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 送人> - 정지상(鄭知常)
雨歇長堤草色多
비 그친 긴 둑에 풀빛 짙으니 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
그댈 보내는 남포에서 슬픈 노래 울리네 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 물이야 언제야 마르려나 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
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보태나니. 별루년년첨록파
<참고사항>
형식: 7언 절구
압운: 多, 歌, 波
시의 전개방식: 기승전결
<낱말풀이>
*송인(送人) - 사람을 떠나 보냄. (人)-다른사람을 가리킴.
*우헐(雨歇) - 비가 그침. 헐(歇):은 쉴 헐
*장제(長堤) : 긴 둑.
*초색다(草色多) : 풀빛이 짙음. ‘풀빛이 선명함'을 일컬음.
*송군(送君) : 그를 보냄. (君)-남에 대한 존칭.
*남포(南浦) : 대동강 하구에 있는 진남포.
*동비가(動悲歌) : 슬픈 이별의 노래가 울림.
*별루(別淚) : 이별 눈물.
*첨록파(添綠波) : 푸른 물결에 보태다. 시가 쓰여진 때는 봄.첫행 草色과 마지막 행
綠派를 연결함.
작가소개
*정지상 [鄭知常, ?~1135]
○ 정의
고려전기 좌정언, 좌사간 등을 역임한 관리. 문신.
○ 개설
서경 출신. 초명은 정지원(鄭之元). 호는 남호(南湖).
○ 생애 및 활동사항
1114년(예종 9) 과거에 급제하였다.
1127년(인종 5) 좌정언(左正言)으로 이자겸(李資謙)을 제거한 공을 믿고 발호하는 척준경
(拓俊京)을 탄핵해 유배하도록 하였다. 1129년 좌사간(左司諫)으로 기거랑(起居郎) 윤언이
(尹彦頤) 등과 시정(時政)의 득실을 논하는 소(疏)를 올리니 왕이 받아들였다. 음양비술(陰
陽祕術)에도 관심이 많아 묘청(妙淸)·백수한(白壽翰) 등과 함께 삼성(三聖)으로 불렸다.
1132년에 기거주(起居注)로서 윤언이가 강론한 『역경(易經)』의 건괘(乾卦)에 대하여 토론하
였다. 이듬해에도 기거주로서 김부식이 강론한 『주역(周易)』과 『상서(尙書)』에 대해서 토론
하였다.
서경출신으로 서울을 서경으로 옮길 것을 주장해, 김부식(金富軾)을 중심으로 한 유교적·사
대적인 성향이 강하던 개경 세력과 대립하였다. 서경을 거점으로 묘청 등이 난을 일으키자,
적극 가담해 금나라를 정벌하자고 주장하며 칭제건원(稱帝建元)을 하였다. 그러나 개경 세
력의 김부식이 이끄는 토벌군에게 패해 개경에서 참살되었다.
정지상은 정치인으로서만이 아니라, 뛰어난 시인으로서 문학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정
지상의 시재(詩才)는 이미 5세 때에 강 위에 뜬 해오라기를 보고 “어느 누가 흰 붓을 가지고
乙자를 강물에 썼는고(何人將白筆 乙字寫江波).”라는 시를 지었다는 일화가 야사로 전해올 만
큼 뛰어났다
1130년 지제고(知制誥)로 왕명에 따라 곽여(郭輿)를 위해 「산재기(山齋記)」를 짓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재로 고려 12시인 중의 하나로 꼽혔다. 노장사상에 심취했으며, 역학(易學)·불교(佛敎)
에도 조예가 깊었다. 또한 그림·글씨에도 능통했는데, 특히 사륙변려체를 잘 썼다고 한다. 작품
으로는 『동문선』에 「신설(新雪)」·「향연치어(鄕宴致語)」가, 『동경잡기(東京雜記)』에 「백률사(栢
律寺)」·「서루(西樓)」등이 전하
○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보한집(補閑集)』
『파한집(破閑集)』
「정지상」(양주동, 『한국의 인간상』5, 신구문화사, 1980)
[네이버 지식백과] 정지상 [鄭知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