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도굴됐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보다 발간 연대가 50년 앞서는 고려시대 금속활자본이 도난 과정에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주장이 나와, 정치권과 불교계가 비상한 관심 속에 이 책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이 주장대로라면 금속활자의 역사를 새로 쓰는 세계적인 발견이기
때문이다. 정식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다.
1972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책’ 전시회에 <직지심경>이라 소개돼 한때 잘못 불리기도 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73년이 앞서는 세계적인 유물로, 상·하 두 권 가운데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은 하권 1책뿐이다. 구한말 초대 주한대리공사로 부임한 콜랭 드 플랑시(1853~1922)에
의해 반출돼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2001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남권희 경북대 교수(문헌정보학)는 “2000년께 상주의 ㅈ아무개씨 부탁으로 책을 봤더니 원나라 때 지어진 불서인 <설두화상어록>이라는 책이었다”며 “종이 재질과 책의 모양, 활자체 등으로 판단할 때 조선 세조 때 간행된 목활자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책이 집필된 연대가 서문에 나와 있는데 이를 발간 연대와 혼동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문화재털이범 ㅅ씨나 상선 ㅈ씨, 남 교수 등은 모두 자타가 공인하는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인 탓이다. <직지심체요절>이 발간되기 140여년 전 이미 금속활자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다, 광흥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돼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한 사찰이기 때문이다.
문명대 동국대 교수(미술학부)는 “광흥사는 지금은 쇠락했으나 고려시대
귀중한 전적이 많았던 유명한 절이므로 불타지 않은 응진전 불상엔 고려시대 유물이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털이범 ㅅ씨는 “훔친 책을 경북 상주에 사는 ㅈ씨에게 3천만원을 주고 팔았는데 ㅈ씨가 다시 아는 교수에게 맡긴 걸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ㅈ씨는 취재진과 전화 통화에서 “2001년께 ㅊ아무개씨에게
팔았는데 ㅊ씨는 이후 숨졌다”고 말했다. 배현숙 계명문화대 교수(서지학)는 “설령 이 책이 <설두화상어록>이라고 해도 아직까지 국내 서지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귀중한 보물급
문화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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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이정국 기자 2006. 7. 3)r
전문가들은 <직지심체요절>보다 빠른 고려시대 금속활자본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학문적으로는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까지 문헌상 금속활자로 간행된 최초의 책으로 밝혀진 것은 고려의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다. 현재 목판본으로 남아있는 이 책은 발문에 책을 찍게 된 사연을 밝히고 있다. 몽골의 침략으로 수도를 강화로 옮긴 1232년(고종 19년) 이전에 이미 금속활자본으로 찍었던 것을 1239년 강화도에서 책을 뒤집어 이를 목판으로 새긴 뒤 다시 찍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학계에서 공인하고 또한 실물로 확인된 고려시대
금속활자본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직지심체요절>(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1377년)과 <직지…> 활자를 이용해
찍은 <자비도량참법> 두 가지밖에 없다. 안동 광흥사는 신라시대 창건한 절로 고려시대 크게 번창했으나 이후 쇠퇴했으며 특히 1940~50년대엔 대화재와 전란으로 대웅전·극락전 등 주요 전각이 불타거나 무너져내려 응진전만 옛 모습으로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 와중에 고려시대 불경인 <취지금니묘법연화경(翠紙金泥妙法蓮華經)>(보물 제314호)과 <백지묵서(白紙墨書)묘법연화경>(보물 제315호) 등 잘 알려진 중요 문화재들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문명대 동국대 미술학부 교수는
“광흥사는 지금은 쇠락했으나 고려시대 귀중한 전적이 많았던 유명한 절이므로 불타지 않은 응진전 불상엔 고려시대 유물이 남아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금속활자 어디에 보관했나
복원된 활자보관장
조선 시대는 1403년(태종 3년)
'계미자'(癸未字.'계미년에 만든 활자'라는 뜻)를 시작으로 수 십 차례 금속활자를 제작할 만큼 인쇄와 출판에 관심을 가졌던 시기로, 위정자들은
금속활자의 제작과 보관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경북 안동 학가산 광흥사
광흥사(廣興寺)는
안동시 서후면 지품리 813번지 학가산(鶴駕山)에 자리한
1946년, 학서루(鶴棲樓)와 대방(大房)이 퇴락되어 무너져서 지금은 부속전각이었던 웅진전에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고 있다. 보물 제 314호와 315호로 지정되어 있는 취지금니묘법연화경과 백지 묵서묘법연화경이 보 존 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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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기사-현대불교 240호/1999.10.6>
안동 봉정사·광흥사 ‘도둑몸살’ - 성보노린 절도범 불상 39구 파괴후 도주 -
◇복장물을 노린 떼강도가 들어와 마구 파괴해 놓은 안동 광흥사 응진전 성보들이 처참하게 훼손된 모습. 이 성보들은 조선 중기~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복원이 불가능할만큼 심하게 파괴됐다.
올 한해동안 6건의 불상훼손 및 복장물도난 사건이 발생하는 등 사찰문화재를 노리는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경북 안동시 광흥사와 봉정사의 성보들이 절도범들에 의해 파괴되거나 도난될 뻔한 것으로 알려져 성보에 대한 특별방범책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요즘들어 문화재절도범들은 한층 흉포화되어 성보를 노리는 것뿐 아니라 스님들을 칼로 찌르는 등 강도짓까지 서슴지 않는 것으로 밝혀져 우려를 낳고 있다.
9월 22일 밤11시 봉정사(주지 문인)에 김모씨 등 2명이 영선암 창고에 보관중인 조선시대 목경판(1761년 간행)을 훔치는 것을 총무 성묵스님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이들 절도범들은 영선암에서 500여m 떨어진 휴게소 근처에 그랜저 승용차와 1톤 화물차를 대기시켜 놓고 목판 20여장을 훔치다가 발각되자 경판을 던져놓은 채 도망쳤다.
이에 앞선 9월 17일에는 광흥사(주지 일현)에 5인조 복면강도가 들어와 병풍식 서첩 ‘금사경’을 찾기 위해 응진전(경북도 문화재자료 165호)에 봉안된 39구의 불상을 파괴한뒤 복장유물을 훔쳐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응진전에 소장된 3존불좌상과 가섭·아난존자입상2위, 16나한좌상 14위, 동자입상16위, 제석·사자입상 4위등 불상 39구가 무참하게 파괴·훼손됐다. 광흥사 현지에 내려가 조사한 조계종 총무원은 “종단의 사찰문화재 보호요구에 무대책으로 일관한 정부 당국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
출처: 토함산솔이파리 원문보기 글쓴이: 솔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