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의 '빨간 구두'에서(조정현)
우리는 남과 다른 색을 지녀도 발목 잘릴 걱정 없이 춤추며 살고 있나요? 저는 21세기의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들 역시 19세기의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다른 색을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망나니의 칼이나 이발사의 가위 대신 미래에 대한 불안한 전망을 말해 주니까요.
우리 사회의 부모들은 성가시게 하는 질문이나 고집은 수긍해도,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겠다는 말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공부는 이 사회의 인력으로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아이의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그로 인한 어두운 미래(주로 가난으로 생기는)를 열거하며 아이들이 사회가 만든 레일 위에 올라타도록 만듭니다. 어른의 보살핌을 받으며 아이들은 모범적으로 그 레일을 달리죠. 물론 그중 소수만이 사회가 약속한 직업을 갖게 된다는 것은 아직 비밀입니다. 어른이 되어 사회가 속삭인 약속이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느낄 때에는 이미 레일 밖으로 나오기엔 늦었습니다. 부모의 손을 타지 않는 아이, 어른의 말에 순종적인 어른, 사회의 질서에 반기를 들 줄 모르는 국민·····. 사회가 깔아놓은 레일 위에서 만들어지는 인간 군상입니다.
우리는 장례식에서 빨간 구두를 신은 적이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이 설교를 늘어놓을 때, 춤추기 위해 뛰쳐나온 적도 없습니다. 우리는 순종하는 법을 배웠고, 나아가 상대 마음에 드는 법을 알아차렸습니다. 개성을 가진 아이는 따돌림을 당하기 쉽고, 취직하기도 힘들며, 회사에서도 이상한 눈초리를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하여 무난하게 사는 것이 가장 편안한 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빨간 구두’가 있습니다. 자신만의 개성이기에 결코 사라지지 않죠. 땅 위에서 춤추지 못한 빨간 구두는 마음을 짓밟습니다. 남을 불편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은 너무 강력해 카렌처럼 춤을 추기도 전에 우리는 발목이 잘린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그다지 강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발목을 늘 확인해야 합니다. 빨간 구두가 마음 밖으로 빠져나와 춤추기를 권할 때, 스스로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참느라 수고했어. 이젠 춤을 추어도 돼.”이렇게 말입니다.
(「동화 넘어 인문학」, 조정현, 을유문화사, 2020년 1월 30일 초판 6쇄. 286-2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