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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막:
1260일 예언
만약 GPS장치가 말을 듣지 않고 당신의 목적지의 정반대 방향을 가리킨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건축가 팀이 우연히 오류가 있는 청사진을 가지고 새집을 지으려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상당히 불만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당신의 GPS장치에 잘못된 프로그램을 넣는다거나 고의적으로 당신의 건설 팀에게 잘못된 청사진을 건네주는 걸 상상할 수 있겠는가? 나라면 아주 기분 나쁠 것이다! 그게 정확히 우리가 이번 장에서 볼 사단이 한 일이다.
다니엘서 7장과 8장의 예언에 따르면, 한 작은 뿔이 고대 로마의 폐허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다니엘은 네 짐승들을 보았는데, 그것들은 다니엘서 7장 23절에 의하면 국가들을 상징한다. 이 네 짐승들, 사자, 곰, 표범, 그리고 넷째 “두려운” 짐승은 연속되는 국가들로, 바벨론, 메데-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를 나타낸다. 그리곤 로마의 폐허에서 다수의 국가들이 일어날 것이었는데, 그 중 하나가 “작은 뿔”로 묘사되어 있다. 작다고 불리긴 했으나, 큰 문제들을 일으켰고, 특히 하나님의 청사진을 파괴하려는 시도에서 그러하다. 이 작은 뿔의 권력은 이중 공격을 감행하려고 했는데, 수평적으로 영적 이스라엘 국가를 향한 공격과 수직적으로 하나님의 하늘 성소에 대한 공격이었다. 예언은 그 작은 뿔의 공격이 1260일의 기간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진술한다.
“또 스스로 높아져서 군대의 주재를 대적하며, 그에게 매일 드리는 제사를 없애 버렸고, 그의 성소를 헐었으며” (다니엘 8:11).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다니엘 7:25).
“한 때”는 성경에서 360일, 약 1년을 상징한다. 그리고 “두 때”는 720일을 나타내며 “반 때”는 180일을 의미한다. 이 예언은 70주-예언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다니엘 9:24-27), 이 기간은 우리가 전에 보았던 ‘하루를 1년으로 보는’ 원칙을 동일하게 적용하여 1260년 동안 이어질 사건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로마제국의 멸망 얼마 후에, 이 권력이 세상에서 1260일 간의 지배를 할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사실, 이 권력은 성소를 공격하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기물들을 공격할 것이었다.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살펴보라.
먼저, 그 권력은 번제단을 가리켰던 “매일의 제사”를 버렸다 (다니엘 8:11). 다시 말해,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에 대해 공격할 것이었다. 그 권력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공격할 것이었다 (다니엘 7:25).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곱 가지 촛대로 상징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 권력은 또한 언약궤를 가리키는 하나님의 “법”을 공격할 것이었다 (다니엘 7:25). 실로, 이 권력은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데살로니가후서 2:4). 그 권력은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지성소의 보좌에 앉아계신 성부 하나님의 위치를 주장함으로 그 일들을 이루어낼 것이었다.
그러한 권력이 로마에서 일어났는가? 역사는 그 사실을 증명한다. 영성(靈性)으로 변장한 사단이 하늘에서 불화를 일으켰듯이, 그는 또한 영성을 그의 기회로 사용할 것이었다. 그는 교회에 참여할 것이었다. 그가 잔혹한 공격으로 패배시킬 수 없었던 것을, 아첨과 타협으로 정복하려고 노력할 것이었다.
교회는 로마에 의해 3세기 동안 박해 받아왔다. 이제 로마는 기독교에 대해 호의적인 듯하며 기독교로 개종한 듯 한 새 지도자를 양성해 내었다. 그의 이름은 콘스탄틴이었다. 그는 근래에 핍박당하던 종교를 새로운 국가의 종교로 지정했고, 그 때문에 수많은 이방신 숭배자들이 그들의 신앙을 가지고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교신앙과 기독교의 혼합은 교회를 내부로부터 약화시키기 시작했다. 이교 로마가 야만인들의 공격에 무너지자 (선지자 다니엘이 거의 일천 년 전에 예언했던 대로), 권력 이양(移讓)이 일어났다. 로마 왕국의 폐허로부터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이국적인 한 종교가 일어났다. 이 “새로운” 기독교는 청사진에 의해 가르쳐졌던 모든 진리를 무너뜨렸다.
이 시기에 관해 얘기하자면, 기원후 500년가량 로마제국이 조각조각 날 때, 교회 역사학자들은 기록하길,
“그렇지 않다. 가톨릭교회는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제국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 마침내 두 번째 제국은 생겨날 것이며, 이 제국에서 교황은 주인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유럽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는 그에게 복종하는 왕들에게 그의 명령들을 지시할 것이다.”1
“로마교회는 … 로마 세계-제국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고, 이는 계속되는 실체이며, 교황은 시저의 후계자이다.” 2
“위대한 가톨릭교회는 세례 받은 로마 제국에 지나지 않는다. 로마는 종교를 바꾸면서 모양을 바꾸었다. 고대 왕국의 수도가 그리스도인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폰티펙스 막시무스의 일은 교황이 하는 일에서 계속되고 있다.”3
“그녀는 이교 로마로부터 그녀의 수도와 권력을 받았다.”4
어떻게 성소 청사진이 교황권에 의해 공격 당했는가? 하나님의 성전에 있던 모든 기물들에 어떤 변화가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번제단 : 매일의 제사가 무너짐
교회는 죄를 용서하고 형벌을 면하기엔 그리스도의 희생이 충분하지 않다고 가르치기 시작했고, 고행과 면죄부의 개념을 소개했다. 이는 “일해서” 혹은 “지불해서” 죄의 형벌을 피하는 방법들이었다. 이 가톨릭 교리문답서의 설명들을 보라.
“Q. 속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A. 속죄는 사제가 고백에 부과한 선행(善行)의 기도를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의 죄과의 만족을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Q. 어떤 죄의 형벌이 속죄의 성례(聖禮)를 통해 사라지게 되었습니까? A. 속죄의 성례로 영원한 죄의 형벌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Q. 죄의 일시적 형벌이란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A. 죄의 일시적 형벌은 죄의 책임이 용서된 후에 오는 형벌을 말합니다.”5
“이 성례(聖禮)에서 사제의 면죄를 통해 죄는 용서 받고, 통회와, 자백과, 속죄의 만족이 함께 수반 됩니다 …. 이는 또한 영원한, 그리고 최소한 우리의 과거의 죄로 생긴 일시적 형벌을 면죄해줍니다.”6
이 기간 동안의 교회는 또한 그들이 성찬식에서 떡을 뗄 때마다 다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가 있다고 가르쳤고, 이는 실로 그리스도를 새롭게 못 박는 행위였으며 그분의 단 번에 드린 제사의 중요성과 효과를 무효화하는 것이었다.
“떡과 포도주, 거룩한 돌인 사제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영광의 주를 거룩한 말씀으로 불러 이 땅에 내려오게 하여 그분을 그의 입술로 축복하고, 그분을 그의 손으로 쥐고, 그분을 그의 입술로 받은 다음 신실한 자들에게 나눠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천사는 그의 옆에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서 희생당하는 분께 영광을 돌린다.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딘은 말하길, “사제의 권위는 하나님의 아들을 이 땅에 오직 한 번 데려오게 한 복 받은 처녀 마리아의 권세를 뛰어넘으며, 사제는 매일 그렇게 할 권세가 있다.” 신성화의 시간이 오면, 사제는 머리를 숙이고 그의 입에서는 끔찍한 말이 나온다. “이는 내 몸이요.”라고 말하는 순간 빛의 속도로 만유의 주께서 ‘그의 높은 보좌로부터 뛰어 내려 오셨고’, 떡의 물질은 사라지고 그의 손에는 그가 찢느라 고생한 ‘거룩하고 순결한’ 것이 있는 것이다. 새 법의 멜기세덱은 그의 창조주, 구세주이자 심판자를 손에 쥔다. 신성화의 의식에서 두 번째 말인 “이는 내 피라.”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하나님의 어린양은 ‘신비롭게 죽임 당한다.’ 이는 갈바리의 희생이 제단에서의 희생과 같기 때문이다.’”7
“‘놀라운 사제의 위엄이여!’ 성 어거스틴은 외친다. ‘그들의 손에는 축복 받은 처녀 마리아의 태속에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한다.’ … 사제의 권세를 보라! 사제의 혀는 떡 한 조각으로 하나님을 만든다! 이것은 세상을 창조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이다. 누군가는 말하길, ‘성녀 필로메나가 그렇다면 아르스의 본당신부에게 복종하는가?’ 확실히, 하나님도 그에게 순종하는데, 그녀가 그에게 복종하는 것은 당연하다. 복 받은 처녀는 그녀의 신성한 아들을 주인으로써 내려오게 하지 못한다. 사제는 그가 얼마나 단순하든지 간에 할 수 있다.”8
물두멍: 침례
이 기간 동안의 교회는 또한 원죄 때문에 아기들이 죽으면 지옥으로 갈 것이라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유아세례가 소개된 것이다. 따라서 한 번 침례 받은 아이는 하나님의 은혜의 보호 아래에 있다고 간주되었으므로 어른이 되어서도 침례가 필요 없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새로운 가르침은 어린 아이로서는 할 수 없는 부분 즉, 그리스도인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를 선택할 권리를 강탈 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원죄는 … 범세계적이다. 모든 아이는 그러므로 아담의 불순종에 대한 오염으로 태어날 때부터 더럽혀져 있다. 따라서 원죄를 씻는 세례는 하늘 왕국을 상속받는 데 있어서 어른에게 있어서 만큼이나 중요하다.”9
“누구든 아이들은 실제로 믿지 않기 때문에 신자들 사이에서 세례 받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들의 성결의 때가 오면 재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단언하거나, 그들이 개인적으로 믿지 아니하므로 세례를 배제하고 오직 교회의 믿음을 따라 세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지어다.”10
진설병 상 : 하나님의 말씀
그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의 전통으로 대체시켰다. 그 어떤 평신도도 자신의 성경을 가지거나 읽을 수 없었다. 성경은 인간을 구원하기에 불충분하다고 여겨졌다. 바티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증오를 선포했다.
“성경이 믿음의 유일한 근원이라고 믿는 믿음은 비역사적이며, 비논리적이며, 믿음의 덕에 있어서 치명적이며, 연합에 있어서 파괴적이다.”11
“가톨릭교회의 교리들은 성경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다.”12
주후 1229년 발렌시아 의회의 칙령에는 성경이 금지된 책들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 교리는 “평신도(일반인)가 구약과 신약을 읽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우리는 그들이 대중적인 모국어로 쓰여진 위로부터 온 책들을 읽는 것을 가장 엄격하게 금지한다”라고 말한다. 교황 그레고리 9세는 교회 지도자들이 그들의 성경을 포기하지 않는 이교도들을 면밀히 찾아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거 공간, 헛간 그리고 숲, 심지어 그들의 지하 피난처에 있더라도 완전히 제거되어야 할 것이다.”
1866년 교황 비오 9세는 성서 공회(성경 보급운동)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없애야 하는 역병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금 콜럼버스 출판사에서 1913년에 발간된 질문상자라는 책의 66쪽에서는,
“성경은 신조나 교리문답에 있어서 믿음의 공식인 척 하지 않는다. 신약성경 그 어느 곳에도 그리스도의 가르침 중에 체계적인 진술은 없다. … 성경의 특성은 그 어느 누구도 구주께서 가르치신 바에서 온전한 체제를 찾는 게 불가능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p. 66).
“성경은 참으로 신성한 책이나 죽은 글이며, 이에는 설명이 필요하고, 설교자가 얻을 수 있는 행위를 행사할 수 없다.”13
“성경은 기독교의 교과서로서 의도된 것이 아니다.”14
분향단 : 그리스도의 중보가 버려짐
성소가 커튼으로 나누어진 두 구역인 방에서 한쪽엔 하나님이 좌정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고해성사실은 두 구역으로 나뉜 방에 사제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사람의 고백을 들으며, 그들의 죄를 사해준다고 말하는데, 이를 성경은 신성모독과 동일시 한다 (마가복음 2:7을 보라).
“사제가 심판할 때 용서할지 말지에 있어서 만일 속죄가 가능하더라도 그들이 용서하길 거부한다면 하나님 자신은 그의 사제의 결정에 따를 의무가 있다.”15
“이러한 사법적 권한은 심지어 죄를 용서할 권세도 포함한다.”16
“불쌍한 죄인은 고해성사 신부 앞에 무릎 꿇는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또 다른 그리스도’ 앞에 말한다는 걸 알고, 그는 ‘내가 그대의 죄를 사하노라 …’라는 말을 듣는다. 그리곤 흉측한 죄의 짐은 그의 영혼에서 영원히 떨어진다.”17
일곱-가지 촛대 : 교회가 핍박 받음
또한 이 기간 동안, 로마교회는 “이단들” 즉, 그들의 신학에 동의하지 않은 자들은 누구든지 박해했다. 교회 지도자들은 참된 기독교의 빛을 끄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이 기간은 나중에 암흑시대로 알려지게 되었다.
“로마교회가 인류 역사상 존재해왔던 그 어떤 기관보다도 많은 무고한 피를 흘렸다는 사실은 능숙한 역사적 지식을 가진 개신교인이라면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 교회에 의한 희생자들에 대한 완전한 개념을 형성하기란 불가능하며, 그 어떤 상상력으로도 그들의 고통을 적절히 파악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18
“로마교회와 반대되는 신앙을 주장했다는 연고로 죽은 순교자들을 역사는 1억이 넘는다고 기록한다. 백만 명의 왈덴스 인들과 알비젠 교인들이 [스위스와 프랑스 개신교인들] 1208년 교황 인노첸시오 3세의 십자군 전쟁에 의해 몰살당했다. 1540년에서 1580년 사이 예수회(제수이트) 조직을 시작으로, 90만 명의 사람들이 죽임 당했다. 15만 명의 사람들이 30년의 종교재판으로 죽었다. 찰스 5세의 개신교인을 대항한 칙령 38년 후, 5만 명의 사람들이 이단이라는 이유로 목이 매달리거나, 머리가 잘리거나, 산 채로 화형 당했다. 만 8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듀크 공작이 다스릴 때 5년 반 만에 죽임 당했다.”19
“교회는 신성한 권위로 이단들의 재산을 몰수하거나, 감옥에 넣거나, 화형 시킬 수 있다. 우리의 시대에는 가장 극심한 형벌, 심지어 사형의 권한도 교회에 있다. 이단보다 더 엄중한 범죄는 없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뿌리 뽑혀야 한다.”20
언약궤 : 하나님의 법이 바뀜
교회는 또한 하나님의 법에 있는 자유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법을 바꿈으로 없애버렸다. 루시퍼가 하늘에서 시작했던 공격은 그 교회의 지원 아래에 했던 공격과 동일하다. 이방 로마신상에 바쳐졌던 우상들이 이제는 교회에 이름만 바뀐 채로 바쳐졌다. 신상들은 이제 기독교에 가려져 “성 베드로”와 같은 그리스도인의 이름이 주어졌다.”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둘째 계명을 범한 것은 넷째 계명인 안식일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꿈으로 더욱 가중되었다. 성경은 짐승의 세력이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라고 기록한다 (다니엘 7:25). 놀랍게도, 아마 의도하지 않았던 고백으로, 그 교회는 이러한 진술을 기록했다.
“교황에겐 때를 바꾸며, 법을 폐지하며, 모든 것들, 심지어 그리스도의 가르침도 생략할 권세가 있다. … 교황에게는 그 권세가 있으며 종종 그리스도의 계명을 생략하는 데 사용했다.”21
“가톨릭교회는 그 신성한 사명 덕에 날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시켰다.”22
“교황의 권위와 권세는 대단하여 그는 심지어 신성한 법들을 수정하거나, 설명하거나 해석할 수 있다. … 교황은 신성한 법을 수정할 수 있는데, 이는 그의 권세가 사람의 권세가 아닌 하나님의 권세이기 때문이며, 그는 이 땅에서의 하나님의 대리자로써 행동한다.”23
“아마도 … 교회에서 있었던 가장 혁명적인 변화는 1세기에 일어났다. 거룩한 날인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뀐 것이다. ‘주의 날’ (dies Dominica)은 선택되었으며, 그 어떤 성서에서의 지시로부터도 아니며, 오직 교회 자신의 권위로만 된 것이다. 부활의 날, 오순절의 날, 50일 후에 1주의 첫째 날이 왔다. 따라서 이것이 새로운 안식일이 되는 것이다. 성경만이 유일한 권위라고 생각하는 자들은, 논리적으로 제 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인이 되어 토요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24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읽어 보아도 그 어느 곳에서도 일요일을 거룩하게 하는 권위 있는 말은 한 줄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절대 거룩하게 할 수 없는 토요일을 종교적으로 준수할 것을 강조한다.”25
“Q: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A: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Q: 왜 우리는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키는가? A: 우리는 가톨릭교회가 라오디게아 총회에서 그 권위를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꾸었기 때문에 그렇게 지킨다.”26
“성경 그 어느 곳에서도 예배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꾸어야 한다고 적혀 있지 않다. … 이제 교회는 … 하나님의 권위로 일요일을 예배일로 제정했다. 이 동일한 교회가 동일한 신성한 권위로 연옥의 교리를 성경이 만들어지기 오래 전부터 가르쳐왔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일요일에 있어서와 마찬가지의 권위가 연옥에 있는 것이다.”27
하나님의 자리에 앉음
로마교회는 또한 그 교회의 머리의 위치인 교황을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로 주장했다.
“교황은 너무도 품위 있고 너무도 높아서 그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마치 하나님과도 같으며, 하나님의 대리자인 것이다.”28
“성경에서 그리스도에게 적용된 이름들은 그분이 교회의 위에 계신 것과 마찬가지로, 동일하게 … 교황에게도 적용된다.”29
“교황과 하나님은 동일하다. 그러므로 그에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있다.”30
“우리 주 하나님인 교황이 그가 결정된 것처럼 결정할 권세가 없다고 믿는 것은 이단으로 간주된다.”31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표자일 뿐 아니라, 그가 육체의 장막 밑에 감춰진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32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장소인 이 땅에 산다.”33
그렇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에서 작은 뿔-”의문의 바벨론”, 불법의 사람에 대한 성경의 예언의 성취를 본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공격들은 명백히 교회역사 속에서 보여져왔다. 암흑시대 동안 살았던 교회 개혁자들의 의견을 주목해보라.
마르틴 루터(1483-1546, 루터교)
“루터는 … 다니엘과 성 요한의 계시와, 성 바울과 성 베드로와 성 유다의 서신에 의해 성경에 예언되고 묘사된 적그리스도의 통치가 교황권임을 입증했다 …. 그들이 본 교황의 자리에 앉은 자는 적그리스도였다. 루터가 당대의 백성들에게 선포한 예언적 설명에서 더 큰 힘을 얻은 이 새로운 개념은 로마에 가장 끔찍한 타격을 입혔다.”34
존 위클리프 (1330-1384 롤라드교)
“서부 교회가 약 40년 동안 두 경쟁하는 교황, 한쪽은 로마에, 다른 한 쪽은 프랑스의 아비뇽에 두고 나누어졌을 때, 각 교황은 서로를 적그리스도라 불렀고, 존 위클리프는 둘 다 하는 말이 맞다고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적그리스도의 두 반쪽이 하나의 완벽한 불법의 사람을 만든다.’”35
존 웨슬리 (1703-1791, 감리교)
“그는(교황권) 모든 죄의 수단을 누구보다도 높이기 때문에 분명히 불법의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또한 무수히 많은 군중들의 죽음을 초래했기에 멸망의 아들로 불림이 마땅하다. 그의 반대자와 추종자들 모두 … 그 자신도 …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 승격시킨다. … 가장 높은 권세와 영광이라고 주장하며 …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특권을 주장한다.”36
토마스 크랜머 (1489-1556, 성공회)
“로마는 적그리스도의 보좌가 되었고 교황은 적그리스도 바로 그 자신이 되었다. 나는 그와 동일한 것을 많은 성경절과, 오래된 글들, 강력한 이유들로 입증할 수 있다.” 다니엘과 계시록의 예언을 언급하며.37
존 녹스 (1505-1572, 스코틀랜드 장로교)
존 녹스는 ‘수많은 시대 동안 교황이 교회에 행사했던 독재정권’을 대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루터와 마찬가지로, 그는 교황권이 “적그리스도 자체이며, 바울이 일컫는 멸망의 아들이다.”라고 말한다.38
장 칼뱅 (1509-1564, 장로교)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로마 교황권을 적그리스도라고 부를 때 우리를 너무 심하고 비판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들은 우리가 말하고 우리가 인용하는 바울을 반대하는 자들과 동일한 비난을 하는 것임을 생각하지 못한다. … 나는 [바울의 데살로니가후서 2장의 말을] 교황권에 적용시키는 것 외에 다른 해석이 불가능함을 간단히 보여주겠다.”39
로저 윌리엄스 (1603-1683, 미국의 첫 침례교 목사)
윌리엄스 목사는 교황을 “지구상의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척하며 하나님의 성소 위에 앉아 자신을 하나님으로 불리는 모든 것보다 높일 뿐 아니라 그의 부하들의 모든 영혼과 정신들 위에, 그리스도의 영, 성령님 위에, 그리고 하나님 자신보다 높이며 … 하늘의 하나님을 대적하며, 때와 법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멸망의 아들이다.”40
코튼 매더 (1663-1728, 회중교 신학자)
“하나님의 계시는 기독교 교회에서 적그리스도가 일어날 것을 예언했다. 그리고 로마의 교황권에 모든 적그리스도의 특징들이 너무도 놀랍게도 발견되기에 성경을 읽는 그 누구라도 그걸 보지 못한다면, 그들에겐 놀라운 무지가 있는 것이다.”4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47)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교회의 머리는 없으며, 그렇기에 로마의 교황은 그 어떠한 면으로도 머리가 될 수 없고, 그는 적그리스도요, 불법의 사람, 자신을 그리스도교에 대항하여, 하나님으로 불리는 모든 것 위에 높이는 멸망의 아들이다.”42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요약을 보라:
“위클리프, 틴들, 루터, 칼뱅, 크랜머 그리고 17세기에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하고 침례교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출판한 버니언 아이작 뉴튼경, 웨슬리, 휫필드, 조나단 에드워즈 그리고 더욱 최근에는 스펄젼, J.C. 라일 주교와 마틴 로이드 존스박사 이러한 사람들은 수많은 다른 사람들 가운데 모두 교황권을 적그리스도로 보았다.”43
더욱이, 성경은 이 권세가 666이라는 숫자로 확인될 것이라고 묘사한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계시록 13:18).
“교황의 모자에 새겨진 글자는 ‘VICARIUS FILII DEI’이며, 라틴어로 ‘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인’이라는 뜻이다. 가톨릭은 눈에 보이는 사회인 교회에는 반드시 눈에 보이는 머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성 베드로에게 그의 대표자로써 활동할 것을 임명하셨다. … 그러므로 로마의 주교에게는 교회의 머리로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칭호가 주어졌다.”44
이 칭호의 숫자적 가치를 로마숫자로 알아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자, 그렇다면 1260년은 어떤가?
주후 538년 교황권은 로마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1260년 후, 프랑스가 1798년에 교황을 인질로 붙잡으며 교황청을 폐지했을 때 그들은 일시적으로 정지되었다.
“벨사리우스에 의한 로마의 정복으로 고대 도시의 역사는 종말로 간주될 수 있다. 그리고 비티게스 [주후 538]의 항변으로 중세시대의 역사가 시작된다.”45
“합법적으로 인식된 교황의 우월함은 주후 538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칙령이 효력을 발휘하면서 로마의 주교를 모든 교회의 머리로, 교리 결정자이자 이단 정정자로 세웠을 때 시작되었다. 비길리우스는 … (AD 538) 벨리사리우스의 군대의 보호 아래에 교황의 자리로 올라갔다.”46
“1798년에 그, 베르티에는 로마에 쳐들어갔고, 교황 정부를 폐지하고 세속적인 정부를 세웠다.”47
무신론/진화론의 탄생에 대한 예언
1260년간 세상을 지배했던 교황권의 일시적 종말을 가져왔던 것은 프랑스혁명 (1789-99)이었다. 가톨릭교회의 학대에 대한 결과로 프랑스는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의 모습이라고 착각하며 작은 뿔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사제들만 성경을 소유하는 것이 가능했기에, 대중들은 그리스도, 하나님,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관점을 오로지 교황권을 통해 보았고, 분명히 좋은 그림은 아니었다.
프랑스혁명은 현대 무신론 운동을 낳았고, 공교롭게도 사회가 도덕적으로 고결해지는 데는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 그 전제였다. 그들은 그들이 받은 하나님의 형상을 거부할 타당한 이유도 있었으나, 이 잘못된 그림은 그들의 성경에 대한 견해에 독으로 작용해 성경과 하나님을 거부하게 만들었다. 한 번의 타격으로 사단은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양면공격을 감행했다. 먼저, 그는 자신들만의 규범을 만들어내고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기독교를 보여줬다. 이 종교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했고 거의 1260년 동안 하나님과 그의 성품을 대적하도록 편견을 갖게 만들었고, 프랑스혁명을 통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고 그분 없이도 사람들은 선하게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다 주었다. 가짜 기독교와 무신론은 단순히 사단이 하늘에서 선동했던 똑같은 속임수의 다른 얼굴들일 뿐이었다.
무신론도 자체적으로 성소에 공격을 감행할 것이었다. 먼저 번제단에 공격을 가했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불합리적으로 보이게 될 것이었고, 심지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의심 받을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신이 그의 아들을 죽임 당하러 보낸다는 말인가? 또 물두멍을 공격했다: 한 사람의 삶이 선해지기 위해 새롭게 되는 것은 완전히 불필요한 것이었다. 성경에 근거한 “좋고 괜찮은” 삶을 살기 위해 “다시 태어날” 필요는 없었다. 떡 상도 공격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마음 약한 사람을 위한 전래동화에 불과했다. 무신론은 또 향단도 공격했다: 같이 이야기할 하나님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왜 기도하는가? 일곱 가지 촛대도 공격했다: 교회 내에는 찾을 만한 아무런 빛도 없었다. 그리고 언약궤 속에 있는 안식일 계명 또한 공격했다.
그 당시엔 변형주의라고 불렸던 진화론의 가르침의 첫 씨앗이 존 뱁티스트 라막이라는 과학자에 의해 처음 뿌리를 내리게 된 것도 프랑스혁명 도중이었다. 사단은 진화론과 작은 뿔을 둘 다 활용하여 하나님의 법을 두 가지 다른 각도로 공격할 것이었다. 교황권이 안식일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꿀 권세가 있다고 주장하는 동안, 진화론은 세계가 문자 그대로의 6일 동안 창조된 것이 아니라 수 백 만년 동안 생겨났다는 개념을 소개함으로 안식일을 공격하였다. 그러므로 “제 칠일 안식일”은 절대 없었다는 것이다. 이 점을 납득시키기 위해, 프랑스인들은 일주일 체제를 폐지하고 일주일을 열흘로 만든 달력(프랑스 공화당 달력)을 제정했다.
사실, 다윈은 그의 진화론에 대한 첫 글들을 1842년과 또 진화(변성)에 대한 획기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자연적 창조 역사의 흔적들”이란 책이 무명으로 출간된 1844년에 발표했다. 둘 다 실은 창조 해석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었고, 특별히 안식일을, 세상이 6일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고 제기하며 무효화하려 했다. 이 책들이 출판된 1844년의 중요성은 다음 장들에서 볼 것이다.
그 무신론 진영은 그리스도인 진영을 맞섰고, 현저히 상처를 입혔다. 오늘날 우리가 정치계에서 부르며, 많은 경우 똑같은 원칙을 보여주는 정치적 용어인 “좌파”와 “우파”는 사실 프랑스 혁명에서 국회의원들이 왕의 지지자들은 대통령의 우편에 혁명 지지자들은 좌편으로 나뉘어졌을 때 처음 나타났다. 바롱 드 고빌이라는 한 의원은 설명하길, “우린 서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종교와 왕에게 충성했던 자들은 반대편 진영에서의 고함과 맹세와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는 외설들을 피하기 위해 의자의 오른쪽 위치를 차지했다.”48
프랑스혁명에서 잘못 이끌어진 종교적 “우파”와 진보적이고 자유적인 “좌파” 사이의 동일한 예언적 분쟁은 마지막 분쟁에서도, 이번엔 지구상 마지막 가장 강력한 세력인 미국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었다. 이 두 권세 중 하나는 발군하여 이 땅의 하나님의 참된 교회의 최후의 박해자가 될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는 이중 위협을 직면하는 것처럼 보였다. 작은 뿔의 등장은 참된 기독교를 약해진 상태로 만들었다. 이는 인류가 하늘 성소의 진리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이제 국제적인 무신론은 가짜 기독교를 대항하여 봉기했고, 그 과정에서 참된 하나님과 청사진을 부인했다. 그러나 다니엘서에서 한 번 더 예언이 있었으니, 그 예언은 무신론과 가짜 거짓 기독교의 계속되는 두 공격을 반격하며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대로의 참된 복음을 회복시킬 것이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 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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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ndrea Lagarde, The Latin Church in the Middle Ages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15), p. vi
2 Andre Retif, “The Catholic Spirit”, in The Twentieth Century Encyclopedia of Catholicism, translated by Dom Aldhelm Dean (New York: Hawthorne Books), p. 85
3 Adolf Harnack, What is Christianity?, 2nd edition, translated by Thomas Bailey Saunders (New York: Putnam, 1901), p. 270
4 Alexander Clarence Flick, The Rise of the Mediaeval Church, reprint (New York: Burt Franklin, 1959), pp. 148, 149
5 Roderick MacEachen, Complete Catechism of Christian Doctrine (New Jersey: Catholic Book Company), p. 126
6 Francis J. Butler, Holy Family Catechism, No. 3 (Boston: T. J. Flynn, 1904), p. 257
7 William Doyle, Shall I Be a Priest?
8 H. Convert, Eucharstic Mediatations: Extracts from the Writings and Instructions of Saint John Vianney, translated by Mary Benvenuta (Springfield, IL: Templegate, 1960), pp. 111, 112
9 Joseph Deharbe, S.J., A Complete Catechism of the Catholic Religion, sixth American edition, translated by John Fander (New Yokr: Schwarts, Kir Win & Fauss 1908), p. 255
10 John Dowling, The History of Romanism, seventh edition, p. 510, 499
11 “Protestantism,” Catholic Encyclopedia, Vol. XIII, Section III, “Sola Scriptura.” Accessed January 16, 2013, www.newadvent.org/cathen/12495a.htm.
12 M. Muller, Familiar Explanation of Christian Doctrine (New York: Benzinger Brothers, 1876), p.151
13 Our Priesthood, p. 155
14 Catholic Facts, p.50
15 Liguori, Duties and Dignities of the Priest, p. 27
16 Catholic Encyclopedia, Vol. XII, Article XII, p. 265
17 William Doyle, Shall I Be a Priest?, pp. 14, 15
18 W. E. H. Lecky, History of the Rise and Influence of Rationalism in Europe, Vol. II, 1910 edition, p. 32. An excellent, though lengthy article, can be found on the rightr of the Catholic Church to persecute in The Catholic Encyclopedia, Vol. 12, p. 266
19 Brief Bible Readings, p. 16
20 Public Ecclesiatical, Vol. 2, p. 142
21 “Decretal, de Tranlatic Episcop. Cap,” Ferraris’ Ecclesiastical Dictionary
22 Cardinal Gibbons Quoted in the Catholic Mirror, September 23, 1983
23 Lucius Ferraris, “Papa”, Prompta Ribliotheca, Art. 2
24 “Pastor’s Page,” Sentinel: Saint Catherine Catholic Church (Algonac, MI), May 21, 1994
25 Cardinal Gibbons, Faith of Our Fathers, p. 111
26 Peter Geiermann, C.S.S.R., The Converts Catechism of Catholic Doctrine, Third Edition
27 Martin J. Scott, Things Catholics are Asked About, 1927
28 Ferraris, Ecclesiastical Dictionary
29 On the Authority of Councils, Book 2, chapter 17
30 Pope Pius V, quoted in Barclay, Cities Petrus Bertanous, Chapter XXVII, p. 218
31 Pope John XXII, “Extravagantes,” Ad Callem Sexti Decretalium, Tit. Xiv, cap IV (Paris, 1685)
32 The Catholic National, July 1895
33 Pope Leo XIII, Encyclical Letter, June 20, 1894 (New York: Benziger Brothers, 1903), p. 304
34 J. H. Merle D’aubigne, History of the Reformation of the Sixteenth Century, Book VI, chapter xii, p. 215. Luther declared, “We are here of the conviction that the papacy is the seat of the true and real Antichrist” (August 18, 1520). Quoted in LeRoy Froom,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s, Vol. 2, p. 121
35 상게서
36 “II Thessalonians,” in John Wesley, Explanatory Notes upon the New Testament, Vol. II (London: Thomas Cordeux, 1813), p. 216
37 “A Confutation of Unwritten Verities” in Miscellaneous Writings and Letters of Thomas Cranmer (Cambridge: The University Press, 1846), p. 63
38 John Knox, The Zurich Letters, trans. By Hastings Robinson (Cambridge: The University Press, 1842), p. 199
39 John Calvin, Institutes of Christian Religion, Vol. 3, trans. By John Allen (Philadelphia: Published by Philip H. Nicklin, et. Al), p. 149
40 Quoted in LeRoy Froom,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s, Vol. 3 (Washington, D.C.: Review and Herald, 1950), p. 52
41 상게서., p 113
42 Phili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With a History and Critical Notes, Sixth Edition, Vol. III (New York: Harper & Brothers Publishers, 1877), Ch. 25, sec. 6, p. 658, 659
43 Michael de Semlyen, All Roads Lead to Rome (Dorchestor House Publications, 1991), p. 205
44 “Bureau of Information,” Our Sunday Visitor (Catholic Weekly), (Huntington, IN), April 18, 1915
45 George Finlay, Greece Under the Romans (Edinburgh and London: William Blackwood and Sons, 1844), p. 295
46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3, 6th Edition,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08), p. 327
47 A. H. McDannald, ed., The Encyclopedia Americana, (New York: Americana Corporation, 1941)
48 Marcel Gauchet, “Right and Left”, as quoted in Lawrence D. Kritzman, Eds., Peirre Nora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7), pp. 242-245