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자시편 칼럼 - < 매미 >
우화등선(羽化登仙) 위해
땅 속에서 나무즙 빨며
7년을 견디었네
애벌레가 된 나
빛을 찾아 어둠을 뚫었네.
남은 시간 많지 않네
나무줄기 올라
허물 벗는 날개돋이
날개 짓을 하며 하늘을 나네
짝짓기 못한 채 이승을 마감하면
땅 속에서 견딘 인고의 세월
허사(虛事)가 되고 마네
짧고 굵은 삶을 위하여
절박하고 애절한 나의 구애(求愛)
사랑 노래 부르네, 밤낮으로 부르네
영조 때의 문신 이정신(李廷藎)은 청구영언(靑丘永言)에서 매미의 고어인 ‘매암’과 ‘쓰르람’의 울음소리를 듣고 초야에 묻혀 사는 즐거움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매암이 맵다 울고 쓰르람이 쓰다 우니,
산채(山菜)를 맵다는가 박주(薄酒)를 쓰다는가.
우리는 초야(草野)에 뭇쳐시니 맵고 쓴 줄 몰라라.”
매미의 성충(成蟲)이 땅속에서 올라와 허물을 벗고 날개를 펼치며 매미가 되는 모습에서 불교(佛敎)에서는 ‘해탈(解脫)’의 의미를 발견했고, 도교(道敎)에서는 껍질을 벗고 새로운 몸을 얻는 모습을 보고 ‘재생(再生)’의 깨우침을 얻었다. 매미는 3년에서 7년의 기간을 땅 속에서 살다가, 성충이 되면 흙을 뚫고 세상에 나와 금선탈각(金蝉脱殻)하여 우화등선(羽化登仙)을 한다. 이후 세상에서 3-4주를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매미에 있어서 우화등선을 한 십여 일은 종족 번식에 아주 중요한 시기이다. 암수가 만나 짝짓기하고 알을 낳아 종족을 번식해야 한다. 이 때 암수를 만나게 해주는 매체(媒體)가 암컷을 부르는 수컷의 큰 울음소리이다.
“수컷은 소리를 내면서 복부를 최대한 신장시켜 안쪽의 공기주머니에서 소리의 울림을 최대화 해 음량을 크게 한다. 이렇게 커진 소리는 배딱지와 복부 사이가 벌어지면서 생긴 틈을 통해 밖으로 울려 퍼진다. 수컷매미의 소리를 듣는 암컷매미의 고막은 같은 종 수컷이 내는 울음 소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암컷은 수컷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소리가 나는 가장 가까운 곳으로 날아가 앉고 마지막에는 시각적인 신호로 서로를 인지해 암수 간에 짝짓기를 하게 된다. 종에 따라서는 암수 간에 소리 외에도 페로몬이라는 화학물질을 추가로 사용해 소리와 함께 서로를 인식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한 여름 밤에 계속되는 매미의 시끄러운 울음소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매미가 시도 때도 없이 운다고 알고 있지만, 매미는 아무 때나 울어서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잘 진화 해 왔다. 사실 매미가 울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한 가지는 체온이 특정 범 위에 맞춰져야 한다. 즉 주위 온도가 일정치 이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임계온도 이상이 돼야 발음근이 작동하며 그 온도는 종마다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하나는 주위의 밝기 다. 밝기, 즉 조도가 일정수준 이상 또는 이하일 때만 우는 종들이 많다. 어떤 매미는 햇빛이 강한 날에 잘 울며, 구름이 많이 끼고 흐린 날에는 잘 울지 않는다. 또 같은 종일지라도 태 양의 조도가 높은 경우에는 매우 빠른 속도로 울고, 반대로 조도가 낮은 경우에는 매우 느린 속도로 울기도 한다. 주변 온도나 조도 차이 때문에 매미 종별로 우는 때가 다르며, 또 환경 변화에 의해 본래는 울지 않던 시간대에 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 (서홍렬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
매미를 우리의 선현들은 군자의 덕목을 지닌 곤충으로 생각했다. 매미의 곧게 뻗은 입이 갓끈과 같아 학문에 뜻을 둔 선비의 문덕(文德)이며, 힘들게 지은 곡식을 해치지 않으니 염치(廉恥) 도리를 아는 염덕(廉德)이며, 집을 짓지 않으니 욕심이 없이 검소(儉素)한 검덕(儉德)이다. 죽을 때를 알고 스스로 지키니 신의(信義)는 신덕(信德)이며, 욕심 없이 살생 안 하고 깨끗한 이슬과 수액만 먹고 사니 청덕(淸德) 등을 매미의 오덕(五德)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임금과 관료들의 익선관(翼蟬冠)의 솟은 뿔과 벼슬아치들이 쓰던 오사모(烏紗帽)의 양쪽 뿔 모두 매미 날개를 본뜬 것이다. 고려조 문인 이규보(李奎報)는 거미줄에 걸린 매미를 풀어주면서 매미는 칭찬하고 거미는 교활하다면서 비판했다. 그러나 이옥이 쓴 《지주부(蜘蛛賦)》에는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매미란 놈은 청렴 정직하여 선비처럼 보이지만 제 울음소리가 좋다고 스스로 자랑하며 시끄럽게 울어대다 그물에 걸려드는 것이오.”
‘매미가 허물을 벗다’는 뜻의 사자성어 금선탈각(金蝉脱殻)은 삼십육계 중 제21계이다. 남북조시대 단도제(檀道濟) 장군이 정리한 병법으로 “36가지의 책략 중에 달아나는 것이 가장 나은 계책이다”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적군이 압도적으로 강대하여 저항해 봤자 손해만 확대될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철수하여 체제를 재정비하고자 할 때 사용한다. 아무렇게나 철수하면 적의 추격을 받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금선탈각(金蝉脱殻)은 이런 상태에서 안전하게 철수하기 위한 계책이다. 매미가 허물을 떠나 날아간 것처럼, 마치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놓고 주력을 철수시킨다. 전략적 목표로 주력을 이동시켜 역으로 타격을 가하고 싶을 때도 사용할 수도 있다. 초(楚)나라와 한(漢)나라가 싸울 때 일이다. 형양(荊揚)에서 유방(劉邦)은 항우군(項羽軍)에게 포위되었다. 유방의 부하 기신(紀信)이 유방으로 변장하고 대신 포로로 잡혔다. 그 틈에 유방은 도망갔다. 금나라에게 공격받은 송나라 장수 필재우(畢再遇). 양들을 묶어 거꾸로 매달고 앞발 아래에 북을 놓아 양이 발버둥을 치면서 북이 울리도록 장치를 하고 후퇴한 사례도 이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