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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안타까운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서 삶의 많은 변화가 온듯한 허전함과 아쉬움이 많아 지금 바로 여기에 그가 아직도 내곁에 있는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가 가진 재능을 미처 펼치지도 못하고 머나먼 길을 찾아 영원히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두고두고 생각해도 아쉬운 마음뿐입니다. 그가 자신이 스스로 개척해서 이루어 놓은 삶을 통해서 이루어 놓은 대한민국 최초의 사설 미술 해설가이자 도슨트라는 직함에 걸맞게 일의 즐거움과 보람으로 살아오는 과정에서 갑자기 찾아온 간암이라는 중병을 얻어 그가 죽음을 맞이 하기전까지 약2개월여의 모든 과정을 놓고 볼때 그의 죽음은 그를 아는 모든이가 안타까워 하면서도 그를 통한 세상에 뿌려진 삶의 열망과 선행에 버금가게 나또한 많은 것을 느끼며 내 삶에 또다른 깨달음을 주었기에 많은 여운이 남습니다. 나는 중국에 살기 때문에 자주 그를 만날 수 없어 평소에 1주일에 한번 혹은 3일에 한번 정도 그와
전화나 문자를 주고 받으며 지내곤 했는데 그날은 내가 그에게 오전 8시58분에 문자를 보냈는데그의 답장은 "나 병원 왔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너무 놀라서 "엉?왜..어디아퍼?"라고 다시 되물으니"몸이 좀.....진찰 끝나고 곧 연락하마..일주일째인데 견딜만 하다"라고 말하기에
나는 진찰이 끝나기만 기다리다가 오후 5시10분경에 "몸 괜챦니"라고 물었더니 "견딜만하다"라고 말합니다. 나는 "많이 아프니.평소 몸관리 한다며..,"라고 다시 묻고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게 맘대로 안된다 암이란다.간암"이라는 것입니다.
문자 내용을 보는 순간 나는 소스라치는 놀라움과 내가 뭐 잘못 들었나 싶었고 '꿈이겠지!'라는
생각이 스칠 정도로 친구의 문자는 믿기지가 않았습니다.먹먹한 마음에 당장 친구이면서도 가족,형제와 같이 40년을 함께 어려운 세상에서 만나 힘든 고난을 딪고 일어서서 이제 50을 바라보는 나이이고 한창 더 많은 삶을 살아도 모자랄때 이런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그는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결국 꿈을 이루어 대한민국에서는 최초의 사설 미술 해설가로 자기의 길을 굳굳하게 가고 있었고 나는 중국에서 20여년을 살면서 그를 자주 보기란 쉽지 않아도 늘 깊은 우정을 쌓아오며 내가 한국 나가면 꼭 만나고 오는 몇안되는 친구이고 그도 작년에는 두번이나 천진 성당 한인교우들에게 미술에 관련된 재능 기부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이 나이가 되도록 각자의 선상에서 오늘날까지 함께 성장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날 저녁밤은 너무나 충격적인 말을 들어 안절부절 혼자 친구 생각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장 방사선 치료등을 한다고 하는데 나도 어디선가라도 명약(!)이라는 것이 있는지부터 수소문하기 시작했습니다.간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없지만 그저 막막한 마음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날이 2014년 12월2일이었고 이날 이후 정확히 일주일후 그가 전에 다니던 병원과 또다른 병원을 다닌후 검증 결과 최종적으로 간암이라는 판정을 정확히 받았다고 하는데 그의 당시 말은 '수술은 하지 않아도 되고 3기 정도 된다'고 저에게 말하고는 1주일에 한번 항암 치료와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면 된다고 너무나 쉽게 말을 하기에 나도 그때 사실 마음을 놓았지만 돌이켜 보면 그때라도 제대로 정신 차리게 하고 현실에 치중하여 조금더 나은 치료 방법을 선택하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습니다.
돌이켜 보면 본인에게 간암 말기 선고 사실을 빨리 일러주고 방안을 찾자고 했을 것을.... 그리고 항암 치료를 하지 말자고 할것을...... 그러면 지금도 일상에서 만날 수 있었을지도..... 우리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자수성가의 길에 들어서면서 처음 세상에 나와서 그는 국내에 내노라하는 큰 기업에 다니며 직장 생활을 했고,이후 그는 의복 관련 무역 개인 사업후 모든것을 정리후에는 돌연 프랑스로 가서 루브루 박물관을 내집 드나들듯이 하며 그곳에 오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미술 가이드 생활을 7년여 하고나서 귀국하여 그때 갈고 닦은 미술에 대한 지식과 감상법을 해박하고 보고 듣는이로 하여금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능력의 소유자였기에 그는 S기획사에 소속이 되어 이후 미술과 클래식을 전목한 세계 최초(!)로 "아르츠콘서트"라는 것을 2010년 6월 22일 처음 공연후 2014년 12월23일 마지막 공연까지 약4년6개월 동안 약 5만여명이 그의 공연과 강연을 들었고,'윤운중의유럽미술관 순례1,2"라는 책을 편찬하여 교양 서적으로는 베스트셀러가 되며 더욱더 그의 진가를 발휘 하다가 결국 그는 이렇게 작년12월초 갑작스럽게 불치의 간암 선고에 따라 치료를 하기 위해 잠시 휴식기를 갖고자 했는데 이제는 2014년 12월23일 크리스마스때 '천상의 목소리'라는 공연이 마지막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날은 나도 공연에 참석을 하였지만 그것이 지금은 그의 마지막 공연이라는 것이 아쉬운 것은 그토록 그가 좋아하던 미술 해설을 하지 못한다는 강박 관념이 병상에서도 많았으리라 여깁니다. 작년 12월초부터 찾아온 병마에 고생하는 그의 소식을 접하는 내내 마음이 서글퍼도 나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친구,지인들은 전혀 내색하지 않고 오로지 긍정의 힘만을 주고 받으며 지냈습니다. 늘 한국에 나가면 나는 그를 만나 보던 시간이 많았었습니다. 정말 그는 공연과 강연을 좋아했고 즐겼고 준비하면서 삶의 희열을 스스로 맛보곤 하는 그의 표정이 신기할 정도이고 그의 재능으로나마 많은 단체나 개인에게 재능을 기부하고 영향력을 심어 주고 어떤곳이든 어떤이에게든 좋은 삶의 멘토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처음 아프다며 작년 12월2일 나랑 문자와 전화를 하고나서도 간암 진단 결과에 쉽게 수긍을 하지 않아 몇번의 재검을 하면서도 몸의 변화는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는 것을 스스로 직감을 하는 상황이 되어 결국 그가 정말 공들여 쌓아 올리고 즐거워하고 그일에 대해서 애착과 기쁨을 갖던 가장 소중한 일을 통해서 하던 모든 방송 출연,공연,강연등을 접었고 마지막 방송으로는 2015년 1월 18일 방송된 KBS1의 '"강연100도씨"에 출연하여 그의 모든것을 털어 내려 놓고는 우리에게 마지막 모습을 보여 주고 병원 치료와 투병을 하는 고통의 시간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처음 암 진단후 치료가 비교적 간단할 것으로 예상 되었지만 결국 2015년 1월21일이 되어서야 병원에서는 지난 5,6주간의 치료 경과에 대한 상태와 암의 진전을 볼때 의학적으로는 치료가 불가하다고 판단하여 그날 나와 친구,친지등 몇몇이 있는 그의 보금 자리에서 잠시 적막감이 흐르고 이윽고 그의 누나가 눈물을 삼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초 의사가 간암 말기이고 선고가 약 2개월이라고 했다'라고 일러 주었을때 직접 듣는 나도 놀라고 그도 놀라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그 충격에 그는 옆에 있던 누나의 손을 잡고는 그는 "내가 왜?"라고 반문만을 하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그날 비로소 우리 모두는 그동안 그가 알고 예상했던 만큼의 간단한 병세가 아닌 '아주 위험한 순간까지 왔다'는 것은 큰 충격이고 그자체가 슬픔이고 괴로움이었습니다. 사실 나는 그날 한국에 나오기 전에 그가 몇몇 절친을 불러 함께 푸른산과 바다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여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한국을 나갔던 것인데 이날 이후 다른 그 무엇 보다도 우선 친구의 치료가 우선이고 그가 걱정이 되어 모든 여행 계획을 취소하고 그날 이후 바로 그는 마치 모든 서울의 생활을 하나하나 정리하듯이 짐을 싸서 그가 어릴적 자라며 꿈과 희망을 키워온 고향집 같은 부산의 알로이시오 병원으로 가서 병마와 싸워 가며 그동안 5년여 대중앞에 서서 지내던 자신의 일을 내려 놓고 하루하루 병세가 악화되고 신체적으로 여러가지 변화가 오는 것을 애써 감추고 불굴의 의지로 고통을 이겨내는 아픔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이런 그를 향해 수녀님,친구,연인등 주변에서 그를 위해 오로지 사랑을 실천하며 눈물겨운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의 정성에도 이미 그의 몸은 병세를 못이겨 서서히 우리 곁을 떠날 준비를 하더니 그렇게도 그는 살려고 노력을 하였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그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고 끝내 그는 작년 12월2일 이후 간암 진단후 정확히 80일만인 2015년 2월20일 새벽 4시25분에 그는 세상의 모든것을 내려 놓고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그가 떠나기전 나는 온종일 그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는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나가서 그를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분주하게 비행기표를 예약하고도 불안 초조하였고 새벽녁에 그의 마지막을 함께한 친구에게서 소식을 듣고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다 못해 참으로 비통하고 안타까운 마음의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빨리 가는 것인지?
우리의 삶이란 무엇인가? 그를 사랑하는 모든이의 염원과 기도를 뒤로 하고 고통스러웠던 마지막 삶의 여정을 기도하는 모든이들의 소리를 귀로만 들으며 떠나간 것입니다.
나는 지난 1월21일 한국에 나가서 그를 만나서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서 5일여 함께 있다가 중국에 다시 돌아와 지내면서도 매일 그의 병세를 파악하며 걱정 속에서 하느님께 기도를 간청하였지만 이런 결과가 나와서 마음이 더더욱 아팠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그를 마지막 본 것은 2015년 1월 26일 저녁이었고 그날 마침 아시안컵 축구 한국대 이라크의 경기가 있어 그 경기를 TV로 함께 보며 때론 축구의 박식한 그는 해설가가 되며 재미있게 경기를 함께보며 잠시 병마를 잊었던 것이다. 그는 사실 자그마한 체구이지만 누구보다 축구를 아주 잘해서 어려서부터 반,학년 대표는 물론 직장인 축구 선수로 한동안 이름을 날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날 나는 다른 친구 셋이서 그와 작별을 하며 그를 포옹하며 '건강하게 꼭 완쾌하길 바란다.'라고 뒤돌아 선것이 이제는 영영 그를 보지 못하는 마지막이 되었고, 그 다음날 전해 들은 얘기는 한꺼번에 절친 3명이 동시에 떠나니 마음이 허전했는지 그는 밤새 소리내어 많이 울었다고 하니 더더욱 그에게 미안했었습니다.과연 그의 마음에는 그날 무엇을 생각하였을까? 많은 여운을 남기고 한마디 그 이유에 대해서 말도 하지 않고 그는 떠나간 것입니다.
이처럼 내 삶보다 그의 삶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가 눈을 감은날 새벽에 나는 북경 공항을 통해 이른 비행기로 한국으로 나가기위해 부랴부랴 짐을 챙겨 공항으로 출발하는 시각과 일치하여 그또한 묘한 기분이었고 그날따라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에는 눈과 비가 내리니 내 마음을 더욱 구슬프게 하였습니다.드디어 한국 입국후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일산의 장례식장으로 가서 그의 영정을 보고는 슬픔과 함께 그의 죽음은 내가 다시 확인해도 현실이었습니다.
영결식장에는 그를 아는 많은 조문객이 3일내내 끊이지 않도록 다녀갔습니다. 그가 살면서 평소 세상에 뿌려 놓은 그의 또다른 사랑이 곳곳에서 자라나서 조문하며 함께 위로하고 사랑을 전하는 마음에 뭉클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먼저 간 친구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지만 그가 그 고통 속에서도 이 길을 택하고 우리곁을 떠난 것은 그가 이세상에서의 마지막에 느껴야 했던 고통과 번뇌는 내 마음으로 연민을 통해 친구가 떠난 먼길을 슬픔보다는 오로지 그를 위한다면 마지막 고통까지도 혼자 짊어지고 참아내며 갔고 이젠 그런 고통이 없기에 나는 그의 죽음을 기쁘게 승화시키는 요즈음 입니다. 80여일 동안 간직하고 살았던 고통을 잊고 그를 입관하는 날에는 그의 모든 것이 온전하게 정상으로 돌아온듯 너무나도 그의 표정은 평화로웠고 온화해 보여서 한편으로는 평안하게 하늘 나라로 가는 것 같아 마음으로 나는 그에게 이별을 했습니다. 그가 내앞의 관속에 수놓은 종이꽃 위에 누워 있는 그의 표정을 언제나 잊지 않도록 마지막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눈을 감고는 가르마를 탄 머리결과 이젠 떠남을 이야기 하듯 세상 살면서 움켰던 양손은 펼쳐저 있고 5단 묵주와 손가락 묵주를 그의 손에 끼워 주고는 그는 다시는 못 보게 되는 의식을 통해서 입관하는 동안 나는 그를 위해서 슬픔과 함께 기도를 하고 그날 저녁에는 친구,동료,수녀님들이 오셔서 함께 그가 떠나는 길을 위해서 영결 미사를 하고 송별가와 송사를 통해 그의 가는 길이 평안하도록 마음을 달래 주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돌아서서 몇일이 지나도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 실감나지 않아 마치 그는 1주일,10일이 지나도록 그는 잠시 다른나라 어디론가 여행을 떠난듯 하고....................돌아올 거라는 기대 아닌 기대를 하지만..............
진짜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는 신부님의 아들로써 세상에 뿌려 놓은 좋은 씨앗들을 많은 사람들이 받아서 곳곳에서 잘 자라고 있을 것입니다.혼자서 고통중에도 잘 참고 외로히 떠난 그를 많이 기억해 주세요.
그가 떠난뒤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그가 다하지 못한 일과 그가 가진 재능이 아까운 친구였고
나는 그를 친구로써 영원히 사랑을 할 것입니다. 마지막 유언같은 문자를 주고 받으며 내게 한말이 늘 귓가를 맴돌기에 나또한 내 삶의 중심에서 더욱더 그를 보낸뒤 최선을 다하는 나의 자세로 돌아갑니다. (사랑한다.누가 너만큼 지속적으로 나를 아끼고 사랑 하겠니?진심이다 늘 건강해라.) 내가 가진 삶의 일부라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친구이자 동생,형제,가족같은 그였습니다. 함께 더큰 세상을 살지 못하니 그에게는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그가 평안히 영면하도록 물신양면으로 기도와 영성과 치유를 위해 도와주신 모든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그는 마지막 고통의 삶을 통해서 먼저 영면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크지만 현 상황에서 그를 위한다면 여러 어른들의 말씀을 통해서 느껴본 한가지 중요한 것은 "죽음도 희망이고 기쁨이라는 것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故윤운중(1967.10.16~2015.2.20) 고인은 지금 일산 청아공원 대지마홀 추모관에서 영면에 들어 갔습니다. 2015.2.22(일)오전 11시경에 안치함. ------------------------------------------------------------ (2015.2.23 부산에 인사드리러 가는 기차안에서)
여기가 어딘가
어제까지 나는 어딘가에 있었는데 이제는 마음을 내려 세상의 풍경과 음악과 함께 사색을 즐기는 마음에 요동치는 한녀석이 눈앞에 아른거리네 내 자식과 같은 너 내 동생과 같은 너 내 형제와 같은 너 늘 진지함과 더불어 세상을 살아온 나에게 또다른 삶의 깨달음을 주게 한다. 삶중에 찾아온 고통을 80일간 참고 견디며 무슨 생각을 가장 많이 했을까? 하루빨리 나가서 더많은 사람에게 네가 가진것 바닥까지 주려 발버둥치면서도 온전한 자존심에 상처주지 않으려 초췌해지는 자기 모습을 어떻게라도 감추려 곧 회복할거라 하였는데... 의지와 인내는 몸속 깊이 용솟음 쳐 애써 태연해도 노랗게 변해 버리고 앙상한 몸만 남기어 가는데 난 다가가서 안아 주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았네. 약속이 아닌 우리 삶이기에 먼길을 가기 위해서 희망의 영생을 준비해온 여정이 빛나길 바라고 갸쁜하게 멀리멀리 날아 오를때 기분도 함께 달아 올라 아름다운 세상을 보겠지. 나도 지금 차창의 영상에 파묻혀 평안하네 이젠 기쁘게 마음에 담아본다. 기뻐할게 이젠 고통이 없으니 좋아할게 이젠 슬픔이 없으니 사랑할게 이젠 못보지만 더욱 친한 가족,동생,벗이니 기억할게 이젠 네가 긴휴식에 들어가니 미워할게 이젠 네가 네 삶을 허술했으니 간직할게 이젠 네가 살아온 삶의 표상을 아니 기다릴게 이젠 예술에 대해 조금더 알아야 하니까 걱정말게 이젠 이승에서의 일은 모두가 재가 되었으니 넌 지금 어디인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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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 아름다운 삶을 열심히 사신 듯 하네요~친구의우정에 감동 입니다 . 주님! 고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예술 속에 오래오래 살아 있을 거예요
윤 그레고리오 형제가 쓴 책은
유럽 미술 여행을 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애독서가 될 것이라 믿어요.
그분의 혼이 책을 통해
그분이 마주치며 세상에 남긴 흔적을 통해
오래오래 기억될거예요.
형제와도 같은 깊은 우정의 마음을 담은 글...
심장이 울렁거리며 읽었습니다.
모든 것에 동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윤운중! 그레고리오! ~~
우리나라 미술계의 걸출한 인물이요, 우리들의 보물이었는데...
이제는 우리 가족 뿐 아니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잊지 못할 그리운 사람이 되겠지요.
보스코님의 우정어린 글만 읽고 있어도... 그레고리오의 생애를... 그 예술성을 느낄 수 있고
이런 친구들과 함께 했던 그레고리오님도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병원 입원을 위해 부산에 왔을 때 했던 대화가 생각납니다.
"수녀님. 제 병이 낳으면 저가 집을 위해 해야할 일 참 많다는 걸 알아요.
수녀님들, 동생들 위해서..." 그 효성스런 말에 감동이었지요.
그의 혼이 담긴 <유럽미술 여행>책 유물처럼 남겨주어 고마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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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주가 되어 가도 믿기지가 않은 현실이네요....참으로 우리의 삶은 무엇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