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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뭇 민족이 너의 정의를 보고!
이사야 62:1~5
1. 시온을 생각할 때, 나는 잠잠할 수가 없다. 예루살렘을 생각할 때,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정의가 동터 오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르기까지 어찌 잠잠할 수 있으랴?
2. 마침내 뭇 민족이 너의 정의를 보고 모든 제왕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 야훼께서 몸소 지어주실 새 이름, 사람들이 그 이름으로 너를 부르리라.
3. 너는 야훼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관처럼 빛나고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인 왕관처럼 어여쁘리라.
4.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여자'라 하지 아니하고 너의 땅을 '소박데기'라 하지 아니하리라. 이제는 너를 '사랑하는 나의 임'이라, 너의 땅을 '내 아내'라 부르리라. 야훼께서 너를 사랑해 주시고 너의 땅의 주인이 되어주시겠기 때문이다.
5. 씩씩한 젊은이가 깨끗한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듯 너를 지으신 이가 너를 아내로 맞으신다. 신랑이 신부를 반기듯 너의 하느님께서 너를 반기신다.
구약성서는 크게 3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입니다. 역사서를 따로 나누기도 하지만 역사서에 율법서를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예언서는 구약성서에서도 분량이 매우 많으며 대예언서와 소예언서로 나누어지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언서 중에서도 대 예언서에 속하는 이사야서의 내용인데 그중에서도 제3 이사야의 기록(56-66장)으로 분류되는 대목입니다. 이사야서는 총 66장으로 기록되었는데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서로 다른 시대에서 활동하던 세 명의 이사야에 의해서 선포되었다고 합니다.
제3 이사야가 활동하였던 시기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뒤 약 20여 년간에 걸친 기간입니다. 주전 520년 학개와 스가랴가 등장해 성전재건을 강력히 추진하기 직전까지로 보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침략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간 것은 BC. 587년 경입니다. 나라를 잃고 노예로 끌려간 백성들의 운명은 비참했죠. 낮선 이국땅에서 짐승처럼 살며 배고픔에 시달렸습니다. 종교의 자유마저 빼앗겼고 바벨론의 생활 양식을 강요받았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뿐 아니라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이들의 삶도 비참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고 유다의 종교는 금지되었죠. 유다인들의 저항이 산발적으로 일어났지만 자신들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대다수의 고대 근동의 민족들이 그러했듯이 유다 민족의 전통도 점차 흐려져 갔습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이 50년쯤 흐른 뒤인 기원전 538년에 페르시아 황제 고레스가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립니다. 고레스는 유대인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가서 예루살렘 도시를 복원하고 성전을 재건하라는 포고령을 내렸죠(스 1장). 바벨론 포로들이 꿈에 그리던 일이 현실로 일어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고향으로 돌아와서 유대 총독으로 임명된 세스바살의 통솔을 받아 그 일을 추진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포로들의 눈에 하느님의 도성은 폐허나 다름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의 함락으로 많은 귀족과 지도자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힘없는 백성들이 도성에 남았습니다. 그나마 쓸만한 것들은 대부분 바벨론으로 공출되었고 이 과정에서 예루살렘 성은 더욱 황폐해졌죠, 베벨론의 엄격한 통제와 억압 속에서 남은 사람들은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남은 자들은 조국에 대한 깊은 원망을 품은 채 생존을 위해 고달픈 일상에 처해 있었습니다. 도시를 벗어나 시골에 남아 있는 농민들 역시 수탈에서 벗어나긴 어려웠습니다.
남은 자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기에도 벅찼습니다. 성전의 파괴와 더불어 그들의 예배 전통은 붕괴되었죠. 게다가 이방에서 물밀듯 들어온 종교와 관습의 강요로 민족 정체성에서도 큰 상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물론 바벨론 유폐지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하게 나타났습니다. 포로들은 더욱 심한 영적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로 각성한 이들도 있었죠.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예언자들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 의해 새로운 하느님과의 관계가 고민되었고, 영적인 회복을 갈망하게 되었죠.
이런 시점에서 예언자 예레미야와 이사야가 전한 메시지는 그들에게 중요한 위로와 희망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예언자들은 결국 하느님께서 고난을 끝내고, 그들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할 것임을 선포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억압과 종교적 박탈의 상황 속에서도 예루살렘 남아 있는 자들은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를 돕고, 새로운 예배 형태인 회당에서 모였습니다. 이들은 처참한 생활 중에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고, 자녀들에게 그들의 정체성과 신앙을 전수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바벨론 포로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 형태에 큰 변화를 야기했습니다. 하나는 공동체 중심의 신앙에서 개인적 신앙으로의 전환입니다. 성전과 제사의례가 무너진 지금 이제는 각자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하느님과 직접 대면해야 하게 된 것입니다. 더이상 연대책임으로서의 공동체의 범죄가 아닌 각자의 죄에 대한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이 생긴 것이죠. 이는 신앙의 개인화로 이어지며, 바벨론 포로기 동안에도 이스라엘 백성이 신앙을 잃지 않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 힘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성전이 사라진 후, 이스라엘 백성은 회당이라는 새로운 예배 장소를 통해 신앙생활을 이어갔다는 것이죠. 회당이 성전의 기능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신앙을 서로 나누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회당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로의 신앙을 격려하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초기 기독교에서도 이러한 회당의 전통이 큰 영향을 줍니다. 성전 제사와의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며 예수 운동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죠.
때문에 바벨론 포로기는 단순한 고난의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다짐하는 성찰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변곡점 즉, 민족적 재탄생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죠. 이 시기를 통해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 신앙, 그리고 궁극적인 구원의 필요성을 새롭게 되새기게 되었고, 이는 포로기 이후 그들이 다시 귀환할 때 새로운 출발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후에는 하느님의 약속을 다시 확인하고 공동체로서의 힘을 재구성하는 과정이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3 이사야는 고국으로 돌아온 이스라엘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해 줍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며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버렸다고 절망하고, 모진 노예 생활을 하며 하느님의 인도와 보호가 사라졌다고 한탄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그분의 사랑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죠.
제3 이사야는 바야흐로 귀환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며 감격하고 있는 하느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시온을 생각할 때, 나는 잠잠할 수가 없다. 예루살렘을 생각할 때,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정의가 동터 오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르기까지 어찌 잠잠할 수 있으랴?(1절)”는 것이죠. 이사야는 모진 바벨론의 억압과 고통 속에서도 꿈에도 그리던 고향을 생각하며, 그 옛날 하느님의 축복 가운데 누렸던 영화를 더 올리는 백성들을 생각하며 뛰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해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래서 하느님이 나섰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정의가 회복되고 모든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흠이 없는 완전한 상태로 회복되도록 하느님이 나섰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침내 뭇 민족이 너의 정의를 보고 모든 제왕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 야훼께서 몸소 지어주실 새 이름, 사람들이 그 이름으로 너를 부르리라(2절).” “너는 야훼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관처럼 빛나고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인 왕관처럼 어여쁘리라(3절)”고 축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향해 새 약속을 줍니다.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여자'라 하지 아니하고 너의 땅을 '소박데기'라 하지 아니하리라. 이제는 너를 '사랑하는 나의 임'이라, 너의 땅을 '내 아내'라 부르리라. 야훼께서 너를 사랑해 주시고 너의 땅의 주인이 되어주시겠기 때문(4절)”이라고 말입니다.
그동안 예루살렘은 계속되는 징계와 심판으로 인하여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70년 포로 생활 기간 동안 시온은 완전히 버림받은 도시가 되었죠. 하지만 이스라엘은 포로 생활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새로운 관계를 회복하며 다시 시온으로 돌아옵니다. 이 시온에 세워질 새 나라 새 땅의 이름은 헵시바와 쁄라입니다. ‘헵시바’는 ‘사랑하는 나의 님’, ‘쁄라’는 ‘내 아내’란 뜻입니다. 그러니 이제 시온은 '버림받은 여자'에서 ‘사랑하는 나의 님’, '소박데기'에서 ‘내 아내’로 신분이 바뀐 것이죠.
이제 이스라엘은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이방 땅에 잡혀가서 노예로 살며 모진 고생을 당하던 그 시절은 이제 과거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원기를 찾아 씩씩한 젊은이의 모습으로 서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시집 장가를 가듯 이제는 하느님의 신부가 되어 그 사랑 안에 행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5절).
이런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뭇 민족이 하느님의 정의가 이루어진 땅과 그 영광을 보며 새로 지어진 이름으로 불릴 것이라고 이사야는 선언합니다
지난 수요일 15일 윤석열이 드디어 체포되었습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내란을 일으킨지 43일 만의 일입니다. 그리고 47일째인 오늘 새벽 2시 50분에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습니다. 윤석열의 구속으로 밤잠 못 이루던 국민들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선포와 국회의 계엄해제 결의, 국회의 대통령 탄핵 의결, 윤석열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와 집행, 구속 실질심사와 구속영장 발부까지 우리 국민 모두가 험한 길 마다하지 않고 함께 걸었습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자마자 국회로 달려와 장갑차와 군대를 막았던 시민들, 국회와 시청, 광화문과 한남동에서 살을 에는 추위와 싸워가며 밤새워 응원봉을 흔들었던 20-30 여성들과 시민들, 용기를 내어 상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거나 외면했던 군인과 경호처 공무원들, 무엇보다도 따뜻한 차와 음식, 난방 버스를 보내 응원해 준 민주시민들의 덕분으로 우리는 이제 내란의 수괴를 감옥에 처넣었습니다.
앞으로 수사와 기소를 통해 윤석열과 내란 공범들, 방조자들의 죄상이 낱낱이 밝혀져 우리 역사에 다시는 이런 반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일은 우리 국민들이 깨어 있어야 가능합니다. 이번을 계기로 해방 후 80여 년간 이 땅에 뿌리내린 매국 엘리트 세력을 뿌리 뽑아야 할 것입니다. 이 나라의 안위보다는 미국이나 일본에 기대에 자신들의 영달을 도모하였던 무리들 말입니다. 이들은 미군정을 등에 업고, 이승만의 비호 아래 권력의 자리로 복귀한 본일(本日)파 세력입니다. 이들은 반민특위를 해체하며 민족정기를 말살하였고, 반공을 내세우며 군부독재 시대를 만든 장본인들입니다. 이것들이 또다시 윤석열 검찰 정부를 통해 이 나라를 영구적인 왕정시대로 시대를 돌려놓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제는 이런 매국 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을 때입니다. 시간이 얼마가 걸리던 철저히 발본색원하여 처벌해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 2년 8개월 동안 우리나라는 너무도 많이 망가졌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수십 년간의 퇴보를 거듭해 왔습니다. 정치의 퇴행은 급기야 45년 전의 비상계엄 시대로 되돌아갈 뻔했죠. 아닌 이번 계엄이 성공했더라면 박정희의 유신 시대 이전으로 회기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45년 전 전두환의 성공한 쿠데타와 윤석열의 실패한 쿠데타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크게 보면 2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보입니다.
첫 번째는 우리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정치의식 수준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광주항쟁과 6.10 항쟁으로 우리 국민은 군부독재를 이겨냈습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은 민주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도 깨닫게 하였죠. 이런 정치적 진전을 미국과 수구 엘리트 세력은 무지 못마땅해했으나 도도한 역사의 강물에 밀려갔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국민들의 정치의식과 민주화 열망 때문이었습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실정과 국민 눈높이에 모자라는 정치는 또 다른 촛불항쟁으로 마감되었죠. 하지만 국민이 주도하는 정치 권력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국민들이 정치의 효능감을 체감하기 시작하였지만 수구세력의 총력전으로 반동적인 윤석열에게 0.7% 차이로 정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는 다양한 전략, 전술핵으로 무장한 북한의 입장 변화입니다. 북한은 2023년 12월 당 전원회의 결정문에서 남북관계를 더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이며 전쟁중에 있는 두 교전국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미국에 대해서도 강 대 강 정면 승부의 대미 대적 투쟁 원칙을 실시하겠다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들과 연대하겠다는 뜻을 밝혔죠. 그리고 이는 지난해 러시아와의 전면적인 군사협력의 확대로 현실화 되었습니다. 북한의 입장 변화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곧바로 미국과의 전쟁으로 비화 되고 이는 곧 세계 대전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번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를 미국이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워낙 기습적이었다 하더라도 금방 알아차렸을 것이고, 작전권을 발동하여 군부대 통제에 들어갔을 것으로 보이는 제보들도 있었죠. 미국은 윤의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지지 또는 묵인했을지도 모릅니다.
최근 계엄이 해제된 이후 윤석열이 2차 계엄을 시도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계엄해제 후 1시 52분에 2만 7천 발의 실탄과 수류탄, 저격용 총알 등을 실은 제9 공수부대 소속 트럭이 선관위와 여론조사 꽃을 목표로 보내졌다는 동영상 증거도 제시되었습니다. 이는 제2의 계엄 사태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선관위와 여론조사 꽃을 공격하고 중국이나 북한의 소행이며 부정선거를 은폐하려고 했다고 선전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북한을 공격하는 국지전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는 것이죠. 어쨌든 윤석열 내란 세력이 포기하지 않고 제2의 계엄을 시도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남북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2차 계엄을 막은 세력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세력이 어디일까도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북미 전쟁으로의 확산을 우려한 미국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죠.
윤석열 변호인들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를 보면 그들의 인식이 얼마나 참담한가를 볼 수 있습니다. 제정신이라면 정말 말도 안 되는 논리와 거짓말을 어떻게 그렇게 뻔뻔스럽게 늘어놓을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지경입니다. “드라마 볼 시간에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것은 국회의원들에게 계엄 해제하라고 통보한 것”이라거나 국회에 군대를 보내 유리창을 깬 것은 흥분한 시민들로 부터 국회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란 궤변을 늘어놓았죠. 포고령에 대해서도 김용현이 이전 문서를 베낀 것이고 자신은 모른다고 발뺌하고 있습니다. 더 나가 비상계엄에 대해 헌재든 법원이든 판단할 수 있는 정보도 능력도 없다는 망발까지 이어졌습니다.
모든 책임을 부하에게 뒤집어씌우고, 헌법과 법률이라는 법치의 근본마저 부정하는 대통령을 뽑은 자들은 도대체 누구인가요?
윤석열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오늘 새벽 윤의 지지자들이 폭도가 되어 버렸습니다. 돌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소화기를 분사하며 경찰과 대치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공수처 차량과 경찰관도 공격하였고, 기자 폭행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들 중 100여 명은 서부지법 후문 쪽에서 내부로 진입했습니다. 경찰 방패 등으로 법원 내 유리 출입문을 파괴하고 각종 집기를 던지며 난동을 부리며 법원 내 3층까지 침입했다고 합니다. 윤석열 파면을 요구하는 민주시민들의 모범적인 시위 문화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거죠. 윤석열이나 그 지지자들이나 민주사회에서 살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120여 년의 세월을 매국 본일 세력들과 싸우며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고 경제 대국을 만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 단물을 빨아먹고 살아온 엘리트 기득권 세력이 윤석열을 내세워 쿠데타를 감행한 것이 이번 내란의 본질입니다. 이들은 일본과 같은 왕정시대로의 회귀를 꿈꾸며 이를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도는 우리 국민들의 단호한 저항과 용기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 위기를 질서 정연한 평화 시위로, 헌법과 법률에 근거한 해결을 통해 극복해 나가는 우리 국민들의 모습을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목격하며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가 꿈꾸었던 “마침내 뭇 민족이 너의 정의를 보고 모든 제왕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는 말씀이 오늘 우리 한반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죠. 이제 이 내란이 완전히 진압되고 가담자들에게는 용서 없는 처벌이 이루어진다면 새로 시작하는 이 나라는 전 세계의 귀감이 되고 희망이 될 것입니다. 이사야가 말한대로 “야훼께서 몸소 지어주실 새 이름, 사람들이 그 이름으로 너를 부르리라”는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이죠.
이제 헌법재판소에서 2월 말 윤석열 파면이 선언되고 4월 말 새 정부가 출범하면 우리나라 우리 민족은 새 역사를 쓰게 될 것입니다. 윤 정권이 파괴한 모든 것은 다시 회복될 것이고 세계의 모범 국가로 새 출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을 향해 중단없이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우리 국민이 되길 앞장서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