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자마자 외발 싱크로나이즈-윗몸일으키기-화장실-조반 메뉴-글쓰기까지 끝없는 선택 속에서 루틴이 만들어졌어요. 물론 나는 지금의 루틴이 좋아요. 밥 먹는 데 고객 전화가 걸려왔고 am 11시에 스타트 면 베리굿입니다. 부지런한 3개 정도의 식당 중에 내가 '메밀 집'을 찾는 이유는 간판이 횡성-안흥 같기도 하고, 80년대 담양 느낌도 납니다. 1식 7반인데 교도소 배식처럼 매일 국이 바뀌는 것도 좋아요. 어제는 북엇국 오늘은 미역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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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예공! 콩나물-미역국-북엇국이 틉틉하면 쥐약이다. 생일 때도 못 먹는 귀한 미역국을 먹었으니 하루를 힘차게 시작해 봅시다. 메주 생일이 6.5 그녀의 생일이 6.9입니다. 짱개 '차철남이 4명을 살해하고 공개수배된 지 하루 만에 붙잡혔어요. 아는 놈인가 하고 살펴봤더니 다행히 모르는 놈입니다. 시흥-신길동-대림동은 80-90년대 형성된 도시들입니다. 내가 20대에 이곳에서 3년가량 죽치고 살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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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동은 벌써 차이나타운이 돼버렸고 <범죄 도시>빌런 '김계상 편'에서 사마패가 잠깐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강남 개발 전 영등포가 핫플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시흥-독산-문래-구로-대림-신길동 벨트가 우범지대로써 입지를 충분히 갖췄다고 봅니다. 손흥민(토트넘 주장.1992)이 맨유를 1:0으로 꺾고 생애 첫 우승 트로피를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자랑스런 한국인을 리스펙트합니다. 트로피 잡고 운 울음의 의미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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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칸트의 <美學>에 푹 빠져 아무 정신도 계획도 없어요. 오늘은 칸트의 <미학>을 가지고 썰을 풀어볼까 합니다. 페리호를 타고 인도양을 딱 한 번 항해했는데 망망대해가 하도 무심하고 만만해서 하마터면 구명조끼 하나 입고 뛰어들 뻔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 보스였던 독일인 우도쿼츠크나베가 내 말에 맞장구를 쳐 주지 않아서 입수 직전에 멈췄는데 만약 그때 입수를 했다면 어쩔 뻔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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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6개월 후에 쓰나미(2004)가 덮쳤어요. 한국인을 포함 많은 사람들이 물에 수장되었을 것입니다. 세월이 지났으니 말인데요, 쓰나미는 물속 대륙 간의 충돌(지진)로 생긴다는데 스파크가 나는 순간, 물기둥이 하늘로 솟는 풍경은 가히 판타스틱이라고 합디다. <판단력 비판>에서 말하는’역학적 숭고‘입니다. 한마디로 숭고미는 절대적으로 큰 것, 그리하여 주체를 압도해버리는 대상에 대한 심성 상태입니다.언빌리버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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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엔 부조화의 감정이 연관됩니다. 감각의 모든 기준을 넘어서 버린 느낌, 감각의 좌초 앞에 '상상력'과 '지성'이 일시 정지되는데 이것은 '장엄하다'을 넘어섭니다. 물론 '숭고미'는 기본적으로 '취미판단(무관심한 미)'과 같은 美의 범주에 속해요. 따라서 '숭고 미'도 주관적 쾌·불쾌에 관계되고 이 말인즉 '숭고' 역시도 그 자체로 만족스러운 판단입니다. 이는 논리적인 규정적 판단력이 아닌 특수로부터 보편을 추론해야만 하는 '반성적 판단력'이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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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 성질들 역시 공유하는데, '숭고미'는 쾌적함에 관계되지 않으며 개념적 규정으로부터도 독립적 입니다(무 개념적). 취미판단처럼 단칭판단이되 보편타당함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취미판단'과 '숭고미'는 분명히 구분됩니다. 美가 질(quality)의 표상이라면, ’숭고’는 양에 중점을 둡니다. 미에서 생겨나는 쾌는 생명감정을 촉진하는 반면, 숭고의 판단에서 수반되는 감정은 간접적인 쾌에서 생겨나는 제약된 것이며, 아름다운 대상이 그것에 대한 우리의 판단에서 있어서 '합목적'적인 반면, '숭고'는 감각을 통해 수용하는 우리의 능력을 좌초시킨다는 점에서 '반목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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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칸트에게 가장 중요한 '무관심한 美(취미 판단/수학적)와 ‘숭고’의 구분입니다.'수학적 숭고'뿐만 아니라 ‘역학적 숭고’ 역시도 무한에서 위력으로 넘어갔을 때, 뇌우, 화산, 허리케인, 폭풍우 등 자연력의 위력을 목도했을 때 몰려드는 공포가 상상력을 마비시킬 것입니다. 저 위력들은 자유의지를 짓밟고, 지성을 중단시키지요. 그러나 위력으로서의 '숭고' 역시도 궁극적으로는 이성을 발현 시키는 촉매로서 기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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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경우엔 '순수 이성'보다는 '실천이성'의 도덕 이념이 강조되됩니다, '역학적 숭고'를 반성함으로써 물리적으로 압도하는 대상 앞에서도 저항할 수 있는 역량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숭고'를 느끼면서 우리는 만약 최고의 도덕 원칙이 위태로운 상황일 경우, 필요하다면 재산, 건강 그리고 심지어 삶 그 자체보다 우리 자신을 더 중시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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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취미판단'에서 주된 역할을 수행하는 상상력은 '숭고'에게 와서는 무한/위력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이성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촉매/전달자로서 역할이 변모합니다. 그러니까 상상력은 '취미판단'과 '숭고'라는 두 영역 사이에서 이중적인 역할 수행을 하는 셈입니다. ‘미의 판정’에서는 상상력과 지성 사이의 자유로운 조화로부터 미적 판단이 생겨 난데 반해 '숭고'의 판단에서는 상상력은 도덕에서 그 기준을 취하면서 이성 이념을 추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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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 美의 경우만큼이나 자유롭지는 않지만, 상상력은 도덕에 의해 규정되기보다는 미적 경로를 통해 가능성을 발견하게 돼요. 인간의 행위가 정말로 도덕적이고 심지어 종교 적이기 위해서는 자유로워야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두려움에 저항하는 '숭고'를 느끼고자 한다면 자율적 판단에 대한 능력을 가져야만 할 것입니다. 내가 이해한 대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칸트의 '미학'에는 '아름다움'(美 beauty)과 '숭고'(sublimity)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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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숭고'는 '수학적 숭고'(나이야가라/이과수 폭포)와 '역학적 숭고'(천둥/토네이도)로 구분합니다. 거대한 자연을 만나면 이성이 마비(불쾌)되면서 초월적 이성을 작동, 무한을 사유하게 한다네요. 이와 동시에 불쾌가 쾌감으로 바뀐대요. '무서워'가 '언 빌리버블'이 되는 건가. '역학적 숭고'란 천둥이나 토네이도같은 것을 보면서 두려움을 느끼다가 내가 관조 자의 입장이 되면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쾌가 된다는 것이 칸트 형님의 이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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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적인 것이 매력적인 이유는, 그것이 이성의 고유한 영역(실천적 영역)에 적합하도록 감성을 확장하여 감성으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서는 심연과 같은 무한 자를 전망하기 위해 이성이 감성에 행사하는 강제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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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63회 차입니다. 조조의 이간 계에 속아 넘어 간 '마초'는 부친의 결의형제인 '한수'가 조조와 내통한다고 의심하고는 그의 팔을 베고 한중의 장로에게 투항합니다. 서천의 유장은 한중의 장로가 마초를 거둔 뒤 세력을 키우기 위해 서천을 노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조조와 결맹을 하여 장로에 대항하기 위해 익주별가 장송을 시켜 조조에게 조공을 바치러 보냅니다. 무능한 '유장'에 염증을 느낀 '장송'은 서천의 사자를 가장해 서천의 지도를 조조에게 바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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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조의 됨됨이를 보고 실망한 장송은 조조에게 매만 맞고 허창에서 쫓겨납니다. 정욱은 조조에게 서천과 결맹하면 도움이 될 텐데 왜 거절했냐고 묻자 조조는 기본방침을 정했다고 말합니다. 조조가 밝힌 방침은 앞으로 몇 년 간은 전쟁을 쉬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우! 조조도 다 계획이 있습니다. 조조는 장송에게 전쟁은 원치 않지만 전쟁을 못한다는 걸 알릴 수 없으니 장송에게 겁만 주고는 보냅니다. 조조는 장송에게 출세욕만 있다면서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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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는 장송이 조조를 만나고 나오는걸 알고는 방통과 관우와 장비를 마중 내보냅니다. 유비는 장송을 지극정성으로 맞이합니다. 장송은 조조와는 다른 인품을 보이는 유비에게 호감을 보입니다. 유비는 바닥에 조조의 깃발로 길을 만들고는 조조는 천하의 역적이라면서 역적의 깃발을 발판으로 만들었다고 했고 장송은 이제 보니 천하의 영웅은 조조가 아니라 유비라면서 좋아합니다.
2025.5.24.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