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하튼 이것은 만화가 아니었다, 아니 만화라면 차원이 다른것이었고, 만화가 아니라면 차라리 영화였다..
그 사람이 하루종일 무엇을 궁리하고 있는지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공부를 잘 하는 법을 궁리한다면 학생이겠고 돈을 잘 버는 법을 궁리한다면 상인일 것이다. 그리고 바둑을 잘 두는 법을 궁리한다면 바둑꾼이겠다. 아홉 살 아이가 새벽녁부터 기보책을 보면서 바둑을 둔다면 그는 이미 바둑꾼인 것이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레가 바로 그런 바둑꾼이었다. 열한 살의 나이로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가지만 입단에 실패하고 만다.
인생이란 조그만 바둑판과 같다! 무척 살벌한 얘기다. 바둑판은 기실 너죽이고 나살자는 전쟁판이 아닌가. 우리 인생이 화약내가 물씬나는 전쟁터와 같다면 전사자를 제외하곤 낙오자나 부상자 모두 심각한 신체적 타격과 심리적 외상을 입게 된다. 이 만화가 일깨우는 기본 논조는 직장 사회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전장이 되었다는 얘기다. 윤태호의 웹툰 [미생]은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라는 뜻이다. 그럼 '완생'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저자가 이에 대한 정답을 장그래의 이야기를 통해서 어떤 식으로 제시할지 기대가 된다.
"삶의 무거운 짐을 체험한 적 있는가? 그것은 매 순간 어깨를 짓누르고, 내 입을 틀어막으며, 땅끝 무저갱으로 이끄는 삶의 짐. 턱걸이를 만만히 보고 매달려보면 알게 돼. 내 몸이 얼마나 무거운 지. 현실에 던져져보면 알게 돼. 내 삶이 얼마나 버거운지."(1권 60-1쪽)
등장인물로는 한국 기원 연구생 출신의 종합상사 인턴 사원 장그래가 있고, 장그래가 속한 영업3팀의 팀장 오과장과 김대리가 나온다. 장그래의 인턴 동기로 안영이, 장백기, 한석율이 있다. 장그래는 검정고시 출신 고졸에 취미도 특기도 없지만 신중함과 통찰력, 따뜻함을 지닌 장그래는 합리적이고 배려심 깊은 상사들을 만나 일을 배워가고,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입사 P·T 시험을 거쳐 계약직이지만 정식 사원증을 목에 건다. 중앙일보 바둑전문기자 박치문의 해설이 붙어 있다. 바둑에 문외한인 나는 전문가의 이런 해설을 그저 드라마의 분위기 잡는 정도 밖에 활용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