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랑은 마술사>는 파야의 출세작이 된 발레음악인데, 당시(1914년경) 유럽의 스타 발레리나였던 파스토라 임페리오(Pastora Imperio)의 의뢰로 작곡되었다.
임페리오는 전부터 스페인을 무대로 하는 발레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남(南)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에 전래하는 민화(民話)를 토대로 한 대본을 마르티네스 시에라(Martinez Sierra)에게 써받고 그 작곡을 팔랴에게 청탁했던 것이다.
그 무렵 파야는 31세 때부터 시작된 프랑스 유학으로부터 막 돌아온 참이었다. 그래서 드뷔시나 라벨 등과의 깊은 교제로 말미암아 인상주의(印象主義)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다. 후년에 가서 그의 음악은 신고전주의(新古典主義) 경향을 띠게 되지만, 이 곡이나 또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스페인 정원의 밤> 등에는 세련된 인상주의 기법이 쓰이고 있다.
파야는 이 이야기가 안달루시아 지방을 무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실지로 그 지방에 가서 답사도 하고, 또 집시의 가정들을 찾아다니면서 채보(採譜)도 했다. 그러다가 임페리오의 모친 라 메호라나(La Mejorana)가 집시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로부터 그의 작곡은 정열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의 선배인 알베니스나 그라나도스는 스페인 민요나 춤의 선율을 숫제 그대로 소재로서 쓴 데 반해, 파야는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이 점이 또한 이 곡의 특색이다.
초연은 1915년 4월 15일 마드리드의 테아트로 라라에서 행해졌다. 주연은 물론 임페리오였는데 평은 예상했던 만큼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야기가 원래 기발한 데다가 음악이 좋아서, 그 후 미국과 파리에서 상연됨으로써 점차 인기를 얻게 되었다.
나중에 디아길레프가 <발레 뤼스>를 위해서 <삼각모자(三角帽子)>의 작곡을 팔랴에게 의뢰하게 된 것도, 그가 이 <사랑은 마술사>를 보고 파야의 재능에 탄복했기 때문이다.
칸델라스는 검은 눈동자의 예쁜 집시 여인이다. 결혼 생활은 짧았고 아직 젊다. 길을 지나가다 마주치는 사람은 그녀가 미망인인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다. 그녀의 마음은 아직 청춘의 핑크색이다.
칸델라스의 죽은 남편이란 자는 대단한 바람둥이였다. 그래도 <돈 환>에게는 지성(知性)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없었다. 그저 여자이기만 하면 모두 좋다는 스타일의 사나이였다. 그리고 그런 사나이치고 질투심이 강하지 않은 예가 없다. 또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빠지게 마련이다. 칸델라스도 따지고 보면 그런 매력에 끌려서 결혼했던 것이다.
그녀는 남편을 사랑했었다. 죽은 뒤에도 계속 사랑했었다. 질투심이 많은 남편은 때때로 유령(幽靈)이 되어 나타났다. 귀여운 칸델라스가 다른 사내와 놀아나지나 않나 걱정이 되어서 가끔 사바세계(娑婆世界)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칸델라스도 처음에는 남편의 유령을 환영했지만, 차차 싫증이 났다. 이렇게 일년 내내 따라다녀서는 자유를 누릴 수가 없다. 아무리 사랑하는 남편이라 할지라도 병적(病的)으로 따라다녀서는 뱃길 수가 없다.
칸델라스의 육체는 사내를 안 뒤여서 점점 더 색정적(色情的)이 되어 갔다. 거기다 아직 젊다. 그리고 자유로운 몸이다. 그녀는 점점 남자 생각이 났다. 일단 남자를 안 이상에는 육체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그녀의 이상에 맞는 청년이 나타났다. 카르멜로라는 심신(心身)이 다 건강하고, 스페인 어디에 내놓아도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의 미남이었다. 칸델라스는 처음에 바람기로 카르멜로에게 접근했지만, 거듭 만나는 동안에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 카르멜로는 물론 처음부터 진지하다. 이 여자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사나이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할 정도가 되어 있다.
그런데 곤란한 점이 하나 있었다. 두 남녀가 만나고 있으면 반드시 남편의 유령이 나타나서 시종 그들의 거동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설사 유령이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항상 유령 쪽에서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한 번은 카르멜로와 칸델라스가 이마를 맞대고 의논했다. 이래가지고는 언제까지나 사랑의 키스조차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유령의 약점을 생각해냈다. 그 사내는 대단한 바람둥이였다. 그리고 질투심이 많았었다. 그런데 그 사내에게는 여자가 없다. 옛날의 아내는 이제 딴 남자에게 마음이 가 있다. 그래서 질투하는 것이니까 그 사내에게 딴 여자를 접근시키면 어떨까. 여자이면 청탁(淸濁)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니까 반드시 그 여자에게 정신이 팔릴 것이다. 그 틈을 타서 우리도 사랑의 키스를 한다. 그 사내는 그것을 보더라도 단념할 것이다.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두 남녀는 곧 실행키로 했다. 칸델라스에게는 루치아라는 친구가 있다. 루치아는 미혼녀로서 남자를 바라고 있다. 칸델라스는 그 계획을 루치아에게 털어 놓았다. 루치아는 즉석에서 찬동했다.
칸델라스와 카르멜로는 비밀로 계획을 짜 놓은 다음에 늘 만나던 장소에서 데이트를 한다. 루치아는 숨어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아니나다를까 질투심이 많은 유령이 나타나서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한다. 그 때 루치아가 쑥 유령 앞에 나타났다. 유령은 루치아의 매력에 끌려서 그녀를 유혹한다. 생전에 경험이 많아서 유혹하는 데도 과연 관록이 있다.
카르멜로와 칸델라스는 그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처음으로 껴안고 뜨거운 사랑의 키스를 나눈다. 사랑의 힘은 드디어 유령을 물리쳤다.
아침이 왔다. 교회의 종소리가 높이 울린다. <종이여, 울려라! 우리에게 빛이 돌아왔다......> 행복을 굳게 잡은 두 사람 위에 아침 햇살이 비친다.
곡은 전부 13곡인데 모두 짤막하다.
1. <서주(序奏)와 정경(情景)>
알레그로 푸리오소 마 논 트로포 비보. 불과 21마디밖에 안되는 짧은 곡인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그린다. 전악기는 2개의 그룹으로 나뉘는데, 한 그룹은 날카로운 선율을 연주하고, 다른 그룹은 특이한 리듬을 연주한다.
2. <동굴에서-밤>
트란퀼로 에 미스테리오소. 집시들이 사는 밤의 동굴을 그린 대목이다. 약음기(弱音器)를 단 트럼펫이 신비로운 노래를 부른다. 오보에에 나타나는 선율은 아주 집시적이다. 이 장면은 집시 집의 을씨년스러운 밤의 정경을 나타내고 있다.
3. <고통스러운 사랑의 노래>
알레그로. 거치른 리듬이 5마디쯤 있은 뒤에 칸델라스의 노래가 시작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무엇이 일어나든 모른다.
이 저주받은 집시가 가버려서
그대 불타는 촛불이여
그대보다 격렬히 불타는 지옥이
나의 모든 피를 질투로 태운다.
.............
집시 여인의 몸 단 색정을 느끼게 하는 노래다.
4. <유령>
비보 마 논 트로포. 불과 13마디의 짧은 곡. 여기서는 유령의 모티프가 소개된다. 이 모티프는 피아노와 현의 반주에 실려 트럼펫으로 연주된다.
5. <공포의 춤>
알레그로 리트미코. <불축제의 춤>과 더불어 이 발레를 대표하는 명곡으로, 단독으로 피아노로써 연주되기도 한다. 아주 리드미컬한 곡인데, 앞의 <유령>에서 소개된 모티프가 여기서도 쓰이고 있다.
6. <마법의 고리-어부의 이야기>
안단테 몰토 트란퀼로. 집시라면 우리는 으레 음악과 춤과 점(占)을 생각한다. 이 마법의 고리란 점장이가 영신(迎神)할 때 그리는 마법의 고리인데, 2개의 트럼펫에 의해 신비로운 선율이 연주된다. 매우 인상적인 선율이다.
7. <한밤중-점장이>
렌토 에 론타노 포코 피우 모소. 피아노가 12시의 종을 때린다. 한밤중, 슬슬 유령이 나타날 시각이다.
8. <불축제의 춤>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에 페잔테. 악마를 쫓는 춤인데, 이 곡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불이 훨훨 타오르는 현(絃)의 도입부가 있은 뒤에 오보에에 주요주제가 나타난다. 제 2주제는 호른과 제 1바이올린, 제 3주제는 플루트와 제 1바이올린에 나타나는데 모두가 스페인적(的)이다. 이 곡은 피아노 독주용으로도 편곡되어, 피아니스트가 자기의 기교를 과시하기 위한 곡으로서 자주 연주된다.
9. <정경>
포코 모데라토. 오보에의 어두운 선율로 시작되어 도중에서 현이 거치른 선율을 낸다.
10. <도깨비불의 노래>
비보. 괴상한 도깨비불에 견주어서 사랑을 노래한 것인데, 민요조의 친근미 있는 곡이다.
사랑은 도깨비불과 같다.
쫓아가면 도망치고
도망가면 쫓아온다.
...........
11. <무언극(無言劇)>
알레그로-안단티노 트란퀼로. 이것은 제 2장으로 넘어갈 때의 간주곡이다. 처음에는 <서주와 정경> 주제의 반복이 있고, 안단티노 트란퀼로에 들어가서는 야상곡(夜想曲)처럼 된다. 처음에 플루트, 이어서 첼로에 나타나는 주요 선율은 매우 아름답다.
12. <사랑의 희롱의 춤>
알레그레토 모소. 루치아가 유령을 유혹할 때 부르는 노래다.
집시 여인의 사랑을 받은
그대는 나쁜 집시다.
그녀가 그대에게 사랑을 주었는데
그대는 그 가버치가 없었다.
집시 여인의 뜨거운 살결을 느끼게 하는 노래다.
13. <끝곡-아침의 종>
알레그레토 트란퀼로. 유령을 물리친 여인들, 이윽고 아침이 찾아든다.
이제 해가 뜬다.
종이여, 울려라.
우리에게 빛이 돌아왔다.
그리고 마지막에 종이 울린다. 점차 고조되다가 곡은 끝난다.
<연주시간> 약 26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