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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리 글 과 공 동 체 라 면?
2012-12
나와는 딴판인 술판, 화투판(花鬪判) - 눈물 판의 마흔, 잔치는 끝났다
박병민 목사(새터공동체)
나는 인본주의자인 휴머니스트도 아니다. 나는 관념에 사로잡힌 소피스트자도 아니다. 나는 이념에 사로잡힌 이데올로기자도 아니다. 나를 패기처분 해야 할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말하자면, 콧등 밑으로 흘려 내려간 안경 밖을 흘깃흘깃 하면서, 신념에 사로잡힌 신본주의자라고 표현하면 거반 맞는 말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 신은 나를 목사리에 끌려가는 한 마리의 개처럼, 교회의 목사로 만들어 주었다. 우리나라 사극드라마에 나오는 “수구문 밖”이라는 말을 아는가? 성서에서는 그 곳을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형장 속의 한 떨기 이슬로 살아져 간 “해골골짜기”라고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마가복음 15:22). 내가 만나 뵙는 목사님들 가운데 한국기독공보의 교회신문에 자주 대두되는, 붉은 얼굴빛을 띤 배종부 목사님이 계신다. 그 분은 “순명(殉命) 배종부 목사님”이시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다니는 조카딸아이 예지가 예견해대기를 “외삼촌은 구십구 세까지는 살아갈 것 이란다” 이렇게 지루한 긴 안목의 삶을 화투장을 내어 던지듯 “고와 스톱”을 반복해가며 판을 깔듯이, 우리들은 멍석을 깔아가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형세에서 한반도의 배꼽에 해당되는 부분은 강원도의 양구군이다. 나는 그 곳에 가본적은 없지만 군사문화의 점철로 대두 지어졌던 곳으로만 알고 있다. 사람에게서 목뼈인 경추와 허리뼈인 요추가 망가지면 뼈도 뼈이지만 신의 선물과도 같은 실낱처럼 연결지어나간 신경(神經)줄이 그 역할을 잃어버릴 때에는 마비가 불러 일으켜지니 더더욱 어눌한 문제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나라 안에서도 십몇 년을 보내어 오면서 허리에 해당되는 중산층이 살아진다고 너나 나나 말들이 많다. 등뼈를 든든하게 하기 위해서는 감자탕 속에 들어가는 뼈다귀 겉에 고깃살이라도 들어붙어 있어야 한다. 바로 들어붙어(들여져서 붙었다) 있다는 역설미을 알아야 한다. 뼈를 든든하거나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뼈의 겉에 깡다구라는 근육으로 덧씌워가야 하는 바로 그 역설, 다시 말하면 겉을 잘 방비해야 속살이가 들볶이지 않고 편하다는 얘기 일 것이다. 중산층이 얇다 보니 어스름한 이 맘 때에는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덕담으로 들 찾아들 것이다. 내일 모래가 이 나라의 열여덟 번째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날이다. 대통령이 될 사람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사람들의 요깃거리에 해당되는 것들을 줄행랑의 “차떼기”들로 실어다 쟁여대도 턱없이 부족할 것 같은 백화점식 얘기들을 들여다 대는 상다리가 부러 질듯 떡버러지게 떡상차려대는 번들거림이 갖가지의 구설수들 속에 들려져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성서에서는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학개 1:6). 그런데 더더욱 문제는 우리 같은 이들은 문전성시의 정연장인 백화점이 아니라, 수선한 선술집과 같은 잡화점 곁에서 슬렁거리며 다닌다는 것이다. 예부터 항간에는 다음의 얘기들이 숨어 돌아다니고 있단다. “수구 혹은 보수는 돈 봇따리가 그들을 망하게 해 데고, 그 반면에 진보는 사람들을 끌어들인 오야봉이 망하게 한다는 속 얘기가 있다” 그래서 성서는 “구멍 뚫어진 전대”를 메어달고 딸랑거려가며 다니는 허리춤에서 군살을 제거하라는 말로써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베드로전서 5:5). 이 말이 바로 나에게는 “사카린이 아니라 좀 더 머리에 쇳가루가 들어간 너스레 한 어른이 되라”는 말로 들려진다. 나도 이제 열 서너므 날이 지나면 긴장 자를 집어넣어도 될 야리꾸리 한 연령대로 들어가게 된다.
나는 이 시간, 대전 월평동의 복지관에 계시는 최 선배님이 좋아하시는, 그러면서 십여 년 전에 서랍 속에 집어넣었던, 시인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십 순배가 지나면서 진부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여기에 다시 끄집어 내본다. 그 책에서 그녀는 말하기를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겨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샘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 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라는 걸,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라는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이 시에서 뒤에 오는 물 좋은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미리 헛물을 들이키는 가나의 혼인집의 붉은 포도주 잔에 눈이 빠져버린 사람들이 연상이 된다(요한복음 2:1-12). 나는 알콜끼에 찌들려져서 씁쓰름하게 대장부 삼손을 홀려대는, 그 예전에 좋아 하였던 “조영남의 릴라일라”를 지금은 싫어한다. 그 대신에 체질상 나의 몸에 좋다는 달달한 포도즙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 붉은 포장 넘어 속에는, 나의 달달한 차가운 인생이 들어 있는 것 같다. 볶여져서 “달달하다”는 말이 얼마나 쓰디 쓴, 바로 거꾸로 읽어가는 세계사가 아니던가? 그래서 선생님이 제자 디모데에게 말했던 것처럼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는 말을 기억한다(디모데전서 5:23). 박현빈이 말하는 강원도 “곤드레 만드레”의 들풀 나물을 안주(按酒) 삼아가면서, 그 포도주의 새 술에 취해 들어가고 싶다. 왠고 하니? “안주(按酒)”라는 한자 글에는, 목사만이 들이지도 말라는 거문머리짐승의 정수리에 “안수(按手)”라는 이름으로, 그 머리를 따뜻하게 붉은 피의 마음을 쏟아 쓰다듬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냉혈인간인가? 손을 머리에 가져다 대도 설레발을 떨어대며 썰렁한데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개그맨을 보고 하듯 웃어라하지를 않는다. 나는 사랑타령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뒤안길의 빈자리에 홀로 남아서, 마지막까지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 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싶다. 그면서 서른 잔치보다 십 순배가 더 지난 지금 그 상을 물리고 싶다. 그래서 “부자 되세요”라고 말하는 그 사람들에게 나는 되묻고 싶다. “부자가 돼서 무엇을 해갈 것인데........?” 나는 그 답을, 작년 하반기에 우리 집에 찾아 오셨던, 필리핀의 장동만 목사님과 그 분의 부인 이혜영 선교사님이 입에 마스크를 쓰고 오신 그 모습 속에서 어렴풋이 찾아 낼 수 있었다. 아기를 낳기 위하여 우리나라에 오시게 되었는데, 그 때에 몇 곳의 병원들에서 여성분들에게 원인을 모를 폐질환이 찾아오게 되었다. 목사님의 사모님이 그 아픔에 맞닥트리게 되어서, 많은 어려움 중에서도 교회단체총회의 관심 아래 여러 교회와 사람 사람의 뜻들이 모아졌다. 조직이 전혀 다른 어느 분의 폐를 떼어 붙이듯 이식을 받아, 하나님의 기적 속에서 지금도 그 어두움의 터널을 헤쳐가려는 목사님 부부. 그 분들은 우리 공동체에 처음 오시면서 금일봉의 기십만 원을 헌금 하셨다. 후에도 우리들이 쌀이 떨어질 것 같아 보였든지? 두 차래나 햅쌀을 전하여 주셨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 답으로 통상적인 기브 엔드 테이크를 넘은, 쌀가마니를 푹 두집어 씌우는 물건을 전하여 들였다. 그런데 아직도 태반(太半)으로 밖에는 여겨지지가 않는다.(010-2447-1427) 나는 떼국놈들의 한자(漢子)를 잘 모른다. 그런데 요새는 세상이 편해져서 컴퓨터의 펑션키라는 에프9만 누르면 만사 오케이다. “태반”하면 “반반 자”를 쓰는 太半이 있는가? 하면, 매빵석의 방석집을 연상케 하는 뷔페집의 그릇을 상징하는 태반(汰盤)이라는 말이 있다. 성서 속에서 돼지머리처럼 여겨지며 등장하는 바로 목이 잘려져서 소반 위에 올려 진 세례요한의 씁쓰름한 몰골이 나의 골을 때려댄다(마태복음 14:1-12). 태반(胎盤)하면 어머니에게서 탯줄을 잘라낸 이 나라의 배꼽을 가리키는 강원도의 양구군을 이야기 했다(아가7:2, 에스겔 16:4). 나는 요즈음 이 대통령께서 부르짖은 “소통 또는 공감대”이라는 것을 통째로 알아보기 위하여 명지대학교 김정운 교수가 쓴 “남자의 물건”이라는 책을 사다 놨다. 그 책에 큰 제목들에는 차범근, 안성기, 조영남이 그리고 재미있는 이름인 이왈종도 나온다. 안 읽어 봤지만, 이삼년 사이에 종교인으로써 관심을 가져보려고 하는 노신사격인 이어령이라는 분도 나오고, 이어령 하니 그 옛날에 우리나라 인간국보 제 일호라고 일컬어지던 양주동이라는 분도 스쳐간다. 그 책의 앞자락에 보면 우스개 얘기가 나온다. “아가씨, 얼굴에 뭐 묻었어요!” 식당에서건 카페에서건 내 친구 강영식은 여자만 보면 꼭 그런다. 당황한 여자는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묻는다. “뭐가요” 영식이는 빙긋이 웃으며 대답한다. “아름다움이......” 나도 지금껏 어쩌면 강영식 어른처럼 엉뚱하게 막살아온 것을 하나님 앞에서 석고대죄 한다. 그래서 성서에서도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전서 3:7). 그래야지 자다가도 떡이 생기게 된다. 그 김정운 교수는 책에다 그렇게 썼다. “최근 나는 배꼽 위로 올라오는 ‘아저씨 바지’는 다 버렸다. 허리 아래쪽에 걸리는 청바지만 입는다. 불편해도 참는다. 머리에 파마도 했다. 사실 처음에는 탈모로 엉성해진 머리 안쪽을 가리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파마한 뒤 내 행동은 사뭇 과감해졌다. 이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옷도 용감하게 사 입는다. 불과 몇 주 동안 역기와 아령을 들고는, 가슴 큰 남자들만 입는 쫄티도 사 입는다. 거울만 보이면 팔뚝에 힘을 잔뜩 준다. 그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주 정신 산만한 잡지나 책도 사 본다. 악기나 그림을 배울 생각도 자주 한다. 어떻게든 재미있고 즐거운 생각만 하려고 애쓴다. 그렇게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우울하고 허전한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은 한순간이다. 방심하면 한방에 ‘혹’ 간다. 우리 나이에는 특히 더 그렇다(1962년 생). 그래서 내 인생은 크게 둘로 나뉜다. 파마하기 전과 파마한 후. 아무튼 난 영식이가 하는 아저씨 유머 따위는 죽을 때까지 절대 안할 거다. 악착같이 젊고 건강하게 아주 오래 살 거다” 그래서 나는 계속 펑션키 에프9에서는 위태롭다는 태반(殆半)이라는 글씨가 끝으로 뒤따라져 나왔다. 나는 그 위태로운 것을 극복하는 내식의 슬기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은데, 그것은 내가 의지하는 신주단지를 모시고 바람에 건들거려대는 파스칼의 “생각하는 갈대”가 되는 것이다. 성서에서 그런류의 사람들을 황량한 광야 속에서 흔들거려 대는 갈대들 이라고 했다(마태복음 11:7). 그래서 박일남이는 “갈대의 순정”을 불렀다.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사랑엔 약한 것이 사나이 마음, 울지를 말어라. 아~아 갈대의 순정. 말없이 보낸 여인이 눈물을 아랴. 가슴을 파고드는 갈대의 순정. 눈물엔 약한 것이 사나이 마음. 울지를 말어라. 아~아 갈대의 순정.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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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예성만 김진구 박성찬 조창봉 이은주 지명수 권희숙 주송례 진영택 김정화 박소웅 박정임 라홍채 최성재 최영애 정이삭 박종만 박병민 진선미 박한솔 박진솔
* 여러 가지의 육신과 정신적 아픔 중에 있는 새터공동체 식구들의 건강한 몸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세요.
* 2012년 12월 2일에 대전살림교회에서(박상용 목사님) 겨울김장배추를 절여 주셨으며, 다음날인 3일에 대전진주문교회 여전도회와(유운걸 목사님) 금산한국전력 선생님들께서(곽태근 노조위원장님) 함께 배추김치를 담가 주셨습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충전교회.금성교회.진명구.김기홍.정이삭.최영애.라홍채.박종만.이은주.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3인).채윤기(박현실.2회).박병민(진선미).양오석.안순분.조정리교회(이정애.4회).배석인.그리스도의집(옹인숙.금산파리바게트.2회).신건태.주식회사EG(이광형.2회).수영교회.대덕교회.부자양계영농조합(김영철.고연옥).신평교회.금산군모란회(2회).반석전원교회.장동만(이혜영.필리핀).꿈이있는교회4여전도회(유석환.허정무외5인).평안교회(이성국).김종성가족.김용환(최정숙).오정교회(최세영).이원교회권사회(김은진.임숙자).예원교회(최동주).행복공동체(박세아외3인).예원교회(최동주).윤미자.대한적십자금산군추부봉사회(성삼순.강정숙).금왕교회(전수현)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