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어나무, Climax Tree
주말 전국적인 비 소식에 계획했던 지리산 산행을 취소하고, 연이틀 사무실 근처를 맴돌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비가 내릴까 싶어 커튼을 열어보니, 구름은 조금 끼었어도 이내 개일 듯한 하늘이다.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세종호수공원을 걸을까, 아니면 탱자가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하니 원수산으로 갈까. 마음이 잠시 엇갈리지만 “아직은 그늘이 필요해”라는 생각과 함께 발길은 원수산으로 향한다.
연휴 사흘째, 거리마저 고요하다.
어제는 비가 간헐적으로 내렸고, 간밤에도 보슬비가 흩뿌렸던 걸까. 산길섶 물기를 머금은 싸리나무들이 작은 보랏빛 꽃들을 매단 채 활처럼 굽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계절에 따라 꽃들도 색을 맞춰 피어나는지, 유독 요즘은 보랏빛 꽃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곧 칡꽃도 바람 그네를 덩실덩실 탈 것이고, 주변은 주머니에서 꺼낸 보랏빛 물감을 여기저기 찍어놓은 듯 물들 것이다.
촉촉이 젖은 산길.
매미들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걸까. 멀리서 속삭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람을 타고 들머리에 선 내 귓전에까지 닿는다.
아무런 장비 없이 고요한 숲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눈앞의 청량한 초록 잎들과 눈을 맞추며 걸어가자. 여름을 오롯이 태워낸 나뭇잎들이 하늘거리며 땅으로 내려앉는다.
오늘은 탱자나무가 나의 동무다.
오십여 미터 남짓한 거리에 탱자나무들이 작은 집을 이루고 있다. 콩알만 하던 열매가 제법 몸집을 불렸다. 살도 좀 올랐을까. 탱글탱글한 열매들이 시선에 들어온다. 눈으로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 다시 길을 잇는다.
구름이 노닐던 하늘이 어느새 맑게 개고, 환한 아침 햇살과 함께 시원한 길이 열린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늘 궁금했던 나무들이 백여 미터쯤 줄지어 서 있다.
소나무는 거북등처럼 갈라지는 껍질이 늘 자연스럽고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길게 나란히 서서 한 가족을 이루고 있는 저 군단은 대체 무슨 나무일까.
잎을 자세히 보려 다가가니 시선은 자꾸만 위로, 더 높이 올라간다. 내 어깨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잎을 달고 있어 가까이서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다.
나무의 이름을 검색해 본다.
서어나무다.
아, 지리산둘레길에서 만났던 바로 그 서어나무로구나.
올여름 지리산둘레길에서 만난 서어나무 군락은 너무나 우람하고 아름다워 한참을 머물렀었다. 일행과 함께 걷는 길이라 오래 지체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바로 그 나무다.
서어나무는 ‘근육나무’라 불린다. 그리고 ‘극상(Climax)나무’라고도 한다. 숲이 오랜 세월을 거쳐 가장 번성하고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 치열한 햇빛 경쟁을 견뎌내고 마지막에 자리를 잡는 음수 수종이라고 한다.
운동선수의 미끈하고 굴곡진 근육처럼 울퉁불퉁하게 발달한 줄기 덕분에 근육나무라는 별명을 얻었다. 회백색의 매끄러운 표면, 갈라지지 않은 껍질에서는 나무 특유의 단단하고 정결한 기운이 느껴진다.
수많은 나무가 햇빛을 다투다 스러져 간 뒤, 어둡고 깊은 그늘을 견뎌낸 후에야 비로소 숲의 주인으로 서게 되는 나무.
비바람을 견디고 시간을 버텨내며 줄기마다 굳은살처럼 차오른 그 근육질의 곡선에는 숲이 지나온 긴 세월과 침묵이 차곡차곡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서어나무의 줄기를 따라 올라간 시선의 끝, 저 높은 머리 위에서 햇빛을 부서뜨리는 잎들이 보인다.
문득 과거가 떠오른다.
한때 운동과 식단 관리를 철저히 하며 체지방을 25kg이나 감량했던 적이 있었다. 내 몸, 특히 다리가 굳건한 근육질로 변하고 혈압마저 정상으로 돌아와 약을 끊었던 건강한 시간들.
지금은 요요로 인해 조금은 고단하고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지만, 서어나무의 미끈한 근육질 줄기를 바라보며 마음마저 단단했던 그 시절을 고요히 복기해 본다.
서어나무 역시 단번에 숲의 주인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그늘을 버티고 묵묵히 시간을 견뎌낸 끝에 저토록 단단하고 미려한 몸을 얻었을 테다.
나 역시 다시 한번 나만의 ‘근육질 서어나무’가 되는 꿈을 꾸어본다.
숲의 깊은 그늘 속에서 오랜 시간을 견디며 마침내 스스로의 빛을 찾아낸 저 서어나무처럼.
2026.8.17. 송 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