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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6-24
홀로 남은 선지자 / 이수영 목사
오늘 본문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아합 시절의 선지자 엘리야의 행적에 관한 기록의 일부입니다. 엘리야 하면 뭐니 뭐니 해도 갈멜산의 대결로 유명합니다. 엘리야는 거기서 850대 1의 대결을 벌였습니다.
그 대결의 상대는 아합의 아내 이세벨의 식탁에서 밥을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의 진짜 대결상대는 사실상 폭군 아합과 그의 독한 아내 이세벨이었으며 그들이 섬기던 거짓 신 바알과 아세라였습니다. 850명의 거짓선지자들과 맞서 싸우는 일도 보통 버거운 일이 아니었겠지만 그 무서운 군왕과 그보다 더 무서운 왕후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은 정말로 목숨을 건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아합이 어떤 왕입니까?
이미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는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더 많은 악을 행한 왕입니다(왕상16:30). 그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모든 행악의 원조인 첫 왕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긴 자였습니다(왕상16:31). 그는 이방 나라 왕의 딸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그를 따라 바알을 섬기며 사마리아에 바알을 위해 신전을 건축하고 제단을 쌓았으며 또 아세라 상을 만들어 세움으로써 그 이전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한 자였습니다(왕상16:31~33).
그는 자기의 귀에 듣기 좋은 말로 아부하기만을 일삼는 수백 명의 거짓 선지자들을 두고 그들의 말에만 귀를 기울였으며 쓴소리로 충언하는 참 선지자는 미워하고 멀리하며 박해했습니다(대하18:5~7, 25-26). 아합만이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내 이세벨은 더했습니다. 그녀는 아합으로 하여금 바알과 아세라를 위해 신전과 제단과 우상을 세우도록 입김을 불어넣는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모두 잡아 죽이고 있었습니다(왕상18:4, 13, 19:10, 14).
본문 22절에서 보듯이 엘리야가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다”고 할 정도로 이세벨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진멸시킨 악독하고 무자비한 여자였습니다.
엘리야 자신도 실제로 이 아합과 이세벨을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모릅니다. 두 번씩이나 도망쳐 숨어 살았으며 이세벨의 복수심이 어찌나 두려웠는지 하나님께서 빨리 자기 생명을 거두어가주시기를 바란 적도 있습니다(왕상19:1-4).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야가 성경의 모든 이야기 가운데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역사적 대결을 벌일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엘리야의 첫 등장과 활동의 기록을 왕상17:1 이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엘리야가 아합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선지자는 자기의 생각대로 행동하고 자기 맘대로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가서 말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엘리야가 아합을 찾아가서 말한 것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는 엄청난 말을 왕에게 가서 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지 않고서는 결코 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로 하여금 그 일을 하게 하시고는 곧바로 그에게 지시하셨습니다: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왕상17:2-4).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왜 숨어 지내라 하셨겠습니까?
당신의 말씀대로 수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하셔서 이스라엘의 불신앙을 징계하시고 거짓 선지자들을 다 멸하신 후 다시 비를 내리게 하시는 일에 엘리야를 또 사용하시려고 그를 포악한 아합 왕으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가서 머물렀으며(왕상17:5),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까마귀들을 시켜 아침저녁으로 그에게 떡과 고기를 공급하셨습니다(왕상17:6). 그리고 이스라엘 땅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얼마 후에 시내가 마르고 말았습니다(왕상17:7).
심한 기근이 수년간 있은 후에야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에 비를 내리시기로 하시고 엘리야로 하여금 아합을 만나게 하셨습니다(왕상18:1-2).
아합은 엘리야를 보자마자 말하기를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했습니다(본문 17절).
이에 엘리야는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고 대답했습니다(본문 18절).
그리고는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나아오게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본문 19절).
아합은 그 요구를 받아들여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았습니다(본문 20절).
엘리야는 갈멜 산으로 모여온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했습니다(본문 21절).
엘리야는 또 백성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라” 한 후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송아지 둘을 가져오게 하고 바알의 선지자들이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은 채 두며, 엘리야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역시 불은 붙이지 않은 채 두고는, 바알을 신으로 섬기는 자들은 그의 이름을 부르고 엘리야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서 누가 불로 응답하는지를 보아 참 하나님을 밝히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백성이 다 대답하기를 “그 말이 옳다” 했습니다(본문 22~24절).
그러자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많으니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붙이지 말라”(왕상18:25). 그 말에 따라 바알의 선지자들은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고 외쳤습니다.
물론 아무 소리도 아무 응답도 없었고, 그러자 그들은 그들의 제단 주위에서 뛰놀기 시작했습니다(왕상18:26). 바알을 즐겁게 하면 혹시 응답이 있을까 해서였습니다.
해가 정오에 이르자 엘리야는 그들을 조롱하며 말하기를 “그가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가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모르니 큰 소리로 부르라” 했습니다(왕상18:27).
그러자 바알의 선지자들은 큰 소리로 바알을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며 저녁 제사를 드릴 때까지 미친 듯이 떠들어댔습니다(왕상18:28~29). 그러나 아무런 반응도 나타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자기에게로 가까이 오게 하고는 하나님을 위한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게 한 후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붓게 하기를 세 번이나 반복해서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차게 했습니다(왕상18:30~35). 그리고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왕상18:36~37).
그러자 하나님께서 불을 내리셔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다 핥아 없애게 하셨으며(왕상18:38), 모든 백성은 이를 보고 엎드려 말하기를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했고(왕상18:39), 그 일로 인해 바알의 선지자들은 모두 잡혀 진멸되고 말았습니다(왕상18:40). 이렇게 바알의 선지자들을 모두 없애신 후에야 하나님께서는 다시 큰 비를 내려주셨던 것입니다(왕상18:41 이하).
남편 아합 왕으로부터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바알의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사실을 전해 듣고 노발대발한 이세벨은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말하기를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했습니다(왕상19:1~2).
엘리야를 당장 죽여 없애고야 말겠다며 서슬 퍼렇게 악에 받쳐 펄펄 뛰는 이세벨을 능히 짐작케 하는 말입니다.
그런 이세벨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 엄청난 거사를 감행한 엘리야의 용기와 결단과 힘은 어디서 온 것이겠습니까?
우리는 그 답을 우선 엘리야 자신의 말 속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이세벨의 보복이 두려워 사십일을 밤낮으로 쉬지 않고 도망쳐 호렙 산으로 갔고 그 곳 굴속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다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왕상19:8~9). 그때 엘리야의 대답이 이러했습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19:10, 14).
여기서 우리는 그가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유별났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리고 하나님의 제단을 헐며 칼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는 일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는 말입니다. 선지자들이 다 죽고 홀로 남았지만 가만있을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을 위한 유별난 열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이 열심을 들어 쓰신 것입니다. 그 엘리야의 뜨거운 마음으로 아합과 이세벨과 그 주변의 거짓 선지자들과 백성의 잘못을 질타하시며, 거짓 신들의 거짓됨을 여실히 드러내시고, 우상숭배에 빠졌던 백성을 징벌하시며, 참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신앙을 회복시키시고, 다시 비를 내려 기근을 멎게 하셔서 백성을 도탄에서 건져 살리신 것입니다.
엘리야가 스스로에 대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다”고 한 말은 그에게 살아계신 참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살아계신 참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주의 언약을 버렸어도 하나님은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의 제단을 헐며 주의 선지자들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배역행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자기만 홀로 남을 만큼 선지자들이 다 죽었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반드시 의로운 심판을 하시리라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수는 아무리 많아도 살아계신 참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이러한 믿음을 들어 쓰신 것입니다.
엘리야는 폭군 아합과 악녀 이세벨과 거짓 선지자 팔백오십 명과 맞서 홀로 싸워야 했지만 그에게는 내면의 적도 있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는 다 죽고 자기 홀로 남았다는 외로움과 두려움이었습니다. 그 또한 약하디 약해진 순간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스스로 죽기를 원할 만큼 무서움이 컸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적 약점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열심이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신 것입니다.
엘리야가 그 엄청난 도전과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열심뿐 아니라, 또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해야겠다는 뜨거운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봅니다. 악한 군주 때문에, 그가 더욱 촉진시킨 우상숭배 때문에 온 백성이 수년간의 기근으로 말미암아 굶어죽어야 함을 그냥 지켜볼 수 없는 엘리야의 애타는 마음이 그로 하여금 단신으로 폭군과 맞서 할 말을 하고 그의 추종자 무리와의 놀라운 대결을 결행하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그 뜨거운 애족심을 귀하게 보시고 하나님의 역사의 도구로 쓰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엘리야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깨닫게 하는 바가 큽니다. 엘리야의 시대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섬기며 행악을 일삼는 폭군 아합의 시대였습니다. 무조건 왕의 귀에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아부꾼들에게 둘러싸여 그것을 즐기는 어리석은 군왕의 때였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모조리 박해와 죽임을 당하고 백성은 침묵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엘리야의 외로운 투쟁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이 나라를 위해서도 홀로 남아 외롭게 싸우는 선지자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엘리야의 시대에 왜 비가 내리지 않고 사람들이 살기가 힘들어졌는지를 분명히 보아야 합니다. 또한 다시 비가 내리고 백성이 다시 먹고 살 수 있게 된 것이 언제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지 않게 하신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박해한 권력자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비가 온 것은 엘리야의 투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참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깨닫고 거짓 선지자들을 척결했을 때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바르게 하고 권력주변에 거짓되고 악한 무리들을 척결할 수 있다면 우리의 경제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단비가 내리는 회복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악한 세력이 기독교를 모욕하고 주의 몸된 교회를 탄압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권력지향적으로 살거나 권력 앞에서 아부와 눈치 보기를 일삼는 때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유별난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각자 홀로 남은 선지자가 되려는 용기를 지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엘리야처럼 들어 쓰셔서 놀라운 역사를 행하실 것입니다. 반기독교적인 세력이 아무리 창궐하고 그들이 850대 1의 압도적 힘으로 우리를 누르려 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홀로 남은 줄 알고 있었던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19:18).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홀로 남는 선지자가 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칠천 배 이상의 힘을 더해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순교자 기념주일입니다. 순교는 “홀로 남는 선지자”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의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순교의 피를 먹고 성장했습니다. 한국교회도 숱한 순교자의 피 위에서 성장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에도 홀로 남아 교회를 지키시다 남침한 북한공산군에게 붙잡혀 가신 김영주 목사님의 이름이 순교자의 반열에 귀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홀로 남는 선지자의 순교정신을 길이길이 이어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