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행복 선언으로 인간의 부족함을 드러내신 뒤, 곧바로 신앙인의 정체성을 한 번에 규정하십니다. 신앙인은 가난해도, 부족해도 이미 “세상의 소금”(마태 5,13)이고 “세상의 빛”(5,14)입니다. 이 말씀은 격려이면서 동시에 두려운 선언입니다. 소금과 빛은 스스로를 위하여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다른 이를 향합니다. 소금은 녹아 사라지며 맛을 내고, 빛은 어둠을 밝혀 다른 이들이 볼 수 있게 합니다. 소금은 고대 세계에서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었습니다. 정화하고, 보존하며, 제물과 함께 바쳐졌고,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 소금이 제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고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일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바로 이 ‘부자연스러움’을 통하여 경고합니다. 제자들이 행복 선언에서 드러난 삶의 방식, 곧 가난함, 애통함, 온유함, 의로움에 대한 갈망을 잃어버릴 때, 그들은 소금이지만 소금이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이 쓸모없음은 도덕적 실패라기보다, 자기 본성과 정체성을 배반한 결과입니다. 빛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등불을 켜서 함지 속에 두는 행위는 제맛을 잃은 소금처럼 부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는 것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5,16)를 찬양하게 하려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마태오 복음서 6장이 말하는 위선적인 드러냄(보이기 위한 자선, 기도, 단식)과는 결이 다릅니다. 등경 위의 빛은 요란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끝내 숨겨지지 않아 모든 사람을 비춥니다. 우리는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사람이 아닙니다. 이미 소금과 빛이 되었으니 무엇이 ‘되고자 하는 마음’보다, ‘무엇을 위한 마음’을 지녀야 할 사람입니다. 세상의 소금이자 빛인, 자연스러운 오늘의 ‘나로서’ 살아갑시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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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9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중세 시대의 십자군 전쟁을 들어봤을 것입니다. 이 전쟁의 목적은 예루살렘 성지 탈환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표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다른 목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영주에게 얽매여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고향을 떠나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이고, 둘째는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면 지금까지 진 빚을 탕감해 준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슬람교도의 땅과 재물을 약탈해서 그곳에 정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두터운 신앙심 때문에 전쟁에 참전한 것 같지만, 위의 세 가지 불순한 목적으로 전쟁에 뛰어든 사람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목적을 가지고 있으니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겠습니까? 총 4차에 걸쳐 전쟁했지만, 제1차 십자군 전쟁만 성공이라고 부를 만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신다.”(Deus vult)라는 슬로건을 걸었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내용의 전쟁에 절대 함께하실 리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 중입니다. 전쟁할 수 없는 이유를 강조하고 있지만, 결국 자국의 이익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폭력보다 평화를 원하십니다. 힘으로 누르는 폭력보다 사랑으로 함께하는 모범적인 우리가 되길 원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마태 5,13) 순수한 소금 자체는 짠맛을 잃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 팔레스티나 사해 주변에서 구하던 소금은 불순물이 많이 섞인 암염입니다. 습지에 노출되어 소금기가 다 빠져나가면 짠맛 없는 하얀 가루만 남게 되어 길가에 버려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동화되어 복음의 가치(짠맛)를 상실하면, 존재 이유를 잃고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다는 경고인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마태 5,14) 신앙인은 세상 위로 높이 드러나 길을 잃은 이들에게 진리를 보여주는 거룩한 모범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욕심과 이기심이 판을 치는 세상, 그래서 폭력까지도 합리화하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의 자리는 분명해집니다. 신앙인의 삶은 세상의 뜻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소금과 빛처럼 세상에 유익을 주고, 최종적으로 그 모든 선함의 방향이 하느님을 향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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