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글: 앤드루 토드헌터ㅣ사진: 린 존슨 [내셔널 지오그래픽 2012년 3월호 기사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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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전파 성경에 따르면 예수는 가장 헌신적인 제자 열두 명을 ‘사도’로 지명했다. 12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나타 내는 숫자다. 열두 명의 사도들은 1세기에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신앙을 전파함으로써 역사를 바꿔놓았다. 마티아(맛디아), 마리아 막달레나(막달라 마리아), 마르코(마가), 루카(누가) 등 초기에 기독교로 개종한 일부 신자들도 사도가 됐다. 사울은 처음엔 기독교도들을 박해했으나 환상을 보고 변화해 바오로(바울)로 이름 을 바꿨다. 그는 선교 여행을 하며 지중해 전역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기여했다. 예수의 제자들은 지도자가 될 만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성경에 나오듯이 예수가 이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했을 때 이들은 전도보다는 어망을 손질하는 일에 더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온 세상 사람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인도하고 있다.
인도 남부 케랄라 주 파루르 시에는 오래된 코타카부 교회가 있다. 반짝일 정도로 윤을 낸 교회의 돌바닥에 진홍·진초록· 금빛이 어우러진 제단 장식이 마치 연못에 비친 그림자처럼 고스란히 비친다. 제단 장식 주위로는 채색 구름들이 푸른 하늘을 떠다니고 있다. 화사한 옥색 후면 조명이 비치는 벽감들에는 작은 입상 들이 세워져 있다. 교회 벽 가까이에 깔린 융단 위에는 자주색 베일로 머리를 덮은 청색 사리 차림의 여인 하나가 무릎을 꿇은 자세로 팔꿈치를 양 옆구리에 붙이고 두 손은 위로 올린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다. 이웃하여 새로 지은 더 큰 교회에는 기껏해야 엄지손톱 크기만 한 허연 뼛조각 하나가 금빛 성골함에 안치돼 있다. 영어로 쓴 안내표에는 예수 의 제자 토마스(도마)의 유골이라고 적혀 있다. 민간전승에 따르면 AD 52년에 토마스가 이곳에 인도 최초의 기독교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파루르를 비롯해 케랄라 주 여러 곳에 세워진 교회들은 전면과 내부가 코끼리, 멧돼지, 공작, 개구리, 용처럼 생긴 사자 같은 신비한 동물과 덩굴 식물, 신화적 형상들로 장식돼 있다. 그래서 이 지역의 기독교 교회들은 확실히 서방 교회와는 다른 다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어딜 가나 화려하게 채색된 토마스, 성모 마리아, 예수, 성 제오르지오의 성상들이 있다. 용을 무찔렀다는 성 제오르지오에게는 심지어 힌두교도들도 기도를 바친다. 성 제오르지오가 자신들의 자녀를 코브라 로부터 보호해줄지도 모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1498년부터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벽을 장식하고 있다. 이 그림을 보러 찾아오는 사람들은 예수가 이 자리에서 제자 중 한 명이 자신을 배반할 것이 라고 예언했을 때 열두 사도의 마음이 어떠했을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스라엘]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 퍼거스 클라크 사제가 예루살렘에 있는 성묘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무덤’을 응시 하고 있다. 이 빈 무덤은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고 전하는 사도들의 메시지를 상기시킨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제2성전은 AD 70년 로마 군에 의해 파괴돼 지금은 서쪽 성벽만이 남아 있다. 유대인들과 기독교 도들은 제2성전 자리를 성지로 생각한다. 순례자들은 종종 손으로 쓴 기도를 성벽의 갈라진 틈새에 끼워 넣는다.
[이스라엘] 이스라엘에 위치한 팔복교회 밖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이리나 레베데바는 갈릴래아(갈릴리)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이 언덕에서 경배하기 위해 멀리 우크라이나에서 왔다. 이곳은 예수가 산상 설교를 했다는 장소다. 예수는 산상 설교를 통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가장 힘없는 계층이었던 가난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오히려 복이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로마 가톨릭 신도들은 매주 금요일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있는 ‘비아 돌로로사(슬픔의 길)’를 따라 행진하며 그리스도가 마지막으로 걸었던 순례의 길을 기념한다. 요즈음 이 길은 소란스럽고 부산하다. 그래서 프란체스코 수도회 의 탁발 수도사 르네 피터 워크는 확성기를 가지고 다닌다.
[이스라엘] 사도들은 급진적인 견해를 퍼뜨리다 때로 참혹한 고난을 겪었다. 큰 야고보는 헤로데 아그리파(헤롯 아그 립바) 1세의 명령으로 참수형에 처해졌다. 작은 야고보는 몽둥이로 구타당해 죽은 듯하다. 두 야고보는 예루살렘 아르메니아 지구에 있는 성 야고보 교회에 모셔져 있다. 이 교회의 한 작은 성소에 큰 야고보의 머리가 안치돼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 2010년 이스라엘을 방문한 약 350만 명의 관광객 중 상당수가 갈릴래아 호수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연관이 있는 곳들을 찾았다. 갈릴래아 호수 연안은 예수가 베드로, 안드레아(안드레), 야고보, 요한 등 4명의 어부를 만났던 곳으로 성경의 복음서들은 전하고 있다. 이들은 제일 먼저 예수의 제자가 된 사람들로 12사도의 핵심인물들이다.
[스페인] 중세 이후 순례자들은 스페인 북부를 가로지르는 ‘성 야고보의 길’을 따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와서 큰 야보고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을 찾는다. 지난해에는 약 20만 명의 순례자가 이 길을 걸었다. 일부는 얼마나 먼 길을 걸었는지를 보여주는 증표로 교회가 발급하는 ‘여권’에 확인 도장을 받기도 한다. 순례 이후 영적인 변화를 경험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도] 이 유리 상자 속에 봉안된 작은 뼈는 사도 토마스의 앞 팔뼈의 한 부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유리 상자는인도의 케랄라 주 크랑가노레의 한 성전에 전시돼 있다. 이 인근 지역은 토마스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인도로 왔을때 처음 찾은 곳이다.
[인도] 인도의 2700만 기독교도들은 사도 토마스가 예수의 복음을 인도에 전해줬고, 그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믿는다. 그러나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에 위협이 되는 신앙을 고수하는 것은 인도에서는 여전히 위험한 일이다. 2008년, 극렬 민족주의자들이 오디샤 주에서 기독교도들을 공격해 최소 60명이 죽고, 6만 명이 집을 잃었다. 그러나 이곳의 기독교도들은 여전히 목사의 집(오른쪽)에서 비공개 집회를 갖고 있다.
[인도] 병든 자들에게 안수했던 사도들의 전통을 따라 데벤드라 싱 목사가 인도 오디샤 주의 기독교 피난민들을 위해기도하고 있다. 2008년 마을이 습격을 당한 뒤 약 60가구가 이곳의 버려진 건물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이제 이들에게 남은 건 오로지 주님뿐입니다.” 싱 목사는 말한다.
[이탈리아] 참회하는 가톨릭 신자들이 예수가 발을 디뎠을지도 모르는 계단에 경의를 표하며 무릎을 꿇고 로마의 ‘스칼라 산타(성스러운 계단)’를 오르고 있다. 이 계단은 예루살렘에 있던 본디오 빌라도 총독의 관저에서 옮겨온 것이 라고 한다. 한 여인이 대리석 계단을 덮고 있는 나무 밑에 찍힌 혈흔을 살펴보고 있다.
[이탈리아] 바티칸시티의 성 바오로 성당에서 참배객들이 사도 바오로의 석관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성 바오로 성당은 원래 4세기에 건축됐으나 화재로 파괴되고 19세기에 재건되었다.
[이탈리아]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사도 베드로 동상의 발가락들이 많은 순례자들이 만져 반들반들해졌다. 성경은 베드로를 12사도의 선도자로 그리고 있다. 가톨릭 신자들은 그를 초대 교황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있는 산 마르코 성당은 신약성서의 두 번째 복음서를 쓴 사도 마르코(마가)에 헌정되었다. 마르코는 원래의 12사도가 복음을 전하는 일을 도운 사도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이집트에서 죽었지만 그의 시신은 828년 베네치아 상인들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교회로부터 몰래 훔쳐온 것 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시신은 처음엔 대리석 관에 안장됐으나 지금은 산 마르코 성당에 있는 보다 정교하게 장식된 묘에 모셔져 있다.
[프랑스] 중세의 전설에 따르면 마리아 막달레나는 프랑스의 생트 봄므 동굴에서 기도하며 생애 마지막 몇 십 년을 보냈다고 한다. 마리아 막달레나를 본보기로 삼고 있는 근처 도미니카 수도원의 수녀들이 마리아의 것으로 여겨지는 유골 한 점을 지고 행진하고 있다.
[프랑스] 프랑스의 가톨릭 신자들은 1200년대에 발견된 이 유골을 마리아 막달레나의 것이라 믿고 유골을 금으로 감싸서 마리아의 영혼이 빛을 발하게 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를 가장 충성스럽게 따랐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고 성경은 전하고 있다. 이 유골은 생 막시맹 라 생트 봄므에 있는 한 성당에 전시돼 있다.
[프랑스] 파르빈 타바콜 올로프손에게는 프로방스 여행이 마리아 막달레나의 유골을 보는 영광을 누리는 ‘꿈같은 시간’ 이었다. 이란에서 이슬람교도로 태어난 올로프손은 스웨덴으로 이주한 후 기독교를 접하게 됐다. 그녀는 기독교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야기가 등한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녀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고 한다. “나의 모국에서는 모든 여성이 권력의 그늘에 가려 눈에 띄지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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