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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이 읽어주시는 화엄경(2021.1.18.PM7시)
세계성취품(世界成就品)
두루 관찰하다
저녁 7시 오늘부터 화엄경 공부 계속 이어서 하겠다. 오늘 공부하는 화엄경은 제7권인데 앞에서 보현삼매품이 끝났다. 보현삼매품은 세 번에 걸쳐서 끝났다.
그다음에 제4품 세계성취품이다. 세계가 성취되는 데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다.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제7권
四. 세계성취품
세계성취품(世界成就品)
세계성취품(世界成就品)은 법계가 이와 같이 펼쳐져 있음[法界安立海]에 대한 물음에 답한 것으로 세계가 존재하게 된 여러 가지 상황들을 설명하고 있다. 세계는 곧 부처님과 보살들과 모든 중생들과 일체 생명들이 의지하여 살아가는 생활환경이다. 그것을 의지하는 과보, 즉 의보(依報)라 한다. 예컨대 거미는 평생 거미줄을 의지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거미줄은 나무를 의지하고, 나무는 땅을 의지하고, 땅은 또 온 우주를 의지하여 그렇게 존재한다.
부처님의 세계는 어떠하겠는가. 세계성취품에서는 부처님 세계의 이름들과 세계가 성취된 인연과 세계가 의지하여 머무는 일과 그 형상과 체성(體性)과 장엄과 방편과 부처님의 출현과 머무는 겁(劫)과 겁의 변천과 무차별 등등을 낱낱이 설명하고 있다.
처음은 보현보살이 두루 관찰하는 내용이다.
1. 두루 관찰하다
이시(爾時)에 보현보살마하살(普賢菩薩摩訶薩)이 이불신력(以佛神力) 변관찰일체세계해(徧觀察一切世界海)와 일체중생해(一切衆生海)와 일체제불해(一切諸佛海)와 일체법계해(一切法界海)와 일체중생업해(一切衆生業海)와 일체중생근욕해(一切衆生根欲海)와 일체제불법륜해(一切諸佛法輪海)와 일체삼세해(一切三世海)와 일체여래원력해(一切如來願力海)와 일체여래신변해(一切如來神變海)하시니라
그때에 보현보살마하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으로써 일체 세계바다와 일체 중생바다와 일체 모든 부처님바다와 일체 법계바다와 일체 중생들의 업(業)바다와 일체 중생들의 근성과 욕망 바다와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법륜바다와 일체 삼세바다와 일체 여래의 원력(願力)바다와 일체 여래의 신통변화바다를 두루 관찰하였습니다.
보현보살이 법을 설하기 위해서 두루 관찰하는 내용인데 낱낱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관찰한다. 부처님의 위신력으로써 일체 세계바다, 일체 중생, 일체 모든 부처님, 세계, 중생, 부처님, 법계, 중생들의 업, 중생들의 근성과 욕망, 일체 모든 부처님의 법륜바다, 법의 바퀴다, 일체 삼세 그리고 일체 여래의 원력, 일체 여래의 신통변화 이런 등등을 골고루 관찰했다, 하는 내용이다.
1) 부처님을 찬탄하다
가. 지혜를 찬탄하다
또 부처님을 찬탄한다. 그렇게 관찰하고 나서 부처님을 찬탄하는데 먼저 지혜를 찬탄한다.
여시관찰이(如是觀察已)하고 보고일체도량중해제보살언(普告一切道場衆海諸菩薩言)하사대 불자(佛子)야 제불세존(諸佛世尊)의 지일체세계해성괴청정지(知一切世界海成壞淸淨智)가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이와 같이 관찰하고 나서 온갖 도량의 대중바다에 있는 모든 보살들에게 널리 말하였습니다.
“불자들이여,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일체 세계바다의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것을 아는 청정한 지혜가 불가사의합니다.”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일체 세계의 바다가 성주괴공(成住壞空)하는 것을 환하게 안다는 것이다. 성주괴공, 세계가 성주괴공하는 것도 알겠지만 중생들이 생노병사(生老病死)하는 것도 알고, 어떤 사물이 생주이멸(生住異滅)하는 것도 알고, 다 알 것이다. 우리는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절이 바뀌는 것 정도는 짐작을 한다. 그런데 날씨가 좀 풀리는 듯 하더니 도로 추워지니까, 풀렸을 때 는 그때 그대로 풀려지는 것까지만 알았지 도로 추워지는 것까지는 모른다.
지일체중생업해지(知一切衆生業海智)가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일체 중생들의 업의 바다를 아는 지혜가 불가사의합니다.”
부처님 지혜는 이렇게 불가사의하다.
지일체법계안립해지(知一切法界安立海智)가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일체 법계가 펼쳐져[安立] 있는 바다를 아는 지혜가 불가사의합니다.”
부처님의 지혜는 불가사의하다. 보통 중생으로는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는다.
설일체무변불해지(說一切無邊佛海智)가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입일체욕해근해지(入一切欲解根海智)가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일념보지일체삼세지(一念普知一切三世智)가 불가사의(不可思議)며 현시일체여래무량원해지(顯示一切如來無量願海智)가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시현일체불신변해지(示現一切佛神變海智)가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전법륜지(轉法輪智)가 불가사의(不可思議)며 건립연설해(建立演說海)가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니라
“일체 끝없는 부처님바다를 연설하는 지혜가 불가사의합니다. 일체 욕망과 이해와 근성 바다에 들어가는 지혜가 불가사의합니다. 한 생각에 일체 삼세를 널리 아는 지혜가 불가사의합니다. 일체 여래의 한량없는 서원바다를 나타내 보이는 지혜가 불가사의합니다. 일체 부처님의 신통변화바다를 나타내 보이는 지혜가 불가사의합니다. 법륜을 굴리는 지혜가 불가사의합니다. 연설바다를 건립함이 불가사의합니다.”
부처님의 경계가 낱낱이 불가사의하다 하는 것이다. 이것을 일체지(一切智)라고 한다. 화엄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낱말 일체지, 일체 것을 다 아는 지혜, 그런 말이다.
나. 육근과 삼업을 찬탄하다
부처님의 육근과 삼업을 찬탄하다.
청정불신(淸淨佛身)이 불가사의(不可思議)며 무변색상해보조명(無邊色相海普照明)이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상급수호개청정(相及隨好皆淸淨)이 불가사의(不可思議)며
“또한 청정한 부처님의 몸이 불가사의합니다. 끝없는 색상의 바다가 널리 밝게 비침이 불가사의합니다. 상(相)과 수호(隨好)가 다 청정함이 불가사의합니다.”
상(相)과 수호(隨好)는 32상 80종호다.
무변색상(無邊色相)의 광명륜해구족청정(光明輪海具足淸淨)이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종종색상(種種色相)의 광명운해(光明雲海)가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수승보염해(殊勝寶焰海)가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성취언음해(成就言音海)가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시현삼종자재해(示現三種自在海)가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조복성숙일체중생(調伏成熟一切衆生)이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용맹조복제중생해(勇猛調伏諸衆生海)하야 무공과자(無空過者)가 불가사의(不可思議)니라
“그지없는 색상의 광명바퀴바다가 구족하게 청정한 것이 불가사의합니다. 가지가지 색상의 광명구름바다가 불가사의합니다. 수승한 보석불꽃바다가 불가사의합니다. 말과 음성바다를 성취함이 불가사의합니다. 세 가지 자재(自在)바다를 나타내 보임이 불가사의합니다. 일체 중생을 조복(調伏)하고 성숙시킴이 불가사의합니다. 용맹스럽게 모든 중생바다를 조복해서 헛되이 지나침이 없음이 불가사의합니다.”
앞에서 세 가지 자재바다를 나타내 보임이 불가사의하다 그랬다.
중생을 조복하고 성숙하는 데는 자세히 말하면 세 가지가 있다. 처음이나 끝이나 부드러운 말로 섭수할 사람은 반드시 섭수하는 것과 처음이나 끝이나 거친 말로 절복할 사람은 반드시 절복하는 것과 때로는 부드러운 말로 하고 때로는 거친 말로 하여 성숙시킬 사람은 반드시 성숙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도 헛되이 지나침이 없다. 이것이 보살의 선교방편이다.
근기 따라서 계속 어떤 위엄으로써 가르칠 사람은 위엄으로 가르치고, 부드러운 말로써 가르칠 사람은 부드러운 말로 가르친다. 아주 위엄스런 말과 부드러운 말을 수시로 섞어가면서 상황 따라서 바꿔가면서 교화할 사람은 또 그렇게 한다, 그런 내용이다.
다. 덕의 작용이 원만함을 찬탄하다
부처님의 덕의 작용이 원만하다.
안주불지(安住佛地)가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입여래경계(入如來境界)가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위력호지(威力護持)가 불가사의(不可思議)며 관찰일체불지소행(觀察一切佛智所行)이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제력원만(諸力圓滿)하야 무능최복(無能摧伏)이 불사사의(不可思議)며 무외공덕(無畏功德)을 무능과자(無能過者)가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주무차별삼매(住無差別三昧)가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신통변화(神通變化)가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청정자재지(淸淨自在智)가 불가사의(不可思議)며 일체불법(一切佛法)을 무능훼괴(無能毁壞)가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니라
“그리고 부처님의 지위에 안주함이 불가사의합니다. 여래의 경계에 들어감이 불가사의합니다. 위신력으로 보호해 가짐이 불가사의합니다. 일체 부처님이 지혜로 행하신 것을 관찰함이 불가사의합니다. 모든 힘이 원만해서 다른 이가 능히 꺾어 조복할 수 없음이 불가사의합니다. 두려움 없는 공덕을 능히 지나갈 이가 없음이 불가사의합니다. 차별 없는 삼매에 머무는 것이 불가사의합니다. 신통변화가 불가사의합니다. 청정하고 자재한 지혜가 불가사의합니다. 일체 불법을 능히 무너뜨릴 수 없음이 불가사의합니다.”
이런 것은 부처님 세계니까 우리는 그냥 다른 마음없이 그대로 순수하게 듣고 읽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거기에 다른 생각을 보탤 것도 없고, 사량분별을 일으킬 것도 없다. 그래야 우리가 읽는 화엄경이 공덕의 표준이 된다. 공덕행의 표준이 되고, 정말 결정적인 확실한 진리의 꽃이 된다.
이것은 우리가 신앙적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원래 경전은 신앙적인 정신을 바탕삼고 공부하는 것이다. 따져서 교리적으로 너무 알려고 하는 것보다는 신앙이 앞서는 것이다. 그래서 신위도원공덕모(信爲道元功德母)라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도의 근원이고 공덕의 어머니다 하는 것을 앞세우고 공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한다. 분별하고 따져서 그것이 꼭 정확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그저 순수하게 신앙하고 믿고, 순종하는 수순하는 자세가 복을 받는 자세다. 부처님 경전은 듣고 믿고 수순하는 것,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2) 세계 성취
가. 설법의 이익을 성취함
여시등일체법(如是等一切法)을 아당승불신력(我當承佛神力)과 급일체여래위신력고(及一切如來威神力故)로 구족선설(具足宣說)호리니
“이와 같은 일체 법을 내가 마땅히 부처님의 위신력과 모든 여래의 위신력을 받들어 구족하게 설하겠습니다.”
구족하게 설하겠습니다.
위령중생(爲令衆生)으로 입불지혜해고(入佛智慧海故)며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지혜바다에 들어가게 하기 위한 까닭이며”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지혜가 들어가게 하기 위한 까닭이며
위령일체보살(爲令一切菩薩)로 어불공덕해중(於佛功德海中)에 득안주고(得安住故)며
“일체 보살들에게 부처님의 공덕바다 가운데에 안주하게 하기 위한 까닭입니다.”
일체 보살들에게 부처님의 공덕바다 가운데 안주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 중생들에게 부처님 공덕바다 가운데 안주하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위령일체세계해(爲令一切世界海)로 일체불(一切佛)이 자재소장엄고(自在所莊嚴故)며 위령일체겁해중(爲令一切劫海中)에 여래종성(如來種性)이 항부단고(恒不斷故)며 위령어일체세계해중(爲令於一切世界海中)에 현시제법진실성고(顯示諸法眞實性故)며
“일체 세계바다를 일체 부처님이 자재하게 장엄하기 위한 까닭이며, 일체 겁의 바다 가운데 여래의 종성(種性)이 항상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까닭입니다. 일체 세계바다 가운데에 모든 법의 진실성을 나타내 보이기 위한 까닭입니다.”
위령수일체중생(爲令隨一切衆生)의 무량해해(無量解海)하야 이연설고(而演說故)며 위령수일체중생(爲令隨一切衆生)의 제근해(諸根海)하야 방편영생제불법고(方便令生諸佛法故)며 위령수일체중생(爲令隨一切衆生)의 낙욕해(樂欲海)하야 최파일체장애산고(摧破一切障碍山故)며 위령수일체중생(爲令隨一切衆生)의 심행해(心行海)하야 영정수치출요도고(令淨修治出要道故)며 위령일체보살(爲令一切菩薩)로 안주보현원해중고(安住普賢願海中故)라
“또 일체 중생들의 한량없는 이해의 바다를 따라서 연설하기 위한 까닭입니다. 일체 중생들의 모든 근기의 바다를 따라서 방편으로 모든 부처님의 법을 내게 하기 위한 까닭이며, 일체 중생들의 욕락(欲樂)의 바다를 따라서 모든 장애의 산을 꺾어 깨뜨리게 하기 위한 까닭입니다. 일체 중생들의 심행(心行)의 바다를 따라서 생사에서 벗어나는 요긴한 길을 청정하게 닦게 하기 위한 까닭이며, 일체 보살들이 보현보살의 서원의 바다 가운데에 안주하게 하기 위한 까닭입니다.”
일체 보살들이 보현보살의 서원의 바다 가운데에 안주하게 하기 위한 까닭입니다. 모든 보살들도 종국에는 보현보살의 서원바다 가운데 안주하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라고 하였다.
나. 설법의 의미
시시(是時)에 보현보살(普賢菩薩)이 부욕령무량도량중해(復欲令無量道場衆海)로 생환희고(生歡喜故)며 영어일체법(令於一切法)에 증장애락고(增長愛樂故)며
이때에 보현보살이 또 한량없는 도량의 대중바다로 하여금 기쁨을 내게 하는 까닭이며, 일체 법에 즐거움을 증장하게 하는 까닭이며
일체 법에 즐거움을 증장하게 하는 까닭이며
영생광대진실신해해고(令生廣大眞實信解海故)며 영정치보문법계장신고(令淨治普門法界藏身故)며 영안립보현원해고(令安立普賢願海故)며 영정치입삼세평등지안고(令淨治入三世平等智眼故)며 영증장보조일체세간장대혜해고(令增長普照一切世間藏大慧海故)며 영생다라니력(令生陀羅尼力)하야 지일체법륜고(持一切法輪故)며 영어일체도량중(令於一切道場中)에 진불경계실개시고(盡佛境界悉開示故)며 영개천일체여래법문고(令開闡一切如來法門故)며 영증장법계광대심해일체지성고(令增長法界廣大甚深一切智性故)로 즉설송언(卽說頌言)하사대
넓고 크고 진실한 믿음과 이해의 바다를 내게 하는 까닭이며, 넓은 문으로 법계장(法界藏)의 몸을 깨끗이 다스리게 하는 까닭이며, 보현의 서원바다를 잘 세우게 하는 까닭이며, 삼세가 평등한 데 들어가는 지혜의 눈을 맑게 다스리게 하는 까닭이며, 일체 세간을 널리 비추는 창고의 큰 지혜바다를 증장(增長)케 하는 까닭이며, 다라니의 힘을 내어 일체 법륜을 가지게 하는 까닭이며, 일체 도량 가운데에 부처님의 경계를 다 열어보이게 하는 까닭이며, 일체 여래의 법문을 열게 하는 까닭이며, 법계의 광대하고 심히 깊은 일체 지혜의 성품을 증장하게 하고자 하는 까닭으로 곧 게송을 설하였습니다.
이 게송을 좀 보겠다.
다. 부처님이 출현하는 뜻
지혜심심공덕해(智慧甚深功德海)가 보현시방무량국(普現十方無量國)하사
수제중생소응견(隨諸衆生所應見)하야 광명변조전법륜(光明徧照轉法輪)이로다
지혜의 심히 깊은 공덕바다가
시방의 한량없는 국토에 널리 나타나
모든 중생들의 보는 바를 따라서
광명을 두루 비춰 법륜을 굴리도다.
지혜의 심히 깊은 공덕바다가
시방의 한량없는 국토에 널리 나타나
지혜의 심히 깊은 공덕바다가
시방의 한량없는 국토에 널리 나타나
모든 중생들의 보는 바를 따라서
광명을 두루 비춰 법륜을 굴리도다
시방찰해파사의(十方刹海叵思議)를 불무량겁개엄정(佛無量劫皆嚴淨)하시고
위화중생사성숙(爲化衆生使成熟)하사 출흥일체제국토(出興一切諸國土)로다
시방세계 바다의 불가사의함을
부처님이 한량없는 겁 동안 다 장엄하시고
중생들을 교화하여 성숙케 하사
일체 모든 국토에 출현하였다.
시방세계 바다의 불가사의함을
부처님이 한량없는 겁 동안 다 장엄하시고
중생들을 교화하여 성숙케 하사
일체 모든 국토에 출현하였다
라. 법기(法器)
그다음에 법의 그릇이라.
불경심심난가사(佛境甚深難可思)를 보시중생영득입(普示衆生令得入)이어시늘
기심락소착제유(其心樂小着諸有)일새 불능통달불소오(不能通達佛所悟)로다
부처님의 경계 매우 깊어 생각하기 어려운데
중생에게 널리 보여 들어가게 하시건만
그 마음 소승(小乘) 즐겨 모든 유(有)에 집착하여
부처님이 깨달은 것 통달하지 못하네.
중생들은 작은 것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경계 매우 깊어 생각하기 어려운데
중생에게 널리 보여 들어가게 하시건만
부처님의 경계가 그렇게 어렵지만 중생에게 보여서 결국 중생도 그 경계에 들어가게 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마음 소승(小乘) 즐겨 모든 유(有)에 집착하여
있다고 하는 것, 눈에 보이는 것만 집착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모르는 세계다, 이렇게 보는 것이다. 사실은 눈에 보이는 우리 육신, 그리고 현상들을 이렇게 살아가면서 또한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 전부 관리하고 운영한다. 결국은 보이지 않는 것이 주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주인으로서 보이는 것들을 운영해 간다.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중생들의 마음은 작은 것, 소승의 가르침을 즐겨해서 유(有) 있음에 집착한다. 그래서
부처님이 깨달은 것 통달하지 못하네
부처님이 깨달으신 것을 통달하지 못하네. 부처님이 깨달은 경계야 형상 있는 것만 깨달았겠는가? 형상 없는 것도 깨달았고 형상 있는 것도 깨달았고, 비율로 따지자면 모양없는 것, 형상 없는 것 그것이 거의 99프로다. 형상 있는 것이 아주 작은 부분이다.
불교는 우리 마음에 들고 안들고를 차치하고 이치가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러한 입장으로 우리가 그러한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약유정신견고심(若有淨信堅固心)이면 상득친근선지식(常得親近善知識)이니
일체제불여기력(一切諸佛與其力)하야사 차내능입여래지(此乃能入如來智)로다
만약 깨끗한 믿음과 견고한 마음이 있으면
항상 선지식을 친근하리니
일체 모든 부처님이 그 힘을 주어야
이에 능히 여래의 지혜에 들어가리라.
만약 깨끗한 믿음과 견고한 마음이 있으면
깨끗한 믿음과 견고한 마음이 있으면
항상 선지식을 친근하리니
항상 선지식은 화엄경이다, 내가 늘 그런 말씀을 드린다. 화엄경을 친근한다. 화엄행자가 된다. 화엄경을 공부하는 화엄학인이 된다. 화엄행자 화엄학인 저는 학인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화엄학인 화엄행자, 항상 선지식을 친근하리니
일체 모든 부처님이 그 힘을 주어야
이에 능히 여래의 지혜에 들어가리라
이제첨광심청정(離諸諂誑心淸淨)하고 상락자비성환희(常樂慈悲性歡喜)하며
지욕광대심신인(志欲廣大深信人)은 피문차법생흔열(彼聞此法生欣悅)이로다
모든 아첨과 거짓 떠나 마음이 청정하고
항상 자비를 좋아하고 성품이 환희하며
뜻이 광대하고 깊은 신심이 있는 사람
그는 이 법을 듣고 기뻐하리라.
모든 아첨과 거짓 떠나 마음이 청정하고
항상 자비를 좋아하고 성품이 환희하며
뜻이 광대하고 깊은 신심이 있는 사람
그는 이 법을 듣고 기뻐하리라
안주보현제원지(安住普賢諸願地)하고 수행보살청정도(修行菩薩淸淨道)하며
관찰법계여허공(觀察法界如虛空)하야사 차내능지불행처(此乃能知佛行處)로다
보현보살의 모든 서원의 땅에 안주하고
보살의 청정한 도 수행하며
법계를 허공같이 관찰하여야
이에 능히 부처님의 행한 곳을 알리라.
부처님의 행한 곳을 우리가 알려면
보현보살의 모든 서원의 땅에 안주하고
보현보살의 모든 서원의 땅에 안주하고
보살의 청정한 도 수행하며
법계를 허공같이 관찰하여야
이에 능히 부처님의 행한 곳을 알리라
차제보살획선리(此諸菩薩獲善利)하야 견불일체신통력(見佛一切神通力)하나니
수여도자막능지(修餘道者莫能知)요 보현행인방득오(普賢行人方得悟)로다
이 모든 보살들 좋은 이익 얻어서
부처님의 모든 신통력을 보나니
다른 도를 닦은 이는 알 수 없지만
보현행 하는 사람 깨닫게 되리.
이 모든 보살들 좋은 이익 얻어서
부처님의 모든 신통력을 보나니
다른 도를 닦은 이는 알 수 없지만
보현행 하는 사람 깨닫게 되리
참 좋은 표현이다.
불교의 결론은 보현행이며, 화엄경의 결론도 보현행이다. 그래서 화엄경의 마지막을 보현행원품으로 결론을 짓고 있으며, 경전의 초반부터 중간 사이사이에도 꾸준하게 보현보살의 행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화엄경의 중심사상은 유심사상(唯心思想)이 아니라 행원사상(行願思想)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화엄경을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해서 유심사상(唯心思想)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행원사상(行願思想), 보살사상, 보살행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훨씬 많다. 물론 마음을 강조하는 부분도 간혹 있다. 그런데 그 양을 계산해 볼 때 보살행, 행원사상, 보살행사상을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90프로 이상 된다고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저는 행원사상이다 그런다.
제가 화엄경의 대의를 세우면서 ‘선명시성정각(先明始成正覺)하고’ 먼저는 시성정각 깨달음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 그것이 참 중요하다. 불교는 깨달음으로부터 생겼고, 그 깨달음의 내용을 남김없이 표현하는 것이 화엄경이다. 그렇게 깨닫고 나서 그러면 어쩌자는 말이냐? 보살행(菩薩行)하자. 보살행하면서 살아야 된다. 온세상이 전부 보살로 이루어져야 된다. 그래서 ‘후현보살행원(後顯菩薩行願)이다’ 먼저는 시성정각, 정각의 의미를 드러냈다면, 뒤에는 보현행원, 또는 보살행원을 밝히는 것이 화엄경의 대지다 그렇게 정의를 했다. 그것을 꼭 기억하실 필요가 있다.
마. 부처님의 경계
중생광대무유변(衆生廣大無有邊)이어늘 여래일체개호념(如來一切皆護念)하사
전정법륜미부지(轉正法輪靡不至)하시니 비로자나경계력(毘盧遮那境界力)이로다
중생들 광대하여 끝이 없거늘
여래가 모두 다 호념(護念)하사
정법륜을 굴리어 다 이르게 하시니
비로자나 경계의 힘이로다.
중생들 광대하여 끝이 없거늘
중생들은 얼마나 많은가?
여래가 모두 다 호념(護念)하사
그 많고 많은 중생들을 여래께서는 전부 보호하고 염려하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정법륜을 굴리어 다 이르게 하시니
그래서 법륜 굴리는 일, 전법하는 일, 법을 전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내가 줄기차게 이야기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게 법을 널리 펴고,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다 보면, 그것을 아주 전생부터 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거기에 마음이 딱 맞아 떨어져서 아주 열심히 전법을 하고 보살행을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비로자나 경계의 힘이로다
바. 듣기를 권하다
일체찰토입아신(一切刹土入我身)하며 소주제불역부연(所住諸佛亦復然)하니
여응관아제모공(汝應觀我諸毛孔)하라 아금시여불경계(我今示汝佛境界)하리라
일체 세계가 내 몸에 들어오고
머무시는 모든 부처님도 또한 그러해
그대는 응당 나의 모공(毛孔)을 관찰하라.
내가 지금 그대에게 부처님 경계를 보이리라.
일체 세계가 내 몸에 들어오고
머무시는 모든 부처님도 또한 그러해
다 내 몸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세계가 내 몸에 들어오고 세계에 머무시는 모든 부처님도 또한 그러하다.
그대는 응당 나의 모공(毛孔)을 관찰하라
나의 모든 모공을 관찰하라.
내가 지금 그대에게 부처님 경계를 보이리라
내가 지금 그대에게 부처님 경계를 보이리라. 그러니까 나를 잘 보라. 그러면 바로 부처님의 경계가 그 속에 있다, 그런 내용이다.
보현행원무변제(普賢行願無邊際)어늘 아이수행득구족(我已修行得具足)이라
보현경계광대신(普賢境界廣大身)이여 시불소행응제청(是佛所行應諦聽)이어다
보현행원은 그 끝이 없거늘
내가 이미 수행하여 구족하였고
보현보살의 경계와 광대한 몸은
부처님이 행하신 바니 자세히 들어라.
보현행원은 그 끝이 없거늘
내가 이미 수행하여 구족하였고
보현보살의 경계와 광대한 몸은
부처님이 행하신 바니 자세히 들어라
앞으로 세계성취의 내용을 쭉 설명하려고 한다. 보현행원 또 보현보살 화엄경에서는 보현보살의 행원과 보현보살의 원력과 보현보살의 설법 이것이 팔 구십프로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보현행원품으로 결론을 짓는다.
세상에 음악이 참 많다. 여러 가지 음악이 있다. 공자도 음악을 해야 된다고 하는 이야기도 했다.
그런데 제가 제일 감동한 음악이 뭔가 하면 ‘보현행원송’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 불광사 열반하신 광덕스님께서 보현행원품을 중심으로 가사를 썼고, 그 내용은 전부 보현행원품이다. 그것을 음악이 되도록 가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작곡은 중앙대학교 총장까지 지내고 요즘 불교TV에도 자주 나오는 박범훈 그분이 작곡을 해서 처음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했는데 하루에 두 번을 했다. 제가 앉은 자리에서 두 번을 들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말도 못한다. 참 감동, 감동, 정말 감동이다.
보현행원품을 좀 알면 가사도 귀에 쏙쏙 들어온다.
처음 공연한 것은 워낙 오래되어서 녹화가 된 것이 있기는 있을 텐데 그것이 유튜브나 다른 데 떠돌지는 않는다. 그런데 유튜브에 떠도는 보현행원송이 있다. 역시 같은 것인데 뒷사람이 다시 공연한 것이다. 다시 했지만 가사도 똑같고 곡도 똑같고 지휘자도 역시 똑같고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만 몇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것도 역시 감동이다. 저는 가끔 한 번씩 듣는다. 참 권할만한 음악이다. 세상에 제일 좋은 음악이라고 기탄없이 주장을 하고 권하는 음악이다.
보현행원송, 보현행원송, 보현보살의 행원을 게송으로 노래로 표현한 것인데 상당히 길다. 한 시간 이상 된다.
가사도 불광출판사 같은 데는 아마 있을 것이다. 다른 데서 보면 가사도 다 올라져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도 찾으면 다 찾아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박범훈 작곡가는, 박범훈이라고 잘 아실 것이다, 유명한 분, 중앙대학교 총장도 지내시고 우리 불교계에 음악을 참 많이 한 분이고 지금도 불교TV에 자주 나오는 훌륭한 국악작곡가다. 국악하는 작곡가다.
오늘은 보현행원품을 노래로 한 보현행원송을 소개를 하고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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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신 분들 또 한 번 살펴보겠다.
오늘 저녁 화엄법석에 113명이 지금도 이렇게 계신다. 동참해 주셔서 법석이 아주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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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성불하십시오.
첫댓글 _()()()_
화엄경의 중심사상은 유심사상(唯心思想)이 아니라 행원사상(行願思想)이라고 할 수 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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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보살들 좋은 이익 얻어서 부처님의 모든 신통력을 보나니
다른 도를 닦은 이는 알 수 없지만 보현행 하는 사람 깨닫게 되리.
화엄학인으로서 믿고 의지하는 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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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아름다운 글 읽고 환희심 내도록 해 주시는 스님과 대원성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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