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5618]퇴계(退溪)시 - 방임대수억령(訪林大樹億齡)외 1수
1553년(명종 8) 3월 이황이 임억령을 찾아와 서로 시를 주고받았다.
임억령이 먼저 칠언절구 6수를 짓고,
이황은 그의 시에서 차운하였다.
임억령이 먼저 '증경호퇴계(贈景浩退溪)'를 지었다.
운(韻)은 '아(峨)'와 '다(多)'였다.
증경호퇴계(贈景浩退溪) - 경호 퇴계에게 드림
春來江漢濤瀾猛(춘래강한도란맹) 장강 한수에 봄이 오니 물결 사납고
霜後終南氣象峨(상후종남기상아) 서리 내린 뒤 종남산의 기상도 높네
中有寂寥楊子宅(중유적료양자댁) 그 가운데 양자의 집 쓸쓸히 있으니
白頭黃葉閉門多(백두항엽폐문다) 흰머리 누런 잎 문닫은 날도 많다네
一瓢寂寂顔回樂(일표적적안회락) 한 그릇 밥에도 고요하니 안회의 낙
千仞巖巖孟氏峨(천인암암맹씨아) 천 길 우뚝 솟음은 맹자의 높음일세
疎懶每蒙今世笑(소나매몽금세소) 지금 세상 사람 게으른 나 비웃지만
詩書長對故人多(시서장대고인다) 시 서만 오래 대한 사람도 많았다네
'경호(景浩)'는 이황의 자다.
'강(江)'은 양쯔강(揚子江) 또는 장강(長江)을 가리킨다.
'한(漢)'은 양쯔강의 최대 지류인 한수(漢水)를 말한다.
'종남(終南)'은 종남산(終南山, 2,604m)으로 시안(西安) 남문에서
정남쪽으로 약 32 km 지점에 있다. '양자(楊子)'는
중국 전국시대 초기의 사상가인 양주(楊朱)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그는 극단적 위아(爲我)의 개인주의를 주장했다.
임억령의 '증경호퇴계(贈景浩退溪)'에 대해 이황은 이에 화답하는 시
'방임대수억령(訪林大樹億齡)'을 지었다.
이 시에서 이황은 임억령을 노자(老子) 같은 큰 은자(大隱)라고
칭송하고 있다.
방임대수억령(訪林大樹億齡)
- 임대수 억령을 방문하다(이황)
假架低簷淨花卉(가가저첨정화훼)
대충 얽은 낮은 처마집엔 풀꽃 깨끗하고
高山當面碧嵯峨(고산당면벽차아)
높은 산을 마주하니 푸르름 우뚝 솟았네
主人市隱同壺隱(주인시은동호은)
저자에 숨은 주인 별천지에 숨은 것 같아
休罷南歸恨未多(휴파남귀한미다)
파직되어 남쪽에 돌아와도 한 많지 않네
心欣吉善如蘭稪(심흔길선여란복)
마음은 선 좋아하니 난초 같이 향기롭고
氣湧姦兇似泰峨(기용간흉사태아)
간흉 미워하는 기개는 태산 같이 높으네
莫把衰齡看古史(막파쇠령간고사)
나이 많이 들어서는 고사를 읽지 마시라
衰齡看史轉傷多(쇠령간사전상다)
나이 먹어 역사를 보면 상심만 많아지리
癸丑三月(계축삼월) 1553년 3월
이 시에는
'謂罷長興未是爲恨(장흥군수에서 파면된 것을 유감스럽게
여기지 않음을 말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대수(大樹)'는 임억령의 자다.
'벽차아(碧嵯峨)'는 주자(朱子)의 '낙성사(落星寺)'라는 시
'極目靑冥茫, 回瞻碧嵯峨
(눈길 다하여 아득한 푸른 하늘 바라보고,
돌아보니 푸른 산 우뚝 솟았구나.)' 구절에 나오는 말이다.
'시은동호은(市隱同壺隱)'은 후한(後漢) 비장방(費長房)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문선(文選)'에 실린 서진(西晉) 왕강거(王康琚)의
'반초은시(反招隱詩)'에도
'小隱隱陵藪, 大隱隱朝市. 伯夷竄首陽, 老聃伏柱史
(작은 은자는 큰 언덕과 덤불 속에 숨고,
큰 은자는 조정과 저자에 숨는다네.
백이는 수양산에 숨었고, 노자는 장서관으로 엎드려 있었다네.)'
라는 구절이 있다.
이황의 또 다른 화답시
'대수견화전운부화답(大樹見和前韻復和答)'도 있다.
두 사람이 시로 나누는 대화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이었다.
대수견화전운부화답(大樹見和前韻復和答)
-대수의 앞 시에서 차운하여 화답하다(이황)
舊營詩壘非雄壯(구영시루비웅장)
옛날 시단 경영할 땐 그리 웅장하지 않았는데
新築愁城頓嶪峨(신축수성돈업아)
새로이 쌓은 근심의 성은 갑자기 우뚝 솟았네
欲作男兒須廣業(욕작남아수광업)
사나이 되려 하면 반드시 학업 넓혀야 하는데
少年虛過恨多多(소년허과한다다)
젊은 시절 허송세월로 보냈으니 한 많고 많네
'시루(詩壘)'는 시단(詩壇)과 같은 뜻이다.
'수성(愁城)'은 이황의 시
'原州憑虛樓有懷州敎金質夫次樓韻留贈
(원주 빙허루에서 교관 김질부를 생각하며,
현판시의 각운에 맞춰 지은 시를 남겨 보냄)'에
'頭因別久欲添雪, 愁爲秋深更築城
(머리는 이별한 지 오래되었기에 눈을 더하려 하고,
근심은 가을이 깊어지기에 다시 성을 쌓으려 하네.)'란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의 주석에 북주(北周) 유신(庾信)의
'수성부(愁城賦)'가 인용되어 있다.
'업아(嶪峩)'는 산 등이 높은 모양을 나타내는 의성어다.
당(唐)나라 한유(韓愈)의 '원화성덕시(元和聖德詩)'에
'瀆鬼濛鴻, 嶽祇嶪峩(독귀는 넓고 크며, 악기는 높네)'라 하였고,
주자는 '山高貌(산이 높은 모양)'라고 하였다.
독귀는 수신(水神), 악기는 산신(山神)이다.
'남아수광업(男兒須廣業)'은 당나라 두보(杜甫)의
'백학사모옥(柏學士茅屋)'이란 시에
'富貴必從勤苦得, 男兒須讀五車書
(부귀는 반드시 부지런히 힘쓰는 데서 얻어지고,
남자라면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하네.)'
라는 구절이 있다.
학업을 넓히려면 적어도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함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