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語別(무어별) 말없이 헤어지다.
林悌(임제,1549~1587)
十五越溪女(십오월계녀) 열다섯 살 아리따운 아가씨가
羞人無語別(수인무어별) 사모하는 사람과 말 못 하고 헤어진 후
歸來掩重門(귀래엄중문) 돌아와 겹문을 닫아걸고는
泣向梨花月(읍향이화월) 배꽃 비추는 달을 보며 눈물만 짓네.
이 시는 조선 명종 때 문신(文臣) 임제(林悌)의 무어별(無語別)이라는 시다.
무어별(無語別)은 "말없이 헤어지다."라는 뜻으로 마음속에 품고 흠모하던 사람을 만나고도 말 한마디 못 한 채 헤어져 후회하는 여인의 아픈 마음을 노래한 시(詩)다.
남녀 간 사랑의 감정은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인데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남녀 간 접촉이 금기시(禁忌視) 되었다.
나아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한 결혼을 강요당했다. 여성에 대한 야만스러운 사회제도가 문명으로 강변되던 시절이었다.
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춘기의 이 소녀는 평소 마음속으로 사모하던 이웃집 도령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 같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도령의 눈빛이 느껴지는 순간 심장이 떨리고 숨이 막힐 것 같아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온다.
소녀는 누가 볼세라 황급히 중문까지 닫아걸고는 뛰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가까스로 안정을 찾은 소녀는 문틈 사이로 배꽃(梨花) 비추는 달을 바라보며 소리 없이 흐느낀다.
여자가 남자의 옷깃만 스쳐도 경기를 하는 시절인데 그토록 사모하는 이웃집 도령과 눈이 마주쳤으니, 오죽하였으랴.
심장이 고동치고 얼굴이 화끈거릴 수밖에...
이 시의 작자 임제(林悌)는 당대의 호남아(好男兒)요 풍류객(風流客)으로 어느 한 곳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사람이었다.
특히 인간의 본성을 억제하는 사회제도에 환멸을 느낀 그는 평안감사 부임 길에 황진이 무덤에 들러 술 한 잔을 부어놓고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었는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고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설어하노라"라고 읊었다.
이 일로 어명을 받고 부임하는 자가 기생 무덤에 제를 올렸다 하여 파직을 당하고 벼슬을 잃고 말았다.
감성이 풍부한 이 시인은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으로 대변되던 그 시대의 모순을 가슴 부푼 사춘기 소녀의 사랑을 통해 항변(抗辯)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시에 등장하는 배꽃 이화(梨花)는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맑고 깨끗하고 청순 고결한 조선 여인의 모습을 닮았다.
모든 것이 억제되고 순결을 목숨처럼 여기던 조선 여인 말이다.
그토록 사모하는 사람을 마주하고도 부끄러워 말 한마디 못 건네고 헤어진 이 소녀는 가슴에 맺힌 한을 달랠 길 없어 늘 하얀 밤을 지새우며 살지 않았을까.
서로서로 사랑을 하면서도 안 그런척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된 갑순이가 갑돌이를 못 잊어 첫날밤에 하염없이 울었다는 사연처럼 말이다.
2024년 9월 5일 열운(洌雲)이 쓰다.
첫댓글 밤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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