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기습(奇襲) ---------------------------- "이름은?" "대도오!" "특기는?" "도(刀)!" "흐-음, 총당호법(總堂護法) 묘금도(卯金刀) 한송(韓松)의 추천이로군!?" "......" 땅딸막한 털보가 슬쩍 눈을 들어 천하에 다시 없을 성을 가진 이 대도오라는 사내를 훑어 보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낭인, 청년무사에 불과해 보였다. 그러나 두 눈에서 쏘아지는 찌를 듯한 눈빛이 전체적인 그의 인상을 대단히 강렬한 것으로 만들었다. 여태 말없이 앉아있던 얼굴에 칼자국이 가득한 사내가 질문했다. "무기는 어디 있나?" 털보, 흑기당 제오향주(第五香主) 산귀초(山鬼肖) 노종도(魯倧倒)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정말 드문 일이었다. 흑기당주 인도부(人屠夫) 안소(安笑)가 말을 하는 것은, 그것도 처음 본 애송이에게 질문을 하는 것은 십 여년을 따라다니던 그로서도 기억에 가물가물할 정도로 드문 일이었다.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고, 피치못해 말해야 할 경우에도 어지간 하면 손짓으로 대신하던 안소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건방진 녀석은 안소보다 더 말을 아꼈다. 대답은 하지 않고 그저 오른 손으로 엉덩이를 툭 쳐 보일 뿐인 것이다. 거기 있었다. 한 자루 기형도(奇形刀). 두 자가 겨우 넘는 길이에 두께는 손가락 다섯을 겹친 것 만큼이나 넓은 칼 하나가 엉덩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소뿔처럼 생겼는데 검은 가죽으로 손잡이를 감았을 뿐, 장식이 철저히 없는 것만 제외하면 여인네의 패도(佩刀)처럼도 보였다. 안소의 눈이 흥미로운 빛을 보였다. 그도 장도(長刀)를 쓰기 때문에 천하에 산재한 도법(刀法)과 도의 형태에 대해서는 문외한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외곬수적이라 할 정도로 도에만 파고들어 다른 무공이 좀 떨어진다는 평을 들을 정도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도 여지껏 몰랐던 색다른 도를 본 것이다. 호기심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모양도 특이했지만 손잡이를 오른 쪽으로 오게 가로 눕혀 엉덩이 뒤로 거의 가려질 만큼 치우쳐서 차고 다니는 모습이 특이하기 짝이 없었다. "좌수도(左手刀)인가?" 대도오는 대답 대신 오른 손을 뒤로 돌려 손잡이를 앞으로, 칼날은 뒤로 오게 잡아 보였다. 그는 도를 일반적인 방법과는 다르게 거꾸로 잡고 쓰는 듯 했다. 안소의 눈주름이 살짝 찡그려졌다. 노종도는 그것이 안소가 뭔가 말할 필요를 느끼긴 하지만 말하고 싶지 않을 때 고민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한참을 갈등하던 안소가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했다. "왜 그렇게 매고 있지?" 이번에는 아무리 말없는 대도오라도 입을 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도오는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귀찮은 표정을 노골적으로 보이면서 짤막하게 말했다. "편하니까." 그 순간 안소의 표정을 봤어야 했다. 그럴 자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종도는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흘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안소는 한동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침묵을 지키더니 오른 손을 들고 엄지 손가락을 뒤로 움직였다. 노종도가 앞으로 나섰다. "따라와라!" 산귀초 노종도의 뒤를 따라 도착한 허름한 건물 안에는 이제부터 그의 지휘를 받을 아홉명의 사내가 있었다. 흑기당 제오향(第五香) 풍자조(風字組)의 전원이었다. 대도오가 들어서자 그들은 일어서서 도열했다. 무슨 말을 해주길 기대하는 것인가, 그들의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는 속을 알 수가 없었다. 대도오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절반의 흥미와 절반의 무관심을 적절히 섞어서 적당한 경멸로 외피(外皮)를 두르면 이런 표정들이 나올 것이다. 그들에게 자신은 얼마나 귀찮게 굴 사람인지 아닌지의 가치로 밖에는 평가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조장이 하는 일이란 것이 그랬으니까. 하급무사에게도 저마다의 인생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주는 지휘자는 없는 것이다. 차례로 그들의 얼굴을 훑던 대도오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추었다. 이런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늙은 인물이었다. 검게 탄 얼굴에는 주름이 깊이 패여 고랑을 이루고, 짧게 돋은 수염 끝이 이미 은빛인 것으로 보아 적어도 오십은 되었을 사내가 구부정한 허리를 바로 펴려고 애써 노력하며 신임조장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대도오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 앞을 지나쳐 다시 시선을 옮겼다. 이번에는 어린애인가!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이번엔 이런 일을 하기에는 너무 어린 소년 하나가 있었다. 소녀처럼 곱상한 얼굴에 살짝 스쳐간 칼자국이 오히려 애처로웠다. 제 딴에는 다부지게 보이려는지 입술을 깨물고 굳은 표정을 짓고 있지만 천생(天生)의 섬세함은 어쩔 수 없는지 두 다리를 가늘게 떨고 있었다. 대도오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의 정체가 이제 드러나고 있었다. 이들은 피비린내 나는 강호의 싸움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렇게 죽어서는 안될 사람들인 것이다. 적어도 그가 지휘를 맡은 이상은... 대열의 마지막에 선 사내를 보고 그는 비로소 미소 비슷한 표정을 떠올렸다. 불량한 눈초리가 그의 시선을 맞받았기 때문이었다. 반들반들 민 대머리에 붉은 독사 한 마리를 새겨 넣은 흉물스런 머리통의 사내였다. 처음으로 이런 곳에 어울리는 사내를 본 것이다. 독두사(禿頭蛇) 반효(潘梟)는 기분이 상했다. 그는 이미 여기 흑기당에서만 여덟 명의 조장을 거쳤다. 그가 조를 바꾼 것이 아니라 그들이 모두 싸움에서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래도 조장다웠다. 처음 온 날은 술을 산다거나, 아니면 으름장을 놓든 설탕발림을 하든 한 바탕 말이라도 했던 것이다. 물론 그게 마음에 들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어떤 짓을 하든 조장은 조장, 졸개는 졸개였다. 그들이 이런 말 저런 말을 할 때는 역겨워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 온 애송이조장은 달랐다. 그는 아무말도,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단지 조원들의 얼굴을 한참 보더니 방 한 구석의 침상에 올라가 잠들어 버린 것 뿐이었다. 속 들여다 보이는 역겨운 짓을 하지 않았으니 좋아했어야 할 일일 수도 있었지만, 왠지 그것이 기분이 상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자의 속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불쾌감의 원인이었다는 것은 한참 생각해본 후에야 떠올랐다. 예상을 벗어난 행동은 사람을 불안(不安)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불안보다 나쁜 것은 기대(期待)였다. 그는 조장 따위에게 뭔가를 기대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일을 보고 겪었다. 그러나 이 애송이에게는 뭔가 기대하게 하는 요소가 있었다. 싫으면서도 그렇게 되는 것은 반효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쾅-! 나무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각 조장 소집(召集)이오!" 거두절미, 얼굴도 비치지 않고 전령(傳令)은 문을 열어둔 채 가버렸다. 주적주적....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대도오는 군데군데 돌을 박아놓은 마당을 가로질러 당주가 있는 건물의 복도에 들어섰다. 누가 소집했고, 어디로 오라 하지 않았어도 그는 갈 곳을 알고 있었다. 조장을 소집한다면 당주 외의 누구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몇 명일지는 몰라도 당주아래 있는 부당주, 향주, 조장이 모두 모인다면 상당한 수가 될 것이고 조금전 지나치면서 언뜻 보았던 대청 정도가 회의실이 될 것이었다. 어떤 설명 없이도 이 정도 짐작이 가능해야 낭인생활도 해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과연 거기에 모두 있었다. 안소는 앉아있을 때와 선 키가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왜소(矮小)하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 작달막한 키에 두 팔은 기형적으로 길었는데, 등에는 바닥에서 몇 치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긴 칼이 메어져 있었다. 우뚝 서 있는 안소의 옆으로 애꾸 하나가 시립해 있고, 다시 그 앞에 노종도도 낀 다섯 사내가 일렬로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각 조의 조장으로 짐작되는 이십 여명이 두 줄로 서 있었다. 대도오는 느릿느릿 그 열의 끝에 가서 섰다. 장내의 시선이 그에게 모아졌다가 다시 안소를 향했다. 안소는 여전히 말이 없고, 대신 애꾸가 앞으로 나섰다. "노호산(老虎山)에 위치한 적의 거점(據點)을 알아냈다는 정보가 있다." 벽에 걸린 지도를 가리키며 선을 그어 보였다. "노호산과 우리 철기맹이 위치한 난주(蘭州)는 빠른 말로 하룻길에 불과하다. 이것은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기습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총당(總堂)에서는 이 사실을 중대한 위협으로 평가하고, 예의 주시한 바 있었다. 이제 위치가 파악된 이상 그들을 일격에 무력화시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애꾸는 말을 멈추고 장내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한 눈으로 훑었다. 그는 흑기당의 부당주인 독안조(獨眼鳥) 등적(登翟)이었다. "우리 흑기당이 기습을 감행하기로 했다. 출발은 일각(一刻) 후, 습격시기는 이틀 후 삼경(三更), 이동은 밤에만 한다. 질문은?" 없었다. |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