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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44편
하나님의 전쟁과 하나님의 복
(찬송 시편 144편 – 악보는 맨 뒷장에)
2023-9-1, 금
맥락과 의미
시편 144편은 모자이크 시편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앞서 나온 시편의 여러 구절들이 이곳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1-2, 5-7절은 시편 18편과 연결되어 있고, 사무엘하 22장에 나오는 다윗의 시와 비슷합니다. 또한 3-4절은 시편 8편에서 인용한 것이고, 12-15절은 128편과 비슷하며, 15절은 33:12와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 인용들이 모여 독특한 이미지를 형성합니다. 이 시편에서는 전쟁의 이미지가 강하게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전쟁을 수행하시는 이야기 가운데서 어린아이의 이미지가 옵니다. 또한 거짓말을 하는 원수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 시는 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전쟁에 임하여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복이 개인과 가정과 사회에 어떻게 충만한지를 노래합니다. 끝으로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나라가 복이 있다고 고백하면서 시가 마무리됩니다.
이 시편은 전쟁터와 같은 이 세상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녀에 대하여서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의 복 주심을 기대하도록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 하나님의 전쟁과 찬송 (1-4절)
2. 구원의 간구와 찬송(5-11절)
3.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12-15절)
1. 하나님의 전쟁과 찬송(1-4절)
1)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찬송함 (1-2절)
144편의 처음은 18:1-2과 비슷합니다. 여호와께서 반석과 요새, 산성, 건지시는 자, 방패, 피난처가 되신다는 말이 두 본문에 비슷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시편 18편은 다윗이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을 받은 후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편입니다. 그런데 144편에서는 전쟁을 수행하는 모습이 처음부터 나옵니다. 전쟁 중에 장차 올 승리를 기대하면서 찬송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18편과 비교하면, “나의 반석”과 “나의 요새”라는 말 사이에 두 부분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시인의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고 손가락을 단련시켜 전쟁에 대비하게 하신 일을 기록합니다. 손가락으로 물매의 끈을 조정하여 골리앗을 맞추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훈련도 시키시고 전쟁에서 이기게도 하신다고 찬송합니다.
둘째,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라는 말도 삽입되었습니다. 사랑(헤세드)은 언약을 지키는 신실함을 가리킵니다. 보통 “인자”로 번역됩니다. 전쟁의 과정에서 하나님을 “나의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 구원해 주시기를 소망하는 말입니다. 시인은 급박한 상황에서 자기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피하였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내 백성을 복종케 하시는 자”라고 고백합니다. 18:43에서는 다윗이 알지 못하던 다른 백성이 다윗을 섬길 것이라 하였는데, 여기에서는 다른 백성이 아니라 “내 백성”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여기에서 “내 백성”은 포괄적인 표현입니다. 우선 전쟁의 과정에서 왕의 말을 잘 듣는 백성(암), 즉 군대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사울의 편에 속한 베냐민 지파의 경우처럼 전에는 상대의 편이었다가 전쟁 후에 다윗의 말을 잘 듣는 백성이 된 사람들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백성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것을 보면서 그 기원이 하나님께 있다고 찬송하였습니다. 자기에게 지혜와 용맹이 있어서 백성들이 복종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고, 백성의 마음을 좌우하시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의 마음을 자기에게로 돌리셨다고 찬송하였습니다.
2) 한계를 아는 사람의 찬송 (3-4절)
시인은 전쟁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을 뿐 아니라(1절), 동시에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하여서도 생각하였습니다. 시편 8편에서는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사역을 보면서, 사람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찬송하였습니다. 그런데 144편에서는 자기의 손과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생이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나의 사랑”이신 여호와께서 왜 인생에게 이러한 언약의 사랑을 베푸시는가를 생각합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한낱 숨결과 같고 인생은 기우는 그림자와 같다고 고백합니다. 사실 전쟁은 인간의 무력함을 극명하게 나타냅니다. 전쟁 가운데 힘센 장수가 허무하게 쓰러지기도 하고,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한날 한 장소에서 죽기도 합니다. 인생은 숨결과 같이 헛것이고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음을 전쟁터에서 느낍니다.
2. 구원의 간구와 찬송(5-11절)
1) 시내 산의 언약과 구원 (5-6절)
적군의 공격이 있을 때에 시인은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주님의 화살로 적군을 물리쳐 주시기를 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기울이고 내려오시기를 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람처럼 의인화하여 표현한 시적인 이미지입니다. 이것은 과거 출애굽 때에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강림하시던 것과 비슷한 이미지입니다.
6절에서 번개를 “주님의 화살”에 비유합니다. 다른 한편 시인은 “자기의 화살”을 “주님의 화살”이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인의 손가락을 단련시켜서 화살을 쏘게 하셨지만, 시인은 자기가 쏘는 화살이라고 하지 않고 “주님의 화살”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전쟁의 주체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자기가 싸울 때 자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친히 전쟁을 수행하여 주실 것을 구하였습니다.
2) 구원의 간구 (7-8절)
시인은 주님께서 손을 내밀어서 큰물과 이방인의 손에서 구원하여 주실 것을 구하였습니다. 이사야 8장에서는 앗수르의 침입을 유프라테스 강이 범람하여 목까지 차는 것으로 비유를 하였습니다(7절). 시인은 현재의 질서를 무너뜨릴 큰 위험에서부터 구해 주시되 특히 이방인의 손에서부터 구해 주실 것을 구하였습니다.
시인은 이방인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에 두 가지를 언급하였습니다. 첫째는 거짓을 말하는 입입니다. 악인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과 같아서 거짓을 말할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삼키려고 합니다(시 5:9). 특히 이방 나라의 입이 거짓을 말한다 할 때에는, 다른 나라를 멸망시키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둘째는 거짓의 오른손입니다. 맹세를 할 때에는 오른손을 드는 관습이 있었습니다(신 32:40). “거짓의 오른손”이라 할 때에는 거짓으로 맹세를 하는 것입니다. 혹은 거짓으로 어떤 일을 시도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것은 6절에서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화살을 보내어 구원하시고, 7절에서 여호와께서 손을 내밀어서 시인을 큰물에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구한 것과 통하는 말입니다. 악인의 거짓말은 그들이 숨어서 쏘는 불화살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숨어서 쏘는 불화살을 그들에게로 돌리십니다(참조. 시 7:13-16). 또한 악인의 손은 시인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손이지만, 하나님의 손은 악인들의 도모를 무효하게 하시면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손입니다.
3) 찬송의 서원 (9-10절)
원수들은 거짓으로 공격하는데 시인은 새 노래로 응답합니다. 주님께서 악인의 공격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알기에, 그는 악인과 더불어 싸우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입을 하나님께 찬송하는 데에 드리는 것입니다.
시인이 부르는 새 노래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임금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주님의 종 다윗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옛적에 주님의 언약이 있는 다윗을 구원하셨고, 마찬가지로 다윗의 왕위를 계승한 임금들에게도 동일한 구원을 주실 것을 노래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옛적에 다윗을 악한 칼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자신도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악한 칼”은 말로 공격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다른 시편에서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시 57:4. 참조. 59:7; 64:3)이라고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종을 그러한 거짓말과 폭력에서부터 구원하여 주십니다.
4) 구원의 간구 (11절)
11절은 7-8절의 기도와 내용이 같습니다. 같은 기도가 두 번 나오는 것을 보면 이방의 거짓된 입술과 거짓된 오른손이 큰 위험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18편과 달리 144편에서는 주로 말로 공격하는 것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시인이 같은 말로 두 번 기도하는 것 중간에 찬송이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에 대한 절박한 간구의 중앙에 찬송이 놓여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시인은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고서 이러한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사실 여호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찬송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서 행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것을 믿고 주님을 찬송하면 적군이 스스로 무너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기도를 들으셔서 전쟁에서 승리를 주시고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3.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12-15절)
1) 여러 가지 복 (12-14절)
12절부터는 장면이 바뀌어, 하나님의 복이 가정과 일터와 사회에 어떻게 임하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다윗 왕 한 사람의 구원을 생각하며 시인의 구원을 간구하였었는데, 이제 “우리”로 표현되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가정에 어떻게 임하는지를 노래합니다. 아들들은 장성한 나무와 같고 딸들은 모퉁이 기둥과 같다고 합니다. 시편 128편에서는 자녀를 어린 감람나무에 비유하였는데, 여기에서는 나무기둥으로 비유합니다.
아들들이 어릴 때부터 튼튼히 자랐다고 합니다. 또한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 기둥과 같습니다. 자녀들이 모두 잘 자라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녀들이 그 다음 세대를 이어갈 것이기 때문에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그들의 곳간과 들판에도 임하였습니다. 곳간에는 여러 종류의 곡물이 가득하여서 필요한 대로 내어줄 수 있습니다. 또한 들판에는 양떼가 수천 마리이고 곧 수만 마리가 될 것입니다. 소떼가 무겁게 실었다는 말은 “살이 쪘다” 혹은 “가축이 새끼를 배었다” 혹은 “추수한 곡물을 무겁게 싣고 간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침략받는 일이나 나아가 막는 일이 없고 광장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없다”는 14절은 전쟁과 관련된 표현들입니다. 시의 처음에 전쟁의 이미지가 나왔는데, 여기에서는 전쟁이 없는 평화의 상태로 마무리됩니다.
2) 유일한 복 (15절)
15절에서는 위에서 주신 여러 복들의 근본 원인을 가르쳐 줍니다. 시편 144편에서는 신명기 28장에서 약속한 언약의 복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신 28:3-8). 언약의 복이 가족에서 추수로 확대되고, 백성으로 넓혀졌습니다.
그 중심은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모시고 섬기는 백성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의 처음에서는 다윗이 주님의 종이었는데, 이제 나라 전체가 주님의 종이 되어서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모시고 섬기면서 살아갑니다.
144편은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가장 큰 복이 되심을 가르쳐 줍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재물과 자녀, 평화 등에 생각이 갇혀 있지 않고 그러한 것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만족합시다. 하나님께서 “나의 인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믿고 복종할 일
시인은 전쟁의 과정에서 나라의 평안을 구하고, 그럼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다 감당하게 되기를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비할 때에 자기의 무가치함,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시인은 전쟁에서 승리하였을 때에도 자신을 낮추고 주님을 찾았습니다. 또한 전쟁을 수행할 때에도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는 방식으로 여호와의 전쟁에 참여하는 것임을 알았기에 그는 주님의 이름만을 높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나라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의 개인과 가정뿐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에도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때에 시인은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모시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하고 선언합니다. 복의 핵심은 외적으로 번성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자기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높이는 것입니다.
144편의 시인은 다윗의 이름으로 호소하였고, 자기를 다윗과 동일시하였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언약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시대를 살아갑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이 시편을 부릅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의 범위에는 자녀, 사업/직장, 안정과 평화가 포함됩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복이 우리의 자녀와 그들의 자녀로 이어집니다. 자녀가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공적으로 고백하고,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언약의 복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교회의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신앙을 전수하는 일에 힘씁시다.
우리 자녀를 위해 예수님의 이름 부르며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보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실 것입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복을 주실 것입니다.
거짓의 말과 폭력이 난무하는 이 세상 가운데 우리는 영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물려줄 것은 바로 이러한 신앙의 복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모시면서 사는 이것이 우리가 물려줄 가장 크고 중요한 유산입니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5절, 시내산에서 여호와의 강림하심
시인은 시내 산에 강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내려오시니까 산들이 떨고 산에서 연기가 나고 번개가 있었던 그 장면을 생각하면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시인은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던 그 광경을 생각하였고, 더 나아가서 그 백성을 이방인에게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구합니다(참조. 사 64:1-2; 삿 5:4-5; 합 3:3-7).
<참고> 8절, 이방의 거짓의 입
이사야 7장을 보면 북이스라엘과 아람 군대는 다윗 왕가를 없애고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겠다는 말을 퍼뜨렸고, 그 말에 이스라엘의 왕 아하스와 백성의 마음은 삼림의 수풀처럼 흔들렸습니다(사 7:2, 6).
<참고> 시편 144편에 등장한 세 개의 손
144편을 보면, 세 가지 손이 있습니다.
첫째, “주님의 손”이 나를 위하여 싸워서 나를 구원해 주십니다. 여호와의 전쟁에서는 주님께서 전쟁을 친히 수행하십니다. 내가 수행하지만 사실 주님께서 하십니다. 내가 쏘는 화살은 “주님의 화살”이 됩니다.
따라서, 둘째로 활을 당기는 “나의 손”은 열 줄 비파를 당기는 손이 됩니다. 나의 손은 주님의 손 안에 있고, 나는 주님의 자비를 구하면서 살아갑니다.
셋째로 “원수의 손”이 있습니다. 그것은 폭력과 거짓의 손입니다. 그는 자기의 이익을 따라서 행하는 사람이고, 이익을 따라서 행하기 때문에 폭력과 거짓에 의존합니다.
※ 유튜브에서 “정영철 시편 144편”을 찾아 들으며 연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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