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리암각화, 반구서원
집청정(集淸亭)
집청정은 경주최씨 정무공파 파조 청백리 병조판서 최진립 장군의 증손 운암(雲巖) 최신기(崔信基, 1673~1737) 가 세운 정자이다.
집청정은 맑음을 모은다는 뜻이며 오른쪽에 청류헌(廳流軒 - 물 흐르는 소리를 듣다), 왼쪽에 대치루(對峙樓 - 서로 마주함)를 두고 있다.
진경 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鄭敾)의 '반구'와 겸재 또는 그의 손자 정황(鄭榥)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언양반구대' 에도 집청정으로 보이는 정자가 묘사되어 있다.
집청정은 반구대를 찾는 시인 묵객의 소통의 장이 되었으며, 조선 후기부터 구한말까지 284명의 시인이 400 여 편의 시를 남겼다. 그 작품들을 운암의 후손 최준식(崔俊植)이 정리하여 한권의 책 (集淸亭詩集)으로 묶었다.
집청정시집에는 숙종과 영.정조때의 문신, 학자, 경상도 관찰사, 인근지역 수령들이 이름을 올렸으며, 숙종 때의 문신 권해의 반구제영(盤龜題詠)도 실려있다.
지금도 집청정은 옛 정신을 살려 지역 문화의 창작과 소통의 장소로, 예와 도를 배우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반구서원(盤龜書院,盤皐書院)
언양면 대곡리에 있던 서원으로 1712년(숙종 38)에 언양지역 사림들이 포은 정몽주, 회재 이언적, 한강 정구 등 3현을 제향하기 위해 언양의 반구대 아래에 창건한 서원이다.
1871년(고종8)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현재의 서원은 1965년에 자리를 옮겨 중건한 것이다.
안양읍지에 따르면, 언양의 반구대는 고려 말 정몽주가 유배 온 곳이고, 조선조에 이언적이 경상도관찰사 재임 시 이곳에 머문적이 있으며, 정구는 이거하여 정착할 계획을 세운 곳이라하여, 1712년에 언양 사림 이위, 김영하, 김지, 정태구, 박문상 등이 중심이 되어 반구대 아래에 반고서원(盤皐書院)을 짓고, 이듬해 3현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반고(盤皐)'라는 명칭은 정구가 간찰에 쓴 "언덕에 집을 지어 은거하다[考槃在阿]'에서 따온 것이다.
반고서원은 후일 '반구서원(盤龜書院)'으로 개칭되었다.
반구서원유허비
울산광역시문화재 제13 호(2004년12월16일 지정)
유허비란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혀 후세에 알리고자 세우는 비석으로, 이 비는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있다.
포은선생은 고려 우왕 1년(1375) 성균관 대사성의 벼슬에 있으면서 중국 명나라를 배척하고 원나라와 친하게 지내려는 친원배명 정책에 반대하다가 언양에서 1년 넘게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동안 자주 반구대에 올라 "충양절 감회"라는 시를 짓는 등 많은 자취를 남겼다.
그 후 지역인들은 선생을 추모하여 반구대를 "포은대"라 명명하기도 하였다.
조선숙종 38년(1712) 언양지역 유생들이 포은 정몽주. 회재 이언적. 한강 정구 세 분을 추앙하여 반고서원을 세우고 제사하였다. 그러나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문을 닫게 되었다.
그 후 지역 유림들이 포은대영모비(1885), 포은대실록비(1890), 반구서원유허비(1901) 3개의 비석을 차례로 세웠으며, 1965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대곡천
대곡리 공룡발자국 화석
대곡리반구대암각화
암각화 박물관에서 대곡천 하류로 약 1.2 km 지점의 바위절벽에 반구대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그림이 집중적으로 새겨진 중심 암면은 너비 약 10 m, 높이 약 3 m 로 좌우로 10여곳의 암면에서도 그림이 확인된다.
암각화에서는 바다동물인 고래, 거북, 물개, 물새, 상어, 물고기 등과 육지동물인 호랑이, 표범, 멧돼지, 사슴, 늑대, 여우, 너구리 등 약 20여종의 동물들이 확인된다.
그리고 수렵어로도구인 배, 작살, 부구, 어살, 그물 등과 사람의 전신상, 얼굴 등을 포함하여 약 3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반구대 암각화의 제작연대는 약 7,000~3,500년 전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구대암각화는 선사시대 북태평양연안의 독특한 해양어로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유적이자 인류 최초의 포경유적으로 평가되어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