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우지 무리가 부산 남구 오륙도 굴섬 절벽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굴섬은 국내 최대 민물가마우지 월동지다.
- 오륙도 굴섬 점령 가마우지들 - 낙동강 하구 오가며 숙식 해결 - 배설물로 섬 전체 하얗게 변해 - 밤이면 빛 발하며 등대 역할도
- 세계적 명품 산책로 품은 이기대 - 왜장 안고 빠져 죽은 기생 2명 - 전설로만 남아 스토리텔링 필요
- "오륙도, 오대양 육대주로 확대해 더 큰 것 품는 출항지로 삼아야"
논산 사람이 죽으면 염라대왕이 '은진미륵과 미내다리는 보고 왔느냐'고 묻는다는 전설이 있다. 부산에서 이런 이야기를 찾는다면 아마 '오륙도-이기대'가 유력하게 꼽힐 것 같다.
오륙도는 부산항의 파수꾼, 수호신, 관문 등대가 있는 곳, 자연유산, 시 기념물, 국가 명승 등 많은 상징과 자랑을 품고 있다. 이기대는 갈맷길이 찾아낸 부산의 보석. 이곳 해안선은 자연미인이다. 걸어보면 그저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해진다.
하지만, 오륙도와 이기대는 명성에 비해 '텔링'이 전반적으로 약한 편이다. 오륙도의 진면목인 굴섬과 등대섬을 가본 사람이 드물고, 이기(二妓), 즉 임진왜란 때 적장을 안고 바다에 투신했다는 두 기생의 사연도 긴가민가 한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의 주술을 부려보기로 했다.
■시를 쓰는 오륙도 가마우지
가마우지들이 싸 갈긴 배설물로 마치 설산처럼 보이는 굴섬 전경.
지난 주말 남구 용호동 오륙도 선착장 옆 승두말. 뭍엔 봄이 왔건만, 굴섬과 등대섬에는 아직 겨울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바람이 세차다. 해안가 유채꽃은 몸을 잔뜩 움츠렸다.
등대섬을 오가는 도선을 탔다. 도선은 낚시꾼들로 늘 만원이다. 배가 나아가면서 방패섬,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이 연이어 나타난다. 퐁당퐁당, 육지에서 마치 바다에 물수제비를 떠놓은 듯하다.
굴섬이 다가온다. 마치 설산(雪山) 같다. 히말라야 설산의 한 봉오리를 떼내 바다에 띄운 것 같은 신비로운 형상. "저게 마카 새똥이라카이~" 한 낚시꾼이 신비의 실체를 벗겨준다.
굴섬은 국내 최대의 민물가마우지 월동지다. 가마우지들이 언제부터 굴섬을 점령했는지는 알 수 없다. 등대지기 등 목격자들에 따르면, 해마다 겨울이면 2000여 마리의 가마우지가 진을 치고, 출퇴근하듯이 낙동강 하구를 오가면서 굴섬에서 숙식한다는 것이다. 굴섬의 위쪽 절반은 가마우지들이 싸 갈긴 배설물로 흰색 페인트를 쏟아부은 것 같다. 한 낚시꾼이 다시 설을 푼다.
"뭔 소리여? 사람똥에는 방부제 항생제 등 온갖 화학물이 들어가 있지만 새똥은 그런 게 없으니 저게 자연이야. 저 똥이 파도와 빗물에 씻겨내려 주변에 어장을 형성해요. 굴섬 아래가 학꽁치, 도다리, 농어 포인트야."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가마우지를 '밤에는 절벽에서 자고, 인적이 끊긴 곳에 알을 낳는다'고 했다. 굴섬이 딱 그런 자리다. 굴섬 어디를 둘러봐도 발 디딜 여유가 없을 정도로 절벽 각도가 카랑카랑하다. 바다 위 천연요새다. 굴섬 꼭대기에 진을 친 덩치 큰 가마우지 몇은 마치 출격대기 중인 스텔스기 같다.
가마우지는 깊이 5m까지 잠수해 물고기를 잡아먹는 습성 때문에 중국과 일본에서는 목에 노끈을 묶어 물고기 사냥에 활용한다. 어부들의 지혜라고 하지만, 달리 보면 가마우지 착취 행위다. 하지만 오륙도는 가마우지를 농락하지 않는다. 굴섬을 무상 임대로 사용케하고 낙동강 하구라는 천혜의 먹이밭까지 내주고 있다.
가마우지들이 싸 갈기는 배설물이 바람을 타고 등대섬을 오염시킬 때도 있으나, 등대지기들은 '허허~ 고놈들'하며 웃고 만다. 등대지기들은 자연과의 동거동락을 운명이라 여긴다.
가마우지는 검은 밤에도 흰 똥을 싸 갈긴다. 검은색 속에서 뽑아내는 흰빛! 바다와 하늘을 잇는 메신저! 저 흰빛이 지구의 별자리가 되어 해마다 떠나간 가마우지들을 다시 돌아오게 만든다. 또 누군가는 저 흰빛을 등대삼아 항해를 한다. 오륙도에선 가마우지들이 시인이자 등대지기다.
■이기대를 풀어라
유채꽃 속에 파묻힌 오륙도의 해안 산책로. 강원도 고성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이 여기서 시작된다. 국제신문DB
'임진왜란 때 수영성을 함락시킨 왜군은 부산 남구 용호동 해안에서 축하 잔치를 열었다. 이때 수영의 두 기생이 주연에 참가하였다가 술 취한 왜장을 끌어안고 함께 물에 빠져 죽었다. 그 두 기생이 묻힌 곳이라 하여 이기대(二妓臺)라 한다…'.
부산 남구에 전해지는 전설이다. 1850년 좌수사 이형하가 편찬한 '동래영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의기대(義妓臺)'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알맹이가 없다. 언제, 누가, 어디서, 왜? 어느 것 하나 속시원히 풀리지 않는다. 일설에는 경상좌수사가 두 기생을 데리고 놀았다고도 한다. 어쨌든, 두 기생이 술 취한 적장을 따로 따로 안고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설이 가장 흥미로운 스토리텔링 기반을 형성한다.
현장을 함께 돌아본 소설가 김하기(54) 씨는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고 했다.
"이기(二妓)는 진주의 의기(義妓) 논개를 연상케 합니다. 전설도 그쪽과 아주 비슷하고요. 그렇지만 진주는 논개 1명이지만 여기선 2명이 등장합니다. 무엇이 이들을 한마음으로 묶었을까요. 사전 모의도 있었겠지요. 남아 있는 자료를 토대로 현장극이라도 만든다면 훌륭한 관광상품이 될 겁니다."
이기대는 비감한 전설을 껴안은 채 아직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꽃다운 나이에 산화한 의기들의 넋은 용호만과 오륙도 앞바다의 쪽빛 물빛이 되어 넘실거린다.
이기대 갈맷길(오륙도~농바위~어울마당~동생말 4.7㎞)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명품 해안산책로다. 오륙도 앞에서 시작되는 해파랑길(부산~강원도 고성 간 탐방로)과 겹치는 것도 매력이다. 이곳의 해파랑길 안내센터는 이미 명물로 떠올랐다.
군데군데 지명들이 재미 있다. 목너머, 못난이 골짜기, 장바위, 농바위, 낭끝, 밭골새…. 부산 남구 김용민 홍보계장은 "이런 토속 지명은 해녀들이 바다에서 물질하며 삶 속에서 불러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저러나 오륙도-이기대 해안의 해녀들은 맥이 끊길 지경이다. 남은 해녀는 고작 13명, 그것도 대부분 70대의 고령자다. 이기대 해안길의 해녀막사가 쓸쓸해 보이는 이유다. 저 해녀막사에 마지막 해녀들의 물질 이야기를 하루빨리 채워야 한다.
■바다를 크게 보는 법
오륙도 등대섬을 지키는 다롱이.
굴섬 바로 옆에 오륙도 등대섬이 있다. 등대섬은 강철 바위다. 오랜 세월 모진 풍파에 시달리면서 씻기고 깨질 것은 모두 사라지고 강한 바위들만 남았다. 그 어떤 태풍이 들이닥쳐 등대섬(해발 28m)을 엄습하고 등탑(해발 56m)을 위협해도 당당하게 서 있다.
등대 오르는 길은 70도의 급경사 벼랑길이다. 그곳에 층계를 내고 난간을 세웠다. 난간은 구곡단장의 고갯길을 넘어가듯 굽이굽이 돌아간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등대 입구에서 다롱이가 꼬리를 친다. 다롱이는 오륙도 등대섬에 사는 애완견이다. 외딴 등대섬에서 산 탓인지 사람을 무지 반갑게 맞았다. 애잔한 눈빛이 얼핏 바다를 닮은 것 같았다. 다롱이와 잠시 함께 하며 바다 보는 법을 배운다.
등대섬의 건축물은 '바람의 집'이다. 건축물 곳곳에 열린 창과 문이 있어 바람이 그냥 지나간다. 바람을 통과시키는 소통의 미학이 구현돼 있다. 덕분에 크게 뚫린 구멍으로 바다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온몸의 세포가 눈을 뜬다. 수평선은 먼 데서부터 활처럼 부드럽게 휘어져 있다. 보고 있자니 모난 마음이 깎여나가는 것 같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마음의 힐링을 경험한다. 다롱이도 똑같이 수평선을 보고 있다.
동행한 동화작가 한정기(53) 씨는 오륙도를 오대양 육대주로 해석하자고 말한다.
"오륙도를 부산에 가둬선 안 돼요. 부산항 수호신 또는 다섯 개 섬, 여섯 개 섬을 논하는 단계에서 오대양 육대주로 나아가게 해야 합니다. 더 큰 것을 품는 출항지로 우뚝 서게 하자는 겁니다. 그러면 부산항이 더 커집니다."
한 작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레지던스 프로그램인 아라온호 승선 작가로 선정돼 남극과 북극을 다녀온 바 있다. 그가 쓰는 '오륙도 스토리텔링'이 기대된다.
#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 슬퍼도 슬프지 않은 시와 노래들
오륙도 하면 곧장 떠오르는 노래가 가수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이다. 노랫말 속에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하는 대목은 언제 들어도 정겹다. 그리움과 아쉬움이 파도 속에 섞여 부서지는 것 같다. 슬픈 가사임에도 슬퍼지 않은 것은 바다가 슬픔을 씻어주기 때문일 터. 해운대 미포~영도 태종대를 오가는 유람선 뱃전에는 '오륙도 돌아가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한 블로거가 조사한 것을 보니, 가사나 제목에 오륙도가 들어간 국내 노래는 17곡 정도다. 여기에 학교 교가 같은 건 제외돼 있다. 1956년 차은희가 부른 '한많은 오륙도'가 오륙도 노래로는 최초라고 한다.
1971년 은방울자매가 부른 '현해탄을 건너올 때'(반야월 작사, 강영철 작곡)에도 오륙도와 부산 항구가 등장한다. 이후 1987년 박중래의 '오륙도 친구'와 박희선의 '오륙도'가 이어졌으나 그 다음의 후속타는 보이지 않는다. 제2의 조용필이 나와 21세기 K팝 열풍에 오륙도를 녹여내야 한다.
오륙도는 노래뿐 아니라, 문학 예술작품의 소재로도 인기가 있다. 오륙도를 직접적 소재로 다룬 작품만도 수십 편에 이른다. 가장 잘 알려진 시는 노산 이은상의 '오륙도'다.
'오륙도 다섯 섬이 다시 보면 여섯 섬이/ 흐리면 한두 섬이 맑으신 날 오륙도라/ 흐리락 맑으락 하매 몇 섬인줄 몰라라.'(이은상 '오륙도' 중)
김규태 시인은 '아득히 먼 천지개벽 적/ 어느 거룩한 손 있어/ 물 수제비를 떠 덤벙덤벙 던져 놓았다…'라고 풀어놓았고, 동길산 시인은 오륙도에서 동해와 남해가 만난다는 점에 착안해 '짐작인들 했으리/ 웃물 아랫물 다가가고 다가와/ 마침내 합치는 동해와 남해…'라고 감격적 어조로 노래한다.
윤상운 시인은 5와 6 사이에서 어떤 영원성을 발견한다. '날이 흐려 다섯이면 어떻고/ 날이 맑아 여섯이면 어떤가/ 다섯과 여섯을 넘어 바위로 선/ 영원…'.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예술작품은 12만년 동안 자연이 빚은 오륙도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부산 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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