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판매 속도도 빠르다. 40만 권(20만 세트)을 찍은 ‘기사단장…’의 예약판매량은 ‘1Q84’의 3배나 됐다. ‘잠 1, 2’는 한 달 반 만에 20만 권(10만 세트)을 돌파해 ‘제3인류 1, 2’보다 더 빨리 나가고 있다. ‘위험한…’은 예약판매량(3000권)이 출판사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고, 출간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4만 권 넘게 판매됐다. ‘오직…’은 초판 2만 권을 찍은 후 증쇄를 거듭해 출간 두 달 만에 12만 권을 인쇄했다.
이런 현상은 무라카미 하루키, 베르나르 베르베르, 히가시노 게이고, 김영하, 김애란 등 국내외 인기 작가들의 신작이 최근 집중적으로 출간된 것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기사단장…’은 7년, ‘잠’은 4년 만에 선보인 신작 장편 소설이다. ‘오직…’은 7년, ‘바깥은…’은 5년 만에 펴낸 소설집이다. 소설집이 인기를 끄는 현상에 대해서도 독특하다는 평가가 많은데, 이는 작가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높다는 걸 보여준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화제작이 많으면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상승효과를 낸다. 올해는 판매 물량이 커 그 효과가 배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책이 책을 부른다’는 말이 입증되고 있다는 것. 조선영 예스24 도서사업1팀장은 “한 작가의 소설만 사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작가들의 소설도 연달아 사는 독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 이제 감성이다
이성을 ‘풀가동’하는 데 지친 사람들이 감성을 자극하는 소설로 눈길을 돌렸다는 의견도 있다. 국정 농단 사태로 촛불 집회가 이어지고 조기 대선이 치러진 데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의 부상 등 이성적 사고를 요구하는 사안들이 휘몰아쳤기 때문이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정치, 경제 이슈에 ‘들볶인’ 사람들이 소설을 읽으며 순수하게 이야기를 즐기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욕구를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준 열린책들 문학주간도 “탄핵, 대선 등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봄까지 인문, 사회 분야 책이 주목받은 반면 소설 판매는 뚝 떨어졌다”며 “지식을 얻는 등 목적이 뚜렷한 독서를 해 온 사람들이 무거운 주제를 내려놓고 이제는 소설을 통해 즐거움을 추구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