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거실과 문익환 목사 부모가 지냈던 방
12월 26일, 사회선교학교 마지막 시간에는 '가장 늦은 통일을 가장 좋은 통일로'를 주제로 통일의 집을 찾아갔어요. 이곳은 늦봄 문익환 목사가 실제로 사셨던 집이기도 합니다. 문익환 목사의 자녀 문영금 선생님이 대신 이야기 나눠주셨어요.
먼저 문익환 목사의 굵직한 삶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일제시대에 새로운 희망을 일구기 위해 명동마을로 집단이주했던 사람들 중에는 문익환의 가족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민족운동가를 양성하는 학교에 같이 다니던 동무 윤동주의 죽음으로 문익환은 친구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제 목소리는 제 목소리가 아닙니다.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동주의 목소리입니다. 이 나라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서 애쓰다가 죽어간 장준하의 목소리입니다. 전태일의 목소리입니다. (...) 이제 문익환은 죽었고 제 속에서 이 사람들이 살아 있습니다."
왼쪽부터 문익환 목사 부부가 지냈던 안방과 자녀들이 지냈던 방. 문익환 목사가 쓰신 편지가 참 많아요.
늦봄은 "나는 모든 게 늦었다. 시도 늦게 쓰고 운동도 늦게 했다"는 뜻입니다. 윤동주를 비롯한 동무들보다 늦게 시작했다는 빚진 마음이 문익환 목사를 더욱 간절하게 만든 것 같았습니다. 성경번역을 마쳐야 했기 때문에 그 전에는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하셨는데요. 마지막쯤에 구속되는 바람에 끝까지 마무리하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우리가 아는 공동번역 성경이 완성됩니다.
문익환 목사는 다양한 사회선교 현장에서 가장 먼저, 많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KSCF에서 오늘과 같이 특강을 열 때도 강사로 자주 오셔서 기독청년들이 나아갈 길을 몸소 보여주셨다고 합니다. 문익환 목사는 직접 북한에 방문할 정도로 통일운동에 앞장선 분이기도 하지요.
문익환 목사는 준비 없이 해방을 맞이해 분단됐던 역사를 기억하며 마지막 통일은 힘을 합쳐 평화롭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가장 늦은 통일을 가장 좋은 통일로 만들려는 고민이었어요. 한국전쟁 후 50년이 흐른 1995년이 통일을 논의하는 '적기'라고 생각한 문익환 목사는 마침 북한의 초청으로 평양에 방문해 김일성을 만납니다. 그는 김일성을 만났을 때 점잖게 악수만 하지 않고 꽉 끌어안았어요. 생명으로 만난 것이지요.
방북해서 김일성을 만나 4.2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돌아오는 길에 구속되는 문익환 목사
여러 사람의 노력과 염원으로 남한의 문익환과 북한의 김일성이 만났던 일은, 통일이 몇몇 정치인의 말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문익환 목사는 그렇게 김일성과 4.2 공동성명을 발표했고 이는 6.15 공동선언의 초석이 됩니다. 그러나 이번 방북사건으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구속된 문 목사는 이외에도 민주구국선언, 서울의 봄 등의 사건으로 10년 간 6번의 감옥생활을 합니다.
문익환 목사는 나와 남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판단만 하는 흑백논리를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화합하고 평화를 이루려면 흑백논리부터 사라져야 한다고 보신 것이지요. 그러면서 노사관계, 약자와의 관계, 친구관계 안에서 서로 인정하는 마음가짐으로 같이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통일운동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상의 관계에서도 서로 싸우는데 나중에 통일해서 합쳤을 때 잘 지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실패한 역사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교과서는 동학농민혁명과 한국전쟁을 실패로 여기지만 미완의 역사일 뿐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것들을 하나씩 해결하는 모습이 역사를 사는 삶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북한이 우릴 미워하고 우리가 북한을 미워하는 모습.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않은데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여기는 분단 트라우마가 우리 안에 짙게 깔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제 때도, 분단 때도 누군가 역사는 바뀌지 않는다며 관심 거둘 때 목숨 걸고 투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통일에 회의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기억하며 작은 틈을 넓혀가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일상에서의 작은 통일운동부터 해야겠습니다. "통일은 다 됐어!"
이렇게 4번의 마지막 사회선교학교가 잘 끝났네요. 선교의 삶 꿈꾸며 특강에 찾아온 벗들과 귀한 배움으로 마음 모으니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