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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문
사진 김영근 요셉
오후 순례를 위해 시온산으로 이동을 하는 중에 겟세마니 대성당 건너편 예루살렘 성곽의 황금문이 눈에 들어왔다.
황금문은 예루살렘 대성전으로 직접 통하는 문이다. 전승에 의하면 예수님이 베타니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마르11,1-10) 이 성문을 통과하셨다고 한다.
예루살렘 성곽의 8개 성문 중 7개는 통행이 되는데 유독 황금문만 굳게 닫혀있다. 1541년 오스만 터키 술탄 슐레이만 1세가 메시아를 염원하는 유다인을 억압하기 위해 성문을 완전히 봉쇄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유다 전통에 따르면 메시아가 이 문을 통해 들어와 이스라엘을 회복시켜준다고 한다. 유다인들은 지금도 황금문을 통해 성전을 들어가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반면에 이슬람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막기 위해 황금문 앞쪽에 이슬람 사람들의 무덤을 만들었다. 유다인들은 무덤에 닿으면 부정해진다는 율법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메시아가 들어오는 가장 가까운 문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근처에 이슬람, 유다인, 그리스도인들의 무덤이 많다. 올리브산에는 많은 유다인들의 무덤이 있고, 그리스도인들은 겟세마니 성당 아래쪽 키드론 골짜기에 십자가의 묘비를 가진 무덤들이 있다.
시온산에 바라본 시온문..저 문으로 들어가면 예루살렘.. 1967년 6일 전쟁 때의 총탄 흔적이 역력하다.
예수님 당시의 시온산 지역은 예루살렘 성 안에 있었으나 16세기 중엽 오스만 터어키의 술레이만 황제가 성벽을 재건할 때 성 밖으로 제외시켰다. 시온산에는 최후의 만찬 기념경당, 마리아 영면(마리아 승천) 기념성당 등이 있다.
우리가 먼저 방문한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 열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시면서 당신 자신을 내어주는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사랑의 계명을 주셨던 다락방이다. 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신 뒤에도 성모님과 제자들이 모여 열심히 기도하던 중 오순절에 성령강림이 일어난 곳으로 초기 그리스도교회가 태동한 아주 소중한 장소이다.
시온산의 다락방은 비잔틴 시대부터 성역화 되어 성당이 지어졌는데 614년 페르시아 군에 의해 파괴되고, 십자군 시대에 다시 기념 성당을 지었지만 이슬람에 의해 또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다. 1335년 프란스치코회에서 다시 고딕식 양식의 2층 최후의 만찬 기념성당을 지었는데 2백여 년이 지난 1517년 오스만 터어키에 빼앗겨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다시 이스라엘 정부 손으로 넘어가 유다인들이 관리를 하고 있다.
프란치스코회의 최후 만찬 기념 수도원
시온문에서 100여미터 길을 가면 프란치스코회의 ‘최후 만찬 기념 수도원’이 있다. 성전과 수도원을 빼앗긴 프란치스코회에서는 1936년 원래의 기념 성전 터 바로 옆에 부지를 구입하여 현재의 최후만찬 기념 성당과 수도원을 지었다. 이곳에서 순례자들은 최후의 만찬 기념 및 성령강림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수도원 오른쪽 골목길로 가면 마리아 영면 기념성당과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이 나온다.
마리아 영면 기념 성당과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으로 들어가는 골목..
성모 영면 기념성당(성모승천기념성당)..최후의 만찬 기념경당은 영면성당 왼쪽 길에 있음
마리아 영면 성당 왼쪽 길로 조금 가면 맞은편에 사람들이 나오는 건물이 1335년에 지어 빼앗긴 프란치스코회 수도원.. 맨 앞의 사람들이 있는 왼쪽이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 입구..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으로 들어가는 입구.. 입구 안쪽 왼쪽에 있는 계단을 통하여 2층으로 올라가면 다락방..
2층 최후의 만찬 다락방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루카 22,19-20)
2층으로 된 최후의 만찬 기념 성당 1층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요한 13,1-20)을 기억하는 경당, 다윗 무덤 경당(사도 2,29), 토마 사도경당(요한 20,24-31)이 있었는데, 현재는 다윗의 무덤(가묘)만 남아있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2층에는 오순절에 제자들이 성령강림을 체험한 경당(사도2,1-13)은 폐쇄시키고 최후 만찬 기념 경당(마르 14,12-26)만 개방 하면서 성목요일과 성령강림 대축일에만 말씀의 전례를 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있다.
2층 최후의 만찬 다락방 안쪽의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성령강림 경당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현재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폐쇄되어 있다. 성령강림경당 아래층에 다윗의 묘가 있다고 한다. 경당을 폐쇄시킨 이유가 유다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인물인 다윗의 묘 때문인지도..
신부님이 서 계신 계단이 성령강림경당으로 들어가는 곳..폐쇄 됨
메카의 방향을 가리키는 미랍(Mihrab)이다. 이슬람 신자들은 기도할 때 메카 방향을 바라보고 기도를 한다. 모든 이슬람사원 안에는 미랍(Mihrab)이 있다.
1층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경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철 난간으로 막아놓음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은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되어 그리스도교 상징물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1층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던 예수님을 기념하는 경당"이 있었던 곳으로 내려가는 계단 위쪽의 아치 식 기둥 중간쯤에 펠리칸 새의 조각이 남아있다. 펠리칸은 먹을 것이 없어 새끼가 죽게 되면 자신의 몸을 쪼아 피를 내어 자식을 살린다는 새이다. 바로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슬람과 유다교에 의해 그리스도교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성당인데, 유일하게 남은 반가운 그리스도교 상징이다.
3마리의 펠리칸이 있다. 중간에 어미 펠리칸이 있고, 좌. 우 두 마리의 새끼 펠리칸이 부리로 어미의 목에서 피를 쪼아 먹는 형상이다. 한쪽 면에 3마리의 펠리칸, 사방으로 12마리의 펠리칸이 새겨져 있다.
“사랑 깊은 펠리칸, 주 예수님, 더러운 저, 당신 피로 씻어 주소서. 그 한 방울만으로도 온 세상을 모든 죄악에서 구해 내시리이다." 「성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 중」
최후의 만찬 경당 쪽에서 바라 본 성모영면성당..오른쪽에 다락방 입구..서로 가까이 있다.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 방문 후 성 베네딕토 수도원 안에 있는 성모영면기념성당(성모승천기념성당)으로 갔다.
시온산의 ‘성모 영면 기념 성당’은 이곳에서 성모님께서 ‘잠드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성모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다가 지상 생애를 마치고 하늘에 오르셨음을 기념하는 성당이다. 성모영면성당은 415년경 비잔틴 양식의 성전이 있던 곳에 예루살렘의 첫 주교좌 대성당이 건립되었으나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되고, 십자군 시대에 기념성당을 지어 성모님에게 봉헌했다. 이 성당 또한 1219년 이슬람군에 의해 파괴되어 6백여 년 동안 방치되다가 1910년에 독일 베네딕토회에서 현 성당을 완공해 관리해오고 있다. 기념성당은 1층의 대성당과 지하성당으로 되어 있다.
성모 영면 기념 성당 입구..왼쪽은 성당..앞에는 베네딕토 수도회 종탑
성당 내부..제대 양쪽으로 3개씩 6개의 작은 경당들이 있음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 제대 뒤에 길의 인도자이신 성모님 성화 모자이크가 있다. 아기 예수님께서 복음서를 펼쳐들고 계시는데, 그 내용은 요한복음 8장 12절의 “나는 세상의 빛이다”를 그리스어로 쓴 것이다. 생명의 빛을 얻으라는 초대의 말씀이다.
성당 바닥에는 1년 12개월을 상징하는 십이궁도(태양의 궤도면을 통과하는 12개의 별자리)를 원형으로 하여 예언자들과 성인들의 이름을 모자이크하고 가운데에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제대를 중심으로 좌우에는 세 개씩 모두 6개의 기념경당과 부속제대가 마련되어 있다. 성모님 영면 기념성당과 관련된 성인들에게 바쳐진 작지만 아름다운 경당들이다. 제대 오른쪽에는 동박박사, 베네딕토회 성인 윌리브란드, 베네딕도 성인에게 봉헌된 제대가 있다.
제대 왼쪽에 보니파시오 성인에게 봉헌된 경당
요한 세례자에게 봉헌된 경당..1910년 말타의 기사회에서 봉헌..요한 세례자가 광야의 돌 위에서 설교하고 있는 모습.. 가장자리의 덩굴손에는 여덟개의 진복팔단의 말씀이 새겨져 있음..
성 요셉에게 봉헌된 경당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성당에는 제대들이 많이 있다. 현재는 여러 예물과 지향을 한 미사에 봉헌할 수 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미사 한 대당 단 하나의 미사 예물만 받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사제들이 신자들의 미사예물을 받아서 각각의 지향대로 미사를 따로따로 봉헌해주었기 때문에 제대가 많았던 것이다. 교회의 아픈 역사 중에는 심지어 미사를 바치기 위해서 서품되는 사제들도 있었다고 한다.
성모님 영면 모습.. 영면 경당 주변에도 각국에서 봉헌된 제대가 많이 있음
지하 성당에는 중앙에 돌아가신 성모님을 상징화시킨 석상을 만들어 놓은 경당이 있다. 동방교회는 성모님의 몽소승천을 교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성모님께서 돌아가셨고 영혼만 올라가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잠들어 있는 모습으로 표현을 해놓는다.
잠들어 있는 성모님 상을 모신 곳의 천장 중심에는 성모님을 하늘에서 맞아들이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주위로는 구원의 역사에 함께 했던 구약 성경의 여섯 여인들이 특징적으로 그려져 있다. 등 뒤에 뱀이 있고 사과를 들고 있는 하와(창세3,15)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갈대바다를 건너고서 출애굽의 기쁨으로 손북을 치고 있는 아론의 동생 미리암(탈출15), 망치와 말뚝으로 적장 시스라를 죽인 야엘(판관4,21),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고 들고 있는 유딧(유딧13,1-10), 보아즈 밭의 이삭을 들고 있는 룻, 아름다운 왕비 에스테르가 있다.
사진 김영근 요셉
잠들어 있는 성모님 상을 모신 경당 주변에도 각국에서 봉헌된 제대가 많이 있다. 성모님 상 안쪽 끝에는 성모님과 열두 사도가 성령 강림을 받는 모자이크가 있다.
사진 김영근 요셉
성당을 지은이의 정성이 느껴지는 우아하고 화려한 성당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태동한 시온산 성지에 성모님의 영면 기념성당을 마련한 것은 예수님의 구원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성모님의 업적을 기억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스테파노 문
다음 순례지는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성 안나 성당과 벳자타 연못이다. 성 안나 성당과 벳자타 연못은 스테파노 성문(사자문)을 통하여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
요한복음 사가(요한 5,1-9)에 의하면 벳자타 연못에는 주랑이 다섯 개 있었으며,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38년 동안 앓는 사람을 안식일에 낫게 해주셨다. 벳자타 연못은 밑에서 물이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키드론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저수해놓았다가 성전에 물을 공급하였고, 종교적이고 의학적인 치료를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이곳은 예수님 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 북동쪽 밖 가까운 곳인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양문(羊門) 근처였다. 양문은 양떼들이 다니던 곳이다. 지금의 스테파노 문이라고 하는 그 자리에 양문이 세워져 있었다. 연못에 다섯 채의 주랑이 있었다고 했는데, 이 연못 중의 하나는 양문 근처에 양을 치는 곳이 있어서 양들이 와서 물을 마시기도 하고, 성전의 번제물로 바칠 양들을 이 벳자타 연못에서 씻었기 때문에 양의 우물이라고도 불리었다. 성 안나 성당 경내에 그 흔적들을 볼 수 있다.
스테파노 성문.. 성문 안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성안나 성당(벳자타 연못)으로 들어가는 수도원이다.
빠드레 비안키 수도원 창립자인 "라비제리에" 추기경 동상
사진 김영근 요셉
성 안나 성당(벳자타 연못) 출입문을 들어서면 정원이 있고 이곳에 아프리카 선교사목을 하는 빠드레 비안키 수도회 건물이 있다. 정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성 안나 성당과 벳자타 연못이 있다.
출입문을 들어서서 곧장 수도원 정원을 가로질러 조금 들어가면 끝에 벳자타 연못과 성 안나 성당..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전승에 성모님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가 성전과 가까운 ‘양의 우물’ 인접한 곳에 살았다고 전하고 있어 5세기에 벳자타 연못 위에 성모님께 봉헌된 비잔틴 대성당이 지어졌다. 이 기념성당은 614년 페르시아군에 의해 파괴되고, 십자군은 요한복음의 치유의 기적을 기념하기 위해 비잔틴 성당의 폐허 위에 작은 기념 성당을 지었다. 이 기념 성당은 비잔틴 성당의 유적들 위에 그 골격이 남아 있다. 성 안나 성당과 벳자타 연못은 크림 전쟁 후 1856년부터 프랑스 정부의 소유로 빠드레비안키 수도회에 위탁 관리되고 있다.
벳자타 연못 위에 건물을 지탱하기 위한 웅장한 버팀목 돌기둥들이 있는 곳은 비잔틴 교회의 방벽이다. 깊이를 보면 그 옛날 아주 많은 양의 물을 저장해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가운데 비잔틴 교회 유적 위에 건물의 골격이 남아 있는 부분은 십자군 시대에 지은 예수님의 병자 치유를 기념한 경당이다.
비잔틴 교회의 흔적들이다. 이곳엔 여러 동굴들과 욕조들이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 시대에 치유를 목적으로 지었던 동굴들과 욕조들이다.
성 안나 성당 앞에서 벳자타 연못을 내려다보며..
성 안나 성당
성 안나 성당은 성모님께서 태어나신 곳이며, 성모님의 부모님인 요아킴과 안나가 살던 곳이다. 이 성당은 성모님이 태어난 동굴 위에 지어 성모님을 낳아 주신 성녀 안나에게 봉헌된 성당이다.
내부..장식이 극히 절제된 단순함의 아름다움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성 안나 성당은 1140년 십자군이 예루살렘 지역을 관장할 때 세워졌다. 이 성당은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가장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이다. 특히 고딕식 둥근 지붕이 아름다우며, 마이크 시설이 없던 시대에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 아주 과학적인 계산 하에 공명을 이룰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노래를 못하는 사람도 천상의 소리로 들릴 정도로 완벽한 내부 공간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부른 성가(271번)가 아름답게 울려 퍼진 것으로도 잘 알 수 있었다.
성가 271번을 멋지게 불렀다. 우리의 찬양은 높은 천장을 뚫고 하늘로 봉헌되었다.
중앙 제대...예수님의 유년기를 다루고 있는 마태오와 루카복음의 일화가 조각되어 있다.
십자군이 다시 예루살렘으로부터 쫓겨났을 때, 그들이 지은 기념성당들은 대부분 파괴 되었는데, 이 성 안나 성당은 이슬람의 살라딘 장군이 건물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파괴하지 않고 대신 이슬람의 신학교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 안나 성당은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성당 건물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성당이다. 현재는 프랑스의 빠드레 비안키 수도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성당을 들어가서 왼쪽에 있는 성 안나와 어린 마리아의 동상.. 성녀 안나가 어린 마리아에게 성경을 들고 말씀을 들려주고 있다.
성당 왼쪽 감실 제대
사진 김영근 제대
성당 우측 중간에 있는 계단을 내려가면 지하 동굴 경당이 나오는데, 성모님의 부모인 성녀 안나와 요아킴 성인이 살았던 동굴에 지은 기념 경당이다.
성모님 탄생한 동굴
탄생동굴 옆 중앙 제대는 아기 마리아에게 봉헌된 제대이다.
성모님의 탄생 이콘 제대..
성모님의 탄생 이콘 제대
이어서 예수님 구원사업의 정점으로 가는 십자가의 길을 걷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올라가신 비아 돌로로사(십자가의 길)로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