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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4-15
시작과 끝이 같은 사람
들어가는 말
여러분!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게 되면 누가 더 행복하겠습니까?
더 쉽게 말하면 결혼을 해서 더 많은 이득을 보는 사람이 남자일까요 여자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호주의 경제학 교수 폴 프리즈터스가 계산을 해보았습니다. 호주사람 만명을 대상으로 결혼 이혼 사망 등 경조사를 겪을 때 느끼는 감정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연구에 따르면 결혼했을 때 남성이 느끼는 행복감은 3만1000호주 달러(약 3400만원)를 정도의 소득과 비슷합니다. 여성은 남성의 절반 정도인 약1650만원 정도의 행복감을 느낍니다. 결혼으로 여자가 손해를 보는 것 같은데 이제 부부가 다 해로해서 살다가 배우자가 죽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 느끼는 손실은 얼마가 될까요?
먼저 부인과 사별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남편은 62만 호주달러(약 6억8000만원), 약 7억원을 잃는 느낌을 갖는다고 합니다. 그 반대로 남편을 잃는 경우 부인은 얼마 정도의 슬픔을 느낄까요? 약 1억4000만원를 잃었을 때와 비슷한 크기의 슬픔을 느낀다고 합니다.
왜 남성의 더 슬플까?
프리즈터스 교수는 “결혼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을 하면 여성보다 남성의 삶의 질을 개선한다” 여자보다는 남자가 결혼을 통해 더 많은 행복을 얻게 된가는 것입니다. 결혼한 부부가 바닷가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곳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수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 엄마가 달려와서 아이에게 왜 위험한 곳에서 수영을 하느냐고 야단을 칩니다. 그러니까 아이는 아빠도 있는데 자기만 야단치니 기분이 나빠서 “아빠도 수영을 했는데 왜 나만 야단을 치세요” 그러자 엄마의 대답이 “너희 아빠는 보험을 들었잖아”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여기서 남자 분들 반성하셔야 합니다. 연애할 때는 남자들이 얼마나 잘 합니까 결혼하면 손에 물안 뭍치게 해준다 약속하고 말이 달라집니다. “물 안 묻치고 호강 시켜주는게 이거야” 그때 남자의 대답이 “그래서 물 안묻치게 고무 장갑 사주잖아” 이렇게 부인을 배려하지 못하니까 남편이 나이 먹어서 아내에게 짐과 같이 존재가 됩니다. 이런 분들은 이사갈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강아지 껴안고 이사짐 차 앞자리에 앉아야합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의 생각과 태도는 늘 변함이 없어야합니다. 연애할 때 아내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 받은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이 되었고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관점으로 보면 두 종류의 사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같은 자녀이지만 어떤 사람이 있을까요?
출발은 좋았는데 끝이 좋지 않은 사람과 처음과 끝이 변함없는 사람으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알 수 있는 것이 바울의 편지 디모데후서 4장 9-10절에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함께 사역을 시작했는데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다. 지금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힘에 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데마, 그레스게, 디도 모두 어려운 바울의 형편을 떠납니다. 그러나 바울 곁에는 디모데와 누가는 변함없이 동역자로 남아 있습니다.
자!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이렇게 처음의 출발은 좋았는데 나중에 넘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대체적으로 영성 신학자 리쳐드 포스터가 지적한 대로 돈과 여자와 권력에 의해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처음이 좋았는데 나중에 실족한 사람, 많은 사람이 있지만 그 가운데 기억이 나는 사람이 삼손이 있습니다.
첫째, 여인으로 인해 넘어지는 경우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구별된 나실인으로 태어납니다. 엄청난 힘을 가진 능력을 가진 사사였지만 그는 이방여인을 너무 좋아합니다. 결국 들릴라에게 자신의 힘의 근원을 알려주게 되고 블레셋에게 머리깍인 채로 포박이 되고 눈이 뽑혀기게 되지요. 결국 이방신전에서 적들의 조롱가운데 다시 회계하고 블레셋과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둘째,돈에 의해 넘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사시대에 300명의 용사로 미디안을 물리친 기드온이 등장합니다. 그의 활약은 대단한 것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침략 가운데 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에게 왕이 되어달라고 할 때 기드온을 보시면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않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않고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실 것이다” 많은 사람이 권력 앞에 넘어지는데 그는 그 권력에서 초월합니다. 이런 욕심을 끓은 것은 참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그가 한 가지 이야기. “내가 너희에게 한일을 보상 받기를 원하니 너희는 적에게 탈취한 귀고리를 나에게 달라” 백성들로부터 금 일천 칠백세겔과 다른 귀중품을 받게 되고 그것으로 에봇을 만들어 놓는 기념관을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그 일로 이스라엘이 음란하게 되었다. 그의 사후에 그의 아들 아비멜렉이 70명의 형제들을 다 죽이고 자기 스스로 왕에 오릅니다.
디모데후서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는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을 사랑함이 악의 뿌리가 되어 사람들에게 올무가 되고 자기의 자녀들을 망치게 됩니다.
세 번째는 그는 권력에 넘어진 사람, 사울 왕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자신의 사위 다윗에게 권력의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다윗을 죽이기 위해서 창을 두 번이나 던지고 군사를 몰라서 그를 쫓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의 권력을 잘 보존하지 못합니다. 그만한 지위, 그만한 열심으로 조금만 더 겸손하면 좋은 일이 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 인생입니다.
교회를 보시면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역사이기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붙여주시고 그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모두들 구원의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 가만히 보면 중학교,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사역하던 친구가 청년부가 되어서 보이지 않습니다. 군에 다녀오니까 교회를 섬기는 사람이 다릅니다. 처음에는 무슨 이유인지 잘몰랐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하여튼 꾸준하게 성전을 지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새 이런 핑계저런 핑계를 대면서 사라지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교회가 사랑이 없다, 목회자가 돈 많은 사람만 좋아한다 나를 대접해주지 않는다” 꼭 뭐와 같은가 하면 아이들이 구슬 꿰기를 하는데 구슬로 예쁘게 잘 만듭니다. 다 만들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만 줄이 짧아서 묶지를 못하고 실패하고 맙니다. 한동안 열심히 일하는데 마무리가 좋지 않아서 결국은 귀하게 쓰임을 받지 못합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따라서 합니다 “시작과 끝이 같은 사람”입니다. 성경에 어떤 사람이 있겠습니까?
성경에 많은 인물이 있지만 요셉, 여호수아, 다니엘과 같은 사람입니다.
요셉은 어려운 일이 있지만 그럼에도 믿음을 지킵니다. 형들에게 팔여 노예로 끌려갑니다. 또한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가는 동안 결국 믿음을 지키는 자가 형통한 자가 되어서 그의 가족을 구하고 민족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됩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를 보세요!
어린 시절에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고 그곳에 있는 왕실 사관학교에 보내져서 왕의 진미와 학문을 배웁니다. 그럼에도 그는 진미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을 것을 기도하고 주님 앞에 구합니다. 뿐만 아니라 총리가 되어서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세 번 멈추지 않고 기도합니다. 그 일로 사자굴에 던져지고 생명의 위협을 받지만 그의 길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그는 세 왕조가 지나가며 여전히 총리로 장수의 복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결국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자여” 천사의 부르심과 함께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늘의 신비를 보여주고 이스라엘의 장래의 일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사람은 처음 발걸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J.C. 페니 사람이 친구와 함께 어느 회사에 들어갔는데 그 회사에서 맡긴 첫 일이 엘리베이터 안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같이 입사한 청년은 “대학까지 졸업한 내가 엘리베이터 안내를 해?”하며 뛰쳐나갔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청년은 “경영주에게 무슨 뜻이 있겠지. 이것도 한 코스겠지.”하며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친절하고 생기 차게 인사하며 안내를 잘 했습니다. 얼마 후 그는 회사에서 인정을 받아 팀장이 되고 나중에는 경영책임자까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세계적인 백화점의 왕이 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 회사의 경영주는 어떤 일을 맡겨주어도 변함없는 사람을 쓰고자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딸이 결혼을 하겠다고 애인을 데리고 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사위로 맞이하고 싶습니까?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변함없는 사람을 쓰고자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실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 있는 사람을 좋아하시긴 합니다.
그런 사람은 대체적으로 하나님의 어떤 역사를 위하여 특별히 쓰임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사람은 흠이 없는 사람 변함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한 일을 맡기십니다. 다니엘을 통해서 앞으로 장래에 있을 이스라엘의 비밀을 묵시로 보여주십니다. 요셉을 통하여 야곱과 가족들이 애굽땅에 정착하게 하시고 이스라엘의 구원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말씀의 여호수아를 통하여 이스라엘 정착의 사역을 완성시켜 주십니다. 그는 언제나 변함없는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모세를 섬겼고, 한결 같은 하나님을 향한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까지 영도한 지도자가 됩니다. 이런 그가 죽음의 모습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자를 오늘 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모세의 시중을 들던 자로써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고 이제 그의 신앙의 고백으로 그 백성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시종여일 같은 사람입니다. 이것은 무엇과 같은 가하면 나무를 보면 처음에는 잘자랍니다. 그러다가 어떤 자극이 주어지면 방향이 굽어지고 옹이가 나고 생채기가 나면 나무는 불쏘시개로 땔감으로 밖에 쓰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한 자극에도 변함없이 자라게 되면 그 나무가 귀한 나무가 됩니다. 그런 마무가 성전의 기둥과 같이 쓰일 수 있습니다. 자극을 버터온 나무가 또 다른 세월을 이기는 기둥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나오는 말
이태리 밀라노의 대성당에는 문이 셋이 있는데 첫째 문은 아치로 되어 있는데 “모든 즐거움은 잠깐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둘째 문은 십자가형으로 되어 있는데 “모든 고통도 잠깐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셋째 문에는 “오직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인생을 가장 짧게 정리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즐거움도 잠깐, 미움도 잠깐인데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이 가는 길로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 충성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은혜를 안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 주신 교회를 기쁨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시편 39편 6-7절에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러한 변함없는 인생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하버드 대학에서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충고가 있습니다.“연애하지 마라. 특별히 1학년 때는 연애하지 마라. 1학년 때 연애하면 졸업하지 못한다.”라는 말을 해주는 것이 전통이랍니다. 하버드 대학생이 1학년 때 사랑에 빠지면 제대로 공부를 못 하니 자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학년 때 ‘책 다섯 권을 읽는 시간이 얼마, 리포트 3개를 작성하는 시간이 얼마’ 하며 시간을 잘 관리해서 빠듯하게 공부해야 졸업할 수 있답니다. 선배들의 조은 충고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자신을 절제하라는 말입니다. 내 감정과 내 기분이 아니라 주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 가를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땅의 많은 사람가운데서 그 마음이 진실한 사람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하여 우리의 인내를 테스트하고 계십니다. 때로는 사람의 시험이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재정의 시험이 있습니다. 이런 일 저런 일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고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에도 우리의 마음의 중심이 주님께로 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밀가루 반죽을 보시면 자꾸 때려야 찰지고 좋은 반죽이 되는 것처럼 인생과 신앙의 여러 경험이 있어야 경험의 깊이가 있습니다.
이런 충고 속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겨져 있는데 성공하는 사람은 성공하는 사람들끼리 사귑니다. 그들은 성공적인 아이디어를 내어 함께 성공하는 것입니다. 실패한 사람은 실패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실패한 이야기만 하니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시작과 처음이 같은 사람이 되려면 마음을 바른 곳에 두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긍정적인 생각이 나를 이끌어가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긍정적인 사람, 복 받는 사람들은 항상 감사하며 찬송하고 기뻐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처럼 항상 마음에 선한 것을 찾아가야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귀한 그릇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불노동을 생각할 때 꿈이 있는 교회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나고 꿈이 있는 교회를 생각할 때 여러분이 가장 먼저 주님의 기억 속에 생각이 나야합니다. 여러분의 말없는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지금 그 마음 변치 마시고 끝까지 주님 앞에 충성하심으로 몸 된 제단을 아름답게 지켜 나가는 재목과 같은 존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