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여행5 - 황산의 수금송에서 바위산을 올라 시신봉에서 고산 준봉을 조망하다!
10월 21일 난징 치처커윈난짠 南京汽车客运南站 에서 07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5시간만인
12시에 황산 풍경구 에 도착해 탕커우 汤口 자이시환청중씬 (寨西换乘中心) 에서 황산
풍경구 黃山風景區 를 운행하는 19위안 짜리 씬꿔센 (新国线)버스를 타고는 운곡사에 갑니다.
기차를 타면, 난징역 에서 23시 51분 기차 ( 연좌 78위엔, 침대칸 없음) 를 타도 됩니다.
※ 황산관광공사 www.huangshan.com.cn ※ 기차 시간 www.huoche.com
기차는 6시간을 달려 새벽 05시 37분에 황산시(툰시 屯溪 둔계) 에 도착하는데 다시
버스터미널 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1시간 20분이면 黃山大門 (황산대문) 에 도착합니다.
황산대문 아래쪽 남대문환승참 에서 버스를 바꾸어 타고 운곡사 에 도착해 케이블카 를 타고
新白鹅峰 (신백아령) 에 내려서 산길을 15분 가량 걸어 竪琴松(수금송) 에 이릅니다.
돌 계단을 올라 始信峰 (시신봉) 에 서니 고산 준봉이 발 아래로 펼쳐지는데 가히 절경이네요?
산들은 18나한 조남해 이고 왼쪽이 仙人峰(선인봉) 이며 가운데는 石筆峰(석필봉) 오른쪽은
仙女峰(선녀봉) 이라는데 “백문이 불여일견 (百聞不如一見)” 이라고 黃山(황산) 이
좋다는 말은 수없이 들었지만 막상 와서 보니 名不虛傳(명불허전)..... 허언이 아니네요?
백문 이라는 말은 “한서(漢書)” 의 “조충국전”에 나오는데 전한(前漢) 선제때에 서북 변방
에 사는 티베트 강족(羌族) 이 반란을 일으키는데 강족들에게는 독립전쟁 이지요?
전한의 군사가 대패 하자 선제는 고민 끝에 어사대부 병길 에게 토벌군의
적임자를 누구로 하였으면 좋겠는지...... 후장군 조충국 에게 물어보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조충국 은 일찍이 흉노 토벌때 이광리 장군의 부하 로 출전해 1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적진
으로 과감하게 진격하여 전한의 군사를 무사히 구해내는 전공을 세운 용장인데,
조충국은 76세의 백전노장 이었지만 원기가 왕성하였으니 자신이 적임자 라고 답합니다.
이에 선제는 그 조충국을 불러들여 강족의 토벌 방책에 대해서 고견 을 물었습니다.
조충국 은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보다 못합니다.“ 무릇 군사란 작전
지역 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전 술을 헤아리기 어려운 법 이므로 바라건대.....
신을 금성군으로 보내 주시면 아뢰겠습니다 “百聞不如一見 兵難險度 臣願馳至金城 圖上方略"
조충국 은 지세와 적의 동태를 면밀히 살펴보고 또한 포로로 잡힌 전한 군사로 부터
정보를 캐낸뒤.... 선제에게 "기병 보다는 둔전병 을 두는 것이 좋습니다." 라고 아룄던 것이지요!
不到始信峰 不見黃山松 (부도시신봉 불견황산송) 을 해석하면... “시신봉 을 보지
못했다면 황산의 소나무를 보지 못한 것 과 같다”니.... 황산의 최고 볼거리 라!
五嶽歸萊不看山 (오악귀래부간산) 오악 에 오르고 나면 다른 산이 보이지 않고
黃山歸萊不看岳 (황산귀래부간악) 황산 에 오르고 나면 오악이 보이지 않는다!
명대(明代) 의 탐험가이자 지리학자 서하객(徐霞客) 이 황산 에 올라 했다는 말인데,
33년간 타이후(太湖) 를 시작으로 하여 저장(浙江), 장시(江西), 구이저우를 거쳐
윈난(雲南) 에서 마무리 된 여정을 일기로 남겼으니 “서하객유기 (徐霞客遊記)” 입니다.
여기 시신봉(始信峰) 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으로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서는 대산맥과
황산송 이 보이는데 운해 가 생기면 아주 멋진 풍경을 이루며 또한
시신봉 은 황산 4절인 기송(奇松), 기암(奇巖), 운해(雲海), 온천(溫泉) 이 유명합니다.
기송과 기암, 운해와 온천 중에서 하나를 들라면 특히 기송(奇松) 이 많은 곳으로 유명
하다는데, 또 시신봉 (始信峰) 은 일찍이 황산을 올라 시찰하고는 서해대협곡 잔도
건설을 지시한등소평 이 지었다는 “믿음이 가는 바위” 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黃山(황산) 은 안휘성 동남 후이저우 黴州(휘주) 지구 서북쪽 4개의 현에 걸쳐 있으며
둘레가 250km 에 이르는데 2개 호수, 3개 폭포, 24개 계류, 72개 봉우리가 있습니다.
중국 산수화의 경치 중에 으뜸으로 당(唐) 나라 때인 747년 6월 17일에 황제의 명령으로
산 이름을 황산(黄山) 이라고 불렀으나 외부 세계에서 접근하기는 어려웠다고 합니다.
산 중심부에 3대 주봉인 롄화봉 蓮華峰(연화봉) 1860m, 광밍정 光明頂(광명정) 1840m,
텐뚜봉 天都峰(천도봉) 1810m 이 있는데... 고생대의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위는 수직 방향의 절리가 발달 하여 깎아지른 절벽이나 기암괴석 을 이루고, 해발 800m
이상의 고지대에 자라는 잎이 크고 짧은 소나무와 함께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 냅니다.
독특한 절경 가운데 하나인 운해 는 연간 200일 동안 자욱하게 끼여 있으며 주룽폭포
九龍瀑 와 바이장폭포 百丈瀑 등이 흘러내리니 "동양 산수화" 를 이해할수 있는 산입니다.
등산을 위하여 4만개에 이르는 돌계단 이 설치되어 있고 정상으로 오르는 케이블카 가
만들어져 있으며.... 정상 부근에는 3개의 호텔 이 있고 인터넷 사용 이 가능합니다.
원나라 때 64개의 사원을 건립한 이래 시인, 문학가들이 찾았고 명(明)나라 때 1606년에
푸먼 화상 (普门和尚) 이 파하이사(法海寺) 와 완슈사를 짓고 계단을 놓아 연결했습니다.
16세기 중엽 산수화 가 등장하였으며 티베트인 마을이 있고 남쪽 기슭의 탕커우 湯口 에는
온천 이 뿜어져 나오며 199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과 자연유산 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봉우리를 내려오다가 다시 바위틈에 난 길 을 통해 옆 봉우리로 옮겨가니 저 아래로
북해 의 우리가 묵을 호텔 베이하이삔관 北海宾馆 (북해빈관) 이 내려다 보입니다.
봉우리를 내려와서는 이번에는 내가 배낭을 지키고 마눌 더러 봉우리에 올라갔다
오라고 이르고는..... 잠시 기다려서는 다시 배낭을 메고 북해 를 찾아 갑니다.
기다리면서 등산객들이 셀카 를 찍는 모습을 보는데 영어로 selfie stick 으로 불리니...
몇년정에 대히트해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셀카봉을 최고의 히트상품 으로 선정했지요.
또 뉴욕타임즈가 2014년 최고의 발명품 25개중 하나로 선정한 “셀카봉”의 최초
발명자 는 중국인 또는 인도네시아인 다이애나 헤마스 사리(21여) 라고 합니다.
하지만 영국의 공영방송 BBC 는 앨런 클리버 라는 영국의 프리랜서 기자의 조부모가
90년전인 1925년 셀카봉 을 이용해서 처음 사진을 찍은 기록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사진을 보면 클리버 라는 기자의 조부모가 스틱과 막대를 이용하여 셀카를 찍은 모습 을
볼 수 있는데..... 당시 카메라로는 피사체의 초점을 맞출수 없었기 때문일거라나요?
그러나 최초로 특허 를 신청한 사람은 1980년대에 일본인 히로시 우에다 씨로 막대기에
카메라를 장착하여 리모컨으로 셔터를 눌러 촬영할 수 있게 발명하여 등록했습니다.
이는 1983년도 일본 잡지 SHAGAKU 에 기자가 “ 일본을 찾아서” 라는
프로에서 히로시씨 와 인터뷰 를 한 사실이 게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알프스 다테야마산 정상에서 올랐을 때 카메라를 바위 위에 올려두고 셀카를 찍곤
하면서“하늘에서 나 자신을 찍을 수 있는 봉 같은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네요.
해서 셀카봉을 만든 후에 당시 검토 부서에서 직접 촬영을 해보고는 “ 이 물건은
부끄러워서 사람들 앞에서 좀처럼 사용하기 어렵다” 는 의견을 냈다고 합니다.
그래도 제작하여 판매를 해 보았는데 남 앞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하는
일본인들의 소극적인 국민성 때문에 그냥 사라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고 한국이나 중국 같은 나라에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소위
인증샷 을 찍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순식간에 전셰계로 퍼졌던 것이지요!
넬슨 만델라 추도식에서 논란이 된 버락 오바마의 셀카 처럼 이제 이 물건은
우리 사회에서 일상이 되었으니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등장했습니다.
현대인들은 SNS 를 통해... 나 자신의 현재 상태를 "이웃과 공유" 하고 싶어
하는지라 여행을 와서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연신
카톡이나 라인 으로 고국에 있는지인 들에게 보내기에 너무 바쁜가 보네요?
첫댓글 저는 북해빈관에서 1박을 햇습니다
아? 예... 저도 북해빈관에서 묵었습니다.
아 그러셧군요 아침 일찍 일출 보기로는 최괴 숙소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