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의 이름이 '치'로 끝나는 것과 '어'로 끝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국립수산과학원이 정문기 박사의 한국어도보 (1977, 일지사)에 나오는 어명을 모두 찾아서 종결어를 가지고 분류를 한 결과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고기종류에는 '치'로 끝난 이름이 18.23%로 가장 많고, '어'가 16.4%로 2위를 차지했습니다.
10위까지의 종결형은 전체 81.08%가 된다고 합니다.
'돔'은 참돔 등 돔류 어류들이 전부를 차지하고 있고, '둑'은 모두 망둑 종류가, '복'은 복어류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자로 끝난 어류는 대부분은 가자미류와 노래미류였고, '기'로 끝난 어류는 '~~고기'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름이 '고기' 로 끝난 경우는 아무래도 예전부터 내려오는 이름이라기 보다는 최근에 와서 이름이 지어진 것들이라고 합니다.
'대'자로 끝나는 어류는 횟대류, 서대류, 성대류처럼 바닥이 납작한 어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 대'라는 글자가 어떤 물건의 아래를 받치는 납작한 형상을 나타내기 때문에 거기서 유래한 것으로 과학원측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치', '이', '리'로 이름이 끝난 어류는 옛날부터 우리조상들이 자주 봤거나 먹었던 어류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친숙한 어류들에는 고유한 이름들이 붙었다는 뜻인데, 이런 어류들은 생활속 언어에도 깊숙이 파고들어 '이' 자로 끝나는 어류는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고, '치'는 '이'를 낮잡아 일컫는 말로 쓰였다고 합니다. '리'는 연음화 등을 거쳐서 '이'가 변형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는 전갱이류가, '리'에는 가오리류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특정한 종류에 편중되지 않고 다양한 명칭이 나타나는 '치'가 옛날에는 어류를 지칭하는 가장 보편적인 종결형으로 사용된 것으로 과학원측은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치' 못지않게 '어'가 많은 것은 한자문화권의 영향인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본래 이름이란 사물이 있고 그 후에 생겨나기 마련이고, 그 이름도 순 우리말이 생겨난 뒤에 한자 이름이 뒤따라 붙게 되는데, 과거 글 좀 쓰시는 선비님들이 자주 봤거나 언급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고기들에는 한자 이름이 붙었고, 그렇지 않은 어류들에는 순수 우리말 이름이 보존돼 왔습니다.
이수광의 '지붕유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정약용의 '자산어보', '우해이어보' 등 어류에 대한 언급이 있는 책들을 찾아 보면 '멸치'를 '멸어(蔑魚)', '정어리'는 '증울(蒸鬱)' 등으로 표기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부산, 경남에서는 '넙치'라고 부르는 고기를 서울, 경기에서는 '광어'라고 부르는 것도 대표적인 예입니다.
결국, '치'가 어류를 부르는 가장 일반적인 이름인데 한자를 사용하는 식자층을 중심으로 '어'로 끝난 이름이 지어지고 난 뒤 점차 광범위하게 알려지면서 '~~어'가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격면에서도 두 단어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데, 입맛 까다로운 양반들 상에 올라갔던 '어'자 달린 고기들이 지금도 '치'자 달린 고기들보다 상대적으로 비쌉니다. 아무튼 옛날 식자층이 알고 있고 널리 알려진 어류는 대부분 '어'로 끝나는 이름을 가지게 됐고, 그렇지 않은 경우 우리말 종결형들이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