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단고기]가 증언하는 12한국의 광역은 유라시아 전역이였다
우리 국호는 대한민국이다. 줄여서 한국이다. 또는 코리아(바이칼 호수지역에 거주한 부리야트=부여족의 일부였던 코리=고리=고구려=고려. 유럽의 불가리아=부여족의 일족이 이동하여 건국한 국가)다. 한국은 [한단고기]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라이름으로 유라시아 전역으로 문명으로는 아메리카 지역에 이르는 광대한 문명를 자랑하는 12연방국가로 환인이 천제로 통치했던 나라를 의미한다. '한'과 '환'은 동일한 의미로 "환하다.하나다"의 의미로 환한 빛으로 만물을 하나로 비추는 태양에 비유된다 하겠다. 따라서 '한(환)인'은 태양처럼 만인에게 덕과 자비로 통치하는 '환한 사람'을 의미하는 존재로 종교사상으로 표현하면 성인의 모델이며, 마음이 맑고 밝고 환한 존재라 하겠다. 또한 '한(환)국'이라고 했을 때는 한인들이 사는 나라로 '하느님.하나님 나라'라는 의미라 하겠다. 또한, 크다.중심.하나.왕 등 20여가지를 의미하는 한(한국)은 간(중국)=칸(몽골)=안(슈메르)과 동일한 의미다.
즉, '한(환국)'이란 "마음이 맑고 밝고 환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고로 우리 민족은 이 '한국'이라는 국호를 오늘날까지 간직하며 끈질기게 살아 왔으며, '한국'이란 단순히 한반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즉 온누리를 의미하는 개념이라 하겠다. 그리고, 다시 그 찬란했던 고대의 환국시대를 부활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한반도 사람들의 마음부터 태양처럼 맑고 밝고 환한 존재들이 되야 한다. 내부적으로 사대매국주의를 청산하고 청정한 민족정기가 충만한 나라가 되야 하는 것이다. 남북이 통일되고 남북철로를 따라 유라시아와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으로 뻗어 나가 흩어져 사는 우리 한민족을 만나고 그들의 피속에 잠재된 환인을 깨우고 환국을 깨워야 한다. 교류해야 하고 협력해야 하는 이유다. 민족사를 유라시아 무대로 광범위하게 설정하고 바로 세워야 한다.
12한국을 조선(쥬신=숙신)이라고 했다. 그리고, 12환국이후 분열된 광활한 쥬신의 땅을 다시 회복한 인물이 고구려의 후예인 몽고리의 징기즈칸이다. [한단고기]에 들어 있는 안함로(安含老)의 삼성기전(三聖記全)을 보면 한국을 설명하면서 "우리 [桓]의 건국은 세상에서 가장 오랜 옛날인데 시베리아(斯白力)의 하늘에서 홀로 변화하여 신이 되신(獨化之神) 한님이 계시어 그분의 밝은 빛이 온 우주를 비추고 큰 교화로 만물을 낳았다.오랫동안 지극히 오묘한 기(氣)를 타고 노닐면서 쾌락하게 살았다... 파나류산(波奈留山) 밑에 한님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天海)의 동쪽 땅이다. 이 나라는 모두 아홉 족속[九桓], 12개의 나라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땅의 넓이는 남북이 5만리요 동서가 2만리가 된다.국의 9족은 황이(黃夷), 백이(白夷), 현이(玄夷), 적이(赤夷), 풍이(風夷, 藍夷), 양이(陽夷), 우이(于夷, 툉夷), 방이(方夷), 견이(쩼夷) 등이고, 12개국을 살펴보면 ①비리국(卑離國-비류국), ②양운국(養雲國), ③구막한국(寇莫汗國), ④구다천국(句茶川國-캄차카), ⑤일군국(一群國), ⑥우루국(虞婁國-Ur/필나국/Pella), ⑦객현한국(客賢汗國), ⑧구모액국(句牟額國), ⑨매구여국(賣句餘國), ⑩사납아국(斯納阿國), ⑪선비국(鮮裨國-通古斯/TUNGUS), ⑫수밀이국(須密爾國-슈메르/SUMER) 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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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12환국의 위치를 기록하고 있는 고대 중국의 지도-상세보기는 지도클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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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중국의 유명한 이십오사 중의 하나인 진서(晋書)는 "숙신(肅愼)씨의 나라가 바로 파나류국 즉 한국[桓國]을 가리키는 것이고, 숙신의 원음은 쥬신(조선-朝鮮)"임을 증언하고 있다. 과연 옛 역사서들에는 우리의 조상들이 살았던 영역들을 쥬신이라 표기하고 있으니, 예를 들어보면 태고의 역사를 열자마자 대뜸 朝鮮[쥬신]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옛 쥬신[古朝鮮]보다 훨씬 먼저 그 땅에 존재했던 肅愼[숙신-쥬신]이 바로 그것이다.계속하여 이들 노대국들의 뒤를 이어 같은 민족으로 같은 땅에서 흥기한 여진족도 자신들을 쥬신의 방언쯤으로 보이는 朱里眞[주-ㄹ진]으로 불렀으며, 불과 20세기 초반까지도 중국대륙을 호령했던 만주족도 자신들을 스스로 珠申(주신)족이라고 청태조실록(淸太祖實錄)에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쥬신[朝鮮]이라는 나라이름은 한문자가 생기기 훨씬전인 아득히 먼 옛날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진서(晋書)의 숙신열전[쥬신열전-肅愼列傳]에는 한국12연방을 숙신(肅愼)이라고 쓰고 있는데, 이는 소리 말을 뜻글인 한자로 쓰는 과정에서 쥬신이라는 소리를 나타낼 수 있는 수단으로 쥬신[朝鮮]과 숙신(肅愼)을 선택하여 쓰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슈메르인들의 일족인 이스라엘 민족이 내세우는 [선민]이라는 의미자체가 벌써 [the chosen people]이니 쥬신 사람들이 그 주인공들이며, 당시 쥬신의 광역이 슈메르를 중심으로 중동지역까지 미쳤음을 알 수 있으며, 성서와 기독교 사상를 포함하여 불교.유교.도교.이슬람교의 뿌리자체도 모두 12환국연방 쥬신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우리 한국민족을 옛부터 백의민족이라고 하는데, 몽골도 흰옷을 중시하고 아라비아인들도 흰옷을 중시하고, 세례요한의 공동체도 흰옷을 중시했는데, 이것은 모두 쥬신문화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유라시아 전역의 쥬신(12한국연방)을 복원한 고구려의 후예 징기즈칸의 몽고리(몽골)
[한단고기]기록에 따르면, "4대 오사구 단군은 동생 오사달을 몽고리의 칸으로 삼았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몽골은 8세기 무렵 북만주 흑룡강 상류인 에르군네(Ergüne) 강[河] 유역에서 몽올실위(蒙兀室韋)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하여 당나라·위구르·토번 등이 붕괴, 또는 와해되는 틈을 타서 지속적으로 서쪽으로 진출하여 11~12세기 무렵에는 오난(Onan) 강[河] 일대까지 진출한다. 오난강으로 진출한 몽골은 게레이드(Kereyid)·메르키드(Merekid)·타타르(Tartar)·나이만(Naiman) 등의 부족들과 서로 다투면서 성장하다가 1206년 칭기즈칸을 중심으로 역사상 전무후무한 세계제국을 건설하게 된다[박원길, 『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역사와 민속』(민속원 : 2001) 205쪽].
몽골의 기원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몽골은 동호(東胡)에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즉 몽골은 한나라 초기 흉노가 동호를 제압하자 살아남은 부족들이 동쪽으로 와서 그 가운데 어떤 무리는 선비가 되고 어떤 무리는 오환(烏桓)이 되고, 후에 이들은 다시 실위(室韋 : 몽골)·거란(契丹)이 되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남쪽에 있는 동호는 거란이 되었고 북쪽에 있는 동호는 몽골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당나라 때에 이르러 현재의 흑룡강 부근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몽골 또는 모골 또는 머골(蒙兀)이라는 이름이 이 때 나타났다는 것[屠寄,『蒙兀兒史記』1 世紀].몽골의 원류인 동호계는 주로 해(奚 : 현재의 내몽골 지역), 습(飁) 실위(室韋 : 현재의 몽골 지역) 등 이다(『新五代史』74 契丹 ; 『北史』94 奚).
1990년 대만에 거주하는 세계적인 몽골인 학자 한촐라 교수는 한국에 도착하자 "어머니의 나라에 왔습니다."라고 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한촐라 교수의 고향은 동명성왕(한나라 침략을 공격하여 물리치고 해부루 단군을 몰아낸 북부여 5대 단군 고두막=해모수와 친척인 고두막은 단군조선 47대 고열가 단군의 후손으로 소서노의 할아버지)의 원주지로 추정되는 홀룬보이르 초원(대싱안링 북동부)이라고 합니다.그런데 한촐라 교수의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한국이 몽골의 '어머니의 나라', 이 말은 아마도 몽골의 시조신인 알랑고아의 아버지가 고주몽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찍 과부가 된 알랑고아의 삶은 참으로 고달팠다. 특히 유목생활에서 남편이 없이 살아갈 때의 그 처절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 몽골화가 쳄벨도르즈의 그림, 마음속의 성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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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몽골 최고(最古)의 역사서인 『몽골비사』에 전해지는 성녀이자, 우리민족의 할머니가 마고가 추앙받듯이, 몽골의 시조로 추앙받는 알랑 고아의 이야기는 이렇다. 알랑 고아의 아버지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은 사냥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는 아름다운 여인 바르고진을 아리크 오손(Arig Usun:청결한 강이라는 뜻)에서 만나 알랑 고아를 낳는다. 그런데 코릴라르타이-메르겐에게는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코리족(Kohri)을 떠날 결심을 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모아 코릴라르(Khorilar)라는 씨족을 만들어 성스러운 산 보르칸으로 이동한다. 성스러운 보르칸산은 땅이 좋고 사냥감이 풍부한 곳이다.알랑 고아는 이후 새로운 땅 보르칸에서 알랑 고아는 결혼을 하고, 다섯 아들을 낳는다. 그중 세 아들은 남편이 없을 때, 몽골 설화에 의하면 ‘빛의 정령을 받아’ 낳게 된다. 그의 다섯 아들이 각각 몽골의 씨족을 이루면서 알랑 고아는 몽골인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 몽골 북서부 자우황아이막에 있는 만년설산 오트깅 텡게르를 자수로 표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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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몽골의 신화가 우리 민족의 신화와 너무 많이 닮아있다는 점이다. 코릴라르타이 메르겐이 떠나온 코리족(Kohri)은 주몽(朱蒙)이 코리(고리) 부족에서 일단의 지지 세력을 이끌고 남으로 이동하여 나라를 세운 뒤 국명을 코리의 한 나라임을 나타내기 위해 고(高:으뜸) 구려(Kohri)라고 부른 것과 거의 일치하는 내용이다. 또한 코릴라르타이 메르겐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이란 뜻이로, 한역하면 고주몽(高朱蒙)과 같은 이름이다. 몽골의 시조'알랑고아'는 '아리랑 고아'라고 할 수 있으며, 풀이하면 "하느님이 함께하는 떠돌이"정도로 유목민의 삶이 내재된 이름이라 할 수 있고, '보르칸산'은 '밝한 산'으로 유목생활을 하며 떠돌아 다니는 몽골인들의 마음의 성지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성지, 몽골인들이 보르칸산이라 부르는 지역은 헨티아이막 북부에 있다. 알랑 고아가 터를 잡은 곳, 칭기스칸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 그리고 그의 무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몽골 학자들은 성지의 의미를 훌륭한 조상들의 쉼터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의 보르칸산은 칭기스칸 가문의 조상신이 머무는 곳이란 해설도 그렇게 붙여진 것이다. 이 보르칸산에서 전체 부족 회의로써 유럽 정벌이나 금나라 정벌 등 부족의 운명과 관련한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코릴타(Khurilta)를 열었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천의식을 치렀다.
칭기즈칸의 어머니도 알랑고아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처절한 가난과 절망 속에서 자식을 키웠고 그 아들은 '세계의 주인'이 되었다.칭기즈칸을 정신적 지주로 삼는 몽골에게는 칭기즈칸의 어머니가 바로 알랑고아이며 민족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그 어머니의 나라가 한국일 수밖 없다. 한국은 바로 고주몽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알랑고아의 아버지가 고추모이던 아니던 중요한 건 몽골의 조상을 <소롱고=무지개의 나라=한반도>로 표현되는 한국인들로 인식하고 한국을 귀하게 생각하였고,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할 때도 고려만은 독립국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조상들이 몽골인에 해당하는 터키인들도, 칭기즈칸의 후예들이라고 자처하여 인도에 무굴제국을 세운 몽골인들도 자신들의 뿌리를 한국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인도시성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 코리아'라는 시어는 이러한 역사인식없이는 나올 수 없는 시인 것이다.
몽골에서는 한반도를 '솔롱고스', 즉 '무지개의 나라'라고 부른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즐겨 입는 무지개의 일곱 색깔 그 색동옷의 고향이 바로 몽골이다.솔롱고스, 한마디로 '꿈의 나라'다. 모질게 춥고 힘든 유목생활에서 끝없이 남으로 내려오고 싶은 몽골의 소망의 표현이 바로 '솔롱고스'가 아닐까? '몽골은 또 다른 한국'이고, '한국은 또 다른 몽골'이다.한국에서는 복숭아나무를 귀신을 쫓는 나무라고 하여 불에 태우지 않는다. 몽골은 불(부여=브리야트=불가리아)로써 모든 부정을 없애는데 복숭아나무를 절대로 불에 넣어 태우지 못하게 한다. 몽골에 있어서도 복숭아나무는 바로 귀신을 쫓는 나무다.터키 말이나 몽골어·한국어·일본어가 유사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가령 검다(black)라는 말에 대해서 이들 언어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터키어 ――――― 몽골어 ――――― 한국어 ――――― 일본어
카라(kara) 카르(kar) 검다 구로(くろ)
▲ 유라시아 대륙에 분포된 단군족의 아이콘 청동기 분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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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콩쥐팥쥐.나뭇꾼과 선녀.심청이 설화의 원형은 바로 브라이트(부여)족이 거주하는 지금의 바이칼 호수다. 이것은 바로 부여족의 설화라는 의미며, 백제 등 부여족의 남하로 전승되어진 것이다. 또한, 비파 청동검은 몽골에서도 발견된다. 청동기문명의 주역인 단군족이 맥족으로 고대 중국문헌에는 고구려와 부여의 직계조상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단군족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매개가 바로 몽골이다. 단군족은 몽골지역에서 남하하여 요하지역에서 웅(곰)족의 홍산문명과 결합하여 단군족의 문명을 발전시키고 신석기문명을 극복하는 청동기문명으로 단군조선을 건국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설화들은 그러한 단군족의 이동과 직접 관련되며, 몽골인들은 몽골에 남겨진 단군(단)족의 일족이라해야 맞다. 그리고 [한단고기]에는 이러한 "웅족으로 들어와 강성해진 단족"이 기록되어 있다. 이 대목에서 성서에서 동북방으로 사라진 단지파의 행방과 단족과의 관계성을 고고학적으로 고찰하는 것 또한 기독교사와 민족사연구에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이처럼 유라시아대륙은 문명과 인종의 이동과 교류공간이였다.
그리고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룸(Kharakorum)의 경우 중국의 문헌에는 각라화림(喀喇和林), 또는 생략하여 화림(和林) ·화령(和寧) 등으로 쓰인다. 유목민들이 가진 천손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인 태양(太陽, 日)을 보면 몽골어에서는 '나ㄹ'라고 한다. 이것은 우리말[날]과 완전히 같다. 유목민들이 동쪽을 향해 예를 올리는 것은 흉노·돌궐·거란 이래의 전통이다.
몽골은 전통적으로 태음력으로 1월1일을 차강사르(흰색의 달)라고 하여 최고의 명절로 친다. 설날을 차강사르라고 부르는 것은 백색이 길상·풍부·순결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설빔을 입고 밖으로 나가 동이 트기를 기다리고 동이 트면 먼저 해가 뜨는 방향으로 오른쪽 무릎을 꿇고 예를 올린다. 하늘에 예를 올릴 때 마유주나 우유 등을 하늘로 뿌리는데 이것을 차찰[배천(拜天 : 하늘에 절함)]이라고 한다. 이 같은 의식은 고대로부터 전승되어온 샤만 신앙의 유풍이다. 우리가 하는 해맞이 풍습과 다를 바 없다.몽골은 우리와 같이 백색 숭배의 풍습이 강하다(몽골이 훨씬 더 심하다). 몽골인은 종종 겔의 입구에 천마(天馬)를 그린 깃발을 내걸고 있는데 말은 행운을 상징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애마(愛馬)를 순장하는 풍습이 있다. 이것은 사후 말이 없으면 하늘나라로 갈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몽골인들은 백마(白馬)를 가장 귀한 것으로 생각한다.동몽골의 다리강가 지방에는 한국의 색동저고리와 같은 전통의상이 내려오고 있다. 이 일대는 고대의 코리(貊)족의 이동과 관계가 있고, 또 그들이 한국을 솔롱고스라고 부르는 것과 관련성이 깊다.겨울철에 몽골의 아이들은 비석치기나 '샤가'를 한다. 샤가는 우리의 윷놀이와 같은 놀이. 이러한 풍경은 30~40년 전에 한국의 겨울에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이었다. 물론 윷놀이는 아직도 즐기는 놀이이지만.
고려와 몽고리(몽골)의 관계
옆 지도그림은 세계적인 대제국 몽골제국의 직할령을 표시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습 회사의 그림을 알기 쉽게 우리말로 재구성한 그림이다.
아마 이 그림은 항상 보아오던 지도다. 무심코 지나쳐서 이 지도의 본질을 못 봤을 수도 있다. 이 지도를 보면 세계 모든 나라가 몽골의 깃발 아래에 있는데 유독 고려(高麗)만이 남아 있다. 세상은 오직 몽골과 고려만이 있는 듯하다.
이 문제에 관해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신 적이 있는가? 일본과 베트남·인디아는 정벌하기가 힘들어서 못했겠지만 몽골 제국의 수도(首都) 바로 옆에 있는 땅을 직할령(직속령)으로 두지 않고 자치국으로 두었으니 이상하지 않는가?
왜 바로 자기의 수도 코앞에 있는 나라를 세계를 제패했던 무력을 가진 원나라가 그대로 두었을까? 이제 그 의문을 한번 풀어 본다.
역사를 꼼꼼히 보면, 세계를 무력으로 짓밟은 원나라가 고려와의 관계 속에서는 체면을 구기는 일이 많았다. 몽골이 전쟁을 거쳐 정복한 나라를 부마국(駙馬國)으로 삼은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몽골의 통치자들은 사신을 죽이거나 자기들에게 대항한 군주에 대해서는 철저히 보복하는데 고려처럼 부마국으로 삼고 국체(國體)를 유지시켜준 것은 매우 특이한 경우다.
구체적으로 그 일부를 보면, 1224년 원나라는 저고여(扎古雅) 등을 고려에 사신으로 보냈는데 도중에 그만 살해되고 만다. 그 후 원나라 태종 3년(1231) 살리타이(薩里台, 또는 撒禮塔)에게 명하여 고려를 정벌하게 한다. 그러나 고려 고종이 동생을 보내어 강화를 요청하자 그대로 받아들인다(『元史』208 高麗傳). 같은 경우가 다른 지역에서 발생했을 때는 초토화(焦土化)시킨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원나라 황제의 사신을 죽인다는 것은 바로 그 나라가 그 시간 이후 잿더미가 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살됨을 의미하는데 말이다. 몽골은 항복하면 평화롭게 받아주지만 반항하거나 대항하면 철저히 보복하고 응징하는 특성을 가진 나라). 이 부분을 현재 한국의 고교 국사 교과서에서도 이례적으로 다루고 있다.
"고려는 오랜 항쟁 결과 원에 정복당했거나 속국이 되었던 다른 나라와는 달리 원의 부마국이 되었다. 고려 국왕은 원의 공주와 결혼하여 원 황제의 부마가 되었고, 왕실의 호칭과 격이 부마국에 걸 맞는 것으로 바뀌었다[국사편찬위원회 『국사』(교육인적자원부 : 2005) 88쪽]."
몽골이 고려에 대한 매우 강한 동질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원나라 조정은 역대 고려왕에게 공주를 출가시켜 원나라 황실과의 혈통적인 결합을 추구했던 것이다.뿐만 아니라 원나라 세조는 당시 만주쥬신(여진)들이 고려 땅을 침범하는 일이 있자 이를 엄금하도록 조치하고 관(官)으로 하여금 고려 국민을 보호하게 하고 파사부(婆娑府)에 명하여 군대를 둔전하게 하여 압록강 서부지역을 지키게 한다(乙未, 禁女直侵軼高麗國民, 其使臣往還, 官爲護送. 命婆娑府屯田軍移駐鴨綠江之西, 以防海道 :『元史』卷6 本紀第6 世祖).
[원사]에는 고려(高麗)에 대한 기록이 유난히 많다. 중국의 다른 어떤 사서보다도 고려에 대한 기록이 많다. 원나라는 마치 고려를 제외하고 다른 나라와는 국교(國交)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원사(元史)』에는 신년 새해부터 고려에 대한 기사가 줄줄이 엮어져 있다. 그리고 고려와 관련해서는 조유(詔諭 : 황제가 친히 타일러 말하다), 위무(慰撫 : 위로하여 달래다), 조사(詔賜 : 황제가 친히 내리다) 등의 말들이 따라 다닌다. 그리고 고려왕이 내조하면 원나라 황제는 우조답지(優詔答之 : 황제가 친히 넉넉하게 이에 보답함)한다.
원사』의 세조기(世祖紀)에서는 고려왕이 황제를 속인 죄를 범하여 이를 책망하지만 달력을 보내 주었고(詔責高麗欺慢之罪 又詔賜高麗王□曆), 고려왕이 황제의 조서에 대해 답이 없자 사신을 보내어 이를 나무라는(以高麗不答詔書, 詰其使者) 장면들이 나온다. 원나라의 세조는 고려의 군신들이 내조하자 "고려와 원나라는 군신의 관계라 할지라도 짐이 느끼는 기쁨은 아버지와 아들과 같다(高麗君臣, 感戴來朝, 義雖君臣, 而歡若父子)."라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세조는 중국과 친한 일본으로부터 고려를 떼어 내도록 하는데 만전을 기울린다. 마치 고려가 딴 곳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지를 시새움하는 듯하다. 전 세계인들의 공포의 대상이었던 세계의 주인 원나라의 모습으로 보기는 어려운 광경들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원나라 황제가 고려에 대해 얼마나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원나라 세조는 고려에 갔던 사신이 돌아와 고려왕이 아프다는 말을 듣자 직접 약을 보내기도 한다(高麗使還, 以王□病, 詔和藥賜之 : 『元史』卷6 本紀第6 世祖三). 뿐만 아니라 고려의 술에 대해서 이례적으로 세금을 면해주기도 한다(免高麗酒課 :『元史』卷6 本紀第6 世祖).
동아시아의 역사상 (고구려 이후) 원나라 때만큼 고려가 요동에서 활개를 친 예는 없었을 것이다. 심양왕(瀋陽王) 제도도 그 한 예가 될 수 있다. 지나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원사』를 보면 세상엔 몽골과 고려라는 단 두 나라만 존재하는 듯 하다. 마치 『일본서기(日本書紀)』가 부여(백제)사의 다른 한 편이라면 『원사(元史)』는 고려사의 다른 한편으로 볼 수 있을 정도다. 시시콜콜한 고려의 내외 이야기들이 대부분 수록되어 있다.몽골과 고려의 관계는 마치 남녀간의 사랑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몽골은 지속적으로 애정표현을 하려고 하고 고려는 피하는 관계라고나 할까? 몽골은 한족(漢族)과 가까운 것은 다 싫어하는데 유독 고려(高麗)만이 예외였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원사(元史)』에 보면 "천하를 가진 자 가운데 한(漢)나라·수(隋)나라·당나라·송나라 등이 강성하였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원나라에 미치지는 못한다. 한나라는 북적(北狄)에게 시달렸고 수나라는 동이(東夷)를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당나라는 서융(西戎)으로 인하여 환란을 겪었고 송나라의 걱정은 항상 서북(西北)에 있었다. 그러나 원나라는 삭막(朔漠)에서 일어나 서역을 병합하고 서하(西夏)를 평정하였다. 여진을 멸하고 고려를 신속(臣屬)시켰고 남송을 평정하여 천하가 마침내 하나가 되었다. … 고려는 동번(東藩)이 되어 신하의 예를 공손하게 취하니 이전에는 볼 수가 없었던 일이다(『元史』57 地理志)."그리고 1270년 고려의 원종이 원나라에 내조(來朝)했을 때, 원나라 황제는 "경(卿)은 내조를 늦게 했으니 제왕(諸王 : 칭기즈칸의 종친)들보다 반열(班列)이 낮게 되었다. 경은 이런 점을 이해해야 한다(『元史』7 世祖紀)."라고 한다. 즉 조금이라도 일찍 원나라에 내조(來朝)를 했다면 원나라 종친들보다도 더 높거나 같은 지위를 줄 수 있는데 안타깝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에서는 거의 천년 동안 몽골의 나쁜 점만 들추어내어 가르쳐 왔다. 몽골에 대해 공식적으로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보려고 하면 '야만족'과 같은 놈이라고 매도당해 왔다. 새끼 중국인들이 천년 이상을 한국에서 권력을 잡았다는 얘긴가? 한국의 새끼중국인들은 고려가 몽골의 속국(屬國)인 점만 강조한다. 이런 점을 천년에 이르는 동안 한 번도 비판 없이 지내왔다는 것이 절망스러운 일이다.한족(漢族)과 중국(中國)을 찬양하면 그것은 학문이고, 그 이외의 것을 제대로 보려면 모두 오랑캐로 매도하는. 그러니 쥬신(한국)의 역사가 수천 년 동안 감춰질 수 밖다. 그래서 한반도.일본.만주.유라시아.중국을 국경개념없이 한국의 광역으로, 한국의 역사공간으로 하나로 생각해야 핏줄이 생겨 역사의 피가 흐를 수 있다. 만주와 몽골까지는 말로 달리면 1주일이다. 고대.중세에는 거리는 그렇게 큰 장애가 아니다.
문제는 단절된 개념으로, 국경선 개념으로 인식하니 문제다. 몽골은 남북한이 한 가족이듯이 우리와 한 가족이다. 터키도 마찬가지다. 만나야 한다. 도움을 주고 받아야 한다. 역사전개과정에서 상처가 있었다면 손을 내밀어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통하여 껴 안야 한다. 그것을 가해자들이 못하니 이별하고 상처가 누적되어 손을 잡을 수도 안을 수도 도움을 주고 받기도 힘든 것이다. 한국의 광역과 무대는 한반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전역이며 온 누리다. 그렇다면 좁다란 마음의 그릇과 사고반경가지고 되겠는가! 한국인이라면 온누리를 나는 삼족오처럼 모두가 통 큰 사람들, 대인들이 되야 한다. 고대에는 한반도 사람들이 대인-성인-군자불사의 땅이라고 칭송받았다. 그것을 망가뜨린 사람들이 바로 사대매국세력들인 것이다.그래서 내부적으로 부정부패 사대매국청산인 이유다.
* 참고문헌:김운회 동양대 교수,[대쥬신을 찾아서]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고대 동아시아문명의 주역인 당당한 고구려의 상징이 태양까지 난다는 삼족오였다.초록지대에 사는 유목민들은 시각이 2내지는 7까지 나올만큼 멀리 본다고 한다.고구려의 후예인 징기즈칸의 몽고제국은 동서양문명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차원에서 유라시아대륙전역을 경영했다.
개인이나 국가나 민족또한 공동체와 정의와 양심을 우선하지 않는 자신들만의 우물안개구리적인 안목은 장기적으로 미래가 보장될수 없지만, 공동체와 정의와 양심을 우선하면서멀리 내다보는 안목은 장기적으로 미래가 보장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반도국가인 작은 로마가 강력한 시스템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지배했듯이,반도 국가인 한국이 그렇게 되지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단지 로마가 군사력과 노예제로 지배했다면, 우리민족은 모두를 살리는 홍익인간시스템으로 인류을 살리는 인류영도국이 되는 일이다.
이것을 가로막고 있는 건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외세의존 사대매국세력들과 정경유착과 관련한 부정부패비리세력들과 지역.학연패거리주의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길을 막고 있다면 지혜와 용맹으로 부수고 나가야야한다. 친일숭미사대 반도를 벗어나 남북공존. 유라시아 한민족 연방시대로!- 윤복현 -
칭기즈칸의 리더십의 비밀 10가지
① 몽골족을 동기부여 시킬만한 `웅대한 비전` ②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한 점 ③ 자신의 부하는 훌륭한 리더로 키워 낸 슈퍼 리더십 ④ 끊임없는 상무정신을 고취시킨 점 ⑤ 스피드를 중시한 전략의 구사 ⑥ 통합적 패러다임과 거시적 안목 ⑦ 모계중심의 성개방 의식 ⑧ 자신을 정점으로 하는 매우 효율적인 조직 구성 ⑨ 과학기술과 교역의 장려 ⑩ 유능한 참모의 기용
칭기즈칸은 지난 97년 4월 뉴욕타임즈에서 선정한 `세계를 움직인 가장 역사적인 인물` 중 첫 번째 자리로 뽑힌 바 있다.
첫번째 칭기즈칸의 리더십 중에 주목받을 점은 그의 `웅대한 비전`이다.
일찍이 과거에도 없었고 누구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가능하게 만든 대단한 비전이다. 그의 비전이 처음부터 컸던 것은 아니다. 17살의 어린 소년 테무진이 타타르족의 습격으로 아버지를 잃고 그의 부족은 모조리 흩어 졌으며 자신은 포로로 잡혀 끌려가는 신세에 처해졌다.
이때 그가 가진 목표는 `흩어진 부족을 되찾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 것` 이었다. `할 일이 있는 한 나는 죽을 수 없다` 라는 말과 같이 소설과도 같은 모험과 역정을 거쳐 마침내 그 소원을 이루게 되었는데 어린 테무진이 결론지은 것은 그의 부족들이 `공동의 목표`가 있으니 잘 뭉치더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 같은 공동의 목표는 소박하거나, 곧 이룩될 만한 작은 것에서는 별반 효과가 없었으며 원대야망한 것이라야 사람들이 큰 힘을 내더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오늘날 이야기하는 <비전>과 다를 바 없다.
칭기즈칸 리더십의 면면에는 한가지 공동목표가 달성되기가 무섭게 곧 다음의 새로운 공동목표를 만들어 쉬지 않고 달리는 자전거만이 서 있을 수 있다는 듯이 그의 부족을 이끌어 갔다. 그리고 그 비전은 나라를 만드는 것, 주변국가로부터의 위협을 없애는 것, 아예 중원을 경영하는 것, 나아가 천하를 통일하는 것, 그리고 그 천하는 중국 땅을 넘어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땅으로 계속 커져만 갔고 그 꿈들은 하나씩 하나씩 실현시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