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甲子일
비견 욕지, 정인 건록
텃밭에서 뜯어온 쑥갓, 상추, 비트 여린 잎에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 마늘, 간장 소스를 뿌려 한 소쿠리 먹어치웠다.
거의 여물 수준의 아침밥.
서울에선 치커리, 비트 잎은 낱개 몇 장씩 비닐 포켓에 담겨 팔리는데
이곳에선 푸들푸들 싱그런 채소를 바로 뜯어 먹을 수 있다니
이런 호사스런 밥상이 어디 또 있을까.
이렇게 먹어대다간 조만간 텃밭을 초토화시키지 싶다.
오전 내 그리 높고 공활하던 하늘이
정오 무렵 무거워지기 시작해 서둘러 산보에 나섰다.
오늘은 대진 바다까지 걸어가는 길을 마스터하리라.
지자체는 감사하게도 나 같은 뚜벅이를 위해 블루로드란 이름으로 보행로를 닦아놓았다.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주는 파란색 보도블록.
흡사 도로시와 친구들이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는 노란 벽돌 길 같다.
무지개 너머 어딘가엔 저마다의 꿈을 이루어줄 오즈의 마법사가 산다지.
하지만 오즈를 찾아가는 여행길에서 그들은 스스로 꿈을 실현했었다.
차도 인적도 드문 파란 길을 김동률의 노래를 벗 삼아 걷고 걷다보니
어느새 송천과 바다의 합수지점.
매서운 바람 속에서 흰 포말을 뿜으며 거칠게 역동하는 바다가 거기 있었다.
뭍을 덮칠 듯 몰려오는 거대한 파도의 숨 가쁜 울음 소리.
모래바람 자욱한 해변엔 텐트를 치는 노부부와 담소 중인 두 청년만
아우성치는 바다를 등지고 저 볼일에 빠져있었다.
나의 빵 굽는 선생님은 그랬다. 보림선원 시절, 도반들과 바닷가에서 정진할 때 알았다고.
파도가 바다라는 것을.
더러 잔잔하고 더러 무섭게 뒤집어지는 파도라도 잠재우려 애쓸 필요 없다.
이미 바다, 다 하나일 뿐이라고. 그랬다. 파도는 바다였다. 다르지 않았다.
재가불교의 큰 스승 백봉 선생의 선시 ‘누리의 주인공’을 다시 읽어본다.
해말쑥한 성품 중에 산하대지 이루우고
또 한 몸도 나투어서 울고 웃고 가노매라
당장의 마음이라 하늘 땅의 임자인걸
멍청한 사람들은 몸 밖에서 찾는구나
걷고 바다보고 돌아온 시각이 두 시간 남짓.
저녁 인강 수업 시간에 맞춰 노트북을 켜니
온라인에 반가운 이름들이 별처럼 반짝인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더 없이 짧은 내게 주어진 시간.
천우신조, 천재일우로 만난 금쪽 같은 하루.
머리는 명징하지만 몸은 더없이 힘든 하루였다.
첫댓글 관어대쪽
지나다니던곳에
그림이 그려집니다
푸성귀는 조금안 남겨두세요^^ㅎㅎ
영해일기 재미집니다~ 영해일기5 기다려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