 그녀는 단지 구글이 처음 사무실을 낼 때 자신의 집 차고를 젊은 청년들에게 세를 내준 전업주부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 아낙네는 아무 매출이 없었던 구글에 자원해서 입사했고 홍보와 영업을 맡았던 것입니다.
집에서 그냥 가사만 하던 그녀가 가슴에 새긴 성경 문구는 전도서 11장의 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임원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비싼 값에 유튜브를 사들였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그 가치가 170조나 나가는 거대한 회사가 되었습니다.
떡을 물 위에 던진 효과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저에 몇몆 사람들이 간혹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무상으로 밴드나 SNS에 올리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하지만 저는 계속해서 꾸준히 떡을 던진 덕에 많은 분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요즘은 그 떡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효과를 엄청나게 본 그룹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BTS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양질의 콘텐츠를 유튜브로 올렸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게 뭐지"? 하고 보았습니다. 그 내용은 가히 돈을 주고 공연에서나 볼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반신반의하게 보게 되었고 차츰 한국말의 노래에 어떤 팔로우는 영어자막을 붙이게 되고 다시 영어자막은 각국의 언어로 독자들이 자원해서 자막을 붙였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세계로 급속히 퍼져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BTS는 좋은 콘텐츠를 물에 막 던진 것입니다. 그것도 세계를 향하여…. 지금에 와서 그 결과는 엄청난 보상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죽어가는 영혼 구원을 위해 떡을 던져야 합니다. 복음. 말씀. 성도. 교회 사역을 위해 떡을 던져야 합니다. 이러한 일에 헌신 노력하는 곳에 떡을 던져야 합니다. 그리하면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또는 저 천국에서 큰 상급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전도서 11: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이 말씀을 힘입고 오늘도 출발하는 성도님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당산교회 조승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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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전 11:1-2)
① 떡은 bread(빵)이요, 음식물(개역성경)이다. “네 떡을 물 위에 던지라”는 말은 돈과 지식과 재능과 시간 등의 지혜로운 사용을 말씀한다. 일반적으로는 가난한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에게 주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눅 14:13-14)라고 하셨다.
②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서 살지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한다. 바울은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아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 3:1-2)고 하였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③ 이 말씀은 구제와 선행을 강조한 말씀이다. 왜 구제와 선행을 해야 하는가? 본문에서는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고 하였다. 금방 도로 찾는다는 말이 아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을 뜻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성격이 다 그러하다. 곧 다시 오신다고 하셨으나 2000년이나 지나도록 아직 재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해주시겠다는 약속, 모두는 금방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믿음으로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④ 그 첫째는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일종의 투자인데 가장 확실한 투자다. 농부는 100배의 수확을 내다보고 심는다. 그러나 아무 밭(길 가, 돌짝 밭, 가시떨기 밭 등)에나 심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무 데나 떡(식물)을 던지면 안 된다. 여기에 지혜가 필요하다.
⑤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였다. 왜 하나나 둘이 아닌가? 일곱은 완전수다. 여덟은 부활의 수다. 한두 사람에게만 주지 말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주라는 말도 되겠지만, 내 소유의 10-20%만 주지 말고 70-80%를, 나아가 전 재산을 나누어주라는 말씀도 된다. 예수님은 “소유를 다 팔아라”(마 13:44-46)라고 하셨고, 실제로 제자들은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갔다. 버리지 못하는 부자 청년은 주님을 따름에 실패하였다(마 19:21-22). 많이 받으려고 하지 말고, “많이 나누어주어라, 힘에 지나도록 나누어주어라.”라는 말씀이다.
⑥ 떡을 물 위에 던지는 일은 장래에 올 환난에 대비하는 지혜로운 행동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불의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두어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눅 16:9)라고 하셨다. 신기한 일이다. 떡을 물 위에 던지는 일과 장래에 올 환난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 일은 하늘에 쌓아놓는 일이다(마 6:20).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라야 기쁨으로 거두게 될 것이다”(시 126:5).
⑦ 누구에게 주어야 할까? 예수님은 “내 형제”(마 25:40), 또는 “너희 형제”(마 5:22,23)에게 주라고 하셨다. 물론 ‘형제’라는 말을 사해동포주의의 입장에서 ‘온 인류’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예수님도 당시의 “제사장, 장로, 서기관, 율법사, 바리새인, 사두개인” 등 유대교 지도자라는 사람들을 가리켜 ‘내 형제’라고 말씀하신 일은 없다. 오히려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마 23:33)라고 무섭게 책망하셨고,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마 10:16; 눅 10:3)라고 하셨다. 그들을 가리켜 이리(貍,狸)라고 하셨으니, 그들이 예수님이나 제자들의 형제가 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먼저 예수님의 형제가 되어야 한다. 주님이 친히 공급해주신다. 주 안에서 참된 형제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당신의 재물과 재능과 시간을 온전히 주님께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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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인생의 작은 투자는 눈앞의 상황과 예상, 결실에 목적을 두고 투자합니다. 그러나 큰 투자는 저 멀리 또는 인생과 역사의 궁극적 목적과 목표를 보고 투자합니한다.
멀리 보고 투자하는 것이 허망하고 황당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사람과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그렇다. 사람 투자와 교육의 효과는 20년이 돼야 나타나기 때문이다. 내가 심고 그 효과는 사회와 역사가 볼 것이라는 생각이 맞다.
사람에 대한 투자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가슴 아픈 실망과 배신의 고통을 겪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것이다. 10명에 투자할 때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기쁨 한 자락은 그중 두 셋이라 생각하면 편안하다.
떡은 돈과 지식과 재능과 시간 등을 말한다고 한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서 살지 말고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따라주지가 않는다. 몸과 마음, 뇌가 따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정말 바울이 말씀대로 오호라 곤고하도다 하였듯이 말이다. 구제와 선행을 강조한 이 말씀에 크게 찔림을 받는다. 복을 받기는 좋아하여 심는 것에 극성이다. 그러나 심는 것이 주를 위해 하여야 하는데 아직도 기복신앙을 가지고 있다. 애석한 일이다. 주님은 그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그런데 우리는 보상을 바라고 심는다. 그러함에도 하나님께서 믿음이 없는 어리석은 우리에게 순종할 때 복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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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의 깊은 인생론을 묵상하다 보면 전도자가 제시하는 인생의 의미를 알듯 모를 듯 할 때가 많다. 인생의 결론을 내리고 설명하는 연역적 변증이 아니라 다양한 시도와 경험으로 얻은 씨줄과 날줄의 진리의 실들을 엮는 귀납적 고백이기 때문이다. 어떤 신학적 체계로도 다 담을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이 아니다. 인생의 신비한 경험들 또한 학문으로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전도서에서 ‘인생이란 이런 것인가?’ 라고 무릎을 치며 만나게 되는 도전적인 말씀 중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말씀은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 11:1)”는 말씀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씀이요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다. 앞의 명령은 실로 무모한 행동이요 뒤의 약속은 행복하게 하는 축복이다.
새번역은 이 말씀을 “돈이 있으면 무역에 투자하여라. 여러 날 뒤에 이윤을 남길 것이다”라고 번역했다. 왕대일 교수(감신대)는 이 번역을 자본주의 시대의 문화환경에서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떡을 돈으로, 물을 해상무역으로, 도로 받는다는 것을 이윤을 얻는다는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왕 교수는 원문에 나타난 단어들에는 어떤 투자나 이윤을 얻는 의미가 전혀 들어갈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전도자는 이미 한평생 부귀와 영화를 누려본 자이고 앞서 돈을 좋아하는 것은 만족이 없다고 고백한 바 있기에(전 5:10) 더욱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떡을 물 위에 던지라”는 말씀은 가장 모험적인 선택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되기도 하는 인생의 예측불허 한 체험을 누려보라는 말씀으로 해석될 수 있다. 떡을 물 위에 던지라는 말씀은 인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극적으로 체험한 사람의 고백이다.
떡을 물 위에 던지는 것은 낭비처럼 보인다. 물에 젖은 떡은 아무 쓸모없는 것이 아닌가. 떡은 먹도록 되어 있는 것이지 물에 버리도록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떡을 물에 던지라는 것은 다시 되찾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시도해보라는 것이다. 또 어느 기간 동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상태로 한번 살아보라는 것이다.
얻고자 하는 자가 잃을 수 있고, 잃고자 하는 자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 누리고 있는 것, 붙잡고 있는 것을 포기하면 꼭 죽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내려놓음으로써 진정 살게 되고 복된 인생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주고받는(give and take) 것을 삶의 원리로 삼는다. 사람들은 당장 돌아올 것 같지 않은 곳에 삶을 투자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물 위에 떡을 던지는 듯한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조건 없는 기부, 아낌없는 긍휼, 더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마음 등으로 살아간다. 이들은 하나님의 원리가 ‘주고 또 주고(give and give)’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원리대로 살면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언젠가 다시 돌아오는 보상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고 하용조 목사는 초기 한동대의 위기 속에서 교회가 아무 조건 없이 헌금을 드린 후에 이런 고백을 성도들 앞에서 했다. “한동대를 도와준 만큼 우리의 마음이 그 액수만큼 더 커진 것입니다.” 한동대를 지원하면서 도리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 큰 보상을 마음이 넓어진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인생이란 생각하지 못한 기쁨과 축복이 항상 기다리는 모험이다. 익숙한 계산속에 ‘무엇을 보상으로 얻을 것인가’ 만을 따지며 살아가는 인생은 결코 이 말씀의 살아있음을 체험할 수 없다. 당장 무엇인가 얻을 수 있는 곳에만 투자하지 말고, 아무런 보상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 투자해보라. 이런 투자는 당장에 눈에 보이는 보상은 없다. 눈앞에서 떡이 물에 떠내려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물 위에 떡을 던지는 듯한 모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것을 도로 찾게 되는 짜릿하고 감격적인 하나님 체험 또한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모험이다. 내 계산과 경험에 갇힌 인생이 아니라 날마다 새로운 도전 속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는 여행이다. 전도서 기자가 경험한 이 놀라운 진리를 우리의 삶 속에서도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모험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Nothing Ventured, Nothing Gained).’
이재훈(온누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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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을 물 위로 던져라(전도서 11:1)
목사가 된 지금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만 과거 목사가 되기 전 성경을 읽을 때 그 뜻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혼자 고민했던 말씀들이 있었던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 뜻을 알 수 없어 고민했던 말씀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인 전도서 11장 1절 말씀이었습니다. 여하튼 이후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묵상하는 가운데 감사하게도 이 본문 말씀에 우리의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에 유익을 주는 진리가 들어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깨달았던 본문 말씀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여러분과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그럼 먼저 본문 말씀의 내용을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씀에 나오는 떡은 논밭에 뿌린 씨가 맺은 열매로 만든 음식물을 말합니다. 그런 까닭에 이 떡이라는 단어는 사람이 먹는 음식물의 근원이 되는 씨라는 단어로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조금 풀어 말씀드리자면 “너는 네가 먹는 음식물의 근원이 되는 씨를 물 위에 던져라. 그러면 여러 날 후에 도로 찾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씨를 물 위에 던져라’는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 뜻은 벼농사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에도 벼농사를 짓는 분들은 물 위에 씨, 즉 볍씨를 뿌립니다. 그런데 여러 자료들을 보면 옛날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도 그렇게 농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을 조금 말씀드리자면 당시의 농사방법 가운데 하나가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면 그 강물 위에 씨를 뿌렸습니다. 이후 홍수가 끝나 땅에까지 범람했던 강물이 빠져나가면 그렇게 강물에 뿌린 씨들이 땅에 가라앉아 싹을 내고 그 싹은 점점 자라 가을에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 열매를 사람들이 거두어 먹었습니다.
이런 설명을 통해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는 본문 말씀의 1차적 의미를 여러분이 이해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이런 1차적 차원으로만 그 의미를 해석하면 이 말씀은 자연계의 파종과 수확의 원리를 교훈하는 말씀, 즉 “강물이 범람한 때를 기회로 삼아 파종해라. 그러면 몇 달 후 가을에 수확하게 될 것이다”는 정도의 말씀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러나 이 말씀 안에는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이런 자연계의 파종과 수확의 원리 이상의 깊은 신앙적 교훈이 있습니다. 그 신앙적 교훈은 우리가 기도와 전도와 충성의 씨를 뿌리는 삶을 살면 언젠가는 하나님이 주시는 칭찬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교훈이고 그리고 또 우리가 선행과 봉사와 사랑의 씨를 뿌리는 삶을 살면 언젠가는 반드시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존귀함을 받는 열매도 얻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좀 더 이 내용을 깊이 알기위해 이 말씀을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먼저 떡을 던져라는 말씀을 살펴보십시다.
떡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입니다. 분명 사람의 육신적 생명은 떡으로 유지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은 그렇게 중요한 떡을 먹지 말고 던져라 하시되 땅에 던져라 하지 않고 물에 던져라 하셨습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 말씀 안에 담겨있는 뜻이 무엇입니까?
그 뜻을 결론적으로 정리해서 말씀드리자면 이 말씀은 ‘너는 네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떡, 즉 그 씨를 네 땅에만 던져 너만 먹으려 하지 말고 물 위에 던져 그 씨가 흘러가게 함으로 다른 이웃도 먹을 수 있게 하라’는 의미의 말씀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너무도 철저하게 자기중심으로 사는 이기적인 모습입니다. 그렇게 오늘의 사람들은 이웃도 없는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세상을 살기가 너무도 어려운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면 여러분!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얼마 가지 않아 망할 것입니다.
작년에 평생을 행상을 하며 살아온 어느 할머니가 비록 자신은 못 배웠지만 이 나라의 젊은이들만큼은 잘 배워야 한다며 평생 모은 재산을 어느 대학교에 기부한 이야기가 뉴스에 나왔습니다. 자신은 작은 집 한 채도 가지고 있지 못하면서 전 재산을 젊은 학생들을 위해 기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와는 전혀 반대로 이미 엄청난 돈을 가지고 있고 또 이미 많은 것을 자녀들에게 물려주었음에도, 더 많은 돈을 갖기 위해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부정한 일을 하다가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 어떤 재벌의 이야기도 그 즈음에 뉴스에 나왔습니다.
만약 그 재벌이 떡을 던져라는 이 본문 말씀을 읽었다면 그는 이 1절 말씀을 이웃과 관계없이 자신의 재산 증식을 위해서는 투자를 잘 해야 한다는 교훈의 말씀 정도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행상을 하며 살아온 할머니가 신앙인인지 아닌지는 잘 모릅니다만 그 할머니가 신앙인이었다면 그 할머니는 이 본문 말씀을 사람은 이웃에게 봉사와 선행과 사랑의 씨를 뿌리며 살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할 우리 신앙인은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는 본문의 말씀을 봉사와 선행과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니 그렇게 살라는 하나님의 말씀인줄 믿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신앙인인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그런 선행과 봉사와 사랑은 마음만 가지고 그냥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 그런 일들은 내가 희생해야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본문의 권고대로 내가 먹을 그 떡을 나만 먹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물 위에 던질 때, 이웃을 향한 봉사나 선행이나 사랑을 제대로 할 수 있다 그 말입니다. 사실 선행이나 봉사나 사랑은 여유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여유가 없다 할지라도 이웃과 자신의 것을 나누어 함께 살고자 하는 의식과 자세만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묻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여러분의 떡을 이웃에게 던지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내 떡이니 나만 먹겠다고 꽉 움켜쥐고 살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이웃에게 내 것을 나누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오늘 내게 있는 그 떡을 이웃에게 던지며 사시기 바랍니다.
2. 두 번째로 물 위에 던져라는 말씀을 살펴보십시다.
본문에서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고 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정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강물이 범람하게 될 때와 관련하여 그 의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흐르는 물 위에 씨를 던지면 그 씨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두 가지의 현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는 물결에 파묻혀 그 씨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게 될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씨가 그 물을 따라 멀리 멀리 떠내려갈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는 말씀의 의미를 이 두 현상과 연관시켜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첫 번째로 나타나는 현상인 물 위에 던진 씨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는 현상을 통해 ‘물 위에 던져라’는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선행과 봉사와 사랑의 씨를 뿌릴 때, 자신이 씨 뿌린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도 주고 칭찬도 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흐르는 강물 위에 뿌려진 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즉 씨뿌린 것을 사람들이 모르고 그래서 칭찬도 받을 수 없다 그 말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그 뜻은 ‘너희가 선행과 봉사와 사랑의 씨를 뿌릴 때 그 흔적을 남기려하지 말고 사람들의 칭찬이나 인정도 기대하지 말라’입니다.
솔직히 우리는 선행이나 봉사나 사랑을 행할 때 아무도 칭찬해 주지 않고, 또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으면 서운한 감정을 갖기 쉽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그래도 상관없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다면 사실 그 분은 대단한 분입니다. 분명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의 칭찬이나 반응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아무런 칭찬이나 반응이 없다 해도 그럼에도 선행하고 봉사하고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로 나타나는 현상인 물 위에 던진 씨가 멀리 멀리 떠내려간다는 현상을 통해 ‘물 위에 던져라’는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다. 흐르는 물 위에 떡, 즉 씨를 뿌리면 그 씨를 뿌린 사람의 주위에 그 씨가 심겨져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그 어떤 곳, 그리고 씨뿌린 사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 어느 곳에서 그 씨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는 이 말씀은 ‘그 선행과 봉사와 사랑의 결과가 네가 알지 못하는 곳에 나타난다 하여도, 그리고 네가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나타난다 하여도, 그저 묵묵히 더 넓게 더 많이 선행과 봉사와 사랑의 씨를 뿌려라’는 뜻의 말씀입니다.
우리교회는 교우들이 정성껏 드린 헌금으로 선교부와 장학부와 사회봉사부를 통해 국내는 물론이려니와 해외의 여러 교회와 기관과 사람들에게 조용히 그리고 꾸준하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도움을 주는 교회나 기관이나 사람들 중에는 공식적으로 드러내며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드러나지 않게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우리교회의 도움을 받는 교회나 기관이나 사람들 중에는 목사인 제가 아는 교회나 기관이나 사람들도 있지만 저도 잘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교회는 그런 드러내지도 않고 잘 모르는 교회와 기관과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는 말씀을 우리교회가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하는 선행과 봉사와 사랑에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심지어 그런 선행과 봉사와 사랑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그러한 땅에 베푼 것이라 할지라도, ‘물 위에 네 떡을 던져라’는 말씀이 주는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서 그저 조용히 선행과 봉사와 사랑의 씨를 뿌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바라고 계십니다.
3. 마지막으로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는 말씀을 살펴보십시다.
내가 먹어야 할 떡, 즉 내가 나를 위해 써야 할 씨를 물 위에 던졌습니다. 그 던진 이후 내 눈에 그 결과가 보이지는 않지만 틀림없이 그 누군가는 그 던져진 씨의 열매를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 이야기가 끝나고 만다면, 손익계산으로는 그 씨를 자신이 먹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던진 사람만 손해를 보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고, 사람이 행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자기의 떡, 즉 자기의 씨를 자신이 먹지 않고 물 위에 던진 사람이 손해를 보도록 그냥 놔두지 않으십니다. 본문 말씀에서와 같이 여러 날 후에 반드시 도로 찾게 해 주십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보상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가 떡을 물 위에 던진 것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 언제, 어떻게,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오게 될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먹어야 할 그 떡, 즉 그 씨를 우리가 포기하고 흐르는 물 위에 뿌린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한 보상을 준비하고 계시다가 때가 되면 그 떡과 씨를 반드시 도로 찾게 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이 도로 찾게 되는 그 때와 내용, 그리고 그 과정을 지금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물 위에 던진 떡을 도로 찾게 해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확신하면서 자신의 떡을 던짐으로 해야 하는 그 선행과 봉사와 사랑을 어떤 희생이 있다 할지라도 부지런히 실천하라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이 말씀의 증거가 되는 이야기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 중 제가 들은 한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연세대학교 4대 총장을 지내신 목사이며 구약학자인 박대선 박사님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일제 강점기에 일본 간사이 대학에서 공부를 할 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같이 공부하는 우리나라 유학생들 가운데 경제적으로 더 힘들게 공부하는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추운 겨울인데도 마땅히 신을 신발이 없어 슬리퍼를 신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박대선 박사님이 자신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큰 맘 먹고 본인이 아끼며 신고 있던 구두 한 켤레를 그 학생에게 주었습니다.
이후 공부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와 평양에서 목회와 함께 신학교에서 강의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한국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빈손으로 월남하여 무보수 군목으로 사역하게 되었는데, 살기가 어려운 그 때에 보수도 없이 군목으로 사역하고 있었으니 살기가 얼마나 더 어려웠겠습니까? 먹을 것이 없어서 식구들이 굶기를 밥 먹듯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차에 쌀을 몇 가마 싣고 자기 집에 찾아왔습니다. 깜짝 놀라 그 사람 얼굴을 자세히 보니 수년 전 일본에서 공부할 때 추운 겨울에도 발이 다 드러나는 슬리퍼를 신고 다녔던, 그래서 자기가 구두 한 켤레를 주었던 그 유학생 이였습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그 가난했던 유학생은 귀국한 이후 사업을 벌여 크게 성공했는데, 우연찮게 박대선 박사님이 월남하여 어렵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쌀을 가지고 박대선 박사님의 집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이후에도 그 사람은 박대선 박사님이 전쟁이후 도미하여 보스톤대학에서 또 공부할 때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도로 찾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씨를 물 위에 던져 흔적도 없이 그 씨가 사라진 것 같아도, 그 씨를 반드시 도로 찾게 해 주시어 기쁨과 감격을 누리게 하십니다. 물론 우리가 선행이나 봉사나 사랑을 베푸는 일을 할 때 그 일을 계산하면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도로 찾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계산은 하나님께 맡겨 두고 우리는 기회가 있는 대로 부지런히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 도로 찾는 때가 빨리 오지 않아도 서운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도로 찾는 때는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어떤 때는 빠른 기간 안에 찾게도 해 주시지만 또 어떤 때에는 10년 후나 20년 후에 도로 찾게도 해 주십니다. 아니 어떤 때에는 내가 뿌린 씨를 내가 찾지 못하지만 자식으로 하여금 찾게도 하십니다. 그런데 그 찾게 되는 것이 거기에서만 끝납니까? 아닙니다. 이 땅에서 뿌린 씨는 이 땅에서만이 아닌 하늘나라에서도 하나님이 찾게 해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3절 말씀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행한 일이 따른다고 했습니다. 어디에까지 그 행한 일이 따른다고 했습니까? 바로 하늘나라까지입니다. 우리가 행한 것은 이 땅에서 뿐 아니라 하늘나라에 가서라도 반드시 찾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최선을 다해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씨앗을 기쁨으로 물 위에 던지시기 바랍니다. 누가 그 씨를 뿌렸는지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은 다 아시고 하나님은 반드시 그 씨를 도로 찾게 해 주십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조금이라도 남을 도울 수 있을 때 도우며 살아가시고, 조금이라도 베풀 수 있을 때 베풀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진정 하나님 외에는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즉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선행이나 봉사나 사랑은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신속하고 단호하게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런 일들을 함에 있어서 베푼 그것을 도로 받겠다는 자세로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그 베푼 모든 것을 도로 찾게 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그 모든 일들은 언제나 사람을 바라보며 해서는 아니 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해야 합니다.
특별히 어제 우리교회에서는 김장을 위해 3,200여 포기의 배추를 구입하여 교회마당에 쌓아 놓았습니다. 매년 하는 일이지만 우리교회는 이 김장을 사랑의 김장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김장을 하지 못해 겨울의 밥상이 초라해질 우리의 이웃에게 사랑의 마음으로 나누어줄 김장이 바로 우리가 하는 김장이기 때문입니다.
매년 우리가 시행하는 이 사랑의 김장나누기는 여러 교우들이 물질과 시간과 몸을 바치는 아름다운 섬김을 통해 진행되어 왔습니다. 물론 금년에도 그렇게 진행되고 있고, 또 그렇게 진행될 것입니다. 오늘 오후 예배를 마친 다음부터 시작되어 화요일까지 3일 동안 진행되는 사랑의 김장나누기 행사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도로 찾게 되는 신앙의 원리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런 사랑과 섬김의 봉사를 하시는 교우들에게 풍성한 보상의 열매를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축복하기는 우리교회 교우 모두다 주변의 힘들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금년 사랑의 김장 나누기를 포함한 여러 일들에도 자신의 떡, 즉 자신의 씨를 언제라도 물 위에 과감히 던지는 섬김의 삶을 살아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보상의 열매를 금생과 내생에서 수확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김재곤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