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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와서 남편을 만났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농촌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식구들 식사를 준비하고 남편 보내고
교육청에 와서 방과후 교사로 나가기위해 교육을 받는단다.
자기 소개를한다.
이제 2년된 그녀는 막내란다.
1월에 아이 데리고 다녀왔는데도 엄마가 너무 그립단다.
딸. 시어머니. 시아버지 ,남편과 살고 있는데 아들을 낳고 싶단다.
남자가 더 좋단다. 아들 딸 구분하지 말라고 해도 아들이 좋단다.
소녀처럼 양갈래 머릴 땋아서 늘린 그녀가 아름답다.눈도 크고 눈동자가 맑다.
입은 크며 윤곽이 뚜렷한 육감적인 입술이고 코는 약간 펑퍼짐하다. 얼굴은 갸름하고
피부는 하얀 고전적인 미인형이다.
앞가르마를 타고 애교머리카락 네가락를 짙은 눈썹 아래로
버드나무처럼 늘리기도하고
칙처럼 휘감아 가기도 하고
진달래가지처럼 나란히 늘어지기도 했다.
한마디로 아름답고 젊고 어린 그녀가 귀여워 자꾸 보게된다.
쉬는 시간 내게 다가와
"엄마가 보고파요."라고 말한 그녀에게 내년에 가면 되지않을까요?했더니
돈이 없어요. 돈이 있어야 가지요.
난 순간 미안했다.
돈이 없어서 이곳에 온 그들에게 사회감각을 잃은거다.
다시 순발력을 발휘하여 그럼 돈 벌어서 가면 되잖아요.
기다림은 또다른 즐거움을 준답니다.
엄마는 건강하고 아들 낳고 나면 또 보내준다면서요.
당신은 넘 아름다우니 걱정마세요.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내 주위로 다가오는 이들이 곱다.
난 2년됐는데 아이가 없어서 못갔어요.
5개월된 이도 아이가 있는데 자기는 없단다.
아이를 낳으면 필리핀 보내준단다.
8남매이고 엄마,아빠랑 10명이 살았고 언니랑 사촌언니도 한국으로 시집왔고
화상 채팅,전화랑은 맘대로 한단다.
가고잡단다.
아이가 안생겨요? 수심가득 어린 눈빛으로 날 보는 그녀에게
내 아는 이는 7년만에 아이가 생겼답니다.
걱정말고 지금처럼 재밌게 공부하며 살아요. 그러다 보면 어느순간 아이가 생긴답니다.
남편은 몇시에 들어왔어요?
12시 지나 매일들어와요.
그럼 기다려요. 아니요. 피곤해서 자요.
그럼 언제 별을 봐요. 쑥쓰럽게 웃으며 몰라요. 그런다.
집에서 학교 끝나고 뭐해요.
청소하고 빨래하고 시어머니,시아버지 식사준비하고 바빠요. 피곤해요.
그렇군요. 학교 나오는게 재미있어요,
녜, 아주 재밌어요. 컴도 하고 여러가지 배워서 좋아요.
임신 10개월인 아이리스! 난 형편이 좋아요.
아들과 남편과 나랑 살아요. 딸 낳았으면 좋겟어요.
자꾸 잠이 와요. 다음주에 아이를 낳아요.
그런데 대단해요. 어떻게 이렇게 나와요.
남편은 아들과 산책가요. 아침에 6시에 일어나 밥먹고 산책가는 동안 자요.
그녀가 대단해보인다.
둥그런 무덤보다 더 큰 배를 해가지고 나와서 몸을 흔들어가며 소녀처럼
자기 소개를 하는 그녀가 오래도록 남아있다.
그대처럼 아름다운 딸 낳으실거 같아요.
어머니 귀가 먹어서 소리를 크게 쳐야해요.
남편이랑 아이 보내고나서 나랑 같이 먹어요.
아무리 말해도 몰라서 큰소리로
몇번 불러요.
그녀들의 진솔한 하루 일상 이야기를 들으며 아름답다란 말밖에 다른 말이 아니 떠올랐다.
마주이야기 강의 중에 갑자기
"썩을년!"이라고 갑자기 외친다.
이모는 며느리가 있었는데 도망갔어요. 그때 이모가 울면서 마루를 치며
이 썩을년은 어디갔냐고 잘해줬는데..했어요.
뭘 물어도 진솔하고 담백하게 말하는 그녀들에게 오늘 배움이 깊다.
그녀들 모두는 정말 순수하다.
꾸밈도 없고 그냥 몸짓과 표정으로 모두 말한다.
사랑해요. 여러분!!!
한국에 와서 행복하게 딸,아들 낳고 뿌리내리세요.
그동안 작은 힘이나마 도와줄께요. 건강하고 다복하세요.
이날 이 분들에게 무용을 가르쳤다.
스트레칭류의 에어로빅인데 참으로 잘 따라하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해서
무용샘으로 간 나를 행복하게 해주더라...가슴깊이 그들의 진솔한 삶이
내 가슴 덮인 날이고 그런 덮임은 또 다른 나눔을 하게 만든다.
병가 내고 있던 기간이라 가능했고 거의 전주에서 먹고 자고 했다.
후배가 문화해설사이고 아동문학 작가라서 그 집에서 주로 머물렀고
따슨 밥 해먹이고 날 그렇게도 잘 해주더라.
우리 가족은 모두 해외에 가있고 나 홀로라 여행과 나눔으로 일상을 채웠다.
이주민 여성 센터가 전주에 있고 주로 임실이나 이런 곳에 이주민 여성들이 많았다.
전북쪽에 많았는데 농촌이라 그런거 같고 전남쪽과 경남북 어디라고도 들었는데 기억
안나고 이 해에 이주민 여성문제에 대해 인터뷰까지 했다.
이주민 여성문제는 심각했다.
한국에서 결혼을 원하는 이들은 대개의 경우는 멀쩡한 총각은 드물고
두 번 결혼하거나 알콜 환자들이었다.
이주민 여성들은 이십대나 십대의 대학 나온 여자들로 개발도상국 국가라서
우리가 그랬듯이 밥벌이가 필요해서 결혼하는건데 그걸 빌미로 브로커들이
달려들어 정부 돈을 갈취해가고 그녀들에게 돈을 주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고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고 시어머니들은 또 이삼중으로 그녀들을
괴롭힌다.
그런 문제로 목사님께서 적극적으로 나섰고 나도 함께 하길 원하셔서
인터뷰 정도만 해드렸고 난 예나 지금이나 앞에 나서길 싫어해서
그만했다.
지금도 그네들이 그립다.
전주 이주민 센터 운영은 젊은 부부가 했는데
일년에 5000만원 정도 예산이 나오면 그걸로 그네들 교육시켜
재취업시키고 맞는 여성들 도우러 다니고 암튼 힘든 일을
도맡아해서 부인은 주로 재정을 담당하여 국가에서 예산을
가능하면 많이 따내서 이네들에게 돌아가게 해주려했다.
아주 야무진 여성으로 아이가 아직 젖먹이라 데리고 다니면서 일했는데
내 손에서도 많이 놀았다. 아기는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길들여져서 순했고
엄마는 그동안 컴퓨터로 일을 하고 남편은 모든 것 다 책임진다.
밤에도 이주민 여성이 알코올에 쩔어 들어온 남편에게 맞고 있다면
달려간다. 다른 일 다 버려두고 일단 목숨을 살려야한다.
살인이 나도 그냥 사고사 처리되는 경우도 허다해서 남편은 이 여성들 위해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하고 고소도 많이 당한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고소를 한다.
자기 며느리 자기들 맘대로 하는데 너희들이 뭔 상관이냐?
이 식이다, 이러니 테러의 위험도 있고 참으로 힘든 일 투성이이나
어디나 명암이 있듯 좋은 일도 허다하다.
자리 잘 잡아 아들,딸 낳고 잘 살고 취업되어 중국어 가르치고 베트남어 가르치며
행복한 이야기도 잔뜩이다.
난 이네들 만날때마다 내 가족 같았다.
오래도록 내 두 아이와 함께 했는데 미국으로 유학보내서
보고 싶은 맘 병이 날 지경인데 이들은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혼자 이주민 센터에 오는 이들은 드물고 언제나 간난쟁이 아이나 3~5살 정도 되는
아이와 함께 해서 기저귀도 갈아주고 간식도 필요로 해서 함께 했다.
여름이라 딸기를 지고 갔더니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 받는 얼굴들을 해서 내가
오히려 더 쑥스럽고 미안했다. 불과 10만원도 안되는 돈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행복을
준다면 정말 돈을 잘 쓴 일 아닌가 싶었다..
그 해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냥 그네들과 함께 전주에 머물고 싶다.
우리 후배는 봉사활동 8년째이고 참말로 그 집 남편 많이 도왔고
총각이었던 그 사내가 좋은 부인 만나 이제 자립하니 반갑고 좋단다.
언제나 걱정이 되던 사내였는디...
입도 건 후배는 아주 음식도 잘하고 집을 이젠 한옥마을로 옮겨 언제든 오란다.
그녀 그리워 전주 가고잡은데
갈 시간이 없다
이주민 여성들 그리워
전주 가고 잡은데
난 언제나 한가하려냐?
이 세월동안 논 적 없다..팔자가 겨울 토끼라서 밥 찾아 나서야 된다나?
꽃이 질 때까지 벌어야할 팔자란다. ㅎㅎㅎ~~
전주에선 여러 인연들을 만들었다.
아파서 후배집에 있다보니 알프 모임도 그때라서 유명한 분들 참 많이 만났다.
우리 후배 나 땜에 매일 알프로 출근이다.
알프란 제 3세계 저항문학을 하는 문인들을 우리 문단에서 초대한거다.
우리 문단이 아주 영미 중심이라 아시아,아프리카쪽 시인.소설가,문인들과 만나
토론,문화교류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 했는데
난 아동문학쪽 대표로 참석했다.
그 해는 내가 교과라서 수업시간 조절이 가능해서 모두 한 후에 연가를 냈다.
내 경력이면 연가 23일 이상인데 아이들 땜에 쓰지 못했는데 이건 정당한 사유라서
3박 4일 전주에서 머물고 서울에서 3박 4일 한 후 그 분들을 공항에서 배웅했다.
★ 황석영님과 함께 파주 출판단지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들 만찬에 함께 하다...
★ 남아프리카 최고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웅쿠시 할아버지와 함께....
그 해에 기억에 남는 분들이 참 많다.
매튜 할아버지다. 이 분은 노동자 출신이다.
손이 갈퀴손이다, 고생줄이 깊어서다.
첫 결혼은 실패하고 두 번째 결혼은 25살 차이나는 배우랑 했는데
또 헤어졋단다,
왜 헤어졌어요?
그땐 넘 어렵고 아주 많이 사랑해서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오.
왜 많이 사랑하는데 헤어줘요?
매튜 작가는 쓸쓸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포옹도 안하는 날보며 그 분은 좀 더 열린 사고를 하길 바랬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이 주는 상도 받지 않고 민중이 주는 상이라면 받겠다고
할 정도로 자존심이 대단한 진정한 시인이셨다,
아무거나 잡숫지도 않고 고구마라든가 음식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식물성 음식만을 드셔서
후배 집에서 고구마,감자 자주 쪄다 드렸고 이야기가 참 잘 통했다.
매튜작가를 만나는 설레는 기분이 좋았고 할아버지는 78세임에도 정정했고 다감하기도 하고
소년의 감성과 부끄러움을 지니고 있어 좋았고 식사 후엔 동그란 원탁 식탁을 중심으로 모여 시를 노래를 하며 담소를 즐겼다.
아시아,아프리카 문학인 연대를 위한 모임을 다녀와서
( 동무에게 쓴 글............)
전북대에서 열린 아동문학과 다문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하여 이른 아침에 마음이 분주하다.
얼굴을 아는 이는 둘이니 대부분이 생면부지다.
난 그냥 잘 웃으며 이들과 잘 어울린다.
시인이고 아동문학평론가. 잡지사 기자들,교수들이고 교사는 발제자 후배와 나 둘뿐..
발길을 돌려 전북대로 향한다.
2시30분이 시작인데 20분정도 여유가 있어 혼자가 된다.
단풍 구경한다며 먼저 들어가라 하고 난 전북대 둘러보다 시간되어 들어간다.
맘은 강의보다는 전북대 둘러보고 싶은데 성실한 학생이므로 들어간다.
3개의 발제문 중 2개는 비몽사몽에 듣고 한가지만 정신집중해 듣지만 혼자 질문한다,
아무도 질문을 안하길래, 머쓱해서 나라도 한거다.
그리고 나서
나는 몰랐으나.
한국의 문인들이 총출동하는 -황석영, 고은,백낙청등-알프 모임 개막식이 있고
행사가 어마어마? 일회래요. 삐그덕 행사진행 솜씨.. 각국의 민요와 축제로 개막식을 마치고..
오늘 가야 하나
난 눌러 앉는다.
내일 봐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니고 황석영님부터 문인들이 하는 발제를 모두 들어야해서
교감님께 강사 있으면 보건휴가 내겠다니 흔쾌히 그러라고..
이 새벽 일어나 바로 우리반 공부할 거 챙겨주고..
샘께 메일 날립니다.
전 참 행복하죠?
참 기회를 잘 잡죠?
작가들이 모두 오고 재미난 술판이 벌어졌으나
전 새벽형이라 어느 동시인 집에 일찍 와서 일찍 잡니다.
다들 수다로 밤을 지새는데
전 그냥 꿈나라로 가요.
낼을 위하여 궁금한 문학인들의 이야기 듣고 싶으나 그냥 잡니다.
접을 건 접을 나이가 되었기에..
세 여자분 모두 시인이라 나 메일 쓰는데 일어나서 차마시며
걸직한 농담 오가고 참 맛난 분들이세요.
생면부지인 여자 시인들이 끌어안고 하길래..
"어! 나도 안아주세요."하면서 내가 가서 안기고 또 끌어안아주며 뒹굴고..
아주 재미나요.
삶이 재미나고 즐거워요.
오늘 들을 김진경형 강의도 좋을 것 같고 디아스포라. 평화, 여성,언어.특별등
분과별 토론도 좋을 거 같구요.
전북대 진짜 잘 왔죠?
전 새로운 일을 만나게 되면 가슴이 뛰어요.
기분이 넘 좋아서 새가 되어 날아갈 것 같아요.
이만 접죠?
옆에서 시인언니가 이불을 개네요.
저도 동참해야해서..
저의 행복한 맘 전하고 샘도 행복하시와요.
메롱? 저도 알아요 ^^*~~~!!!!!
2007 . 11. 09. 07 ; 58분에
★ 매튜 할아버지랑 봉사활동 학생이다. 외대생이었던거 같은데 곱더라..
아름다운 젊은이상을 보다.
★ 이 작가에게 배당된 봉사활동 학생인데 야무지더라. 완전히
이상한 대회라며 이 분이 원하는 걸 들어드리지도 못하고 자기가 넘 무능해보여
자원봉사 괜히 했단다. 아마도 이 작가가 원하는 건 가물거리지만 자기 글이 이상하게
실려서 다시 제대로 잡아주길 원했는데 누구도 대표성을 지니지 못해 여러 다리를 거쳤는데도
답이 안와 우리 민간외교의 헛점을 봐서이리라.
작가들이 이런 큰 대회를 치뤄보지않았고 국가에서 예산을 준 것도 아니었을 것이라서 이 대회를 치뤄내는데 아주 고생줄이 깊었을 것을 생각하니 지금 생각해도 위대한 대한의 작가들이다
저항문학을 하니 가능했을거 같다.
자기꺼 다 내놓고 살아가는 이들이었지만 세월속에 변질이 있었을 것이나 난 이해 안된다.
왜 그분들은 그렇게만 살길 바라는지....나도 같은 잘못 저질렀다.
황지우 시인이 배가 나오고 목이 굵어졌고 살이 쪄서 실망했다.
거기다가 사회도 잘 못 보고 ..완전 버벅이었다.
그렇지만 그것만도 어디인가?
남들은 작가들 초대도 못하는데 언제나 영미문학만이 최고인 줄 아는데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의 긍정성을 찾자며 함께 한 것만 어디인가?
난 그분을 존경은 아니하지만 그래도 비난은 할 주제가 못됨을 이 세월에야 느낀다.
그러니 누굴 원망한단 말인가? 내 주제가 섞자나 빠진 주제에...
그 분은 우리시대의 참 지식인 중 한분이셨다.
나는 너다 503.
새벽은 밤을 꼬박 지샌 자에게만 온다.
낙타야.
모래 박힌 눈으로
동트는 地平線(지평선)을 보아라.
바람에 떠밀려 새 날아 온다.
일어나 또 가자.
사막은 뱃속에서 또 꾸르륵거리는구나.
지금 나에게는 칼도 經(경)도 없다.
經이 길을 가르쳐 주진 않는다.
길은,
가면 뒤에 있다.
단 한 걸음도 생략할 수 없는 걸음으로
그러나 너와 나는 九萬里 靑天으로 걸어가고 있다.
나는 너니까.
우리는 自己야.
우리 마음의 地圖(지도)속의 별자리가 여기까지
오게 한 거야.
나는 너다 - 126
나는 사막을 건너 왔다, 누란이여.
아, 모래 바람이 가리고 간 그 옛날의 강이여.
얼굴을 가린 여인들이 강가에서 울부짖는구나.
독수리 밥이 되기 위해 끌려 가는 지아비, 지새끼들.
무엇을 지켰고, 이제 무엇이 남았는지.
흙으로 빚은 성곽, 다시 흙이 되어
내 손바닥에 서까래 한 줌.
잃어버린 나라, 누란을 지나
나는 사막을 건너간다.
나는 이미 보아버렸으므로
낙타야, 어서 가자.
바람이, 비단 같다, 길을 모두 지워놨구나.
황지우 시인의 시다. 이 분은 시의 형식면의 파괴를 가져왔다.
음울했던 80년대, 거침없는 시어와 새롭고 낯선 형식을 통해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 지식인과 소시민의 허위의식과 맞서 싸웠던 시인 황지우.
그는 80년대 한국시에 있어 하나의 상징이었다.
황지우가 새 시집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문학과 지성사)를 냈다.
‘게 눈 속의 연꽃’(1990)을 낸 지 꼭 8년만이다.
격랑의 시대를 헤쳐온 한 시인이, 이념이 무너져버린 90년대의 진공상태에서 걷잡을 수 없는 정신적 공황을 겪었던 한 시인이, 지금 세기말의 끝자락을 어떻게 건너가고 있는지.
이 시집엔 그러한 고뇌와 사유의 흔적이 짙게 깔려 있다.
‘슬프다//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모두 폐허다/…/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뼈아픈 후회’중)
--- 다음에서 퍼온 글......
이렇게 멋진 시인이 계셔 후배시인들이 올곧게 살려 노력하는거다..
우리시대에 아름답게 길라잡이 시인들이 어찌 이 분 한분일까?
여기까지다.
참 이 글 쓰기 전 엄마께 전화를 했다.
씀박이 먹구잡아서리...봄이 와야 한단다. 대신 닭장 해놨다.
먹으러 오거라. .엄니나 잘 지내세요.
내 걱정 말고 너나 잘 살아. 난 잘 먹고 잘 사는데 넌 못먹으니 그게 걱정이다.
울 엄니는 내게 빚진 것이 많다 생각해서 그런지 워낙 살갑다.
미안할 뿐이다, 닭을 열 네마리나 사다가 닭장을 만들었단다.
이젠 손녀딸꺼까지 다 댄다..울 엄니 최고의 어른이다. 먹거리는 다 책임지는데
이젠 쉬라해도 아니다.
몸은 움직여야 건강해진다며 경동시장으로 밀대 밀고 가서 시장 봐온다
오마이갓 그냥 동네에 이마트있는데 절대 안가신다. 비싸다고,,,,코스트코 있는데도
아니 가신다. 이젠 내가 카드를 만들어드려서 모시고 가야지.
망우역에서 지하철 갈아타고 청량리 경동시장 가신다.
버스는 차비들고 지하철은 공짜니까다...이런,,. 우리 부모님이 모두 그러셨겠죠?
다시 간다...2007년 시대로....
매튜 할아버지는 단연 톱이였다.
한 사람의 시가 끝나면 다른 사람이 받고 했는데 할아버지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다.
그 많은 시들을 외우다니 참 기억력 대단하셨다,
난 그때 노래를 불렀다,
아름다운 시에 노래를 붙인 이원수시에 곡을 붙인 노래와 가곡들을 했는데 서정적이라 아름답단 말과 박수를 듬뿍 받았다,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운 옛님은 아니뵈네
들국화 애처롭고 갈꽃만 바람에 날리고
마음은 어디고 붙일 곳 없어 먼 하늘만 바라본다네
눈물도 웃음도 흘러간 세월 부질없이 헤아리지 말자
그대 가슴엔 내가 내 가슴에는 그대있어 그것만 지니고 가자꾸나
그리워 그리워서 진종일 언덕길을 헤매다 가네.
우리들은 모두 자유로운 영혼들이라 누구랄것도 없이 각자 자기 나라의 노래와
자기가 직접 시를 바로 낭송했다. 밤은 깊어가고 서울을 올라가야해서 자꾸 시계를
보다 드뎌 혼자 일어나 나오는데 모두들 아쉬워 하셨고 담을 기약했다.
한번은 아프리카 공화국 최대의 작가인 웅쿠시가 호텔룸으로 초대했다,
혼자가 아닌 여러 명 함께 오라했다.
난 그런거 안좋아한다,
남의 남자 침실이 있는 곳에 갈 이유가 없어서 싫다했는데
그 후로도 꾸준히 자기 방으로 초대했다.
아프리카 공화국 가고 나서도 우린 오래도록 메일친구였다.
I saw you everyday I would fun
Love win have no end ~~~ (웅쿠시 책에 써준 글)1
You and I happy days~~~루이스 웅쿠시님의 글에 답장으로 보낸 글 2
Respectly lewis~~~
Yesterday, your letter were happy.
You leaved but I keep.
Your memory is lively but you not ugly.
You are very very preety, lovely.
I like your life and a essay literature
.
me too same life.
I'm release from office a teacher and an alien.
so I like you.
I do not exist;there is no person so I lonely, sad.
I wish conversation korean's person but no.So I made aphasia,eating disorder.
I am very painful but overcame .
I'm happy.
I'm writting essay literature.
I want read essay literature.
possible your literature send for me.
so I'm appreciative .
I am many concern sexuality and opposition literature.
I keep your rose flower how I made dry flower .
reason you are bear in mind korean.
As rose korean people was filled with the fragrancesmell of roses.
stop!
I spend one hour I write for letter so I hate english.
I want learn korea language.
Of course, I will learn english beacause you.
I.m busy I will go to school.
be well and be happy always!
Bye! lewis ^^*
2007. 11.21. early in the morning~
from seoul gil nam...
웅쿠시 할아버지는 아프리카에서는 대통령 다음으로 유명한 소설가 시인이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서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인텨뷰에도 응하지않고 나와 대화하길 원했고 그런 날 이용하는 분들도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 민중시인들이었다.
난 민중시인들과 오랜 유대관계가 있어 그들의 시가 편하고 좋았다.
자연스레 전주에서 어울리게 되어 교과서에 시가 실려서 유명한 정일근이라는 시인이
있는데 난 몰랐다. 어떻게 정일근을 모르냐며 가수 김원중이 날 비웃었다.
"내가 아는 걸 당신은 다 아느냐 사람은 다르다.정일근을 내가 알아야 될 이유없다.."
그러자 바위섬의 가수인 김원중씨는 농담이라 말했다.
그네들은 차를 마시고 있다가 내가 가니까 먹으라 소리도 않더라.
거기에 기죽을 내가 아니라서 과자를 집어 먹었더니 정일근 시인이 시비를 걸었다.
이거 우리꺼니까 먹지 말라고...알았다,,자! 내가 차 한잔 사겠다,,드실 드실 분 드시라
그러면서 우리 차를 시켰다,
거긴 전통 우리 찻집이고 한복이 전시되어 있어서 우린 거기서 전시회를 보고 웅쿠시 할아버지가 하두 나를 쫓아다녀서 도망간 거였다.
내가 산 우리차를 함께 마시며 정일근 시인은 나를 힐책했다.
넌 너무 빤스러워, 여자애가 기도 안죽고,,외국 작가들하고도 잘 어울리고
그게 뭐 잘못됐나요? 사람은 똑같은건데..단지 자연환경이 다르고 나라만 다를 뿐이잖아요.
그리고 빤스럽다니요..남자가 말하면 자연스러운거고 여자가 당당히 말하면 빤스러운건가요?
한참 아기시군요..하고 대응했다.
난 그런거 싫어한다.
여자니까 가만 있으라는 것
넌 여자니까 남자 받치라는 것
조용하고 얌전하게 애교 부리라는 것
난 아니다,,
사람으로 함께 하길 원한다. 웃고 싶을 때 웃고 눈물나면 눈물 흘리는 가슴이 따스한 사람이길 원한다,여자로는 넘 좁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사람으로 보지 남자로 다가간 적이 없다.
이야기 할 상대로 보는 거지 애인 삼으려 보는 것이 아니니 당당한 거다.
★ 전주 선술집인가에서 2차를 하기위해 문인들이 모였다,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님도 보인다.
그날 이후 정일근 시인하고는 오라비와 동생이 되었다. 정시인은 이혼하고 혼자 사셨는데 은현리 쑥부쟁이라고불렸고 개인 카페였나를 안내해줬는데 울산에서 꽃을 가꾸며 어머니랑 함께 살았다. 오라버니는 날 이뻐해서 전화도 자주했고 그냥 우린 절친한 오누이 사이다.
정일근 시인은 웅쿠시 할아버지랑 친할 걸 보고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셨다,
웅쿠시는 거만해서 잘 사진 찍지 않았고 특히 남자랑은 사진을 안찍었다.
한국 여자가 멋지다며 여자들하고만 어울렸고 한복 입고 나타난 여류문인들과 깊은 포옹나누기를 즐겨하셨다.난 절대로 악수도 안했던거 같은데 전주에서 마지막 날 만찬 자리에서 러브샷도 하며 어깨를 두르며 사진도 찍었다. 왜냐 깔끔했기때문이다..아름다운 소설가의 모습이었으므로...
난 깔끔하면서도 든 것이 많은 조선의 선비스타일을 좋아한다.
★ 정일근 오라버니와 함께 코아호텔 리셉션장에서
오라비한테 칭찬을 들으니 하늘을 날 것 같네.. (2007. 11. 24. 07;37)
엄마와 같이 받는데 울 엄마도 눈물나오고 나도 눈물 흘렸어.
오라비 글이 넘 웃겨서. 참 착한거는 맞대, 울 엄마가 사람 볼 줄 안다고 자주 만나도 된대.
울 엄마는 대학 때도 남자전화 허락한 적이 없어서 우리 집에 전화한 친구 없어.
하하하...
쑥부쟁이 진짜 좋아해.
그리고 사진 정말 예술적으로 잘 찍었네.
언제 이렇게 찍었어. 난 한장인 줄 알았어.
웅커시샘과 거의 매일 메일을 하는데 사진 보내줄 때 주려고 그런거지
왜 줄걸 안주면 빚진 것 같잖어.
난 시간이 좀 나서 강의도 다니고 그래. 물론 옛이야기와 놀이.노래, 아이들 말 잘들어주는 법등. 가장 관심분야가 교육이라
내 이름으로 된
책 한권없지만 난 아무래도 괜찮아.
그동안은 넘 아프고 바빴거든. 근데 남편과 아이들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어. 그래 여유가 생겨 강의다니는 거고
전주도 그래서 3박 4일 할 수 있었던거지.
난 가족이 가장 소중해.
지금은 엄마,아빠 곁에서 살아. 울 엄마가 학교 다녀. 초등학교를 못나오셨거든
재밌어 죽겠어. 새벽에도 당신 학교 이야기하느라 내 시간 다 잡아 먹어도 난 그게 더 좋아.
잘 지내고,
고마워. 아는 사람이 별루 없어서 심심할 때가 많거든 꼭 가볼께요.
사진값해야 되는데 오라비가 시간이 나야 말이제.
내 탓 아니야.
그럼 건강하시고 주님가운데 복된 나날들 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행복한 하루 ^^* 메롱!
눈오는 아침에 우리 아가들과 행복했어. 난 아가들이 참 좋아. 이대로 살거야. 글은 필요없구..
우리 딸이 생일 선물로 사준 장갑을 빌려가더니 승헌이란 놈이 잃어버렸어. 난 그래서 슬퍼..
백일홍꽃 백일 동안 붉다는 말은
은현리에서 거짓이다
늦봄부터 늦겨울까지 백일홍
피고 지며 백일이 가고
지고 또 피며 이백일이 지나도록
내내 붉다, 화무십일홍이란 옛말도
은현리 이백일홍 앞에서는
크게 야단맞을 말이니
나는 살면서 백일 이백일
누군가를 붉게 사랑한 적 있는가?
그런 붉은 사랑 받아본 적은 있는가?
풀코스를 전속력으로 뛰는 마라토너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붉은 저 숨찬 사랑 앞에
사람의 사랑, 너무 쉽게 피었다
너무 빨리 지는 꽃 같다
정 일근 씀.
사람의 사랑1 너무 쉽게 피었다. 너무 빨리 지는 꽃 같다.
그래서 난 사랑 싫어 했어. 진짜 말로만 하고 평생 지킬 사람이 있을까 싶었거든.
오라비도 그렇구나. 근데 나도 백일. 이백일 누군가 사랑해 본 적도 없어.
그리고 한참 엄살부린 내가 부럽군,
근데 달필이다. 어쩜 그냥 한달음에 달려가네..일필휘지형인가? 11. 25. 12;18분에.....
정일근 오라버니와도 오랜 메일 친구였으나 사소한 오해로 헤어지게 되어 미안하다...지금 이 순간 그날의 기억들이
떠오르지만 담담하다. 오라버니의 잘못이 아님을 알기에,,한국의 교육제도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기에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오라버니는 나의 진한 농담을 힘들어하셨고 메일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난 그때 옛이야기 공부 중이었다..후배들과 거원초교에서 공부하는데 오라버니는 퇴근 중이었는가보다
전화가 왔던가 아님 했던가 싶기도 하고 오라비는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농담이었는데 여자가 그렇게 입이
걸어서야 어디 쓰니? 라고 햇던거 같고,,,난 그냥 있는대로 표현해요.. 했던거 같다. 날 다른 사람으로 포장하는 걸
원치 않는 성격 때문이고..지금 다시 간다해도 여전히 난 그렇게 살거다...오라비 잘 지내제? 은현리 쑥부쟁이 시집 많이
읽었다. 타고난 시인같다... 참 잘 쓴다. 그러니 교과서에 실리겠지요? 잘 지내소...어디에 있든 한국의 든든한 어른으로
신경림 시인처럼 후배들에게 거목으로 남아주길 ....
아무리 남자가 아닌 사람으로 본다해도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닌 경우는 그냥 말만 하지 육체적인 접촉은 경계한다. 난 사람들이 육체적으로가 아닌 말로 대화하길 좋아한다.
육체적인 접촉은 냄새가 난다고 해야할까 암튼 냄새에 아주 민감해서 집에 가면 바로 샤워를 한다.내 몸에서 뭔가 냄새가 나는것 같아서다.매일 반신욕을 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아주 코가 예민해서 임신하면 바로 안다. 음식을 못 먹고 냄새가 나서 냉장고 문도 못열어 거의 먹지않고 임신시절을 지낸거 같다. 그러다 3개월이 지나가면 괜찮아졌다.
소화기관이 안좋아서인거 같기도 하고 암튼 잘 체하고 사례도 잘 걸리고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기 판판이다...그러니 누구에게 뭐라 할건가 내가 바보같은 걸..ㅎㅎ~~
뭐 쓰다가 또 옆으로 샌건가?
모르겠다. 아이들 데리고 컴실간다. 1교시가 9시부터인데 우리 반은 8시 40분부터 시작이다.
이유는 글을 올리기위해 컴실로 간다.어제 쓴 글을 올리라해도 학원다니느라 바쁜 녀석들,거기다가 인터넷 안되는 놈들이 있어 아침시간에 컴실 간다.
담에..
컴실에서 돌아와 아이들 영어 샘께 인수인계하고 지금 이 자리..사실
병원가서 감기약 사먹어야하는데 보건실가서 종합 감기약하고 진감탕만 가져옴.
왜 보건샘은 서울대 출신이라고 자랑만하지 감기약을 분야별로 준비 안해놓는건지
예산이 분명히 나오는데 그럼 코감기,목감기,한약으로 된 거 나와 있는데 한 마디로
학교 와서 자기 아이꺼 공부 가르칠꺼나 신경쓰고 있고 학교 일은 걸리지 않을정도로만
하니 참 참 참나다...그래도 겉으론 친하다. 안 그럼 잘 어울려살지 못한다는 말 들으니까..
그런데 이 놈의 컴퓨터가 집에 꺼는 노트북이라 글씨가 작아 진하게 14를 해도 보기가 힘들다.
이젠 눈도 말썽이고 한 군데도 성한데가 없으니 누굴 탓하리오,,
날 혼내야지..정말 난 아이들하고 사는게 체질인거 같아 좋다.
영혼이 맑다.
학기말이라 소란스럽긴해도 맛나다.
어젠 구슬 5통을 샀다, 단 돈 4000원 밖에 안들었는데 이쁘다고 난리가 아니다.
오늘부턴 구슬치기를 하면서 아예 구슬을 줘버렸다.
집에서도 가지고 놀라고...내가 사갖고 왔으니 자기 개인 구슬도 함께 내놓고 친구들과 함께
놀자 했더니 죄 가져오고 신난 얼굴이고 집에 있다며 낼 가져온단다.
천사가 따로없다. 왕구슬은 하루씩 돌려쓰기이다.
4교시에 나가서 하는데 추워서 안나간다했더니 자기들 안춥단다.
사실 11시 30분쯤은 해가 따스해서 나가도 하나도 안춥다.
하늘이 어찌나 맑고 청명하던지..아이들더러 보라했더니 진짜 맑단다.
그런데 입은 그러면서 눈은 구슬치기에 가있다..ㅎㅎㅎ~~
이 나이의 아이가 경치에 관심이나 있을꼬? 나도 그랬구만..
류엽이 우리 반 가장 문제아 중 하나인 녀석~~
류엽이는 양보가 없고 자기만 생각하는 아이의 원단이다.
얼마전 엄마가 왕따를 당한다며 도와달라해서 돕긴 했지만 아이가 변해야한다.
아주 이기적이고 베품이 없고 자기 밖에 모른다.
오늘도 몇 번 소리지르고 짜증스런 목소리인지 모르겠다.
외할머니가 길렀고 아빠,엄마 9살 차이가 나고 엄마는 전업주부라 아이 교육 신경 많이 쓴다.
문제는 아이가 엄마를 이겨먹는거다.
자식이 하나이니 오냐오냐하고 거기다가 뜻만 받드니 녀석이 아이들과 못어울리는거다.
오늘만해도 그렇다.
자기 의자가 친군께에 끼어서 안빠지는가 본데 옆에 짝한테 소리지르고 짜증스런 얼굴 하고
짝꿍여자는 우리 반에서 가장 공부 못하는 아이라 그냥 당하고 산다.
난 달려갔다.
고쳐주고자 맘먹고 있었으니.
왜 그러니? 류엽아! 얼굴 펴고 얼굴 구기면 평생 구기고 산다.
의자가 끼어서 뒤로 안나와요?
근데 뒤로 빼면 되잖아.
지민이꺼에 끼여서 뒤로 안나와요.
그럼 화내고 짜증내면 알아서 뒤로 빠지니 의자가..
지민에게 빼달라 말했어.
예,,,
이쁜 목소리로 말안하고 짜증내고 신경질냈어요. 지민이 말이다.
그럼 넌 왜 가만 앉아있니?
류엽이한테 말했어.짜증스런 목소리 신경질내는 모습 싫다고 말했어?
지민인 하도 당하고 사는데 익숙해서 그냥 무신경인 기집애다..
거기다가 기초수급이고 여러가지로 불리하다.
류엽인 실력과 경제력으로 지민이를 누룬다.
평소 그런 모습을 알기에 지민이 교육 들어간다.
지민아! 너 왜 네 기분을 말로 표현안해.
류엽아! 기분 나빠 왜 걸핏하면 소리지르고 짜증나게 말하는데..실수할 수도 있잖아,그렇게 말하고
나선 의자 옆으로 비켜줘야 할 거 아냐? 그냥 가만 앉아만 있으면 어떡해.
그냥 지민은 날 치어다만 본다.
아유~~~ 답답해.
하여튼 여자들 알아서 해.
뭐든 남자한테 다 양보하고 그러잖아, 그러지말고 네가 하겠다고 해. 알았지.이젠 여자 대통령 나와야지.제대로된 여자 대통령 말하는거야..알았지. 여자들이여! 제발 남자들한테 맘대로 하라 그러고
순종적이지 말라고 내 입을 열어 말하라구..은서,상은이가 고개를 크게 주억거린다.
그렇다. 이젠 여자들도 자기 길을 개척해야한다.
이건 백이 옳다. 남녀 모두 자기 길을 개척하고 그런 남녀가 함께 해야 행복하다.
누가 누구를 봐주며 도와주는 시대는 끝났다.
경제적 자립이 있어야 남여 모두 행복한거다.
그냥 여자가 남자에게 의존만 하고 있어선 언제나 남자의 결정을 존중해야만 한다.
보통 착한 남자가 아니면 말이다.
착한 남자라도 하루 이틀이지 자식 잘 키워주고 살림 잘해줘도 잘했단 소리보단 당연하단 반응이다,
사실 당연한거다, 남자는 돈 벌었으니까다. 여자는 살림하면서 자기 개발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나중에 남편에게 할 말이 있다.
펑퍼짐하게 퍼져서 드라마나 보고 있으면 남편이 정나미가 떨어져 바람 피우는 건 당연한건지 모르고
남편도 돈 벌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군림하려 들기에 여자도 바람 피우는거다.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 전가하지말고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우다.
그럴 때 우리 인생은 풍성하고 행복한거다..여유롭다.
근데 글길이 또 왜리로 자빠졌을꼬?
난 여자들이 순종적이길 원치 않는다.이유있는 순종이길 바란다.
실력이 모자라 순종함은 봐줄 수 있다.그러나 힘으로 여자이기땜에 찍어누르는 남자들은 무시한다.
대화 않는다.그냥 혼자 논다..그게 내 인간관계 논리다.
난 동무도 많다.하지만 없기도 하다.혼자일 때 편하기도 하다.
내 식으로 사고 할 수 있어서다.
또 또 또 다...이런..
류엽과 지민은 서로 사과하며 낼 부턴 화 안낸단다.
류엽은 사내들끼리 하는 경보 놀이에서도 소외를 당해 내가 도와줘야하는데 아이들도 이유가 다 있다,류엽이는 밥을 많이 먹는다,살이 쪘다, 잘 안움직인다. 중도 비만이다. 느리니까 뛰면서 하는 경찰도둑 놀이에선 류엽이는 환영할 수 없어서 아이들은 가능한한 류엽일 안끼여준거다.
참내,,,어렵다..
점심 먹고,,아이들 보낸 후 다시 이 짓이다.. 이 글쓰기는 아주 오랜 습관이라서리.
다시 2007년 11월 알프대회(아시아 ,아프리카 저항문학을 하는 작가모임)로 기억을 돌린다.
전주에서 마지막 날이다.
전주시장이 오고 유명한 문인들 다 모인자리다.
금산사부터 전주에서 유명한 곳은 다 다녔다. 우린 김밥을 받아먹으며 점심을 때우기도 하고
떡을 받기도 했다. 대부분 자원봉사자들로 충당했는데 인원이 턱없이 모자랐다.
난 무명의 외교사절이 되기로 했다. 아시아,아프리카 작가들하고 어울리며 사진도 찍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려드렸다. 우리 말을 배우고 싶어하는 말레이지아 시인에겐 또박또박 우리 말을 알려줬다.
★ 이 분이 바로 한국말을 알려주면 잘 따라하던 30대 말레이지아 시인이다.
출판단지에서 만났는데 파주 레스토랑으로 가서 황석영님,웅쿠시랑도 함께 했는데
황석영님은 영어를 잘했고 꼴초였다..난 영어도 버벅대고 건강이 안좋으므로 일찍
자리를 떴다. 30대 말레이지아 시인하고 말나눔 즐거워 주로 어울렸다.
컵하면 바로 컵, 잔하면 바고 잔 이라고 말하던 그 시인 보고잡네..추억은 아름다워라..
이 분 보내드리고 나서 사진과 함께 보낸 답장이다...........메일로 동무한 친구 많다.
그 해엔 영어공부 불났다.
펜팔을 해야하니 필요에 의한 공부라 빨리 가더라. 모르는 단어는 인터넷 영어 사전으로 해결하고
I'm happy because you met.
I listen to you will leave 6;40
so I ride taxi. oh! taxi price very That´s a stiff price.
I'm very busy because I must teach my children.
Last day( 11/14/2007 ) , I went airport for you with rose flower.
But, you are gone.
SO i'm very sad.
You leaved but I keep.
You are very very preety, lovely.
I love your life
me too same life.
I'm release from office a teacher and an alien.
so I like you.
I do not exist;there is no person so I lonely, sad.
I wish conversation korean's person but no.So I made aphasia,eating disorder.
I am very painful but overcame .
I'm happy.
I'm writting essay literature.
I want read poety.
possible your poety send for me.
so I'm appreciative .
I am many concern opposition literature.
As rose korean people was filled with the fragrancesmell of roses.
stop!
I spend one hour I write for letter so I hate english.
I want learn korea language.
Of course, I will learn english beacause you.
I send your picture.
Be well and be happy always! 2007. 11. 22. 21; 43분에~~~
이재복 아동문학 평론가에게 보낸 편지-----오랜 동안 함께 공부한 선배님이시다..아동 문학을 알려 준 분...
CHO GIL NAM,
My darling woman and Dearest friend,
I told you that I would check what time we were leaving the following day. When we reached the hotel after the dinner I checked my time for departure. It was 2.30 p.m. on 11/14/2007. I telephoned the number you gave me to tell you this. There was no reply on your phone. I left a message for you.
You told me you are working during the day. So I did not expect you to come to the airport. I am so sad you came for nothing I want to cry. Keep my lovely rose in a book. There is a slight chance I may visit Korea in the near future. Then I will see you.
I thought about you while I was flying for 11 hours to Europe. Now the photographs remind me how beautiful you are. My heart swells with feelings for you. I miss you and I miss South Korea. Thank you for your love and kindness and the gift at the dinner!!!
I look so ugly and you look so pretty - (which is how it should be) - in all the pictures, especially where we are holding up the glasses at the dinner!
Seet Korean Flower, be well and be happy always!
I give you lots of love from my heart.
Lewis.
루이스 웅커시라는 분이 제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분이 바로 섹슈얼리티와 저항문학, 연극,방송인. 저널리스트 등의 일을 하고 게신 72세 되신 남아프리카 공화국 작가이나
나라에서 추방당해 지금 스위스에 망명해 계십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말나눔이엇습니다.
여러 작가들 중에서 특히 이 분이 제게 많은 호의를 베풀어주신 분입니다.
전 한국 작가들과 한국 남자들과는 잘 사귀지를 못합니다.
잘 사귀지못한다함은 말을 안한다는거고 그냥 웃고만 있습니다.
그리고 빨리 집에 가버립니다.
그들은 언제나 내가 자기들의 사고로 살아주길 바라고 엑스트라이길 원해요.
선배님!
전 지독한 페미니스트이기도 합니다 .그네들이 이번에도 여자들을 도마위로 올려 겉과 속이 다른 존재라며 웃음거리를 만들더군요.
한국의 남정네들은 자기의 엄니,누이도 지켜내지못한 불쌍한 과거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가십거리로만 삼으려해요.
난 그래서 한국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불행하고 불만이 많아요.
전 이제는 알것 같아요.
왜 그렇게 오랜 세월 실어증과 거식증과 대인기피증등의 병을 날고 살았는지를요.
남자들이 내게 그렇게 한거예여
워낙 예민한 성품이라 느낌이 탁 오는데 말을 할 수가 없었지요.
이 말이 용인되어지는 말인지 몰라서요.
대학시절 전혜린과 까미유클로델, 마르크스부인의 이야기을 좋아해 읽고 또 읽고
혼자 교정을 거닐었지요.
전 언제나 혼자였어요.
아무도 날 이해해주는 이 없었고 또한 이해받길 원하지않았죠.
삶은 다른 거니까요.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 존재를 부정하게 되었어요.
고등학교까지는 이방인었다가 그 이후로는 쭉 내 존재를 부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을 만나니 참 좋습니다.
언제나 그 분은 제게 손을 내미셨는데 제 오만이 그러질 못한거죠.
웅카시님의 편지를 선배님께 보내드림은 이 분들은 솔직하다는 겁니다.
저도 아주 솔직해서 농담과 농담을 잘 받아주었고 우린 그 뿐이었고
동서양 문화의 차이가 많을 것 같아 아주 조심스런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후회가 됩니다 그 분은 꾸준히 나를 그 분 숙소로 초대하며
You don't touch me를 외치셨는데도
일찍 회식자리를 떠났어요.
사실 더 이야기 나누고 싶었지만 여자라는 이유와 한국문화를 오해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관습이 절 묶은거죠.
사실 그 분들이 묵는 호텔에서 마지막 날 리셉션을 하셧을때 한번은 친구들과 가도 될 것을
꾸준히 안된다 그러고..
오직 답답하면 그 분들이 넌 사랑을 못할거라 그랬을까요?
전 제 자신의 이런 이중성땜에 한참 방황하고 힘든 나날이 길었으나 지금도 여전히 그러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정열적인 성향을 가진 저는 감춤의 미학으로 삶의 방향을 정해 지금도 그렇게
억누르며 스트레스를 왕으로 받고 살고 있지요.
전 제 자신이 어떻게 될 지 모르겠어서 불안합니다.
난 우리 신랑과 다르지만 우리 신랑은 나의 인간관계를 이제는 인정하게 되었죠.
아니 속으로는 못한다 하더라도 병으로 사는 것 보다는 소통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해서
이제는 편지로라도 친구를 만든 겁니다.
그리고 이 정도는 우리 주님께서 용서해주리라 생각하지만 마음으로 부터 깊은 회개를 했습니다.
사람이 사람 대접을 받으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여자가 아닌..
그런 사람없어서 전 언제나 놔버리고 줘버리고 다시는 안보고 싶어 방에만 갇혀지냅니다.
이젠 벗어나야겠지요.
아니 우리 주님께서 제게 이미 벗어나게 해주셨구여.
모두 보여주셨어요.
전 이제는 죽지는 않을 거 같아요.
그 전에는 약을 들고 다녔거든요. 우울증도 그것의 일종이었겠죠.
전 우울증이 아니었다 말하고 싶어요.
말할 이가 없어서 말을 안한거고 쓸데없는 오해가 생겨서요.
전 언제나 혼자였지만 이젠 주님과 함께라 혼자가 아니랍니다.
선배님!
건강하시고요.
주님의 사랑이 선배님께도 전해지길 기도드렸습니다. 11.22. 08 ; 02분에~~~
thank you , me too.
I'm happy because you are alive ,living somewhere in this world, so I write letter to you.
important of thing is the present.
believe it or not, I believe not time to come.
so,
stop,
bye lewis ~~~
I send picture same you and this picture take directly from me.
beautiful rose flowe r~~~
snowing the playground with my children ~~~
Dear angel you too 의 웅쿠시 샘의 글에 답장 ( 11. 24. 04;26 )
Your letter are happy always.
early daybreak,
When I wake up sleep and I read letter.
You answer
Why are you so sad?
I 'm writing my life, I'm sick aphasia, once.
I can remember that matter. so sad.
But, It is now a thing of the past.
I'm happy this time.
stop!
early daybreak, I will go to public worship.
I sang a song the last night at the Core Hotel in Jeonju because like sing a song.
I specially like korea's song.
I'm busy.
Thank you your letter
bye! lewis~~~~~^^*
making snow a lump
[RE]RE: I went to an art gallery 에 답글.....
Today, I'm happy because I read a your book. -Mating birds-
-In a few days I am to die. Strange, the idea neither shocks nor frightens me.
What I feel most frequently now is a kind of numbness, a total lack of involvement in my own fate, as thouth I were an
observer watching the last days in the life of another man.
Every morning I stand at this small grilled window, gazing at the sky, which is a marvelous blue at this time of year :
the air is as clear,as hard as frost, and the sunlight has a soft shimmering quialty to it ; it blinds the eye ; it dazzles.
This sentence korean's language
( 며칠후면 나는 죽게 된다. 이상하게도 그 사실은 나에게 충격을 주거나 그 어떠한 위협도 주지 않는다.
내가 현재 빈번하게 느끼는 감정은 감각의 상실, 나 자신의 운명 속에 연루된 모든 것들에 대한 완전한 결핍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얼마 남지 않은 타인의 삶을 지켜보는 과찰자의 기분이 들게 했다.
매일 아침 나는 창살이 박힌 이 작은 창문 앞에 서서, 하늘을 응시한다.
하늘은 매 해 이 맘 때쯤 감탄할 만한 파란색으로 드리워진다. 공기는 맑고 서리와 같이 차가우며. 햇빛은 여기에 부드러운
반짝임을 더한다.눈부신 햇빛은 우리로 하여금 잠시 앞을 볼 수 없게 만드는가 하면 그 빛으 우리를 현혹시킨다.)
I love your book because your style are special, beautiful,good,lovely so I have a tranquil mood .
sorry, I'm busy ,I go to school.
Now, I'm studying English of yuor a work.
Bye! lewis ~~~ see you again Be a good day. I love you as a father.
아! 그렇다.
부부가 왔다. 이제 기억난다.
말레이시아 부부인데 말레이시아말로 자신의 강의를 했다.
그렇게 말레이지아 말이 아름다운 줄 첨 알았다.
대부분 통용어는 영어,한국어로 되었는데 말레이지아 시인의 말을 듣는 건 행운이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자기나라 말을 사용하면 좋을 것을 대부분 영어로 말하거나 했던거 같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이 부부 이야기 들려주며 말레이지아어 배우라고 하기도 했다.
왜냐 희귀한 말을 배워두면 나중에 써먹을 일이 분명히 있으니까다.
중동에서 일이 났을 때 빈라덴의 테러였던가 그 사진을 찍으로 우리 기자들이 갔는데 아랍어를 몰랐다고 했던가 그래서 서로 의사소통이 안되었단다.
누구나 다 아는 영어는 기본이다..이건 당연히 배워야하고 주변국가 말인 중국어,일어도 하면 좋겠다.
중국이 앞으로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하니 중국어는 필수다..
가슴이 답답다.
난 이런 언어 모두 안되고 일어는 제2 외국어라서 했지만 지금은 잘 모른다.
잘하고 잡다. 근데 시간이 아니난다.
교사를 그만두면 그때 하든가 아님 올해라도 할거다.
그러니 게으를 수 없는거다. 단 한번 뿐인 인생이라서다.
두 번이라면 대충 살고 먹고 자고 하고잡은거만 할텐데.
이건 딱 한번이란다.
할 수 없이 하고잡은거 뒤로 미루고 교사로,어머니로,올바른 어른으로 살길 택할 수 밖에 없다.
또 샜다..
말레이지아어 참 곱고 그 부부도 곱더라.
나랑도 말나눔 했는데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봤다.
나이차도 많이 나보이더구만...
★ 말레이지아 부부인데 시인이신 남편에 비해 부인은 젊다..아이러니를 느끼다. 말레이지아 풍습을 알아야 할 거 같다.
다시 알프로 가자....
애국은 다른게 아니다.
내 나라 말과 글을 세계에 알리는 거다.
우리말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야하고 글도 잘 써야하는 이유가 여기있다.
이젠 우리나라 작가 중 노벨상을 타야한다.
고은시인이 후보가 되었단 소식이 반가웠고 점점 훌륭한 문인들이 많이 나와서 노벨상 탔다는
기쁜 소식 접하기를 기대해보며...
이런 또 샜다.
다시 가자,
그 노부부의 모습이 아름다워 한 장 찍어드렸다.
웅쿠시랑 매튜님이랑 날 가장 베스트 프렌드라며 자기 옆자리 앉길 권하셨다.
그러다가 웅쿠시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매튜님은 점잖고 신사적인데 루이스 웅쿠시는 직설적으로 날 부른다.
할 수 없이 그 곳에 앉아야했는데 하필 전주시장 옆자리였고 사모님도 함께였다.
불편한 건 딱 질색이지만 겉으로 표내는 성격이 아니라서 웅쿠시님과 맛난 저녁 먹으며 즐거웁다.
거기다가 낼부터는 서울의 출판단지로 옮겨와서 3일을 서울에서 한다니 얼매나 좋은가?
이젠 전주 아니내려와도 되고 수업 끝난 후에 가면 되고 또 안가면 어떤가? 근데 맛나서 난 꼭 갔다.
1학년 담임이라 아이들 수업 끝난 후 조퇴하고 맛난 공부하러 갔다.
작가들이 일 진행을 하는데 영어도 안되고 진행이 매끄럽지 못하다.
즉석에서 초등샘인데 영문과 나오던 선배님께 전화를 했다.
우리 애국하는 길이니 와달라고 김남일 작가가 광화문 교보서점 안내인데 체계적이지 않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라 갈팡질팡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글만 썼지 영어도 안되고 또 이런 큰 대회를 치뤄 본 적이 없어서이리라.. 할 수없다 싶어 옆에서 도와드렸다. 잘은 못해도 아이들이 외국에 있어서 방학동안 다녔으니 귀는 조금 트인터라 했지만 역부족이라 할 수 없이 언니 초대했더니 흔쾌히 응해줬다.
언니랑은 그때만 해도 교회 같이 다녔고 경동초 같은 학년 근무한 친분으로다.
오더니 역시 언니는 진행을 잘했고 언어도 유창했다.
초등 영어강사다. 거기다가 아이들 가르친지 30년 넘은 베테랑 교사라서 오늘 첨 본 외국작가랑도 스스럼 없이 말나눔 잘하더라.
우린 대형버스로 이동했는데 교보에서 설명을 해줘야는데 언어되는 이들이 적어 결국은 교보에선 음반 구경하고 자유롭게 있다가 몇 시까지 모이라했고 인사동도 안내가 없어 대충 보고 버스로 가야만 해서 조직력의 헛점이 보여 속상했다.
★ 서울교대 선배이고 영문학 전공했던 언니랑 교보에서 아시아 작가였던가
암튼 소년같고 참 수줍음도 많아서 언니가 많이
옆에서 도와드리고 참 언니 남편도 작가다...
( 이 글을 읽는 독자를 위해 배려한다. 2007년도는 일학년 담임이었따. 2008년도 5,6학년 16반 교과샘이었다.
그래서 몰아서 수업을 할 수 있었고..저학년은 4교시 수업이니 당근 퇴근 후에 봉사활동을 하러 출판단지로 갔고
또 인사동 가는 날은 조퇴를 한 후 민간 외교 사절 노릇을 했다.. 전혀 공무원 신분에 어긋난 행동은 하지 않는다...)
봉사활동 하는 이들도 서울팀을 꾸려야했는데 그 파트를 맡은 사람이 없었다.
그야말로 한국 진행자 한 분만 있고 대화가 안통한다, 언어가 안되니..이 아이러니를 뭘로 말할꼬?
아니 외국의 유명한 작가들 초빙해놓고 역량부족으로 우리 한국을 욕먹이다니..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울 수 있는 한 최대한 도왔다.
가시던 마지막 날도 엉망이었다.
몇 시 비행기냐고 물어봐도 모른단다.
할 수 없이 공항에 일찍 나갔고 꽃 준비해간거 모르는 외국작가분께도 드렸다.
한국을 말하는 것이지 내 개인적인 피알이 아니다.
그 분들은 6박 7일을 함께 했고 대회하는 내내 난 가있어서 대부분 낯이 익었다.
그 전날 꽃을 샀다.
기분이 안좋을거 같아서 하두 엉성한 진행에 마치 구겨넣듯 사람을 차에 태워만 가지고 다니고
설명도 없고 하니 얼매나 갑갑했을꼬다..
인사동 가서도 그렇다. 물건도 살 수있도록 자유시간도 주고 그래야는데 일정이 빡빡하다는 이유 하나로 사육을 당한 느낌을 주면 어떨까 맘이 아렸다.
그래 꽃으로 그 분들의 마음을 달래려 사다가 포장을 했다.
싼 꽃 사다가 이쁘게 포장했다.
별거 아닌데도 외국 작가들은 감동을 했고 최고의 칭찬을 날리셨다.
난 그런 따스한 모임이 있어 행복하다.
2007년 11월은 아프지도 않고 우리반 아이들과도 넘 좋았다.
일학년 녀석들이었는데 엊그제 또 점심 초대 받았다.
참 이쁘고도 이쁜 녀석들이고 그 녀석들이 그립지않음은 있을 때 잘해줘서다.
승헌이네 가족이고 그 가족과 세 가족이 함께 어울려서 만나기로 한다.
하두 전화가 와서..그런데 아이러니가 있다.
난 이 제자 전화번호를 버렸다.
귀찮아서다.
옛인연은 찾는 성격이 아니라서다.
그런데 그날 학교를 갔다.
갑자기 승헌아빠의 선행이 생각나서 밥 한번 대접하려해서다.
어느 해인가도 전화를 해온 걸 아파서 그냥 끊어버렸다.
그후로 머쓱한지 전화가 없었다.
그래 미안한 마음 전하고 잡았는데 번호가 없어 그날 오후 그 전 학교로 가서
전화번호 물으니 안 알려주고 그 쪽에서 연락하게 한단다.
그랬는데 그날 오후 승헌 전화가 왔다.
깜짝 놀라서 학교에서 연락 받았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보고잡아 그냥 전화한거란다.
이 명물이 그날 만난 자리에서 이러더라.
난 교과서를 가르친 적이 없다고...교실에서 수업 받아본 경험이 없고 언제나 숲학교에서 지냈단다.
승헌은 1학년때도 천재더라.
옛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손을 오르락 내리락 '이란 말이 나오자 난 몸으로 해주는데' 오르락'인데 손이 내려갔던가 보다. .샘 틀렸어요. 손이 올라가야 오르락이죠..ㅎㅎㅎ~~
난 이때부터 아이들이 무서웠다.
그 대단한 관찰력 앞에 할 말을 잃었고 더 자세하게 공부해야 함을 느꼈고 절대 아이들을 무시해선 안됨을 또 다시 배운 소중한 경험이었다.
난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탁월한 직관력,감성,관찰력,종합적인 사고력등 정말 많이 배운다.
이런 아이들과 살아서 난 따사로울 수 있고 정직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단순함도 아이들에게서 배운거다.
오늘도 구슬 4000원어치에 아이들은 행복함을 안다.
참말 좋아하더라.
그래 우리 학급 대표인 천이 엄마 전화가 왔길래 우리 아이들 선물을 구슬로 해달라했다.
학년말이니 아이들 위해 마무리 잔치 준비한단다,
계획을 말하라니 햄버거에 음료수나 선물 하나 정도란다.
머리속이 굴러간다.
"햄버거보다는 가격대비 영양대비 인절미,꿀떡 낱개 포장이 좋구요..음료는 식혜 6병이면 한 모둠당 한 병씩 돌리면 되고 종이컵 준비하면 되고 선믈은 요즈음 구슬치기에 빠져 있으니 그거 한 개씩이면 정말 좋아할거 같슴다.. 날짜는 모두 밥을 먹으니 아마도 종업식인 15일이 2교시까지이니 그날 함이 좋을 듯 싶네요."
"샘! 넘 안 바쁘시겠어요...음식은 그렇게 준비함이 좋을 거 같네요.."
"조금 바쁘긴해도 우리 아이들이랑 할 것이 많고 워낙 좋아하니 4학년 가기 전 함께 하려고요.
그리고 점심 먹기 전 간식 먹으면 아이들 밥맛 없어서 밥 다 남아요. 우리 아가들 아주 잘 먹어서 언제나 두 번 가져오거든요..점심엔 잘 먹어도 좋고 저녁은 6시 이후로는 먹지 않길 권해요. 이유는 비만의 원인이 되어서요. 그런데 살찐 아이는 특히 강조하지만 진이는 말라서 괜찮겠죠...
아이 하나 더 나슈..진이가 넘 좋아하고 또 애국해야죠..전업주부니 낳는 길에 쑴붕쑴붕 낳아요,그럼 진이가 다 해줄걸요."
"진이가 싫대요.. 당연하죠.불편하니까죠..별 말씀을 아이 낳는 것도 아들과 의논할라우,,에미가 돼가지고서리.의논할게 따로 있지 자기 편해서구만...ㅎㅎㅎ~~"
떠나고 나면 그만이다.
아니 정을 떼줌이 아이를 위해 좋다.
★ 매튜님과 외국작가들 공항에서 배웅해 드리다. 출판단지 사람들은 몇 시에 누가 떠났는지
모르더라, 당연하다 마지막 날은 일정없이 알아서 가게 했으니 시간이 다 다를 수 밖에..
그런데도 만날 인연은 만나는지 이 분들을 마지막으로 배웅했고 그 다정다감했던 루이스 웅쿠 시는 안만나게 신이 해주신거다.. 지겨워해서다... 우리 인생은 깔끔한 만남일 때 향기롭다.......
이런 또 샜다..다시 가려했더니 남편이랑 밥먹어야한다..
시간내서 들어와야지,,근데 모르겠다, 또 글 길이 어디로 셀지를...
남편이 맛난 밥 차려준다. 못먹는다며 나물이랑 최대하게 심심하게 해서 죽준다.
죽처럼 진밥을 해주고 유자차 주고 또 이야기 모두 들어주며 할 말이 없단다.
미안해서다..넘 자기 맘대로해서 미안하단다.
아이들 일도 이젠 내게 일임하고 넘 일류만을 고집하지않겠다하고 아들 일도 알아서 하란다.
사실 아들이 대안학교를 갔으면 해서 청계산 아래 발도르프 학교를 알아봤다.
아들은 나랑 같은 공부과다. 녀석이 외국 갔다와서 거의 뒤에서 세는 게 더 빠를 정도로 공부를 안했다. 담임에게 여러번 불려갔다.
주로 복장 문제와 근태문제, 교실을 어지럽히는 문제등이었다.
아들 담임은 교무부장이었다.
가장 강력한 자리이고 여샘인데 수학과목이다.
울 아들을 문제아로 삼고 날 불렀다.
외국 다녀온 아이가 영어도 별루 못한다나? 거기다가 지각이 잦고 옷입는 것도 불량하고
실내화를 실외화로 신고 다니고 거기다가 책상 밟고 다닌단다.
허참! 기막혀..할 말이 없었다.
아이들은 이렇게 집, 학교가 다르다.
난 아들이 집에서 일찍 나갔고 실내화는 가져가니 신은 줄 알은거다.
또 난 내 아이들보다 반 아이들한테 신경이 가있어 나는 가장 먼저 학교 가고 아들은 남편이 보낸다.
남편은 칼 출근형이라 늦으면 불벼락 떨어져서 아이가 지각한 적 없는 걸로 알았는데 학교가기 싫어 놀다가 간 건지 참 알 수가 없다.
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잡았다.
내 아들 맞나 싶었고 뭐든지 죄송하다 그러고 고개 조아리고 그러던 놈이 운동은 왕이다
축구,농구,배구,야구 모르는 선수 없다.
줄창 인터넷 검색이다.
물론 운동선수와 역사에 관한 거다.
내 아들은 날 닮아 역사는 백이 나온다.
역사샘 울 아들 얄밉단다.
공부시간에는 떠드는데 왜 백이 나오냐고다
울 아들 책을 많이 읽어서고 내 특별한 교육의 덕이기도 하다.
내 아들은 책을 끼고 살고 그래 난 걱정 안했다.
공부 못해도 스트레스 줘본 적 없다.
공부과가 아닌가보다 생각했고 기다리면 되니 그냥 뒀다
아이들이 말썽을 부려야 정상이고 나처럼 부모가 원하는대로 백프로 순종일때 문제가 생김을
알기에 그냥 뒀더니 오늘은 엄마랑 데이토하자해서 했더니 이젠 공부한단다.
그럼 하는거다.
또 좀 못하면 어떤가?
알아서 하는거고 못하면 거기에 맞는 직업을 가지면 되고
인생에 가장 중요한 건 성실성이니 그것만 길러주면 부모 할 일은 끝인거다.
일일이 참견할 이유를 모른다.
자율이다.
뭐든 다 통한다.
자율로..논어의 일이관지로 바로 이것을 말함이다.
하나가 통하면 뭐든것이 하나로 꿰어지게 되어있다.
난 우리 가정이 평화로워서 행복하고 내 딸은 다시 재수를 한다니 그냥 하라해도 되고
난 그냥 기다려준다. 대신에 자립심 기르려고 돈은 벌면서 재수하라했다.
돈 못돼준다 했고
교육방송 활용하고 책 많이 읽으라 했다.
인문학 공부 확실히 해야하고 동양 악기인 해금,가야금,거문고등 열 종류이상 악기를 다루라했다.
내 딸이니 가능하다.
난 내 자식 과신하지 않는다..내 아이에게 오늘 보낸 메일이다.
사랑하는 딸 다영에게 언제나 널 가슴깊이 사랑한다.
이젠 대학 결정을 할 때가 되었구나.
아참 인사도 없었네..오늘은 젤 추운날이라고 매스컴에선 난린데 엄마 이런 날도 똑같이 생활했다.
새벽을 깨워 글을썼고 반신욕을 했고 언니가 해 준 맛난 오곡밥 김 싸서 잘 먹구 그리고 또 학교다.
우리 딸은 어떤 하루였을까?
어제는...재영인 누나가 밥해줘서 잘 먹었단다.
그래..넌 언제나 내겐 엄마,언니 같은 딸이었지.
그래도 난 네 어미이니 이제 결정을 하자.
내가 너에게 대학을 권하는 이유는 소중한 추억이 있기 때문이고 인연이 중요해서야.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만남이 중요하다
누구랑 같이 있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지.
그래 실용음악과가 비록 전문대이지만 가길 원했고 그리고 나서 편입 시험보면 되고
이젠 실력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방법은 다니면서 재수를 하는건데
입학사정관제를 활용해서 4년제 서울에 있는델 갈 방법이 넌 충분하더라.
이유는 미국을 다녀온것 때문이고 자기 소개서를 잘 쓸 수 있어서지.
넌 남과 다르게 길렀거든
공동육아로 ...그건 프랑스의 똘로랑스를 너에게 공부시켰다는거야.
좀 더 나이들면 엄마에게 고마워 할 것이다.
이걸로 난 너에게 충고하길 그만하겠다..
일단 입학을 하는게 좋고 그 학교 다니면선 재수를 하여 서울의 4년제 대학에서 수학하는 게 좋을 거 같구나,
엄마 아는 이들에게 알아보니 입학사정관제 잘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할 거 같다고 하니
실질적인 실력기르기에 힘을 쏟아야 할 거 같구나.
책 많이 읽기 인문학 도서를 읽자..엄마가 권해주는 거 봐도 되고 송파도서관 가서 직접 구해보면 더 공부가 될 듯 싶구나.
그리고 악기 배우거라..해금,,알바한 것으로..엄마에게 이젠 손 안벌려도 될 듯 싶구나.
필요하다면 도와주겠지만 난 그때 알바해서 내 용돈 다썼다.울 아빠가 그렇게 부자라 돈 줬는데
친구들 밥 사주고..프랑스 문화원가서 알랑드롱 영화보고,,,경복궁 돌아다니구..
우리 악기 가야금도 좋구..거문고도 좋구,,암튼 실질적인 공부를 하자.
그럼 동생에게 대안학교 권해봤니?
동생을 대안하교 보내려 하는 이유 알지? 진짜 교육을 받을 수 있어서고 입학사정관제로 대학가니 스펙쌓기도 확실해서 내가 편하게 되는거지..아님 다시 엄마가 해줘야해서 건강이 안되니 이를 어쩐다니?
그만하고
사랑스런 딸!!
난 너희 둘을 최대한 배려한다. 대화가 통하도록 노력한다.
엄마 닮아 현명할거라 생각하고 오늘도 행복하거라.
햇살이 좋은 날이다, 이런 날엔 경복궁,덕수궁등 고궁을 돌았다.
인사동,삼청동 길.미술관,정독도서관길 돌며 행복했다..
안녕~~
내 딸애는 사실 학사제로 대학 편입하겠다했다.
아빠가 원했으니까다.. 아빠는 좋은 점수 딴 후 편입하라했고 난 그냥 실용음악과 가서 작사하고 보컬하면 길이 열리겠다 싶었다.
근데 딸은 전문대라 싫고 지금 안하면 후회할 거 같다며 재수한다해서 알아서 하라 했다.
일원 한 푼 대주지않는 이유는 이번에 과외비를 세 달에 1500만원을 썼다.
첨으로 내가 한 나쁜 짓이다.
딸은 기숙학원 갔다오더니 과외시켜 달라며 선생 모두 물어왔다.
영어 160만원,국어 백, 수학 160만원이다
난 기절했다. 이럴 수가 무슨 학원비를 이렇게나 많이 받는건지..
우리는 하루 종일 아이들 가르치고도 고작 25년 되가는 교사가 300만원 정도인데
이건 두 시간 가르치고 이 돈을 받는단다.
그리고 또 200만원인데 깎아주는거란다. 선심쓰듯..아마도 대한민국만이 이런 불량한 가격이 매겨져 있을거다. 난 격분했다. 시켜줄 수 없었다. 허나 딸은 막무가내였고 고 2때는 학원을 한 군데도 안다녀서 사실 딸에게 돈 들인 것이 많지않았다.
원하지 않으면 안시키는 것이 내 오래된 습성이고 돈은 필요한 이들에게 줌이 내 삶의 방식이라서다.
고민줄 길었다.
하지만 시켰다.
모두 일등급이 나오더라..4등급이 일등급이 되더라
그러나 인생이 이럼 공평하지않다.
수능은 패턴을 바꿨다.
꾸준히 공부한 학생은 어떤 식으로 바꿔도 먹히지만
급조한 공부는 티가 난다.
딸은 일교시 언어에서 혼동이 왔고
2,3교시 패닉 상태로 시험을 치뤘다.
일교시 언어시험에서 시간이 모자라고 푼 유형이 아니라
다른 문제가 덜컥 나오니 긴장해서 다음 수학,영어까지 영향을 미친거다.
갈 대학이 없더라.
수시도 넣은 것이 두 개 뿐인데 모두 떨어지고
그러더니 딸이 예체능쪽 재능이 있는건 아는데 실용음악과 보컬로 가고잡단다.
알아보니 전문대이고 최란씨가 부학장으로 있고 조수미씨는 고문이더라.
난 결정했다.
가라고 딸은 작사를 잘한다.
책을 많이 읽어서고 글쓰기를 많이 시켜서다.
딸은 누구보다 맘도 넓고 다정하여 인기가 많다.
키도 크고 몸매도 좋고 거기다가 외모는 준수한 편이라서
그런 딸애는 언제나 애물단지다.
공부를 하면 좋으련만 판판이 놀고 난 그때 더 놀아놓고 까먹는거다.
이러니 아이와 어른의 경계가 생기고 불화가 있는거다.
두 아이랑 이젠 화해하고 다시 믿어주기로 한다.
남편이랑은 여전히 좋은 예전의 관계로 돌아갔다.
어느 집이든 삐걱거림은 있다.
그 힘듦을 이겨냄이 옳고 또 못하겠거덜랑 그냥 현상유지만이라도 최고인거다.
아! 힘들어 오늘은 여기까지다..이런 또 딴 길로 들어섰네.
이제 그만 자야지..자정을 지나 25분을 달리고 있다.
새나라의 어른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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