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강해63(출20:16) 제9계명 거짓증거하지말라.
오늘은 십계명중 제9계명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의 사람이 있습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입니다.
왜냐? 이런 사람은 신뢰하기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말할 때, 특히 약속하는 말에는,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약속한 말은 반드시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은 그 사람의 신뢰도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이 한번 신뢰를 잃으면 회복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옛날 이솝우화 중에 늑대와 양치기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그 동화에서 말하고자 하는게 뭡니까?
반복된 거짓말은 신뢰를 잃게 되고,
결국은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말이 참 중요합니다.
성경에 보면, 이 세치의 혀에 대해서 많은 말씀이 나오는데,
특히, 야고보 사도가 이렇게 기록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약 3:5-10]
(약 3:5)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약 3: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불에서 나느니라
(약 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또,(잠 10:19)절에 보면,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는 말에 신중을 기해야 하고,
자신이 한 말에 진실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데이 C 셰퍼드라는 사람이 지은 ‘세 가지 황금 문’이란 글에는
언어생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충고하고 있습니다.
“말하기 전에 언제나 세 가지 황금 문을 지나게 하라.
첫째 문을 지날때, 그것은 참말인가? / 두번째 문을 지날때, 그것은 필요한 말인가?
마지막 셋째 문을 지날때는, 그것은 친절한 문인가?
이 3문을 지나왔거든 그 말의 결과가 어찌 될 것인가 염려하지 말고 크게 외치라.”
말의 중요성에 대한 격언입니다.
오늘 우리사회가 불신의 사회가 된 것도 알고 보면,
진실하지 못한 말들이 너무 난무해서 생겨난 불행입니다.
오죽하면 가짜뉴스/ 카더라 통신 그러면서 못믿잖아요.
심지어 공적인 언론에서 조차 진실하지 못하니 언론을 찌라시라 그러고,
기자들을 기레기라 비아냥 거립니다. 왜요? 진실하지 못한 결괍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는 지금,
진실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해도 관언은 아닙니다.
과거 우리는 신문이나 TV방송 뉴스를 보면서 그걸 다 믿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진실이 아닌 가짜를 진실이듯이 방송을 하고, 언론에 보도를 했습니다.
그래도 믿었던건, 믿을게 TV나 신문 밖에 없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1인미디어 시댑니다. 개인이 하는 방송이 얼마나 많습니까?
정보가 그야 말로 흘러넘쳐 납니다.
저도 사실, 유튜브를 많이 보는 편인데, 거기서 상당한 정보를 얻습니다.
그런데, 단점도 있어요. 상당한 부분에 왜곡된 정보도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무리 TV나 신문에 나오는 뉴스도 팩트 체크, 즉 사실유무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TV나 신문에 나온다고 다 믿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왜냐?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세뇌가 되고, 세뇌가 되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흐려집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늘 제 선친께서는 조선일보를 구독했습니다. 늘 그것만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신문에 나오는 기사를 100% 믿었습니다.
가장 대표되는 예가 있습니다. 과거 5.18광주민주항쟁을 빨갱이들 짓이라고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선친께서 김대중이는 빨갱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김대중 선생님을 빨갱이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까, 김대중 대통령만큼 민주화를 위해서, 민족평화를 위해, 남북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 분이 없다는걸 알았어요.
그런데, 선친은 늘 조선일보에 의지했고, 군사정권의 하수였던 어용 TV만 보니까
그렇게 세뇌되고 믿었던 겁니다. 그걸 또 자식에게 아무런 비판없이 가르치고....
그러니 저도 그렇게 믿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제가 신학교를 다니면서 다양한 서적과 지식을 접하면서 비판의식을 가지면서, 그분처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신 분이 없고, 그분만큼 철저하게 민주주의 신봉자가 없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 중에 제가 존경하는 분으로 백범김구선생님과 김대중, 문익환, 백기환, 장준하 문익환 함석헌 선생님 같은 분들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지금도 이런 분들을 보수주의자들을 빨갱이라고 그럽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그 분들이 정말 빨갱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아는 것은
그렇게 독재자들에게 배웠고 언론들에 의해 쇠뇌를 당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행한 일이죠.
참으로 무지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좌.우 모두를 살피는 지혜가 필요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에 무지하면 안 되고, 바른 역사를 알고, 바른 역사관을 가져야 안 속는거죠.
그리고 철저하게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살아야 개돼지 취급을 안받는 겁니다.
여러분, 요즘, JMS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죠? 신천지도 그렇습니다.
왜, 저런데 빠지는지 아세요? 비판력을 상실하면 그래요.
그래서 제가 항상 비판의식을 가지라....말씀드리잖아요.
아무리 목사를 존경하고 따르는 것도 좋지만, 목사의 설교나 지시가 부당하다.
이상하다 싶으면 과감하게 비판해야 합니다. 아닌건 아니다 해야 해요.
무조건 순종이 좋은게 아니예요. 저들을 한번 보세요. 얼마나 철저하게 순종합니까?
무비판은 무지의 결괍니다. 무엇이 옳고 그름에 대해 힘써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베뢰아 교회 이야기를 자주 언급하는 이윱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냥 아멘..안했어요. 그런가 안 그런가, 묵상했다
그 묵상이 뭐라그랬습니까? 원어에 보면, 조사하다, 연구하다, 비판하다의 뜻이 있다고 했잖아요. 다시말해서 팩트첵크를 반드시 했던 교인들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제 설교가 아무리 훌륭해도....혹시 잘못된건 없나, 옳은 설교인지, 아닌지
비판해야 하고 검증해야 합니다.
그런 능력을 가져야 제가 교주가 안되고, 여러분들은 광신도가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속이는 사람도 나쁘지만, 속는 사람은 더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 진실을 알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딴거 없어요. 비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단들에게 속는 겁니다.
우리가 남을 속여서도 안되지만, 거짓에 속아서도 안됩니다.
요즘, 인터넷을 보면 얼마나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부정확한 말들이 난무하는지 모릅니다. 이런 시대에 여러분들이 지혜를 가지지 않으면 다 거짓말에 속아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정직한 말을 하는 사람은 안 봐도 정직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말에 대한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계명을 통해 거짓증거에 대해서 철저하게 금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거짓증거는 거짓말 중에서 최고의 거짓말이며, 가장 위험한 거짓말입니다.
왜냐하니까, 이 거짓증거는 일반적인 거짓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중죄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때론 솔직한 말로 인해 내가 피해를 볼 수도 있지만, 우린 거짓말을 피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솔직한 사람에 대해서 너그러워야 하고, 용서 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경건이 뭐가 경건인지 아십니까? 거짓이 없는게 가장 최고의 경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경건이라는 말을 어떤 거룩한 삶으로 너무 거창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경건의 삶이란 그렇게 거창한게 아닙니다.
경건한 삶이란 혀에 재갈 물리는 것이 경건한 삶이고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이 최고의 경건한 삶입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고 (약 1:26)에 뭐라고 그럽니까?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 것이라..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실, 제9계명인 거짓증거 하지말라고 하시는 이 말씀은 우리 믿는 자들의 경건을 권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경건의 삶을 요구하시는 것이고, 진실한 삶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가 바닥인 것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데 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저는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 왜냐,
우리는 말과 행동이 너무 다릅니다. 설교에서는 거룩하게 말하고 아멘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서 설교대로 삽니까? 아니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이라도 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인지 고민이라도 하느냐고요...안하잖아요
이건 다 거짓신앙이고, 가증한 믿음 아닙니까? 거짓말이잖아요.
이래서는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신뢰받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개독교 소릴 듣는거죠. 그 비판은 우리는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신뢰받고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과 행동, 즉 언행일치가 되어야 하고
정직한 그리스도인이 되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신뢰받고,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사실, 경건이라는게 따른게 아니라, 신뢰를 줄 수 있는 삶 이게 경건입니다.
성경 딤후3: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왜요? 이런 사람은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신뢰받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말을 쉽게하고, 말과 행동이 불일치하면 그 사람은 아무도 신뢰하지 않습니다.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습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두란노교회는 신뢰받는 교회, 성도들이 되야 합니다.
하나님께와 모든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