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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주의, 무엇이 문제이며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박재순 씨알사상연구소장 1. 인류 문명사: 농업문화, 국가문명, 고등종교, 민주공화국 1만~1만 5천 년 전쯤 인류는 농경생활을 시작하였다. 농경생활을 하면서 인류는 먹고 남는 식량을 창고에 쌓아둘 수 있었고, 교역이 활발해지고 직업이 분화하면서 긴밀하고 복잡한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다. 7~8천 년 전쯤 작은 도시성읍국가들이 생겨났다. 군대를 거느린 귀족들이 성을 쌓고 주위의 농민들을 보호하면서 억압하고 수탈하는 지배체제를 형성하였다. 5천 년 전쯤 도시국가들을 통합한 거대한 지배체제인 국가문명이 형성되었다. 문명연구자 토인비에 따르면 국가문명과 함께 군대, 성직계급, 창녀제도가 생겨났다. 국가가 강성할수록 국민에 대한 억압과 수탈은 강화되고 다른 국가들과의 전쟁은 격렬해졌다. 사회는 복잡해지고 교역은 발달하여 물자는 풍부해졌는데 국가는 군사적 제국주의로 치달았다. 모든 제국주의는 자멸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었다. 2,500년 전쯤 절정에 이른 국가문명의 모순과 혼란이 깊어졌을 때, 동서양에서 동시에 기축시대의 고등종교와 철학이 생겨났다. 공자, 석가, 소크라테스, 예레미야(제2이사야)의 철학과 종교는 국가문명의 모순과 혼란을 극복하고 치유하기 위하여 생겨난 것이지만 그 시대의 한계와 제약을 안고 있다. 종교개혁, 정치혁명,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시작된 근현대에서 비로소 국민주권과 마을자치를 지향하는 민주공화국과 세계평화의 이념이 확립되었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과 주체로서 자유와 평등, 자치와 협동의 민주공화국을 이루려면 개별적 국민의 주체적인 ‘나’, 전체가 하나로 통합된 공동체, 물질·생명·정신의 존재와 가치에 대한 종합적 철학이 확립되어야 한다. 기축시대의 종교와 철학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민주공화의 이념과 정신을 구현하는 국민생활철학을 형성하고 생활화해야 한다. 2. 국가문명의 문제와 국가주의 극복 5천 년 전쯤 형성된 국가문명은 개인의 정신과 인격을 단련시켰고 사회의 조직과 체계, 법과 질서를 발전시켰으며 과학과 산업 기술을 발달시켰고 고등종교와 철학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근현대에 이르러 국민주권을 바탕으로 민주공화국의 이념과 체제가 나오기 전까지 국가는 봉건 왕조 국가와 제국주의 국가, 독재국가의 형태로 존속했다. 이러한 국가들은 국민 위에 군림하며, 국민을 노동력과 군인으로 동원하고 이용하는 억압적인 지배체제였다. 보통 국가들은 안으로 국민을 지배하고 통제하였고 밖으로 다른 민족국가들을 지배하고 정복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전쟁과 폭력을 추구하였다. 오늘날 인간은 국가권력의 지배와 통제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살아갈 만큼 성숙해졌으며 인류는 하나의 세계로 연결되고 통합되었다. 국민을 지배하고 통제하며 다른 국가들과 전쟁과 폭력을 일삼는 국가주의 국가들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고, 용납해서도 안 되는 시대를 맞이하였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민주국가들은 헌법에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고 주권자임을 선언하고 상생과 공존의 평화 이념을 제시하였다.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그리고 상생공존하는 인류의 평화로운 삶을 위하여 국민이 나라의 주인과 주체가 되는 민주공화의 이념을 실현해야 한다. 국가주의 체제를 극복·청산하고 민주공화의 나라를 이루는데 가장 큰 장애는 무엇일까? 한국처럼 삼일독립혁명, 4·19혁명, 촛불혁명을 일으키는 민주화의 장엄한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 국가주의 체제와 관행을 극복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 까닭은 네 가지다. 첫째 기업과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주도하는 산업기술사회가 인간과 사회에 무한경쟁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돈과 좋은 직업을 차지하기 위한 무한경쟁을 위해 입시 경쟁 교육체제가 확립되었다. 무한경쟁사회체제와 입시경쟁교육이 국민을 국가주의체제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 둘째 아직도 많은 국민이 국가주의를 정당화하고 국가주의에 예속시키는 낡은 사상과 체제에 매여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류의 정신과 삶을 지배하고 이끄는 사상과 철학은 모두 국가주의 시대에 형성된 것들이다. 낡은 사상과 철학을 오늘의 관점에서 민주공화의 이념에 비추어 바르게 평가하고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민주공화의 나라를 이룰 수 없다. 셋째 돈과 기계에 예속된 현대인들이 탐욕과 혐오 감정에 휘둘려 진영논리와 당파싸움에 빠졌기 때문이다. 물질론, 기계론, 관념론에 매몰되어 지성과 영성이 약해지고 강인한 생명력과 정신력을 잃은 현대인들은 진영논리와 당파싸움에 빠져 약육강식과 생존투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진영논리와 당파싸움에 휩쓸린 대중은 독재자들의 선동에 이끌리기 마련이다. 넷째 서양의 민주주의는 권리를 쟁취하는 역사의 과정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래서 권리(rights)가 곧 법(rights)이고 정의(righteousness)였다. 권리 다툼을 일삼는 민주주의는 불안정하고 허약하다. 권리와 법만을 내세운 민주주의로는 전쟁과 폭력을 일삼고 진영논리와 당파주의를 조장하며 무한경쟁과 생존투쟁으로 내모는 국가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법과 권리 이전의 생명으로 초대하는 기쁜 소식이다. 인생과 역사, 사회와 국가의 주인과 주체로 살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생의 기쁨과 사랑을 누리며 이김과 짐, 삶과 죽음을 넘어 기쁘게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들만이 국가주의를 극복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자치와 협동의 민주공화국을 이루고 정의와 평화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3. 한민족의 생명체험과 낡은 전통사상의 극복 오늘 인류는 국가주의시대의 제약과 한계를 안고 있는 낡은 전통사상에 매여 있다. 그리고 국가주의 문명을 주도한 인도 유럽어족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영향력이 인류사회를 확고하게 이끌고 있다. 인류가 국가주의를 극복하고 청산하려면 국가주의를 온존시키는 낡은 전통사상을 극복청산하고 인도 유럽어족이 주도한 국가주의 문명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행히 한민족은 국가문명이 형성되기 전에 국가문명을 극복하고 청산할 수 있는 하늘체험과 생명체험을 하였으며 고결한 건국이념을 확립하고 전승하였다. 또한 히브리 기독교 전통은 국가주의 문명의 억압과 수탈 속에서 고난을 당하며, 국가주의에 대한 강렬한 저항과 비판의 정신을 간직하고 국가주의문명을 극복청산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념과 열망을 전해주었다. 하늘을 우러른 한민족의 생명체험 한민족의 건국설화에서는 하늘을 열고 나라를 세웠다는데 인도 유럽어족인 그리스와 로마의 건국설화들에서는 하늘(우라노스)을 전복하고 거세하고 죽인 다음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이런 차이는 두 민족의 역사·문화적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민족은 5~10만 년 전쯤부터 국가문명을 형성한 5천 년 전까지 아프리카에서 해뜨는 동쪽을 향해 유라시아 대륙 끝, 한반도와 만주까지 멀고 험한 편력을 하면서 특별한 생명체험을 하였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보면서 아름답고 풍성한 삶을 위해 길고 오랜 여행을 하면서 하늘을 우러르는 높은 뜻과 고결한 이념을 지니게 되었고 강인한 생명력과 생명사랑을 체득하였다. 한반도와 만주에서 해뜨는 아침의 나라(아사달, 朝鮮)를 이룬 한민족은 하늘의 높은 뜻과 이념을 가지고 나라를 세웠다. 한민족은 하늘을 열고 나라를 세운 하늘의 자손(天孫)이라는 자각을 지니게 되었다. 그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생명을 사랑하는 나라를 이루려 했다. 강인한 생명력과 생명사랑을 체화한 한민족에 대하여 중국의 고서 산해경(山海經)에서도 한국인이 ‘양보하기를 좋아하고 다투지 않으며’(好讓不爭), ‘평소에 예의를 지키고 겸양을 좋아하며, 말할 때에는 곡진하게 사리를 따진다’(好禮讓委蛇論理)고 하였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에서는 우리나라를 가리켜 ‘어질고 살리기를 좋아하는 군자의 나라’라고 하였고, ‘동방삭 신이경(東方朔 神異經)’에서는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목숨을 던져 구원해 준다’(見人有患投死救之)고 하였다. 고대의 한민족은 생명을 사랑하여 서로 살리기를 힘쓰는 겨레임을 알 수 있다. 하늘을 우러르며 생명을 사랑하고 생명 살리기를 힘쓰는 한민족의 상생정신은 건국설화와 종교문화에 나타나며, 한국어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한국어는 1인칭 주어가 약화되거나 생략되고 상대를 대상화, 타자화하는 3인칭도 발달하지 못했다. 다만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상대와 소통하고 교감하는 언어다. 대상을 주체로서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그려주는 형용사와 부사, 의성어와 의태어가 발달했고 존댓말이 매우 발달했다. 상생과 공존을 추구한 한민족은 착하고 평화로운 성향과 기질을 지켜왔다. 한반도와 만주에서 한민족은 서로 경쟁하고 다투었으나 중국대륙이나 일본을 정복하는 전쟁을 하지 않았다. 땅을 정복한 인도 유럽어족의 국가주의 문명 코카서스 산맥 북쪽과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에서 세력을 키운 인도 유럽어족은 말과 수레와 무기를 가지고 전쟁을 잘 하는 호전적인 집단이 되었다. 이들은 국가문명이 형성된 다음 4,800~3,500년 전쯤에 서쪽으로는 유럽으로 남쪽으로는 인도로 침입하여 유럽과 인도를 정복하고 지배하였다.(마리아 김부타스) 이들은 전쟁과 정복, 지배와 통치에 특화된 민족이었다. 이들이 3,500년 전에 인도로 침입하여 확립한 카스트제도는 이들의 지배와 정복이 얼마나 잔혹하고 확고하게 유지되었는지 보여준다. 인도 유럽어족은 국가주의문명을 주도했고 국가주의 문명의 꽃을 화려하게 꽃피웠다. 땅의 정복자로서 지배와 정복을 추구한 인도 유럽어족은 땅(물질)의 현실과 대상을 계산하고 분석하는 순수수학과 과학을 발전시켰다. 지배와 정복을 추구한 인도 유럽어족의 언어, 이성철학, 정치역사의 성향은 정확히 일치한다. 이들의 언어에서는 주어가 문장, 객어와 술어를 주도하고 지배한다. 자연 사물과 인간에 대한 이런 공격적이고 정복자적인 철학적 경향은 근현대의 자연과학과 철학에서도 뚜렷이 확인된다. 인도 유럽어족은 순수 수학과 자연과학을 발달시키고 과학기술혁명을 이루었으나 자연생태계와 다른 민족과 국민(민중)에 대한 공격적이고 정복자적인 자세를 시종일관 유지하였다. 전쟁과 폭력, 지배와 정복을 추구한 인도 유럽어족은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데 앞장섰으며 다른 인종과 국가들에 대한 식민지쟁탈 전쟁을 벌임으로써 인류를 1, 2차 세계전쟁으로 내몰았다. 2) 땅에 충실한 중국의 농본주의적 전통철학: 자연생명친화적 생활철학 중국인들은 아시아 대륙의 중심을 차지하고 자연생명세계의 질서와 법도에 순응하는 농업본위의 국가문명을 형성하였다. 동아시아 중국철학은 자연 생명 세계의 질서와 법도, 절기와 기후, 변화와 율동 속에서 그 질서와 법도에 순응하고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중심을 지키고 조화롭게 하늘과 땅의 법도와 원리에 성실하고 충실하게 살자는 것이다. 이런 세계관은 하늘과 땅의 질서와 법도, 절기와 운행에 맞추어 살았던 농업 중심의 사회에 필요한 것이며, 곡식을 기르는 일(농사)에 적합하다. 고대 중국 문명은 농업본위의 사회였다. 국가사회질서는 농업사회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농업사회는 자연 생명 세계의 질서와 법도를 본받아 형성되었다. 유가는 자연질서를 본받은 국가사회의 예법과 질서를 중심으로 철학을 형성했다. 도가는 자연세계의 질서와 법도를 중심으로 철학을 형성했다. 천인합일, 천지인합일, 주역 팔괘, 음양오행, 풍수지리, 사주명리는 모두 하늘과 땅의 자연생명세계의 질서와 법도에 순응하며 조화롭게 살자는 사상이다. 예컨대 주역팔괘에 따르면 천지자연의 중요한 요소들인 건(乾, 하늘) 태(兌, 늪, 호수) 이(離, 불) 진(震, 우레) 손(巽, 바람) 감(坎, 물) 간(艮, 산) 곤(坤, 땅)의 관계와 영향이 인간과 국가의 운명을 결정한다. 음양오행은 해와 달(또는 하늘과 땅) 불(火) 물(水) 나무(木) 쇠(金) 흙(土)의 관계와 영향이 인간과 국가의 운명을 결정(규정, 좌우)한다. 땅의 물질세계, 자연환경과 공간 세계가 그리고 때와 시간이 생명과 인간과 정신을 지배하고 결정한다고 보았다. 이런 사고에는 근현대 국민, 시민의 주권자, 민주정신에 걸맞는 주체적 자기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3) 새 하늘과 새 땅을 희망한 히브리 기독교의 초월주의 철학과 종말론적 역사관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과 정복, 억압과 수탈 속에서 형성된 히브리 기독교 전통은 국가주의문명에 대한 저항적 비판적 초월적 철학을 형성하였다. 인생과 역사, 사회와 국가를 비판하고 초월하는 하나님의 초월적 능력과 존재에 대한 신념과 정신을 확립하였다. 또한 불의한 국가주의체제를 심판하고 신의 사랑과 정의가 실현되는 새로운 나라를 기다리는 종말론적 역사관을 형성하였다. 한민족은 히브리 기독교 신앙에서 “나는 나다!”하는 해방자 하나님 야훼를 만날 수 있었고,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는 예수의 주체 선언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과거와 현재의 불의한 현실에 저항하고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는 변혁적 역사관을 배울 수 있었다. 히브리 기독교 신앙은 한민족에게 인간과 역사에 대한 초월적 주체적 이해와 현실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미래지향적 역사이해를 제공하였다. 4) 서양문명의 귀결 서양문명을 떠받치는 두 기둥은 히브리 기독교와 그리스철학이었다. 히브리 기독교 전통은 국가주의문명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하면서도 국가주의 문명에 짓눌려 호전적이고 배타적이며 제국주의적 종교로 전락하였다. 그리스 이성철학은 노예제 사회를 바탕으로 순수 수학, 자연과학을 발전시켰으며, 지배와 정복의 언어, 사회 철학 전통을 가진 인도 유럽어족은 지배와 정복의 국가주의문명을 가장 화려하고 힘차게 펼쳤다. 서양정신문화에서는 과학적 인과관계를 중시하고 실증적 사실, 실험정신, 정보와 지식, 기능과 능력, 합리적 효율적 사고를 중시한다. 그러나 근현대 서양철학은 제국주의와 유착된 물질론과 관념론과 기계론에 함몰되어 생명과 영혼을 잃어버렸다. 4. 국가주의를 극복하는 상생일꾼을 위한 생명철학 지배와 정복을 추구한 국가주의는 진영논리와 당파싸움을 조장하며 약육강식과 생존투쟁의 무한경쟁으로 인간을 몰아넣는다. 국가주의를 극복하고 청산하기 위해서는 서로 살리고 길러주는 상생철학을 확립하고 개인과 사회의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한민족이 3·1혁명,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월시민항쟁, 촛불혁명을 거치면서도 실질적인 민주공화국을 이루지 못한 까닭은 무엇인가? 일시적으로 민주혁명운동을 했지만 개인과 사회의 일상생활에서 민주정신과 원칙을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민주주의 선진국들에서도 민주주의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주권자인 국민들이 자유와 평등, 자치와 협동을 위한 민주정신과 이념을 생활화하는 민주생활철학이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1) 상생을 위한 생명진화와 인간 약육강식과 생존투쟁의 오랜 과정을 거쳐 짐승에서 인간으로 진화되었다. 본능적 욕망과 감정에 휘둘려 사는 짐승에서 감성과 지성과 영성을 지닌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것은 약육강식과 생존투쟁의 생활방식을 졸업하고 극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안창호) 인간은 약육강식과 생존투쟁의 습성과 버릇을 버리고 예술적 감성, 철학적 이성, 종교적 영성을 발전시켜야 한다. 약육강식과 생존투쟁의 삶을 조장하고 강요하는 진영논리는 인간을 짐승의 삶과 버릇으로 타락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 감성과 지성과 영성을 지니게 된 것은 서로 주체로서 상생공존의 평화를 구현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와 상대를 함께 살리는 상생의 삶은 생명의 본성과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다. 본디 생명은 물질 안에서 물질을 초월하여 물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존재의 차원을 연 것이다. 생명체 안에서는 서로 다른 물질의 요소들과 원소들이 물질의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방식으로 평화롭게 상생하며 공존한다. 자연물질의 세계에서 이러한 생명이 생겨났다는 것 자체가 상생과 공존의 평화 사건이다. 인간의 몸을 이루는 신체기관들 염통, 허파, 위, 장, 간, 콩팥, 쓸개는 서로 상생공존하며 자치와 협동의 모범을 보인다. 2) 생명철학 생명은 물질 안에서 물질을 초월한 것이다. 생명의 본성과 목적은 세 가지다. 스스로 하는 자발적 주체성, 하나로 통합하는 전체성, 창조적 진화성. 이 세 가지 본성을 관통하는 하나의 원리는 ‘나’다. ‘나’가 스스로 하는 자발적 주체이고, 전체가 하나로 되는 중심과 초점이며, 창조적 진화의 주체와 대상, 동인과 목적이다. 생명의 본성과 목적을 나타내는 주체, 전체, 진화는 수학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계산하거나 측정할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하는 주체의 깊이와 자유, 하나로 통합하는 전체, 창조적 혁신과 진화는 그 깊이와 높이와 크기에서 하나로 수렴되는 것이다. 생명의 깊이와 높이와 크기가 한없이 확장되는 지점에서 스스로 하는 주체의 나는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는 큰 나이며, 진화와 혁신, 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혁명의 창조자다. 생명철학에서는 개별적 주체의 자아 ‘나’를 중심과 전면에 두고,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는 큰 하나의 나와 일치시키며, 창조적 혁신과 진화를 이루는 창조자적 주체가 되게 한다. 생명의 주체와 전체와 진화의 무한한 깊이와 높이에서 참된 나, 참된 전체, 참된 진화를 아우르는 존재가 하나임, 하나님이다. 물질 안에서 물질에 의존해 산다는 점에서 생명은 한없이 덧없고 약한 것이다. 그러나 물질을 초월했다는 점에서 생명은 물질의 법칙적 제약과 존재적 속박에서 벗어난 것이며 물질에 대하여 한없이 자유롭고 강한 것이다. 물질의 제약 속에 있는 생명은 상처받기 쉽고 고통스럽고 허약한 것이다. 물질을 초월했다는 점에서 생명은 기쁘고 신나는 것이며 한없는 힘과 자유를 가진 것이다. 물질에 대한 생명의 초월적 힘과 자유는 하늘로 표상되고 상징된다. 육체의 생명이 생존하기 위하여 다른 물질과 생명체를 먹어야 산다. 그런 점에서 생명은 이기적이다. 그러나 육체를 초월한 생명은 흘러넘치는 기쁨과 사랑을 베풀고 주는 이타적 존재다. 물질의 세계에서 물질의 변화와 운동은 그 원인과 까닭이 밖에 있다. 그러나 생명의 변화와 활동은 그 원인과 까닭이 자신의 생명 속에 있다. 근본적으로 생명의 활동과 변화를 위한 원인과 까닭, 이유와 목적이 자신의 생명 속에 있다. 그러므로 생명은 원칙적으로 어떤 외적 조건과 상황, 물질적 제약과 속박에도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생명의 속에서 자유롭고 순수한 자발적 힘과 사랑이 솟아난다. 순수한 자발적 힘과 사랑은 물질과 환경에 대하여 초월적이다. 아메바에서 인간까지 진화한 생명은 줄곧 자신을 탈바꿈하며 자기혁신과 창조를 이어온 것이다. 스스로 하고 스스로 되는 존재이며 자기가 자기의 창조자이고 피조물이다. 생명의 근본원리는 ‘스스로 함’이다. 생명은 근본적으로 스스로 하고 스스로 되는 존재다. 이것은 자연(自然)의 ‘스스로 그러함’과는 다른 것이다. 생명의 차원이 자연 물리의 차원과 다르듯이 그 원리도 다르다. ‘스스로 함’을 근본원리로 삼는 생명철학은 ‘스스로 그러함’의 자연주의철학과 다르다. 자연주의철학은 타고난 그대로 주어진 그대로 자연의 원리에 순응하고 맡기자는 것이다.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 도(道法自然)에 순응하자는 노자의 자연주의도 자연의 원리와 상태로 돌아가자는 루쏘의 자연주의도 생명철학은 거부한다. 생명철학은 자신과 상대, 자연과 생명과 인간을 창조자적으로 실현하고 완성하는, 해방하고 구원하는 ‘스스로 하고 스스로 되는’ 창조자적 삶과 실천을 요구한다. 3) 한국근현대의 시대정신: 동서문명의 만남과 민족의 자각 동서문명의 만남과 민족의 주체적 자각으로 전개된 한국근현대는 국가주의를 극복하고 청산하는 과정이었다. 민주공화의 나라를 이루고 세계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한민족은 조선왕조의 낡은 신분지배체제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일제의 식민지배체제로부터 해방되어야 했다. 한국의 근현대의 시대정신과 과제는 동서양의 전통문화와 정신을 비판적이고 창조적으로 계승함으로써 민족의 주체적 자각을 이루고, 동아시아의 문명사적 지평을 넘어서 동서양의 정신문화를 아우르는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문명을 이루는 것이다. 근현대의 한민족은 일제의 식민통치와 남북분단의 고통을 견디어내고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루었으며 민족의 통일과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지향하는 민주공화의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다. 하늘을 우러르며 하늘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한민족의 정신문화적 주체성과 정체성은 땅을 중시한 중국문명과 그 철학의 영향 속에서는 충분히 구현되고 완성될 수 없었다. 하늘을 우러르며 생명을 사랑하는 한민족의 정신은 서양문명에서 기독교정신, 과학사상, 민주정신을 만남으로써 보완되고 강화될 수 있었다. 한민족의 정신문화가 지닌 약점은 한국어의 특징에서 드러나듯이, 1인칭이 약화되고 3인칭이 없으며 하늘과 상대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없이 낙관적 신뢰와 감정을 가진다는 것이다. 1인칭이 약화하거나 생략되는 데서 1인칭 ‘나’에 대한 자각과 확고한 신념이 부족했다. 3인칭이 결여된 것은 객관적이고 공적인 생각이 부족한 것을 의미한다. 샤머니즘이 여전히 종교문화의 중심을 차지하고 노래와 춤을 좋아할 뿐 현실에 대한 심각하고 진지한 철학적 성찰이나 종교적 체험이 부족하다. 근현대에 이르러 한민족은 히브리 기독교 전통에서 생명과 정신의 주체 ‘나’에 대한 깊고 초월적인 이해와 현실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변혁적 역사이해를 배울 수 있었다. 과학사상에서 객관적이고 공적인 정신과 사상을 배웠다. 민주공화의 정신과 사상에서 개별적 인간의 주체적 책임과 공동체적 협동과 일치를 배울 수 있었다. 한민족은 서양문명을 만남으로써 비로소 민족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회복하고 자신을 보완하고 심화 발전시킬 수 있었다. 마치는 말: 국가주의를 극복하고 민주공화의 나라를 이루는 민주적이고 영성적인 생활철학 근현대에 이르러 조선왕조가 쇠퇴, 몰락하고 서양문화가 깊이 들어오면서 한민족은 중국문명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서양의 과학정신과 민주정신, 인간과 역사에 대한 비판적이고 초월적인 이해를 제공한 히브리 기독교 정신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늘을 우러른 한민족의 정체성과 주체성이 활달하게 발현될 수 있었다. 서양문명을 깊이 받아들이면서 민족의 주체적 자각운동을 일으킨 안창호가 지은 애국가 1~4절은 한민족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잘 드러낸다. 우리 민족에게는 하늘을 우러르며 ‘큰 하나’를 추구하는 경향과 함께 ‘하나임’을 느끼는 작은 단위로 갈라지는 경향도 있다. 동학농민혁명, 3·1 독립혁명, 4·19혁명, 5·18 민주항쟁, 6월 시민항쟁, 촛불혁명에서는 한민족이 큰 하나 됨의 정신을 구현하였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주체성과 자존감을 잃고 민족정신이 쪼그라들 때는 사대주의와 당파싸움에 빠져들었다. 주체성과 정체성을 잃고 사대주의와 당파싸움에 빠진 조선왕조는 결국 쇠퇴하고 멸망하였다. 오늘 인문철학의 문화적 사대주의와 정치사회의 당파주의는 조선왕조 시대보다 더 심각하다. 동서문명의 만남과 민족의 주체적 자각으로 전개된 한국근현대의 역사 속에서 안창호·유영모·함석헌은 생명철학을 형성했다. 국가주의를 극복하고 민주공화의 나라를 세우고 세계정의와 평화를 이루려면 민주적이고 영성적인 생명철학을 국민의 생활철학으로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한민족과 인류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정치, 경제, 교육, 문화에 대한 뚜렷한 이념과 대안,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주의적 산업기술사회의 지배이념인 물질론, 기계론, 관념론을 극복하고 청산한 생명철학은 인생과 역사와 사회에 대한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다. 생명철학적 존재론과 가치관에 비추어 사회를 새롭게 형성해야 한다. 자유시장경제와 기업의 경쟁 원리는 시장과 기업의 영역에서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시장가치와 계산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 사회의 공동체적 생활영역을 확장하고 새롭게 형성해야 한다. 생명과 영의 원리에 따라 교육과 지역사회에서 상생공존의 공동체적인 원리를 실현하고 확장하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농촌과 목회. 통권 100 2023 겨울호 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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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생님, 공유해주신 글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