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18일 주일 맑다 흐리다를 반복한 듯 ('평결'을 읽고)
몸은 참 적응이 빠른 것 같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단식이 배도 고프고 잡념도 많았는데 반복되다 보니 물이 흐르듯 몸도 순응을 하는 것 같다. 신기하다. 이제는 몸이 휴식을 취하고 정신과 영혼이 편안한 자유를 조금씩 더 누리는 것 같다. 일주일 동안 기도 드리지 못했던 소중한 동역자들을 위해 기도 드렸다. 오후에는
‘평결’이란 영화도 보았고 성철 스님의 책도 다 읽었다.
평결의 주인공 변호사가 했던 “법정이 정의를 지켜주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법정은 정의를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뿐이다”란
말이 마음에 남았다. 검사가 판사와 한 통속일 때 피고는 어떻게 정의를 세울 수 있을까? 미국처럼 배심원단이라도 있으면 “당신들이 바로 법입니다”라고 호소라도 할 수 있으련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절망감
때문인지 오늘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 19:26)라는 말씀이 마음 속에 메아리처럼 울린다.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어떤 딜레마 속으로 나를 몰아넣은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적의
열쇠 같이 여겨졌었다. 그러나 이제는 받기 어려운 채권 같아 보인다.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 현실에 대한 일정한 권한이 있으시다. 그러나 현실은 변화를 거부하며
강고하게 맞서고 있다. 하나님의 권한은 무시당하고 조롱 당한다. 심지어
그 아들까지 보내도 죽여 시체를 다시 보내는 그런 패악으로 가득해 있다.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는 한낮
비웃음거리요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처럼 짓밟힌다. 이제 당신들 법관들이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면치
못할 거라고 겁박하는 것밖에 남은 것이 있을까? 그것 조차도 더 큰 조롱거리가 되고 말 거다.
어제는 평생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옥사할거라면 차라리 핀란드나 코스타리카처럼 군대 없는 세상으로 이민을 가는
것은 어떨지 생각도 해보았다. 코스타리카의 서쪽 해안가에 작은 집을 구해서 그곳에서 다시 평화의 사역을
시작해볼까? 앞으로 개척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국가보안법처럼 더 비인간적인 악법에 의해 더 심한 인권
탄압과 처벌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그런 생각까지 날 흔들고 있다. 평화에 대한 희망은
내게 재앙이다. 그러나 이 재앙을 피할 수가 없다. 이는
내가 마셔야 할 내 잔이기 때문이다. 골고다로 가는 길이 점점 더 가까워 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