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종 훈
내 유년 시절을 떠올리면 강가에 있던 검은 바위 하나가 자연스레 따라 온다. 그곳은 섬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이었다. 우리는 그곳을 오리알 떨어진 데라 불렀다. 마을 정면으로 회문산이 높게 솟아 있고 운암호에서 내려오는 물이 회문리를 거쳐 물우리 마을 앞을 돌아온 물줄기와 다른 한 줄기는 순창 강천사 쪽에서 흘러내려 구림을 거쳐 회문산 물과 만나 몸집을 불려 일중리 앞을 지나 물이 합해지는지점을 우리는 “오리알 떨어진 데(곳)“ 라고 불렀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는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기억나는 장면은 겨울이면 청둥오리들이 날아왔었던 것으로 보아 청둥오리 등 오리들이 날아와 알을 낳아, 간혹 그 알을 줍기도 하여 그런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나 생각 된다
우리는 여름이면 이곳에서 온 종일 멱을 감으며 놀았다. 그곳은 양쪽에서 흘러온 물이 합해지며 강폭이 일시적으로 넓어지고 또 큰 바위가 앞을 막고 있어 물살이 잔잔해지며 오목하니 못 같은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물론 깊은 곳도 있어 꼬맹이들 키보다도 깊은 지점도 있긴 하여도 그곳만 지나면 바위들이 물 위로 솟아 있어 손을 두어 번만 휘저으면 다른 바위로 갈 수 있어 좋은 수영장이 되었다. 놀이 중 하나는 하얗고 조그만 조약돌을 찾아내, 그런 돌은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물속으로 던져놓고 코를 막고 물속으로 들어가 먼저 돌을 찾는 사람이 이기는 놀이였다.
오래도록 물속에 있다 보면 입술이 파래지고 한기가 돌곤 했다. 한기가 돌면 우리는 물우리 동네쪽 너럭 바위로 올라가 자라 모양으로 몸을 말리곤 하였다. 바위는 물가에 솟아 있고 검정색이고 표면은 매끄러웠다. 바위는 우리 꼬맹이 네 댓명이 누워도 넉넉할만큼 넓고 높이는 우리키보다 한참 컸다. 그 바위에 몸을 엎드리고 있으면 그제서야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곤 했다. 물속에서 오래 있어 한기가 든 몸을 바위 대고 밀착시키면 햇볕에 달궈진 바위가 처음에 뜨거워도 나중엔 엄마 품처럼 따뜻해지며 아늑 해졌다. 바위에 몸을 대고 엎드려 젖은 몸을 말리며 귀에 들어간 물도 뻬내었다. 이윽고 젖었던 몸이 말라 뜨거워지면 다시 강에 뛰어들어 멱을 감았다.
오리알 떨어진데에서 물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 가면 구시터에 이른다. 오리알 떨어진 데가 아이들 놀이터라면 구시터는 헤엄을 잘치는 어른들이나 큰 형들의 놀이터다. 구시터는 그 모양이 물이 들어오는 입구는 좁고 급하다 차츰 넓어져 그야말로 소 여물을 먹이는 구시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강은 폭을 줄여 나아가다 약간 몸을 꼬아 구시터로 흘러간다. 강폭이 순간 좁아져 물살이 빠르게 흐르고 물소리 또한 커지며 구시터로 급하게 떨어지듯 흘러든다. 찬물이 강바닥을 깊게 파 구시모양으로 강이 순간 깊어져 물은 검프러지고 소용돌이 치며 부딪히고 흘러 물소리 또한 요란하였다. 구시터 위는 월파정이 있어 여름이면 인근 마을 사람들의 피서지 였다. 어른들은 월파정에서 놀다가 땀을 식히려 월파정 아래 구시터에서 멱을 감고는 했다.
깊고 물이 빠른 구시터가 아닌 오리알 떨어진 데가 당연히 우리 꼬맹이들의 여름 놀이터였기에 오리알 떨어진 곳 옆에 있는 검은 너럭바위는 헤엄을 치다 지친 꼬맹이들의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 주었다. 우리는 여름방학이면 자연스레 섬진강과 그 옆 너럭 바위에서 놀다 방학이 끝나 학교에 가면 눈자위만 하얀 까만 애들이 되어 있곤 했다.
첫댓글 산골 마을 아이들의 유년 시절 모습은 다 같네요. 추억을 소환하고 있군요. 감사***
감사합니다
하~.도시에 살았던 저에게는 꿈 같은 이야기네요. 이야기가 그림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글 마지막 부분에서 상상하니 미소지어 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