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여행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참석.
몸은 경주에 있을 때부터 서서히 이상 증상을 보여서 약을 먹었다. 그와 반대로 정신은 너무 맑아서 이상한 기분...
경주로 출발할때부터 읽을 책과 강연의 책,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을 적은 종이는 가지고 갔었다. 메모는 다시 읽으면서 적은 것과 강의를 들으면서 기록한 것들이다.
작가에세 받은 사인
처음 제목만 보고 불편함의 급상승으로 오랫동안 책이 전시되어 있었고 강연에 대한 자료도 그냥 흘러가면서 보기만 했었다.
하지만 그날은 무슨 이유에서 인지 강연 신청을 하고 한동안 책은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동안 강연은 책을 거의 다 읽고 참석했으므로 그런 의무감에 추석 전날 책을 구입하고 읽었다.
장애인이라는 단어에서 아니 나는 그냥 타인에 대한 이해가 평균보다는 높을거라 했었다. 남편은 제외하고 ㅎㅎㅎ
큰아이들 어릴때 장애인 복지관에 봉사를 할때 아이들에게도 같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것을, 두려운 무서운 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데리고 가도 되는지 확인 후 종종 데리고 갔었다. 그래서 인지 같은 반에 장애아동이 있었는데 그 아이가 둘째랑 친하고 선생님 말씀을 안 듣고 통제가 안 될때 둘째가 가면 웃는 얼굴로 이야기하고 잘 따랐었다. 나도 시각장애인 봉사, 지체장애인 봉사, 장애아동 보육시설에 실습, 상담센터를 다니면서 상담에 궁금해서 한동안 상담을 공부도 했고 해서 나름 안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내가 어릴때도 장애인은 방하나를 차지하고 집에만 있는 사람이었으며 부끄러워서 어디를 다니지 않았다. 당숙중에도 백전증이 있는 분, 어릴때 떨어져서 허리가 다쳐서 어린아이 키로 평생을 사시는 분은 밖에 외출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신 후 일을 하셔야 되어서 나오셨을 때는 한분은 몸을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밖으로 보이게 하는 일이 없었으며, 또 한분은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지내셨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진심으로 알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고 표면적인 것만 보고 감수성이 있다는 엄청난 착각에 빠져있었다.
저상버스가 지하철등에 엘리베이터가 어떤 이유로 생겨나서 일반인이 편하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보면서 이런 불편함을 왜 바꾸려는 노력을 우리는 하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그냥 약간의 불편을 그르려니 하고 넘어갔을 뿐이었다. 노인이 되어 버스 계단이 힘들어도 지하철이나 기차역의 많은 계단은 올라가다 힘들면 쉬었다 가는 것을 정상아니 일상이라 생각하고 그냥 흘려노냈다. 하지만 장애인들에겐 생존이 달린 문제였었다. 그덕분에 우리는 그것들은 그냥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는 착각을 하며 사용하고 장애인 우선인 엘리베이터도 사람 그것도 비장애인들이 먼저이다. 저상버스도 느리다며 왜 만들었냐는 사람을 보면 부모님이 계신 분들은 이 버스가 얼마나 편한지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불편한 투쟁이라는 단어, 민중, 시민이라는 단어가 그들에겐 얼마나 절실한지, 우리에게 불편했던 이유가 정확한 뜻을 몰라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 이 단체에 기부를 해야겠다.' 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 기부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얼마하지도 않으면서....
강연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느 질문에 악성 댓글이 달리는 글에 선한 댓글을 하나만 달아주어도 악플을 멈춤다면서 이런 작은 일이 큰 도움을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하지만 악플을 보고 (글 쓰는 실력이 안 좋아서 인지) 이건 아니라는 글을 썼다가 폭풍 악플이 달리는 것을 보고 댓글은 쓰지않는다. 이런 솜씨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난 그냥 기부로 정했다.
가연는 타블렛으로 영화 볼거라며 가지고 가서 강의를 안 듣는 줄 알았는데 강의도 들었으며 엄마 질문에는 이어폰도 빼고 들었다는 말에 놀랐다. 그러면서 '엄마 질문 내용이랑 하는 거 들으니 어땠어?'하며 물었더니 '잘하던데. 역시 책 읽고 질문해서 인지 좋았어.' 이 말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에 나올때는 작가님께 건강은 어떠신지 살짝 여쭤보았더니 많이 좋아졌다고 하시며 웃어주시는 미소가 강연을 들으면서 생각했지만 너무 아름다운 분이였다.
장애인들의 활동인 전장연에 대해 부정적인, 강력한 것, 자극적인 것만 방송할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심층적인 방송을 한다면 이렇게 양분되고 을을의 갈들은 많이 줄어들 것인데와 장애인의 의미는 국가와 사회가 정한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겐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없으며 불편할 뿐이지 그들에게도 그들만이 잘하는 능력이 있다며 서로 도와주며 살아간다는 글이 기억났다. 우리는 얼마나 무리짓기를 좋아하는 사회인지를 알수 있었다. 무리를 지어 우리와 다르며 수해자로 보는 시선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는 말을 아무런 생각없이 말하는 이들이 선거때는 굽신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일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 중요성을 두는 사회라는 것이 떠오르면서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많은 생각꺼리 토론꺼리를 전져주는 책과 강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