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집착 10. 나만의 확증편향(確證偏向)
확증편향 確證偏向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
‘확증편향’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쉬운 말로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가 바로 ‘확증편향’이다. |
요사이 새삼 <확증편향(確證偏向)>이란 단어를 알게 되었다. 글자는 알겠지만, 이 단어를 내가 사용해본 일은 없었기 때문에 새로웠다.
요사이 쓰는 글은 경복고와 아파트 홈피, 개인 블로그 세 군데이다. 주제에 따라 세 군데에 똑같이 올리는 때도 있지만 모두 다르게 써야 하는 때가 많다. 하지만 모두 쓰고 싶은 마음이 강하면 마음이 바빠진다. 일상생활에서 또는 산책하면서 생각나거나 눈에 보이는 사물에서 글제가 생각나면 사진을 찍고 골라 올리고 글을 쓴다. 언제나 글과 사진이 잘 맞춰지는 것은 아니다. 사진이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찍고 글을 쓰다가 막히면 중단했다가 다시 쓴다. 쓴다고 한 번에 쭉 내리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글을 일주일 간격으로 올리니 하루도 사실 마음 편한 날이 없다. 글을 컴퓨터로 쓰고 올리기 전날 읽어보면 이상한 부분이 나오고 또 고친다. 올리고 나서 꼭 전화기로 다시 보고 오자(誤字)나 탈자가 있나 살피고 또 읽어가면서 중복되는 단어를 바꾸고 어감이 이상한 문장도 많이 바꾼다.
그렇게 두세 번 고쳐도 내가 쓴 글에 틀린 부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한참 지나서야 알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보면 단번에 틀린 곳을 찾아낸다. 이렇게 자기가 쓴 글에서 틀린 부분을 찾지 못하는 것을 확증편향(確證偏向)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실 글쓰기에서만 아니다. 모든 일에 그런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집에서 입을 겨울용 겉옷을 하나 샀다. 꼭 끼는 옷이 싫어 품이 좀 넉넉하게 한 치수 큰 것으로 사서 입어보니 소매가 너무 길다. 집에서 입을 옷이 소매를 매번 접어야 하니 불편하다. 그래서 결단코 자르고 더 풀어지지 말라고 바느질 감치기까지 했다. 접지 않아서 좋다고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너무 많이 잘라 입을 때마다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입었지만, 갈수록 너무 짧아 꼭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잘라버렸던 소매를 찾으니 반짇고리에 있다. 그래서 요번에는 다시 붙여 꿰맸다. 붙이려고 보니 자른 면에 풀어지지 말라고 감쳤던 부분과 다시 가져다 붙이는 쪽도 풀어지지 말라고 감쳤고 갖다 붙였기에 합해서 세 번을 감치거나 꿰맨 것이 되었다. 자르지 않았으면 한 번도 꿰매지 않았을 것을 세 번이나 감치고 꿰맸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꿰맨 상처도 그대로 드러난다. 고르고 골라 같은 색깔의 실로 꿰맸지만, 상처는 감출 수 없다.
그래 맞다, 지구에서 쏘아 올린 인공위성이나 달까지 가는 위성이 가는 도중 한 번도 궤도를 수정하지 않고 날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에는 남의 집을 찾아가려면 번지수를 알고 찾았지만 단번에 찾을 수는 없다.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하다가 찾아 들어간다. 길 따라 번지수를 매겼지만, 길도 없던 시절 띄엄띄엄 짓다가 중간에 집이 새로 들어서니 번지수에 토를 달 듯 번지수 다음에 호수(號數)를 붙였다. 그렇게 변형되기 시작하니 번지가 들쑥날쑥해졌다.
대선 후보 이재명과 윤석열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기만의 생활방식이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가 되고 보니 자기만의 방식이 아니라 표를 얻는 방식으로 생활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이 쉽게 바뀔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가 보기에는 말실수가 많아지는 것이다. 실수를 알고 바꾸니 전에 했던 말과 달라 또 하는 수 없이 말 바꾸기가 많아진다.
내 인생도 살아가면서 수없이 고치고 또 바꾸며 살아왔다. 그 바꾸는 방식도 남의 방식이 아니라 나만의 방식, 확증편향 속의 변화이었다.
‘마지막 순간을 빼놓고는 계속 바꾸고 또 바꾸는 일이 연속되리라’라는 확증편향, 모르고도 그냥 살았던 그 오류 속에서 내 일생도 끝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