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한 해안마을이 괴물태풍 ‘하이옌’에 휩쓸려 초토화됐다. 모든 건물이 풍비박산됐는데, 시애틀도 그런 대재앙을 124년 전에 겪었었다. 태풍이 아니라 화재였다. 해안을 따라 30여 블록의 건물이 불타 사실상 당시의 시애틀이 몽땅 소실됐다. 하지만, 지금의 파이오니어 스퀘어에 있었던 한 가구공장에서 시작된 그 불은 재앙이 아닌 축복이었다.
파이오니어 스퀘어는 말 그대로 첫 이주자들이 정착한 시애틀의 발상지이다. 정착민들은 당초 맞은편 알카이 비치에 상륙해 엄동설한을 넘긴 뒤 1852년 엘리옷 베이를 건너왔다. 지금 고층건물이 숲을 이룬 다운타운은 당시엔 아름드리나무들이 들어차 있었고, 수심이 깊은 시애틀 항구는 그 나무들을 베어 운반할 기선들이 정박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다운타운 도로에 이름이 헌정된 부동산업자 아서 데니와 목재업자 헨리 예슬러가 시애틀의 개척공신이다. 파이오니어 스퀘어의 틀을 잡은 의사 데이비드 메이나드도 마찬가지다. 그 는 약국‧식당‧호텔‧카지노‧술집‧홍등가 등 다양한 업소들을 모아 ‘메이나드타운’을 세웠고, 도시명을 인디언 추장 시앨스의 이름을 따 시애틀로 명명하자고 제의한 사람이다.
또 한사람 있다. 뚜쟁이 ‘마담 루’(본명은 도로세아 에밀리 오벤)이다. 그녀는 1888년 독일에서 시애틀로 이민 와 4층짜리 초대형 홍등가(현재의 유니온 구제센터)를 짓고 수백 명의 ‘재봉사’(당시엔 창녀를 그렇게 불렀다)를 고용해 돈을 벌었다. 서북미의 당대 최고 갑부요 땅 부자가 된 그녀는 킹 카운티 교육당국에 거금을 기부한 독지가이기도 했다.
마담 루의 일화는 끝이 없다. 사업가도, 관리도, 정치인도 모두 그녀의 고객이었고 시당국도 그녀가 내는 막대한 세금이 고마워 받들어 모셨다. 새내기 경관이 ‘불문율’을 모르고 그녀를 체포해 재판에 회부했으나 전원 남성으로 구성된 배심이 3분 만에 무죄를 평결했고, 결국엔 시장이 쫓겨났다. 시애틀을 좌지우지했던 마담 루는 42세에 매독으로 요절했다.
잘 나가던 시애틀에 1889년 문제의 대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건물은 거의 모두 목조였고 도로도 널빤지로 포장돼 불길은 순식간에 도시 전체를 삼켰다. 그 후 시당국은 모든 신축건물은 반드시 벽돌로 짓고, 질척거리는 도로도 12~30피트 돋우도록 조치했다. 그렇게 해서 중후한 로마네스크식 벽돌건물이 빼곡한 현재의 파이오니어 스퀘어가 탄생했다.
하지만 도로가 높아지면서 연도 건물의 1층이 지하실로 격하됐다. 또 옛 도로와 건물의 잔해 중 상당수가 신축건물의 벽과 격상된 새 도로의 지주벽 사이에 남게 됐다. 푸줏간도 있고, 은행과 호텔의 출입문도 있다. 1970년 시애틀 시의회가가 이 일대의 20평방불록을 사적지로 선포했고, 이어 연방정부도 파이오이어 스퀘어를 국립사적지로 지정했다.
이상은 모두 파이오니어 스퀘어의 ‘지하관광(Underground Tour)’에서 주워들은 얘기다. 작가 빌 스파이델이 1965년 시작한 ‘역사공부 투어’이다. 지난 11일 오전 11시 첫 투어에 70여 관광객이 모였다. 광장의 시앨스 추장 동상 앞에서 3팀으로 나뉜 관광객들은 가이드를 따라 주변의 3개 건물 지하층에 숨겨진 120년 전 도로를 1시간 남짓 돌아봤다.
솔직히 터널 자체는 별로 구경거리가 못된다. 하지만 가이드의 해박한 역사 설명을 들으면 모든 것이 의미를 띈다. 투어가 반세기 이상 인기를 끌어온 이유다. 코미디언 뺨치게 웃긴 우리 가이드(루카스)는 야간에 성인만을 위해 마담 루를 집중 조명하는 홍등가 투어도 있다고 귀띔했다. 한인들이 일반투어에 단체로 참여하면 통역자를 딸려준다고도 했다.
관광이 끝난 뒤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샌드위치 숍인데 창문 메뉴판에 ‘Bulgogi’가 들어 있었다. 한인관광객이 심심찮게 찾아와 포함시켰다고 주인여자가 말했다. 시애틀에서 10년 넘게 살며 이제야 지하관광을 한 게 좀 부끄러웠다. 입장료(노인 14달러, 일반 17달러)가 점심값보다 비쌌지만 아깝지 않았다. 그 값어치의 몇 배를 배웠기 때문이다.
11-16-13
첫댓글 처음 시애틀에 와서 아는 데가 없어서 제일 먼저 찾아 갔던 곳입니다. 지하에 은행과 호텔의 로비 흔적이 남아 있있던 게 기억납니다. 시애틀에서 수세식 화장실이 개발됐다고 한 것도 기억나군요. 저도 글 한 편 건졌답니다. ^^
저는 더 부끄럽네요. 그 입구에 검게 거슬린 벽을 본 기억이 나고 지하에 도시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언제 한번 구경해야겠습니다.
1987녀에 시애틀에서 신혼살림 하는 큰 아들집에 왔다가 지하도시를 구경했어요. 책자를 보면서 역사적인 설명을 하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터널을 돌아 봤지요. 아우님의 칼럼을 접하니 새 그때가 회상되네요. 벌써 25년 전인가... 아우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