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tv에 대한항공 cf가 많이 나오는데 전에는 생각못했떤 낯설고 특이한곳을 광고하고 있습니다
고풍스런 도시에서 늘씬한 미인들이 지나가자 '아가씨 이뻐요'라는 러시아말을 하며 환호하는 한국젊은이들을 보여주면서(만약 한국에서 이러면 철컹철컹ㅎ) 한번 가보라고하는곳, 바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입니다
제정 러시아때의 수도이며 현재도 제2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오랜 역사만큼 고풍스런 유물들과 미인들도 많기로 소문났는데
의외로 2차대전때 이곳에서 도시를 포위한 독일군과 3년에 걸쳐 아주 격렬하고 처절한 방어전을 펼친것으로 유명합니다
도시민 300만명이상이 고립되 100만이 굶어죽어가면서도 전시민이 총을 들고 대항했으며 공장에선 포탄을 만들어냈다는...
너무나 신화적인 역사라 지금도 에너미엣더게이트등 여러 전쟁영화에서 다뤄지기도 하는데 알기쉽고 재밌게 정리한 글이 있어서 펌해봅니다
[꼬마니체님글]
레닌그라드...
볼세비키혁명전의 이름은 상트페테르부르크(세인트피터즈버그)이자 제정 러시아의 수도였던 곳
그리고 공산주의가 붕괴된 지금은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불리우는 도시입니다
제정 러시아때부터 정치, 문화,경제의 중심지였던 곳이며
러시아 차르의 궁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인류의 문화재가 남아있던 곳이죠
그래서 모스크바 천도 이후에도 320만 가량의 인구를 가진 소련에서 2번째로 큰 대도시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 부터 약 70년 전에 이 도시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1941년 6월 22일 동부전선의 전 독일군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라는 암호문을 청취하고
그 암호문이 의미하는 작전. 바로 대소련침공작전인 "바르바로사"작전을 전격적으로 개시합니다.
독일군의 바르바로사 작전 개요도
위의 지도에서 노르드(Nord)로 표시된 독일 북부집단군의 목표는 바로 지도의 가장 상단에 있는 "레닌그라드"였습니다.
그리고 남부에서 밀고 올라가는 독일군 뿐아니라 북방에서도
소련과의 "겨울전쟁"에서 패하고 카렐리아 지방을 빼앗긴 원한이 있던 핀란드가 독일을 도와 남진해오는 상황이었죠
독일군은 호환 마마보다 위험하다능...
독일군과 핀란드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레닌그라드 시는 시민들을 동원해 도시를 요새화 합니다.
8월 30일경 독일군이 레닌그라드 외곽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목재장애물 190km, 철조망 635km, 대전차호 700km, 토치카 5000개소, 참호 25000km에 달할 만큼
말그대로 요새화 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독일군이 예상이상으로 너무 빨리 쳐들어 온것이었습니다.
시민들은 미처 소개할 틈이 없었고 그 결과 320여만에 달하는 시민들은 꼼짝없이 도시에 갇혀버렸죠..
여기서 가정을 하나 해보죠
갑작스럽게 북한이 쳐들어와 서울을 포위했다고 생각해봅시다
가스,전기,식량은 물론이고 외부와의 모든 물류가 차단돼었습니다.
과연 서울은 어떻게 될까요? 얼마나 버틸수 있을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절망적인 상황이 될겁니다...
어떤 물자건간에 직접적으로 생산이 가능한 물자는 거의 없을테니까요
인구가 많으니 아마 식량이 가장 먼저 떨어질것 같군요
레닌그라드도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독일군은 8월 30일까지 레닌그라드로 통하는 모든 도로망과 철도망을 차단하고
9월 4일부터 포병대를 동원하여 시가지에 대한 포격을 개시,
8일에는 레닌그라드 포위망을 완성하고 대규모 공습을 시작합니다.
첫날의 공습만으로도 180여개소에 화재가 발생하여 도시는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폭격으로 불바다가된 레닌그라드
하지만 독일군도 너무나 잘 요새화된 레닌그라드를 치고 들어가기에는 너무 큰 피해가 예상되어
직접적인 대규모 공격은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보고를 받은 히틀러는 10월 7일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립니다
"절대 항복을 받아주지 말것"
독일군은 명령에 의거하여 직접적인 공격을 자제하면서 포위망을 강화하여 "레닌그라드 말려죽이기"에 돌입합니다
이로서 900여일에 걸친 레닌그라드 공성전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9월 2일자로 시민에 대한 배급량은 육체노동자 600그램 노동자 400그램 그밖의 시민과 아이들 300그램이었지만
계속된 공습으로 식량고가 불타는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갑니다
곡물등과 육류는 30여일분밖에 남지 않았고 유재품은 45일분가량, 과자등은 60일가량의 비축량이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
결국 9월 12일 배급량은 육체노동자 500그램, 노동자와 아이 300그램, 그외 시민 250그램으로 줄어듭니다
소련의 발트함대는 도시에 접해있는 라도가 호수를 통해 도시에 보급품을 전달하려 애썻으나
제공권을 장악한 독일공군의 공습에 수송선들은 허무하게 격침되어갈 뿐이었습니다..
9월 말이 되자 도시 안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석유와 석탄은 동이 났고 이제 남은 연료수단은 나무밖에 없었지만 그나마 벨만한 장비도 뭣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10월이 되자 식량도 점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밀가루가 떨어지자 소맥분을 먹기 시작했고 소맥분이 떨어지자 말먹이용으로 쓰이던 귀리를 먹기 시작했으며
귀리가 떨어져지 격침된 수송선에서 썩은 밀을 인양해 먹고 그나마 없어지자
톱밥과 목화씨, 셀롤루스 까지 먹기 시작했습니다
11월에는 전력부족으로 방공부대와 군사령부,지역위원회를 제외한 모든 전력공급이 중단됩니다.
이 와중에도 독일군의 포격과 폭격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폭격으로 생긴 크레이터
그리고....끔찍한 겨울이 돌아왔습니다...
연료도 전기도 식량도 없는 상황에 냉혹한 북구의 겨울이 다가온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식량부족으로 이미 아사자가 나오고 있던 상황에서 겨울은 잔인한 학살자였고
도시외곽에는 굶어죽고 얼어죽은 시민들의 사체가 산더미처럼 쌓여갔습니다
식량부족은 이미 끔찍할 정도라 한 역사학자는 기록하기를
"새 모이에서 카나리아까지 모든 것을 먹었다.
벽지를 벗겨내서 거기에 발라져 있는 감자로 만든 벽지 풀을 먹었다.
책제본에서도 풀을 찾아 햝아먹었다. 풀을 그대로 마셔버리기도 했다.
가죽 벨트와 가죽 가방을 끓여서 먹을 수 있는 젤리를 만들었다. 풀과 잡초를 뽑아서 절였다.
바셀린, 립스틱, 향신료와 약, 모피코트, 가죽모자를 먹었다.
어떤 이들은 화장용 분으로 팬케이크를 만들어 먹었고,
독일군의 소이탄에 맞아 무너진 설탕 창고 밑에서 파낸 더러운 설탕덩어리를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그외에도 역사가들은 당시 사람들이 돼지 가죽으로만 22가지 요리를 만들었다고 기록했으며,
군대식당 메뉴 기록을 보면 고사리잎 수프, 쐐기풀 퓨레, 고체 기름으로 만든 팬케이크도 있었습니다.
비타민 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소나무 잎에서 비타민 C를 추출하고,
담배공장의 지붕 밑층과 환기 갱도를 쓸어서 비타민 B를 함유하고 있다는 담배진을 모아서 먹었기도 했습니다.
또한 종자를 모아둔 식물학연구소에서의 어느 연구원은 20만종에 가까운 식용식물 모종을 지키다 굶어죽기까지 했죠
12월이 다가오자 배급량은 비누만한 크기에 불과한 125그램까지 떨어졌으며
도시안에서 고양이나 개는 물론이고 쥐마저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 나이든 미술가는 자신의 애완용 고양이를 목졸라 죽여서 먹었다고 했으며
얼마 후 그는 목매어 자살하려했으나 줄이 끊어져 바닥으로 떨어졌고 결국 다리가 부러져서 얼어죽었다고 합니다.
결국 굶주림에 못이긴 시민들은 죽은이의 살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식인행위는 적발시 총살이 원칙이었지만 겉으로는 쉬쉬하면서 행해졌습니다.
시민들의 정신은 황폐화되어 미쳐가기 시작했고
굶주림으로 미쳐버린 한 어머니가 제정신을 잃고 딸을 죽인후 토막내고
고기를 갈아서 고기 파이를 만든 사건도 있었다고 당시의 한 생존자는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어느 생존자는 남편이 아내를 먹은 경우들, 아내가 남편을 잡아먹은 경우들,
부모가 아이들은 잡아먹은 경우들에 대해 알고 있다고 주장했고
그가 살고 있는 건물에서도 경비가 아내를 죽여서 그녀의 머리를 잘라 뜨거운 스토프에 집어넣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또한 다른이의 배급카드를 빼앗기 위한 살인도 심심찮게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길바닥에 뒹구는 시체들이 일상이 된 걸까..
오래전부터 레닌그라드 중심부에 있던 시장인 헤이마켓은 이제 헝그리 마켓으로 불리워졌으며
이곳에서 인육을 판다는 소문은 꽤나 널리 알려진 소문이었습니다.
피스카레프스키, 세라피모프등의 큰 묘지에 죽은 시민들을 묻기위해
공병들이 동원되어 폭약을 폭파시켜 구덩이를 파곤 했는데 공병들이 시체들을 구덩이속으로 밀어넣는중
훼손된 시체들을 목격했다는 목격담도 꽤 남아있을 정도였죠
하지만 헤이마켓에서 어떻게든 육류를 손에 넣은 시민들은 그게 개나 고양이 고기라고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사람고기일수도 있다는걸 인정하면 최소한 남은 마지막 인간성마저도 무너질까봐 두려웠던 걸까요..
그 당시의 참상을 어느 시인은 이렇게 시로 남겼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겪었네.
러시아 말에는
그 광기어린 전쟁의 겨울을 표현할 단어가 없다네.
에르미타주 궁전이 폭격 아래 무너졌을 때,
집들이 서리로 덮히고, 관이 얼어서 터졌을 때,
100그램의 배급을 타러 갔다네. 네브스키(레닌그라드의 거리)의 시체들을 타넘으며.
그리고 우리는 사람을 먹는 것도 배웠다네.
우리는 모든 것을 겪었네.
-대니얼 안드레예프
해리슨 샐리즈버리의 『포위된 레닌그라드의 900일』중에서
겨울을 날 연료도 없어서 사람들은 도서관의 장서를 가져다 불을 때거나
문화제와 미술품, 골동품가구들까지 모두 때서 겨울을 버텨야만 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얼어죽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독일공군의 폭격에 대응해 대공사격중인 레닌그라드 시
하지만 1941년 11월 20일 기적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바로 얼어붙은 라도가 호수를 통해 보급품이 조금씩이나마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그 보급로를 바로 "생명의 길" 이라 불렀습니다.
이 길을 통해 보급품이 들어오고 도시의 시민 52만명가량과 부상병 3만5천이 도시밖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하며
이 길은 얼음이 녹은 1942년 4월 24일까지 152일동안 시민들의 생명을 유지시키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길은 위험도 역시 엄청나게 높아서 독일군의 포격이나 공습에 많은 이들이 탈출도중 희생되었습니다.
특히 보급품을 운송하던 트럭운전사들에게는 "죽음의 길"이라고 불릴 정도로 위험한 루트였습니다.
1942년 여름, 라도가 호수의 물밑으로 석유파이프라인이 개설됩니다.
시민들은 이를 "생명의 동맥"으로 불렀으며 도시는 겨우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1942년 겨울이 되자 다시 "생명의 길"은 열렸고
1943년 1월 드디어 소련군의 반격으로 포위망의 한 축이 탈환되어 본국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물론 4면포위에서 3면포위로 바뀐것 뿐이라 여전히 포격과 폭격은 계속 되었지만 말이죠
레닌그라드의 해방
그리고 1944년 2월 소련군의 동계공세로 드디어 도시는 포위상태에서 900일만에 해방됩니다
레닌그라드의 저항은 전쟁초반 연전연패하고 있던 연합국들에게 승리의 신념을 주는 상징이었으며
스탈린은 레닌그라드에 "영웅도시"칭호를 내렸습니다.
전후 소련측의 조사결과 레닌그라드에서의 시민 희생자가 67만명이라고 발표 했습니다
하지만 연구결과 70~150만의 희생자가 났을거라는게 학자들의 주장이며 통설로는 111만명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끔찍한 경험은 레닌그라드 시민들에게 트라우마를 주기도 했지만 자부심을 주기도 했습니다
"트로이도 함락되고 로마도 함락되었지만 레닌그라드는 함락되지 않았다"
라고 말이죠
그래서 지금도 당시의 방공호들을 개수하여 대독승전기념일날 별도의 기념식을 가지곤 합니다.
미소짓는 레닌그라드의 한 여군 이 병사는 이 지옥도에서 살아 남았을까....
http://cafe.daum.net/hanryulove/IwYk/432191?q=%B7%B9%B4%D1%B1%D7%B6%F3%B5%E5&re=1
|
첫댓글 이와 관련한 영화와 게임이 몇 개 있죠...
콜오브 듀티2가 생각나네요. 총이없어 주인공은 실탄만 받아들고 전장으로 가고 후에 죽은 사람에게서 총을 얻어 싸우죠. 2차대전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국가가 소련이라고 하던데 맞나 모르겠네요.
@즐기기(천안) 1, 2, 5요... 단골소재였죠. ㅋㅋ
@즐기기(천안) 콜옵듀티.. 모신나강 들고 날아다녔던 기억이..
세계대전 역사는 관심없었는데 콜오브듀티 라는 게임 때문에 참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Good
또하나의 지식을 얻고 가네요.. 감사합니다.
푸틴이 저렇게 간신히 이 세상에 나왔군요
그 푸틴이 저 푸틴인가요? 무지해서...ㅎ
무비 폴더에 스탈린그라드 2013작 러시아꺼 받아논거 있는데 슬슬 봐야겠따,,,
토마스 크레취만도 독일군배역으로 나오던데,,,
또 ,,,미라 소르비노 나오는 2009년작 레닌그라드도 있더군요,,,
끔찍하네요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겠습니다
근데 공교롭게도 까딱하면 푸틴때문에 세계대전 일어날수도..
여름날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제가 가본 어떤 나라의 도시보다 더 아름다운 곳인데...혁명에, 전쟁까지...아픔이 많은 곳이었네요... 만화에서 발료쟈라는 인물이 나왔을 때 설마했는데, 역시 푸틴 이야기...(발료자는 블라디미르의 애칭이죠. ex) 고르바쵸프는 고르비, 알렉산더/알렉산드라는 사샤, 예꺄쩨리나의 까쨔처럼요).. 부디 푸틴이 사고안치고 조용히 역사의 뒤로 퇴장하길....
푸틴에 대해 부정적이시군요. 미국의 제국주의를 견제하는 탁월한 인물로 볼 수도 있는데...
..가보고픈 도시중 하나..하지만 정쟁의 끔찍한 슬픔의 역사또한 역시 알기에.. 가슴 아픈 도시..우리도 마찬가지고
와- 상기하자 625입니다
에너미 엣 더 게이트라는 영화에서 보면 독일중무장군에 맞서 싸운는 러시아 병사들은 두명당 1정의 소총으로 싸우더군요...그당시 전쟁을 잘 표현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