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받은 새 생명의 꽃밭
개암 김동출
필자는 2020년 4월,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에서 새로운 심장을 선물받았다. 그 길은 결코 짧지 않았다. 2019년 9월, 말기 심장판막질환 환자로 판정받고 심장이식 환자로 등록하기 위해 처음 서울아산병원 원내 ‘장기이식센터’를 찾았을 때,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벽면에 걸린 대형 액자였다. 그 안에는 장기기증 운동의 선구자 로버트 테스트의 글이 담겨 있었다.
『어느 순간 의사는 나의 뇌가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모든 의미에서 나의 생명이 정지되었다고 결정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내 몸 안에서 기계를 이용해서 인공의 생명을 불어넣으려고 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나의 임종이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그 대신 그것을 새로운 탄생이라고 불러주시고 다른 사람들이 더욱 충실한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되도록 나의 몸을 나눠주십시오. 나의 눈을, 떠오르는 아침 해와 아기의 얼굴과 그리고 여인의 눈 속에 사랑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 주십시오. 나의 심장을, 자신의 심장으로는 날마다 끊임없는 고통만 당해온 사람에게 주십시오. 나의 피를, 교통사고로 이그러진 차 속에서 구출된 십 대에게 주시어 그로 하여금 그의 손자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 때까지 살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심장을, 기계에 의존하여 나날을 연명해 가는 사람에게 주십시오. 내 몸속의 뼈와 모든 근육과 모든 세포와 신경을 절름발이 아이에게 주시어 그 아이가 걸을 수 있게 할 길을 찾아주십시오. 필요하다면, 내 세포를 떼어내어 배양하시고 그것으로 언젠가 말 못 하는 소년이 야구 방망이로 공을 치는 소리에 환성을 지르고, 듣지 못하는 소녀가 유리창에 내리는 빗소리를 듣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내게 남은 것을 태워서 바람에 재를 뿌려주시고 꽃들이 자라는 걸 돕게 하여 주십시오. 뭔가 묻어야 하겠다면 내 잘못과 결점과 인간에 대한 나의 모든 편견을 묻어 주십시오. 내 죄악은 악마에게 주십시오. 내 영혼은 하느님께 드리십시오. 그리고 혹시 날 기억하려거든 당신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친절과 행동과 말로 기억해 주십시오. 내가 부탁한 모든 걸 해 주시면 나는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휠체어에서 내려앉아 떨리는 마음으로 한글을 깨우친 그날처럼 한 자 한 자 그 의미를 새기면서 찬찬히 읽어 나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자신이 심장질환 환자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기이식에 대한 의학적인 사실과 개념을 전혀 알지 못했다. “나의 심장을, 자신의 심장으로는 날마다 끊임없는 고통만 당해온 사람에게 주십시오. ….” 글귀에 머무는 순간 새로운 희망과 용기가 샘솟았다. 그리고 환자로서의 위급함보다 생명의 무게와 기증의 숭고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누군가의 결단과 사랑이 또 다른 생명을 이어주고, 그 생명이 다시 세상과 연결되는 기적. 나는 그 글 앞에서 오래 멈춰 서 있었다. 그 후 심장이식 대기 환자로 8개월 동안 2.5kg에 달하는 ELVAD(좌심실 보조장치)를 옆구리에 달고 잦은 섬망과 폐렴 증상으로 입퇴원을 거듭하였다. 타지에서 온 장기이식 환자가 그러하듯 필자도 마산까지 오르내리기가 너무 힘들어 병원 인근에서 원룸을 얻어 지내며 병원을 오갔다. 계절이 네 번 바뀐 2020년 4월 말 어느 날, 병실에 있는 내게 기적이 찾아왔다. 나와 혈액형이 같은 어느 청년 뇌사자의 심장(짐작일 뿐)을 이식받아 새 생명을 기적적으로 얻게 되었다.
심장이식 대기 환자로 지낼 때도 하루하루를 견뎌내기 힘들었지만 이식 후에도 힘들었다. 흉부외과 중환자실에서 8시간 만에 의식을 회복하였다. 그 후 심장내과 중환자실에서 무균실로 옮겨 일주일 만에 장기이식 환자 전문 병동 병실로 전실하여 5월 말에 피접이 앙상한 몸으로 퇴원하였다. 중압감에서 오는 섬망으로 간병하는 아내를 못살게 굴기도 하였다. 퇴원한 후에도 판단력이 흐렸다. 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심장의 위치를 옆구리에 있다고까지 말했으니 속으로 얼마나 놀랐을까 생각하면 그 심각성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심장이식 수술을 앞둔 겨울, 병실은 차가운 공기와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나는 수많은 손길과 마음을 받았다. 심장 전문의와 의료진은 매일같이 내 곁을 지키며 생명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고, 간병인들은 묵묵히 내 몸을 돌보며 고단한 하루를 이어갔다.
여식은 지쳐버린 엄마를 대신해 간병인이 되었다. 낮에는 학교로 출근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이면 병실로 돌아와 내 침상 곁에서 쪽잠을 청했다. 오물을 받아내며 손끝이 얼어붙었을지라도,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눈빛은 나를 붙잡는 또 하나의 심장이었다.
아들은 토요일마다 영양식을 손에 들고 먼 길을 달려왔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그의 숨결과 땀 냄새 속에서 나는 삶의 기운을 느꼈다. 형제자매들은 나무손십자가를 내 손에 쥐어주며 야윈 손가락을 꼭 잡았다. 그들의 체온은 얼어붙은 내 영혼을 녹여내는 불씨였다.
서울에서 달려온 친구들은 앙상한 내 몰골을 어루만지며 함께 울었다. 눈물 속에서도 그들의 손길은 진한 우정의 향기를 품고 있었다. 교우들은 입원 첫날부터 퇴원하는 날까지 기도로 나를 감싸주었다. 병실의 공기는 그들의 기도로 따뜻해졌고, 원내 성당에서 오신 신부님과 수녀님은 내게 봉성체를 베풀어주셨다. 그 순간, 나는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도 하늘과 맞닿아 있음을 느꼈다.
심장이식 후 5년째 되는 2025년 3월에 입원하여 정밀검사를 받았다. 이후 예상하지 못한 사건도 있었지만 지금은 건강한 몸으로 아내의 집안일을 도우며 산다. 주일에는 성당에 나가 사진 촬영을 봉사하며 틈틈히 투병생활의 기억을 시나 수필문학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꾸준히 힘쓰고 있다. 재작년 봄에는 장기이식 기증을 약속하였다. 심장이식은 단순한 의학적 치료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지막 선택이 내게 새로운 삶을 허락한 깊은 은혜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날 장기이식센터에서 마주한 글은 이제 내 삶의 이야기와 하나가 되어, 매 순간 건강한 내 심장의 박동 속에서 경종을 울린다. 오늘도 내게 새 생명을 주신 그분과 그분의 가족, 그리고 언급하기 어려운 모든 분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의 유혹을 경계하며 가톨릭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2025년 3월, 심장이식 후 다섯 해가 지난 어느 날, 나는 다시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차갑게 울리는 기계음, 창밖으로 스며드는 봄 햇살, 그리고 흰 벽에 부딪혀 돌아오는 내 숨결. 그 모든 것 사이에서 내 심장은 힘차게 뛰고 있었다. 그 박동은 단순한 의학의 결과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지막 선택이 내게 건네준 은혜의 증거였다.
삶은 여전히 예기치 못한 사건들로 나를 흔들었지만, 지금 나는 건강한 몸으로 아내 곁에서 작은 집안일을 거들며 살아간다. 주일이면 성당에 나가 카메라를 들고 신자들의 웃음을 담는다. 셔터가 눌릴 때마다, 나는 새 생명을 허락한 그분의 가족과 얼굴 없는 수많은 이들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병상에서 흘린 눈물은 이제 시와 수필 속에서 빛나는 언어가 되어, 나의 삶을 다시 쓰고 있다.
재작년 봄, 나는 장기이식 기증을 약속했다. 그날 장기이식센터에서 마주한 한 문장은 내 영혼 깊숙이 새겨졌다. 그것은 단순한 글이 아니라, 내 삶의 이야기와 하나가 되어 매 순간 심장의 박동 속에서 종소리처럼 울린다.
오늘도 나는 새 생명을 주신 그분과 그분의 가족, 그리고 이름조차 부르기 어려운 모든 분께 감사한다. 내 심장은 단순히 피를 흐르게 하는 기관이 아니라, 은혜와 감사, 그리고 봉사의 노래를 부르는 성가대의 목소리다. 나는 세상의 유혹을 경계하며, 가톨릭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2026-05-12
첫댓글 하느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다시 찾은 소중한 생명!
오래도록 강건하시길...
같은 병(심한심장장애)을 앓은 사람으로서 동병상련의 뜻을 되새겨 봅니다.
문 선생님, 치유의 은총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