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을 지역의 한축으로 하고 있는 전남 영광과 전북의 부안 지역에 가면 유난히 '칠산**'라는 이름을 많이 만나게 된다. 영광 백수면 백수해안공원에서 바라다 보이는 해역에는 7개의 작은 섬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 섬들의 이름은 '일산도, 이산도, 삼산도, 사산도, 오산도, 육산도'라 부르며, 육산도 앞에 있는 작은 섬 '작은여'를 포함하여 칠산도라고 부른다. 전설에 따르면 이 7개 섬들이 있는 곳은 원래는 육지였고 어느 날 갑자기 바다로 변하면서 섬이 되었다고 한다.
칠산바다는 칠산도 인근에 있는 해역를 말하며, 대략 칠산대교의 영광쪽에 있는 향화도에서 군산의 고군산군도 부근의 해역까지를 말한다.(정확한 해역이 표기된 것은 아니라 약간의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칠산바다는 어족들이 풍부한 황금어장이며, 특히 조기들의 고향이라 불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번쯤은 들어 봤음직한 영광굴비를 연상하면 된다. 칠산바다에서 잡은 조기들은 대부분 영광 법성포나 부안의 줄포로 들어가 가공되어 사방으로 팔려나갔다.
나의 도보 여행길은 이제 무안을 벗어나고 있다. 무안은 갯벌이 특히 매력적인 곳이고, 농작물로는 양파와 마늘이 유명하다. 걷는 내내 광할한 마늘과 양파밭을 보고 지나갔고, 이 계절(5월 초,중순) 양파를 수확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고 경외감을 일으키는 장면들이다. 무안의 밭은 대체로 무척 진한 붉은 황토색이 강하다. 나는 이 장면들과 색깔에서 스페인의 광활한 붉은 토지와 정열을 생각했고, 그 안에 잠긴 사람들의 땀과 피를 보았다. 그 뜨거운 색을 보면서 왜 이 지역의 사람들이 역사를 이끌고 가는 주역들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동해안길, 남해안길, 서해안길의 내가 그동안 걸어 온 길들 가운데 가장 다시 걷고 싶은길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무안, 영광, 고창, 부안'의 길이라고 말 할 것이다. 거기에는 진한 검갈색의 갯벌과 진한 붉은 흙내음이 있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검게 탄 농촌과 바닷가 사람들의 때묻지 않은 웃음이 만면에 그득한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무안 도리포항에서 칠산대교를 건너면 영광군으로 들어서게 된다. 무안의 맨 위에 있는 도리포항이 칠산대교의 무안쪽 끝부분이다. 도리포 항에서는 칠산대교의 오른쪽이 보이고, 대교 오른쪽 바다는 함평만이다. 비록 바다는 함평의 지명을 따랐지만, 내가 가는 서해안 길은 함평땅을 지나가지는 않는다. 전체적으로 함평은 내륙쪽이 휠씬 더 많다.
전날 정오쯤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가던 길을 멈춰야 할 정도의 강수량이라 일찌감치 길을 멈추고 칠산타워가 있는 향화도로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이곳 향화도에서 시작하여 칠산대교를 건너 지금까지 진행해온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무안 갯벌센터까지 걸을 계획이다.
아침에 일어나 만난 아직 구름이 짙게 하늘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었다. 비가 더 내리지는 않을 것 같지만, 바람도 좀 불고 구름의 모양이 빠르게 변화를 하고 있어 자꾸 하늘을 보게 되었다. 걷는 것만 본다면 오늘 같은 날이 걷기에 좋고, 대비가 진한 풍경을 사진에 담을 수 있어 내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날씨이다.
어제 발걸음을 멈추었던 무안갯벌랜드 인근 바다 풍경이다. 갯벌이 마치 비에 흠뻑 젖은 모양으로 서 있었고, 밭에도 길에도 물기가 소북했다. 사방의 풍경들이 평소보다 더 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길 한가운데에 물이 고여있고, 물속에는 길가에 피어 있던 유채꽃이 노랗게 담겨 있었다. 길가에 있던 유채꽃에서 노란 물감들이 아스팔트를 타고 흘러내려 물속에 퍼지는 듯 했다.
갯벌을 더 깊이 가깝게 들여다 보았다. 그냥 장화하나 빌려 신고 들어가고 싶었다. 저 안에는 낙지도 바지락도 갯지렁이도 그리고 이름모를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서 꼼지락 거리고 있을 것이다. 문득 하늘도 산도 섬도 갯벌도 구름도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가길을 따라 한참을 두어시간 남짓 걸은 후에 도리포항에 도착했다. 도리포항 표지석이 있는 곳에 뭍으로 울려진 작은 어선 위로 칠산대교가 흘러가고 있었다.
칠산대교는 좌우측에 인도가 있어 사람들도 건너 다닐 수 있다. 차량 통행이 많지 않지만, 보호대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조금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대개의 바다를 건너는 대교가 그렇듯이 걸어가면서 다리 위에서 보는 바다의 풍경은 차를 타고 갈때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칠산대교 위에서 내려다 본 도리포항쪽 해안가 모습이다. 자그마한 섬이 하나 있고, 그 앞쪽 해변가에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왼쪽으로는 칠산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고 크고 작은 섬들이 한가롭게 자리하고 있다. 하늘에는 짙은 구름들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가까운 연안에는 양식장이 조성되어 있다.
칠산대교는 높은 키의 교각이 2개 있다. 다리의 중심축을 이루고 무게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데, 뾰적한 삼각형의 날카로운 모습은 그 밑에 서있는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특별히 설명이 있는 사진이나 안내판을 못봐서 맞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사용하는 앱의 지도를 참조할때 '닭섬'으로 생각하는 섬이 눈앞에 있다. 아니면 각씨도(대각씨도, 소각씨도)가 아닐런지..
칠산대교 인근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다. 칠산타워는 2016년에 준공되었고, 높이는 111M로 전남에 있는 전망대 중에서 가장 높다고 한다. 아쉽게도 전망대는 covid 19의 영향으로 '임시휴장'이었고, 1층에 있는 수산시장만 열리고 있었다. 오늘은 칠산타워 옆 주차장에서 차박을 하기로 하고 자리를 잡았다. 오전에 비가 내린지라 많이 걷지 않아 몸도 가쁜한 편이고 하늘에 아직도 구름이 진하기는 하지만 더 운치가 있다. 타워에 있는 수산시장에서 낙지를 한마리 사서 칠산의 바람과 맥주 한잔을 나누어 마셨다.
칠산대교의 밤은 의외로 소박하다. 그다지 조명등이 많지 않다. 칠산타워도 그렇게 현란한 조명을 갖추지 않아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요란하게 치장을 하면 민낯의 아름다움이 드러나지 않는 법! 칠산바다는 그 자체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잠결에 흥겹고 큰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하면서 몸을 일으켜 보니 이미 날은 밝아 오고 있었다. 천천히 음악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니 저만치 바다로부터 어선 하나가 수백 마리 이상으로 보이는 갈매기들을 이끌고 큰 소리로 음악을 틀며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눈이 커질만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하늘 가득히 수놓은 갈매기떼들은 음악소리에 장단이라도 맞추듯 목청을 높혀 같이 노래하며 마치 어선을 호위하는 듯 감싸안고 있었다. 대장관이었다.
그날 아침에 3척의 어선이 비슷한 양상으로 항구에 들어왔다. 배에서 내려진 어획물들은 갈매기들처럼 부지런하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과 차량으로 옮겨졌고, 갈매기들은 여전히 배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아마도 갈매기들은 많은 시간동안의 경험으로 아침에 배가 들어오면 자기네들의 먹거리도 같이 들어 온다는 것을 아는 듯 했다. 갈매기들이 근처 바닷가에 흩어져 잠들어 있다가 배가 들어오는 소리에 날개에 힘을 주고 모여드는 듯 했다.
어획물을 다 넘겨 준 어선들은 어딘가를 향해서 정박했던 포구를 떠났고 더 많은 갈매기들이 모여들었다. 이번에는 그들은 높이 날지 않고 바닷물 가까이로 날았다. 가만히 지켜보니 배위에서 어부 한분이 배위에 흩어져 있던 어획물의 잔해들을 삽으로 모아서 바다로 던지고 있었고, 갈매기들은 그 먹이감들을 다른 녀석들보다 앞서서 줍기 위해서 치열한 날개짓들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날개짓은 어선이 칠산대교 밑을 통과하여 함평만 안으로 들어갈때까지 계속 되었다.
나는 그 장면을 다시 보고 싶었다. 그날 낮시간 길을 걷고 난뒤에 다시 향화도로 들어왔고, 다음 날 이른 아침 다시 그 갈매기들의 군무를 보았다. 길을 걸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을 한 장면을 제대로 즐긴 것 같다.
칠산타워 뒷쪽, 칠산대교가 끝나는 지점에는 칠산대교와 타워 그리고 칠산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잘 꾸며진 전망공원이 있다. 대교의 전체 모습과 타워를 높은 위치에서 볼 수 있고 편안하게 휴식을 가질 수 있다.
바로 옆에는 작은 '보문사'라는 태고종 개인 사찰로 보이는 절이 있다.
영광군에서는 군내의 향화도에서 시작하여 부안군 경계(전남과 전북의 도 경계이기도 하다)까지의 해변길을 칠산갯길이라는 이름의 도보여행길로 개척하였다. 칠산갯길에는 '불갑사 주변의 도보길(불갑사길)'을 특별히 포함하였다. 전체적으로 도상으로 약 142Km의 길이며, 5개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경로는 아래에 있는 표와 같다.
향화도에서부터 칠산갯길이 시작되고, 그 첫구간은 '천일염길'이라 부른다. 천일염길은 설도항과 기독교인순교지, 천주교인순교지와 천일염전 등을 지나 두무리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약 30Km의 길이다.
설도항에 있는 기독교인순교탑이다. 영광은 한국의 4대 종교(기독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 성지가 있는 종교적으로 특별한 곳이기도 하다.
천일염 단지의 아침 풍경이다. 염전에 바닷물을 가둬놓고 뜨거운 해를 기다리는 중이다.
영광을 지나면 고창이 있고, 고창은 청보리밭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고창이 인근에 있어서 작물의 특성이 비슷한 듯, 여기에도 청보리밭이 제법 있다. 바람에 쓸려 간간히 쓰러진 곳도 보였고, 보리들은 수확의 시기로 넘어가기 직전의 약간 노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보리는 보통 5월말에 완전하게 익어 추수를 하고, 6월에는 그 자리에 벼를 심기 위하여 물을 대기 시작한다. 이른 곳은 5월 중순부터 모내기가 시작되고, 남부 지방은 보통 6월달에 모내기가 절정에 달한다.
5월이면 청보리가 핀다. 이 길은 인공적인 것들도 볼것이 많지만, 갈매기떼들과 어부들의 공존하는 모습과, 5월에 피어나는 청보리의 꽃처럼 아름다운 보리들을 볼 수 있어 더 좋은 곳이다.
청보리 물결 넘실대는
들판의 소리를 들었는가
푸르른 하늘을 간지럽히는
청량한 청보리 소리를 들었는가
풋풋한 가슴에
청보리 물결의 노래로
바람소리도 푸른빛이 도는
5월의 소리를 들어 보았는가
청보리 물결 따라
그리움이 출렁거리고
해맑은 아이들이 미끄럼 타듯
청보리 물결 넘실거리는
5월의 들녘으로 나와 보라
너울너울 춤을 추듯
모두가 흥겹게 넘실거리는
나의 고향, 5월의 들판으로
[이호연 시인/문학박사]
향화도에 가면 칠산대교와 타워도 보면서, 이른 아침 시간에의 수많은 갈매기들이 펼치는 군무와 이제는 누렇게 황금빛으로 변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보리내음을 맡아 보기를 권한다. 보는 마음도 덩달아 춤을 추고, 콧속과 눈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청보리밭 내음새에 몸과 마음이 맑아 질 것이다. 여행은 자연과 함께 할때 극상의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