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크루즈(Bay Cruise)
골든 게이트 베이 크루즈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적인 랜드마크를 감상 할 수 있는 1시간 짜리 관광 코스로 금문교 아래 크루즈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의 풍경, 현대 토목건축물의 7대 불가사의이자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인 골든 게이트 브리지 (금문교)와 알카트라 섬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아름다운 절경을 둘러볼 수 있는 최고의 크루즈 여행이라 할 수 있다. 피셔맨스 워프에서 출발하여 노스비치 지역, 해양 국립공원,포트 메이슨, 마리나 지구를 통과해서 전설적인 골든 게이트 브릿지의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하고 금문교 아래까지 갔다가 한때 악명 높은 감옥으로 유명했던 알카트라즈 섬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크루즈 여행은 피셔맨스 워프에서 마무리되며 이 경치 좋은 크루즈는 도시의 풍부한 역사와 멋진 해안가를 독특한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주어 물 위에서 샌프란시스코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여행이다.
▲알카트라즈 섬
▲금문교
■ 알카트라즈 섬( Alcatraz Island)
알카트라즈 섬은 연방 주정부의 형무소로 쓰였던 곳으로 한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다고 해서 ‘악마의 섬’이라는 별칭이 붙은 곳이다. 빠른 조류와 7~10도의 차가운 수온 때문에 헤엄을 친다해도 살아서 탈출할 수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모든 탈출 시도가 좌절되었을 만큼 워낙 악명 높은 감옥이었으므로 1962년 3인의 탈출 사건은 큰 화제가 되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실제 이들이 탈출에 성공했는지 여부는 비관적이라고 한다.
섬이 연방의 형무소로 사용되었던 것은 1934~1963년이지만 1910년대부터 미군의 포로 수용소로서 사용되고 있었다. 연방 형무소가 된 이후 투옥된 이들은 주로 유괴범, 은행 강도, 탈옥 상습범 등 중범죄를 저지른 죄인들이었다. 마피아 알 카포네와 머신 건 켈리 등 악명 높은 흉악범들이 이 섬에 투옥되었으며 섬 내에서도 여러 건의 자살과 살인 사건이 있었다.
형무소가 폐쇄된 지금은 투어 장소로 여행객들을 맞고 있다. 피셔맨스 워프에서 페리를 타고 섬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인기가 많으므로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알카트라즈 섬으로 향하는 페리는 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형무소는 섬의 정상에 있으며 셔틀이 있지만 걸어가도 된다. 형무소 안으로 들어가면 오디오 투어를 제공받을 수 있다.
감옥은 흉악범들을 수용했던 만큼 전부 독방이며 죄수가 말썽을 일으킬 경우 수감되었던 햇빛이 전혀 들지 않는 교정 독방도 공개되어 있다. 알 카포네가 감금되었던 독방과 알카트라즈를 탈주했던 3인의 수감자의 방이 인기 있는데 3인의 방에는 탈출을 위해 파냈던 벽의 구멍이 남아 있다. 희망자에 한해 30초 동안 독방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준다. 형무소 밖을 돌아볼 수도 있는데 고립된 섬이지만 자연 풍경은 아름답다. 여름에는 갈매기가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기르는 것을 볼 수 있다.
■ 알카트라즈 감옥(Alcatraz Prison)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고 불길한 감옥 중 하나
샌프란시스코 만 가운데에 '더 록'이라고도 불리는 알카트라즈가 솟아 있다. 스페인 탐험가인 후안 데 아얄라가 1775년에 이 자그마한 섬에 '라 이슬라 데 로스 알카트라세스', 즉 '가마우지의 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메마르고 돌투성이인 이곳은 1850년대에 등대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인적이 없었다.
그 무렵, 미국군대가 이 섬이 지닌 요새로서의 가치를 깨달았다. 곧 이 섬은 군사 요새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포로들을 수용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1912년 독방으로 분리된 커다란 건물이 들어섰고, 1920년대가 되자 이 음침한 3층 건물이 꽉 차게 되었다. 1933년 10월 12일, 미국 법무부가 군대로부터 이 섬을 인수했다. 그리고 1934년 8월, 건물은 악명 높고 잔혹한 연방 감옥이 되었다.
29년에 걸친 세월 동안, 알카트라즈 감옥은 알 카포네, 조지 '기관총' 켈리, 그리고 '알카트라즈의 버드맨'이라는 별명을 얻은 로버트 스트라우드 등을 비롯해 가장 강력한 범죄자들을 수감해 왔다. 아마 이 감옥이 유명한 가장 큰 이유는 열네 차례의 탈주가 시도되었고, 그중 단 한 건도 '공식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 중에서도 1962년 프랭크 모리스와 존 앵글린, 클래런스 앵글린이 가장 대담한 시도를 했는데, 이 일화는 할리우드 영화 <알카트라즈 탈출>을 통해 유명해졌다. 이 세 명은 끝내 잡히지 않았고, 익사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시체는 찾을 수 없었다. 오늘날까지도 그들의 운명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