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 번역본은 어떤 것들인가?
안 유 섭 목사 (아르케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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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성경은 유대인을 위한 유대인의 성경이었으므로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영토인 팔레스타인 땅에 거주하면서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할 때는 번역본(飜譯本)이라는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다 왕국이 완전히 멸망한 후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거의 다 쫓겨나서 팔레스타인에는 소수만 남게 되고 대다수가 바벨론을 비롯한 애굽, 소아시아 등지로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다. 따라서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히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고 정착지 언어에 더 익숙한 자들이 많아지게 되었으므로 이들 유대인들을 위하여 그 나라 언어로 성경을 번역할 필요가 생기게 된 것이다.
BC 450-440 경 에스라, 느헤미야가 주도하여 포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살던 땅에서 쫓겨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였기 때문이라는 자각을 통하여 그들이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보존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히브리어를 모르는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들을 위해서도 말씀은 가르치고 보존되어야한다는 취지에서 번역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까지 구약은 유대인들만의 경전이었으므로 고대의 히브리어 번역은 모두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히브리어 번역본은 고대 역본과 현대 역본으로 대별하는데, 고대 역본은 손으로 베낀 필사본을 뜻하며, 현대 역본은 1450년 경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발명된 후에 인쇄본으로 간행된 것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현대 역본은 구약만 번역한 것은 매우 드물고 대부분 신약과 함께 합본으로 번역, 인쇄되었기 때문에 별도의 히브리어 번역본으로 취급하지 않고, 여기서는 고대 역본 중에서 중요한 것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고대 역본 중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 된 것은 아람어 번역이다. 아람어(Aramaic)는 북방계 셈어(Semitic) 중에서도 북부 셈어에 속하는 언어를 말하는데 ‘갈대아어’와 ‘수리아어’가 이에 포함된다. 갈대아어는 고대 셈어인 ‘악카드어’를 계승하여 앗수르․바벨론 시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바사 시대에는 이미 고대 근동에서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 널리 사용되는 국제 표준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특히 아람어와 히브리어는 같은 북방계 셈어족에 속하는 가까운 언어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쉽게 친숙해 질 수 있었고, 따라서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이후 모국어인 히브리어보다 당시의 국제어였던 아람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정착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유대인들이 히브리어를 점차 잊어버리게 되자 회당에서 랍비들이 율법을 낭독하고는 아람어로 번역을 해주어야 했는데, 처음에는 구두로 해석하던 것이 점차 정교하고 고정화되면서 문서화시킬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따라서 BC 4-3세기경부터 아람어로 번역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제대로 된 번역은 로마에 의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완전히 추방되는 시점인 AD 2세기경에 가서야 아람어 탈굼(Targum)이라는 이름으로 비로소 등장하게 되었다. 아람어 탈굼 중에서 유명한 것은 AD 3세기경의 토라를 번역한 탈굼 옹켈로스와 4세기경의 예언서를 번역한 탈굼 요나단(Targum Yonathan) 등이다.
다음은 유명한 헬라어 70인역(LXX)이다. 셉투아진트(Septuagint)라고 불리는 70인역은 BC 3세기경(250-150) 당시의 애굽의 통치자 프톨레미 2세에 요청에 의하여 유대인 학자들이 각 지파별로 6명씩 72명이 알렉산드리아에 모여서 구약 히브리어 사본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는 히브리어를 모르는 유대인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동시에 이방인 독자들을 위한 최초의 번역이기도 한데, 그 내용은 현재의 정경 뿐 아니라 외경까지 다수 포함되어있다. 70인역이 번역되었을 당시 국제 무대는 헬라어가 공용어였으므로 신약에서 인용한 구약본문은 거의 모두 70인역에서 인용한 것이며, 이후의 초대교회에서도 히브리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구약 성경이 될 수밖에 없는 중요한 번역이다. 이에는 많은 사본이 있는데, 나중에는 신약까지 합쳐진 바티칸 사본 등의 합본도 등장하게 되었다.
기독교 교회가 70인역을 널리 사용하자, 유대인들은 그것을 부정확하다고 배격하기 시작했으며, 그래서 유대인들만을 위한 새로운 헬라어 번역본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중에는 AD 2세기경 유대인만을 위해 만들어진 아퀼라역이 있다. 아퀼라는 랍비 아키바의 제자인데 엄격한 직역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밖에 의역을 한 심마쿠스역이 있고, 2세기 말에는 초기 헬라어역본을 다시 번역한 레오도티온역 등이 있다.
다음은 수리아어로 번역된 페쉬타(Peshita)이다. 페쉬타는 ‘공공’ 또는 ‘단순’이라는 뜻인데, AD 2세기경 수리아의 기독교인들이 히브리어 성경을 아람어의 한 지류인 수리아어로 번역함으로써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페쉬타역은 70인역과 조화를 맞추기 위해 수차례 개정 작업을 하면서 9세기까지 필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리아역의 특징은 수리아어가 아람어의 일종이므로 아람어 탈굼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수리아역은 AD 3세기경 오리겐의 ‘헥사플라’를 번역한 ‘수리아 헥사플라리스’가 있는데, 신약까지 포함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다음으로는 라틴어 역본이 있는데, AD 2세기 말 북 아프리카에서 70인역 헬라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터툴리안의 라틴 역본을 비롯하여 4세기까지 각지에서 만들어지고 읽혀지게 되었다. 이것들을 구 라틴 역본이라고 부르는데 혼란스러울 정도로 쏟아져 나오게 되자, 380년경 교황 다마수스 1세는 제롬이라고도 부르는 유세비우스 히에로니무스에게 구약만은 히브리어 사본을 직접 번역함으로써 신뢰할만한 라틴어 번역을 요청하였다. 제롬은 405년에 ‘대중적’이라는 뜻을 가진 불가타(Vulgata) 또는 벌게이트(Vulgate)역을 완성하였다. 이는 신구약 합본으로서 라틴어가 서방 교회의 교회 표준어가 된 이래 1546년에 트렌트 공의회에서 수정본이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세월을 정통 본문으로 통용되었다.
다음은 애굽의 콥트어 역본이 있는데, 콥트어는 고대 애굽의 후기 언어로서 AD 3-4세기경부터 번역이 이루어졌으며 현재 발견된 것은 대부분 12-13세기경의 것들이다. 그 밖의 역본들로는 번역의 정확성과 표현법의 아름다움이 탁월하여 ‘역본중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AD 5세기경의 아르메니아어 역본이 있고, AD 4세기경 에디오피아어 역본, AD 9-10세기경의 아랍어 역본 등도 전해지고 있다. 또 AD 12-13세기경에는 유대인들에 의하여 독일어로 번역되고 히브리어 글자로 쓰여진 이디쉬(Yiddish) 역본이 출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