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우물 속을 들여다보면 착한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게 꼭꼭 감춰둔 또 하나의 못된 내 모습이 숨겨져 있다.
살아오는 동안 싸움을 별로 해 본 적이 없다. 내게 특별히 싸움을 건사람
도 없지만, 싸울 일이 있으면 미리 양보하고 화해를 청하곤 했다. 다른 사람
이 나 때문에 마음 상하는 일이 더 불편하기 때문이다.
오남매 중 맏이인 나는 부모의 말을 거슬렸던 적이 없는 편으로 동생들과
크게 다툰 기억도 없다. 첫째라는 기대와 믿음 속에 자란 영향도 있을 터지
만, 내 스스로가 싸울 힘을 키우지 못한 탓도 있다.
고등학교 때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해 공부하던 윤리 시간이었다. 어떤 것
이 옳고 그른가, 선생님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주저 없이 맹자의 성선
설에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인간이 착하게 태어났음을 믿었다.
믿는 만큼의 아픔일까.
이웃에 사는 같은 반 친구는 내게 각별했다. 낯선 사람들과 쉽게 가까워지
지 못하는 나를 여러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고, 시야의 폭을 넓혀 주었다. 학
교와 집밖에 모르던 내게 수영장과 탁구장을 데리고 다녔다. 팝송과 기타를
가르쳐 주었다. 잡초처럼 강하게 자란 친구에게 매료되어 갔다.
내 것 네 것을 가리지 않을 만큼 가까워 졌을 때, 그 친구가 등록금을 빌
려달라고 했다. “친구와는 돈 거래를 하는 게 아니다.” 엄마가 우려했던 것
처럼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갚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여러 차례 말을
바꾸었다. 그 말을 그대로 믿은 나는 친구 말을 있는 그대로 전하여 부모님
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솔직하게 얘기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과는 달리, 내색
도 하지 못한 채 속을 끓였다. 학년이 끝날 때쯤 긴 편지를 쓰는 것으로 친
구에 대한 마음을 닫아버렸다.
“성선설을 믿는 사람은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는다.”
선배의 지적에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미련한 곰이 깨어나는 듯 했다. 그 사
건으로 인해 그나마 방어력으로 생긴 것은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다. 먼저 가
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뒷전에서 맴돌다, 상대가 나와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느끼게 되면 그때부터 마음을 조금씩 열었다. 소심한 성격은 선택의 기로에
섰던 순간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학교의 선택에서부터 배우자 선택에 이르기
까지 내 의견보다 부모의 의견이 우선순위였다. 오랫동안 가슴앓이를 하면서
도 부모가 반대하면 물러나곤 했다.
선을 많이 본 남편이 나를 택한 것도 ‘착하게 생긴 인상’이 이유였다. 그릇
이 아님을 알면서도 양가의 맏이라는 부담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받아들
여졌다. 맏며느리와 맏딸로 양손에 주어진 저울대를 움직이며 능력 밖의 일
을 감내하느라 숨 가빴다.
결혼한 지 삼 년 되었을 때 시아버지를 모셔왔다. 시어머니는 옛날 여성답
지 않게 독립선언을 했고, 내 안에서는 수없이 반발이 일었지만 밖으로 표현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 안 계신 집안에서 시아버지를 모시는 일이 내겐 참으
로 어려웠다. 시아버지도 편치 않았던 마음이 병이 되었는지, 오신 뒤 한 달
만에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더
구나 나는 직장을 다니는, 일 못하는 주부이자 며느리였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를 친정집에 맡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시아버지의 식사를 챙기느라 점심
시간마다 집에 들렀던 그해 여름, 기미가 얼굴을 덮었다. 그 동안 간염을 앓
았고, 원형탈모증으로 머리가 한줌씩 빠져나가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이런
나를 주위에서는 착한 여자라 불렀다.
나는 삶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이다.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잘 하지 못 한다. 어떤 것이 주어질 때 쟁취하
는 것 보다 포기하는 게 빠르고, 양보하는 쪽을 선택한다. 의견은 있으되, 내
세우지 않는다. 솔직하게 거절하지 못하여 후회를 잘 한다. 나아가서는 나
자신에 대해 자책과 희생을 감수하곤 한다.
동전의 양면처럼 내게도 착한 심성과 못된 마음이 공존하지만, 오래된 삶
의 방식이 나를 착한 여자로 보이게끔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끝내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첫댓글요즘은 많이 의식이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장 하는것에 익숙치 않습니다..양보와 포용이라는 듣기 좋고 보기 좋은 녀석한테 꼭 마음이 잡혀서는..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 부절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이젠..표현하는것에 자꾸만 익숙 해져가야 하는건데...그러지 못하고 누적
저도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해서 예전에 글을 한번 써 본적이 있어요...둘다 맞는 이야기지만 ..요즘에 사업이다 하면서 I.M.F 를 겪으면서 성악설에 무게가 더 실리는군요...한번 배신한놈은 또다시 배신을...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등단을 다시한번 축하 드리며 좋은 작품을 기대해봅니다.건필하소서..
부족한 글...읽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맞는 말씀입니다...분명하게 논할 수 없는 것...완벽하게 좋은 사람도...완전히 나쁜 사람도 없는 세상...마음밭 갈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 봅니다...사회 전반에 걸쳐 어려운 현실...새봄에 회복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첫댓글 요즘은 많이 의식이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장 하는것에 익숙치 않습니다..양보와 포용이라는 듣기 좋고 보기 좋은 녀석한테 꼭 마음이 잡혀서는..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 부절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이젠..표현하는것에 자꾸만 익숙 해져가야 하는건데...그러지 못하고 누적
되어가다보면,,,그 아픔이 우리 몸으로 표현되어 갈 수 밖에 없는것 같습니다...조금만..아니 조금씩만 자신을 놔주면서...새롭게 둔갑해가야 하는 우리 여성들인것 같습니다...언니의 당선작...역시 탁월하십니다....감동적으로 읽고 갑니다...
콩쥐,신데레라 같은 착한 여주인공 처럼 우리 야생화님께서도 착한 심성탓(?)에 많이 애쓰셨네요..여러 이유로 거절만 하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있다는 것 ! 착한 여자 좋은 콤플렉스는 좋은 것 같아요.. 그 콤플렉스 닮고파요~~~
역시 멋있는 글이에요....착 함의 콤플렉스는 아름다운거지만 많은 상처를 받게 되지요...넘 잘 표현해서 읽는 내 자신이 글속의 여인 같아지는군요....
단락을 띄면 훨씬 읽기가 좋을 것 같은데......
참는 마음이 화병을 부른다"라는 정신과 전문의 김정민의 책중 한 제목이 생각이 나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
맑은향님...드러내는 게 힘들었던 사람...이 글로 풀어냈습니다...아직은 여물지 못한 글...이제부터 시작이라 달랑거립니다.^^*// 나누미님...착한 콤플렉스...절대 닮지 마세요.^^*// 주인님...칭찬해 주시니 용기를 얻습니다...그날의 자리...함께해 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Musaken님...정신건강에는 아주 빵점이지요...ㅎ...감사합니다.^^*
야생화님... 잘 읽었습니다.... 너무나도 공감가는 글입니다............ ㅠ.ㅠ
Jina님...부족한 글에 함께하는 마음...감사 드립니다.^^*
오~ 요기에 있네요.....잘 읽었습니다....넘 마음 고생이 많으셨지만 '참는자에게 복이 있느니라' 가 딱 들어맞았군요.....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쓰지 않으면 안되겠군요. 야생화님 자신을 위해서,또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분들을 위해서요. 저도 야생화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야생화님..잘 읽었어요...자주 오지 않아서 이제야 낭보를 접했습니다....야생화님괴 비슷한 또 한 사람이 있지요....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쟈크렌님...안나엄마님...classic님...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착하지 못한 사람의 반성문이라...이해해 주십시요.^^*
저도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해서 예전에 글을 한번 써 본적이 있어요...둘다 맞는 이야기지만 ..요즘에 사업이다 하면서 I.M.F 를 겪으면서 성악설에 무게가 더 실리는군요...한번 배신한놈은 또다시 배신을...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등단을 다시한번 축하 드리며 좋은 작품을 기대해봅니다.건필하소서..
부족한 글...읽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맞는 말씀입니다...분명하게 논할 수 없는 것...완벽하게 좋은 사람도...완전히 나쁜 사람도 없는 세상...마음밭 갈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 봅니다...사회 전반에 걸쳐 어려운 현실...새봄에 회복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