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있을 때였는데, 한 번은 길을 가다가 한 미국교회에서
신유집회가 있다는 광고를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광고를 보고 집회에 꼭 참석해서 기도를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참석했습니다.
30명쯤 되는 교인들 대부분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이었고 저만 어린 대학생이었습니다.
다섯 명의 미국 목사님이 강대상 위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사람들이 그 위로 올라가면
한 사람씩 순서대로 머리에 손을 없고 간절하게 기도해 주었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강대상에 올라갔을 때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목사님은
3-5분 정도 땀을 흘리면서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조용하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그리고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로
저를 위해서 간절하게 기도하셨기에 마음에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
렇게 안수기도를마친 후, 목사님 한 분이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 목사님의 설교가 제 마음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저는 제 마음 속에 여전히 큰 상처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목사님의 설교 내용은 그다지 새로운 것도, 충격적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무슨 병이든지 다 낫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갑자기 화가나고 서러웠습니다.
지난 4년 동안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고쳐 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그 기도를 웅답하지 않으셨던 이유가
바로 저에게 믿음이 없어서 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란 어떤 것일까?
믿음이 없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물론 제가 믿음이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믿음으로 기도하면
무슨 병이든지 다 낫는다는 말이 제게는 엄청난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저는 그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무슨 병이든지 다 낫는다고 하셨는데 정말그렇습니까?"
그러자 그 목사님은 믿음으로 기도하면 무슨 병이든지 다 낫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때 바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아마 하나님이 고쳐 주실 것이라고 기도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그렇게 기도해도 낫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배수진을 치고 있었나 봅니다.
그걸 의심이라고 부르기도 하 겠죠).
‘바울도 몸에 육체의 가시가 있어서 그 가시를 거두어 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이 고쳐 주시지 않았잖아요?
바울에게 믿음이 없어서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때 목사님이 먼저 바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었지
그 육체의 가시를 거두어 달라고 세 번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한 후에 바울의 병이 나았을까?"
저는 낫지 않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바울의 병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제가 낫지 않았다고 하니까,
바울의 병은 기도로 나았다고 하면서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 때문에 (그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를 몹시 괴롭히던 질병이었을 것임에는 대체로 동의를 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감에 큰 장애와 어려움을 경험했어.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그 육체의 가시를 거두어 달라고 세 번 간절하게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듣고 응답해 주셨지.
바울이 받은 계시가 너무 크기 때문에 교만하지 않도록
그 몸에 육체의 가시를 두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응답이었어.
바울은 그를 향한 주님의 은혜가 족하다는 응답을 받았고,
그 응답 끝에 바울은 ‘내가 약할 그 때가 곧 강함이라.
오히려 그 약함을 인해 하나님에게 감사한다’고 고백을 했지"
“맞습니다”
“이런 깨달음 후에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거두어 달라는 기도를 또 했을까?"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면 바울의 병이 나은거다. 그는 그 육체의 가시가 복음전파와 제자의 삶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서 거두어 달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바울을 약하게 하심으로 은혜를 의지하도록 하고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심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난 후에는
그것을 거두어 달라는 기도를 다시는 할 필요가 없어진거야.
그 육체의 가시가 이제 바울에게는 더 이상 병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수단일 뿐이었지.
그러니까 그의 병은 나은거다. 비록 불편함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그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자기가 불행하다 생각하지도 않았을거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니까. 바울에게는 병이 낫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더 큰 목적이고 소원이었으니까”
그 날 제 병이 나았습니다.
저는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하나님에게 제 병을, 제 다리를 고쳐 달라고 기도한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하나님이 원하면 고쳐 주실 수 있다 믿고 있고,
지금도 장애로 인한 불편은 자주 느끼며 살고있지만 말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깨닫고 믿음으로 그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할 수 있게 되면서,
저에게 장애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게 하는 은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기에, 저를 사용하시기 위해
제 몸에 장애를 두셨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계획과 선하신 의도를 믿어 신뢰하고 맡김을 의미하지
“된다, 된다” 해서 자기의 욕심과 필요를 채우는 수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회복하라] (노진준) pp 146-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