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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 통치와 앗스르 침공[왕하 18장]
[내용개요]
본장은 분열 왕국 이후 가장 탁월한 왕으로 평가받은 13대 왕인 히스기야의 주요 업적이 기록되어 있다. 선왕 아하스의 유약함과 불신앙 때문에 정치적, 종교적 상황 뿐만 아니라 경제적 상황까지도 극도로 피폐해 있었던 유다는 북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하기 약 6년 전에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에 의해서 부왕의 의존적 외교를 지양하고 자주적인 정책을 펼치는 등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존하고 모든 미신과 우상을 일소하는 아주 새로운 변혁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히스기야 왕의 유다 통치와 앗수르의 침략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본장은 히스기야의 초기 행적 (1-8절), 이스라엘의 멸망(9-12절), 그리고 앗수르의 1차 유다 침입과(13-16절), 앗수르의 2차 유다 침입(17-18절), 및 랍사게의 모욕적 언사가 기록되어 있다(19-37절). 히스기야의 신실한 신앙적인 태도가 후반부에서는 이방의 사신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의연한 자세로 나타나고 있다.
[강 해]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지금까지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하여 교차 진술되던 방법에서 떠나 이제는 유다에 관해서만 언급하게 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왕은 악한 통치를 펼쳤던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입니다. 그는 아버지와는 달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면서 강력하게 개혁을 추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반앗수르 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앗수르의 공격을 받지만 히스기야는 여호와만을 의지하는 신실한 지도자였습니다.
1. 히스기야의 개혁 통치
1) 히스기야의 즉위
유다의 왕들 중 위대한 개혁자로 알려진 히스기야가 아하스를 계승하여 왕위에 올랐습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비극의 왕 호세아가 3년째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25세에 왕위에 오른 히스기야는 29년을 통치하였습니다.
a. 히스기야의 즉위(대하28:27)
b. 히스기야의 모친(대하29:1)
2) 여호와를 의지한 히스기야
히스기야는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동하였습니다. 다윗같이 바르게 행했다는 칭찬은 유다의 왕들 중 히스기야를 포함하여 4명뿐이었습니다. 즉 아사, 여호사밧, 그리고 요시야였습니다. 특별히 히스기야는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투철한 신앙을 가지고 각종 우상들과 미신들을 훼파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우상 숭배를 못하도록 권장하였습니라. 이처럼 히스기야는 여호와만을 의지하면서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고자 힘써 노력하였습니다.
a. 정직히 행함(왕하20:3)
b. 모세의 놋 뱀(민21:8-9)
3) 히스기야의 자주 정책
이처럼 여호와만을 신뢰한 히스기야였기에 매사에 형통함이 넘쳤습니다. 국내적으로 단호하게 행한 종교 개혁이 점차 이루어져 갔고, 국외적으로는 블레셋을 정복하였습니다. 한편 히스기야는 부왕인 아하스가 펼쳤던 친앗수르 정책을 지양하고 하나님의 선민답게 단호한 자수 정책을 시행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를 사르곤 2 세가 다스릴 때는 지혜롭게 앗수르를 자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르곤 2세를 이어 산헤립이 왕위를 계승하자 앗수르에 대해 강경한 애도를 취했던 것입니다. 동시에 예상되는 앗수르의 보복을 준비하여 이웃 나라들과 동맹하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a. 앗수르를 섬긴 아하스(왕하16:7)
b. 여호와만을 의뢰하는 히스기야(왕하19:10)
2. 앗수르의 1차 침입
1)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본서의 저자는 다시 한번 앗수르에 의한 이스라엘 멸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재위 4년에 포위된 사마리아가 히스기야 재위 6년에 함락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멸망은 유다에게 주는 암시적인 경고가 있었습니다. 또한 여호와만을 의지하는 히스기야의 선정과 우상 숭배만을 일삼는 호세아의 타락이 극명하게 대조되면서 한 민족이 왜 멸망하는지 그 이유를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멸망은 히스기야에게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충성과 신뢰를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a. 앗수르를 사용하시는 하나님(대상5:26)
b. 사마리아를 취한 앗수르(왕하17:6)
2) 유다를 침입한 앗수르
앗수르의 사르곤 2세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장본인으로서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많은 영토를 확장하고, 여러 민족들을 함락시켰습니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은 산헤립은 약간 힘이 모자라는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를 비롯하여 베니게, 블레셋, 그리고 애굽 등이 동맹군을 결성하여 앗수르에 대항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예루살렘을 강화시킴으로 앗수르 공격에 대비하였습니다. 예상대로 앗수르의 산헤립은 자국에 등을 돌린 유다를 공격하러 쳐들어왔습니다. 유다에 오는 도중에 동맹국들 중 베니게와 블궤셋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제외한 유다의 많은 성읍들을 함락시켰습니다. 그 후 산헤립은 유다와 블레셋의 국경 부근인 라기스에 머물면서 예루살렘을 재차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때 히스기야의 마음은 한없이 약해졌습니다. 여호와만을 의지하기엔 너무나 다급하다고 그는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산헤립에게 전갈을 보내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잘못했다고 용서을 구하면서 만일 앗수르가 예루살렘에서 철수한다면 어떠한 요구도 들어주겠다 고 제의했습니다. 그리하여 히스기야는 성전과 궁전 안의 모든 은과 문과 기둥에 입혀진 금까지도 벗겨 내 300달란트의 은과 30달란트의 금을 산헤립의 요구대로 주었습니다. 물론 앗수르도 약속대로 철수하였습니다. 이러한 앗수르의 침입은 히스기야의 연약함과 불신앙적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고, 유다를 극도의 혼란과 좌절 속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a. 솔로몬 당시에 풍부했던 은과 금(왕상10:21)
b. 하사엘에게 바친 금(왕하12:18)
3. 앗수르의 2차 침입
1) 항복을 요구하는 앗수르 사신들
히스기야가 보낸 예물을 받고 물러난 앗수르의 산헤립은 유다의 완전한 항복을 요구하고자 사신들을 유다에 보냈습니다. 이를 알고 히스기야도 3명의 사신을 보내 예루살렘 성벽에서 가까운 세탁자의 밭에서 협상을 위해 앗수르 사신들을 만났습니다. 앗수르 사신들은 히스기야의 항복을 요구했습니다. 동시에 히스기야가 애굽이나 여호와를 믿고 또는 무력에 의지하여 앗수르에 반역하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임을 역설하였습니다. 앗수르 사신들은 저항을 통한 비참한 죽음보다는 항복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설득하였던 것입니다.
a. 궁내 대신 엘리야김(사22:20)
b. 상한 갈대인 애굽(겔29:6-7)
2) 백성들을 설득하는 앗수르 사신들
히스기야가 보낸 사신들과 대화들 나눈 앗수르의 사신들 중 랍사게가 이제는 백성들을 향하여 앗수르에게 항복할 것을 설득하였습니다. 랍사게는 히스기야의 허황된 말을 믿지 말고, 구원을 주신다는 여호와의 능력도 신뢰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단지 앗수르에게 항복하고 나아오면 생활의 안정은 물론이거니와 새로운 삶의 터전도 주어 평안한 삶을 누리도록 해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끝으로 랍사게는 여호와도 앗수르왕 앞에서는 무기력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말을 마쳤습니다.
a. 평안한 삶(왕상4:25)
b. 내 손에서 건질 신이 있느냐(단3:15)
3) 침묵하는 백성들
랍사게의 말에 대해 백성들은 침묵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이는 이미 히스기야가 백성들에게 지시한 사항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다의 사신들은 이 모든 일을 히스기야에게 보고하러 가서 옷을 찢으며 통분해 하였습니다. 사신들은 하나님에 대한 앗수르의 모독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으며 암울한 민족의 앞날로 인해 고통스러워했던 것입니다.
a. 옷을 찢음(수7:6)
b. 인내가 필요한 침묵(시37:7)
결론
히스기야는 유다의 왕들 중 대표적인 개혁자로 손꼽히는 선왕이었습니다. 그는 오직 여호와 중심의 신앙을 갖고 나라를 다스리며 개혁을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앗수르의 극악 무도한 횡포와 회유 속에서도 오직 여호와만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단어해설]
6절. 연합하여. 원어 <qb'D::다바크>는 '달라붙다' 또는 '지키다'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히스기야가 일평생 하나님의 뜻을 어기지 않고 철저하게 순종하였음을 말하고 있다.
8절. 가사. 예루살렘 남서쪽 80km 지점에 위치한 블레셋의 성읍으로 블레셋 평원의 최남단에 해당된다. 따라서 히스기야가 가사를 정복했다는 기록은 블레셋을 완전히 정복했음을 의미한다.
14절. 범죄하였나이다. 원어 <ytiaf;~j;:하타티> 는 '그릇되다, 빗나가다'라는 뜻의 <af;j;:하타>에서 유래된 말로 주로 정치적이나 일반적인 범죄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19절. 의뢰하는. 원어 <jf'B;:바타트>는 하나님이나 우상들에게 의지하는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는 앗수르 왕이 히스기야가 애굽을 철저히 믿고 그에게 국운을 맡기고 있음에 대해 비꼬는 말로 사용하였다.
20절. 입에 붙은 말. 실제로는 아무 것도 없으면서 겉으로 잘난 척하고 자신을 나타내려는 허장성세의 말을 가리킨다.
24절. 장관. 원어 <hj;P,:파타트>는 지방을 다스리는 관리를 가리킨다.
26절. 유다 방언. 유다 방언은 고대 셈족 어군에 속하며 아람어나 앗수르어와 동족어이다.
27절. 자기의 대변을 먹게 하고.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공격으로 완전히 포위되어 성안에 먹을 것이 전혀 없는 비참한 상태에 이르게 될 것임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31절. 항복하고. 원어 <hk;r:B]:베라카>는 '선물, 복' 을 뜻한다. 여기서는 랍사게가 이스라엘에게, 항복하는 것이 목숨을 구하고 평안하게 되는 유일한 길임을 회유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32절. 감람.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생산되는 올리브 나무 열매로 감람 기름은 식용 및 약용, 제사용으로 사용된다.
33절. 열국의 신들. 가나안 지방에서 섬겨지던 여러 우상을 가리킨다. 따라서 랍사게가 여호와를 가나안 우상과 동일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37절. 옷을 찢고. 극심한 고통이나 분노 또는 간절한 회개를 표시하는 이스라엘의 일반적 관습이다. 여기서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경멸하는 랍사게의 말에 대한 분노의 표현으로 시행되었다.
[신학주제]
산헤립의 유다 침입.
본문은 앗수르 왕 산헤립이 1, 2차에 걸쳐 유다에 침공한 사실과 더불어 앗수르의 침략에 완전히 패망한 북이스라엘의 역사를 재진술해, 남유다와 비교적인 관점에서 하나님께 순종한 자와 불순종한 자의 결말이 어떠한가를 보여 주고 있다. 북왕국 멸망의 재기록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선정과 패역한 호세아 왕의 모습을 대조시켜 북이스라엘의 종교적 부패와 그에 기인한 그들의 멸망을 기록하고 있다. 산헤립의 1차 침입 사건은 역대기에는 없는 기록으로, 앗수르 왕 산헤립의 1차 침공에 대해(B.C.714 년) 히스기야가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으로 전쟁을 협상하는, 유다에게는 굴욕 적인 내용이다. 이는 히스기야도 실수와 잘못으로 범죄할 수 있는 인물임을 나타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의인은 한 명도 없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산헤립의 2차 침입 사건은 왕하19:37까지 이어지는데, 1차 침공의 결과에 만족치 않고 예루살렘의 완전한 정복을 위한 이 침략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결국 실패한다. 본문은 그 2차 침입의 서두 부분으로서 산헤립의 명을 받고 온 랍사게의 히스기야에 대한 모욕적 언사와 군사력의 열세, 종교적 명분 등을 내세운 유다 백성에 대한 회유책,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께 대한 모독이라는 악의 점층적 전개가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끝까지 그의 신앙적 자세를 버리지 아니하였다.
[영적교훈]
사단의 신앙적 유혹은 항상 우리의 상상을 능가하는 것이므로 믿음으로 철저하게 무장해야 한다. 랍사게의 모욕석인 언사를 통해 그러한 사실을 짐작 할 수 있다. 사단이 우리를 유혹할 때 순간적이나마 사단의 모습은 우리에게 엄청나게 크게 부각되어 보인다. 본문 가운데서 산헤립은 '대왕'이라는 모습으로 나온다. 그리고 그는 모든 열방을 쳐부술 수도 있고, 축복의 땅으로 인도할 수도 있는 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은 사단의 속임수에 결코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에 귀를 기울인다면 분명 사단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