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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
주제 : 성령/승리/순교
제목 : 사라지는 스데반, 등장하는 사울
성경 : 행 7:54-8:1
찬송 : 191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201025 낙양교회 주일 낮 예배
행 7: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행 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행 7: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행 7: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행 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행 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앤드류 리벳(Andrew Rivet)은 라이덴 대학의 신학교수로 위대한 신학자였으며 성령과 신앙으로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1650년 77세의 나이에 성탄절 설교를 하고 바로 복부의 중증 질환을 앓았고, 1651년 1월 7일에 사망했습니다. 앤드류는 50년이 넘도록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으로 살았지만, 죽음이 임박한 며칠 동안 지난 50년의 세월보다 모든 면에서 더 많은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매 시간 하나님의 은총을 더 많이 느끼고 있다. 고통은 견딜 만하며, 나의 기쁨은 헤아릴 수 없다. 나는 더 이상 세속적인 걱정으로 짜증내지 않는다. 이제 이 모든 것이 먼지와도 같다. 오 주님, 당신의 제 전부이십니다! 당신께 가까이 가는 것이 제게는 유익입니다. 모든 지혜와 자식의 보화를 가지고 계신 하나님 안에 제가 거할 때, 얼마나 훌륭한 서재를 갖게 되는지요! 당신은 제 영혼의 스승이십니다. 50년 동안 제가 배웠던 것보다 당신이 저를 방문한 지난 10일 동안 더 많은 하나님의 성품을 배웠습니다.”
죽음을 며칠 앞둔 짧은 시간이었지만, 라벳 교수는 성령 충만했으며, 참된 예배자가 되었습니다. 고통과 죽음이 몰려온다고 하더라도 성령으로 하나님 임재 안에 있을 때 고난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질병이나 또 다른 고난이 하나님과 관계에서 여러분에게 어떤 유익을 주었습니까?
√오늘 본문은 두 가지 ‘보이지 않는 현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부활하신 주님의 현재적 활동입니다.
스데반은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증언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이제는 성령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령이 교회에서 활동하시고, 그리스도는 천상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계신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부재기독론’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는 사도들의 사상과 맞지 않으며, 신약의 부활 개념과도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부활을 두 가지 시상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는 부정과거요(눅24:6), 다른 하나는 완료(고전 15:4,12,14,20)입니다. 전자는 부활의 역사적 사실을 강조하는 반면, 후자는 과거 사건의 결과나 상태를 강조합니다.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 계신다. 그는 현재 하나님 우편에서 통치하고 계신다.”
모든 초대교회 복음 증거자들은 이 사실을 전했습니다. 베드로의 부활 증언도 스데반의 변증도 이런 사실과 잘 어울립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그분의 통치를 지속적으로 행사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인들의 승리입니다.
스데반은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복음 전도자로서 설교 한 편을 다 마치지 못하고 죽었고, 마치 주님이 그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고(눅23:46), 자기 백성을 용서하신 것처럼 죄 용서를 기도했지만(눅23:34) 그는 잠들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그가 죽었다고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가 자니라.’라고 기록합니다. 그는 안식의 세계, 부활 생명이 지배하는 새 시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승리의 입성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중요한 두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라지는 스데반
헬라파 유대인 회당에서 스데반은 몇몇 대표들과 논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지혜와 성령으로 충만한 스데반과 논박할 수 없었습니다. 변론으로 스데반을 이길 수 없음을 인식한 유대인들은 음모를 꾸며 스데반이 성전을 모독하고 율법을 거슬렀다는 명목으로 산헤드린 공회에 고소합니다. 분노와 살기가 충천한 유대인들은 스데반을 죽이려 했지만 공회 앞에 선 스데반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대제사장으로부터 기회를 얻어 최후 진술하는 스데반은 먼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스라엘의 족장 시대 역사를 설교하면서 이스라엘이 하나님 백성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의 결과임을 밝힙니다. 이어 모세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이끌었지만, 우상 숭배를 향한 이스라엘 조상들의 죄악 된 모습을 지적함으로 율법을 거스르고 성전을 우상시하는 같은 죄악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 유대인들이라고 간접적으로 책망합니다. 설교의 결론으로 이스라엘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하나님께 대한 거역은 하나님이 보내신 의인, 곧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죄악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지키지 않았음을 직접적으로 책망합니다. 스데반은 유대인들이 그를 고발한 죄목들을 역으로 유대인들에게 적용하며 응수했습니다. 이런 스데반의 연설은 유대인들로 하여금 자제력을 잃고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행 7: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의 설교는 그들의 마음에 찔림을 주었습니다. ‘마음에 찔려’에서 ‘찔려’라는 말은 ‘디아프리오’라고 하는데 톱으로 조각조각 자르거나 잘라내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로, 스데반의 설교에 유대인의 마음이 매우 격렬하게 반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심적 반응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아니라 분노였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산헤드린 공회에 2차 심문을 받으러 갔을 때,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받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시고, 그를 통치자와 구주로 삼으셨는데, 이 일에 우리가 증인이요 성령도 그러하시다”라고 발언했을 때 유대 지도자들도 스데반에게 반응했던 것과 똑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행 5:33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디아프리오)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유대인들은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갈았습니다.
√그와 반면에 스데반은 어떠했습니까?
행 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 대
스데반은 성령 충만하였습니다. 성령 충만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가득 존재하시는 것인 동시에 우리와 가까이 계신 것을 가리킵니다. 성령 충만한 스데반은 이제 영안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였습니다. 그가 열린 영안으로 본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스데반이 뭐라고 말합니까?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스데반은 하나님의 영광과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 계시는 비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광을 선포합니다. 스데반이 보았던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편에 서 계신 분이었습니다. 왜 예수님이 앉아 계시지 않고 서 계셨을까요? 사랑하는 종을 영접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무리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마음을 갈갈이 쪼개놓아 격분하고 있었는데 불에 기름을 끼어 얹은 것입니다.
√행 7: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행 7: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스데반의 순교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습니다. 귀를 막았다는 것은 매우 격렬한 저항의 표현이며, 율법에 신성모독죄를 범한 죄인을 죽이고자 할 때는 진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쳐 죽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예루살렘 성 안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현재 라이온문이라는 성문 밖으로 스데반을 끌고 나와서 돌로 쳐 죽였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를 당한 곳은 겟세마네를 지나면 얼마 안 지나 스데반이 돌로 쳐 죽임을 당한 스데반 순교 기념 예배당이 나타납니다. 여기를 지나 라이온문을 통과하면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의 통치 아래 있었기에 산헤드린 공회는 로마의 동의 없이는 법적으로 범죄자를 처형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빌라도에게 데려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들의 위선과 악행을 고발하는 스데반의 설교를 듣고 분노로 인해 불법적으로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의 ‘발아래 두었다’는 표현은 그 물건에 대한 온전한 통제권을 그 사람에게 맡겼다는 뜻으로 사울이 스데반의 죽음에 공식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말씀을 듣거나 묵상할 때 마음에 찔린 적은 없습니까? 그 찔림에 어떻게 반응하셨나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까지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히4:12). 말씀으로 인한 내면의 찔림에 대해서는 두 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첫째는 설교를 들은 자들이 양심에 가책을 받아 회개했듯이 자기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끌고 예수님께 나아갔을 때 예수님은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어른들로부터 아이들까지 양심에 가책을 받아 그들이 돌을 던져버리고 다 돌아갔습니다. 이와 같이 양심에 가책을 받고 회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째는 설교 듣고 마음이 찔렸으나 자신들의 죄가 드러나자 분노하며 완악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앙심을 품고 목회자나 설교자를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과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은혜로 전파되지만, 이를 받는 청중의 태도에 따라서 그 결과가 하늘과 땅처럼 달라집니다. 복음을 영접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만, 반대로 거부하는 자는 영원히 멸망합니다(요5;24). 말씀으로 마음에 찔릴 때 강퍅하게 하지 말고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행 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우리가 마지막에 이런 기도를 하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스데반은 예수님처럼 자신의 영혼을 예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렀습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님의 십자가의 기도를 그대로 본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 ‘이 말을 하고 자니라’ 그는 잠들었습니다. ‘자니라’(에코미메쎄)는 문자적으로 ‘자다’라는 뜻이지만 은유적으로는 ‘평온하다, 고요하다, 죽다’라는 뜻입니다. 스데반은 죽었지만 그 죽음은 마치 잠과 같은 평온한 죽음이었음을 암시합니다.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에겐 고난의 끝이라 할 수 있는 죽음조차 평온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이렇게 평온하게 잠들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등장하는 사울
스데반이 순교를 당할 때, 갑자기 등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사울이라는 청년입니다.
√
행 7: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행 8: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이것은 일종의 복선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한 암시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 스데반을 데리고 가시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한 사람을 사용하실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스데반을 핍박하고 죽이는 무리 편에 서 있는 한 사람, 악명 높은 사울을 하나님의 가장 귀한 일꾼으로 만드시는 일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그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스데반이 사라져 생기는 그 공백을 사울이라는 사람을 통해 완벽하게 채우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고 반전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경륜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혹은 꼭 저 사람이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사울의 등장을 보면서 하나님이 쓰지 못할 사람은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우리의 생각에 스데반이 사라지면 하나님의 나라가 쇠할 것 같고 복음 전파가 주춤해질 것이라고 여기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히려 사울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더 빨리 더 넓게 확장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데반의 퇴장과 사울의 등장을 보면서 여러분은 무엇을 깨달으셨습니까?
하나님 나라와 복음의 전진은 사람이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기를 바랍니다. 또한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교회는 한 사람으로 좌우지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스데반도 쓰시고 사울도 쓰십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순교는 한 알의 밀알이 되었습니다. 그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게 되니 놀라운 열매가 맺히게 된 것입니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동영상 - 한 알의 밀알-아도니람 저드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