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고흐 도개교(Pont de Langlois)
남프랑스 풍경은 모로코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기분이 상쾌하다.
아프리카 모로코(Morocco)는 가는 곳마다 메마른 황야로 황토색 일색이었는데 이곳은 이미 가을이 깊었건만 온통 푸른 포도밭과 올리브밭, 그리고 소와 말, 당나귀와 양들이 뛰노는 넓은 목장이 이어져 풍요로움과 여유가 보인다.
그런데 그 유명한 고흐다리를 가는데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니?? 10분 정도 걸어가 갈랫길에서 왼쪽으로... 한참을 가도 강이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가서 모퉁이를 돌자 저편으로 나무로 만든 엉성한 다리 모양이 언뜻 보인다.
다가가면서 보니 바로 그 고흐다리(Gogh Bridge)였다!!! 반가운 마음에 발걸음을 빨리하여 다가가 보니...
쓸쓸히 무성한 잡초 덤불, 인적 없는 좁은 수로, 사람이 살지도 않는 폐가 옆에 엉성한(?) 고흐의 도개교(跳開橋)가 하늘을 향해 쓸쓸히 팔을 벌리고 서 있었다. 너무나 보고 싶었던 고흐다리(Pont de Langlois)가 사람들로부터 아무런 관심도 못 받고 버려져 있는듯하여 서글퍼지는 마음을 가눌 수 없다.
고흐 그림 '랑글로아 다리' /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고흐 도개교(跳開橋)
<6> 네덜란드의 천재 화가 고흐(Gogh)
네덜란드의 천재 화가 고흐(Vincent van Gogh)는 살아생전에는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한 무명화가(無名畫家)였다.
오직 그림 밖에는 아무것도 못 하는 고흐는 미술상이던 동생 테오(Theo)의 보살핌 속에 생활했다고 한다. 생전에 1,000여 점의 그림을 그렸지만 팔린 그림은 단 1점. 그것도 미술상이었던 동생 테오가 400프랑(우리 돈 15만 원 정도)에 사 준 그림 ‘포도밭’ 1점뿐이었다고 한다.
정신질환이 있었던 고흐는 말년에 이곳 아를로 와서 창작 활동을 하는데 화가 고갱(Paul Gauguin)을 불러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는 등 정신병이 심해지자 고갱도 떠나고 곧이어 동생 테오가 병원으로 옮기지만 1890년 파리 근교 오베르(Auvers)에서 권총 자살로 37년의 생을 마감한다.
형과 특히 사이가 좋았던 동생 테오도 형 고흐 사망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6개월 뒤 34세로 세상을 떠난다.
<7> 고흐의 작품들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 /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 해바라기 / 밤의 카페테라스 / 자화상
아를(Arles)에서 거주하던 시기, 고흐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는데 ‘랑글로아 다리(고흐다리)’, ‘별이 빛나는 밤’, ‘반 고흐의 방’, ‘자화상’, ‘탕기 영감의 초상화’, 그리고 유명한 ‘해바라기 연작 시리즈’의 11점 중 4점을 이곳 아를에서 그린다.
이후 정신병원 입원해서 해바라기 연작시리즈를 계속 그렸고 ‘의사 가셰의 초상화’,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등 불후의 명작(名作)을 남긴다. 찢어지게 가난한 생활 속에서 동생 테오에 의해 근근이 생활을 이어나갔던 고흐였지만, 그가 죽은 후 그의 작품은 엄청난 고가에 거래된다.
‘의사 가셰의 초상화’가 경매에서 미화 8.250만 달러(약 900억 원), ‘해바라기 연작시리즈’ 11점 중 1점이 우리 돈 약 424억 원에 낙찰되었다.
현재 고흐의 작품가격은 1점당 평균 4천만 달러(약 430억원)이라고 하니 그저 놀랍고 안타까울 뿐이다.
아를시 경계에 있는 고흐다리는 홍수로 떠내려가 그 조각을 주어다 원래의 위치에서 조금 옮겨 세웠다는데 버스정류장으로부터 아무런 안내 표지도 없고 인적도 드문 곳 폐가(廢家) 옆에 쓸쓸히 서 있어 이 또한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